〈 9화 〉 아카벌레 9
* * *
“화약 슬라임은 액체 화약이라 불리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분 1%와 액체 화약 99%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쉬지 않고 말한다.
“녀석은 불꽃이나 높은 열에 닿으면 폭발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폭발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지.”
여기까지가 특징.
“오히려 약점은 간단하다. 그저 높은 열을 가하지 않고 화염계열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씨익. 하고 큐즈가 웃는다.
안다 알아. 네 녀석이 왜 웃는지.
“아쉽지만 화약 슬라임은──”
“단!”
왜 말을 끊으려 하는 거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강한 충격을 가하는 공격은 안 된다. 어차피 폭발 말고는 공격력은 없다시피한 녀석들이다 보니 칼로 핵을 살살 누르면 된다. 이렇게만 하면 쉽게 잡을 수 있다.”
순식간에 언짢은 표정을 짓는 큐즈.
아직 놀라면 안 되는데.
여기까지가 기본 상식이고. 이제 고인물의 상식을 알려 줘야 할 때니까.
“녀석들은 흙에 흡수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흙으로는 어림도 없고 마나를 섞은 흙이여야만 한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꿀팁. 아마 이쪽 세계에는 이런 시도를 한 녀석은 없을 터.
“던져서도 안 된다. 아주 천천히, 모래찜질을 해주는 것처럼 마나를 섞은 흙을 녀석에게 문지르면 녀석은 흙에 흡수된다. 그리고 마나 핵만 덩그러니나오게 된다.”
그리고 화약을 머금은 흙이 완성 되는 것이다. 슬라임의 핵을 전혀 손상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화약 슬라임은 다시 생겨난다.
즉, 시간만 있다면 무한 화약 파밍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방법이 있다곤 들어 본 적도 없다.”
큐즈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인다.
“내가 시연까지 해 줘야 하나. 네가 알아서 판단해라.”
나는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 앉았다.
아,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도 평소와는 다른 시선이었다.
평소에 느껴지는 시선이 분노와 공포, 시기였다면 지금은 존경, 놀람과 같은 감정.
이러한 시선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레고리님! 대단하세요!”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수업에 집중했던 걸로 생각하지. 그럼 수업을 계속 진행하겠다.”
나를 노려보며 그렇게 말한 큐즈는 이내 수업을 진행하며 진도를 나가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하나, 모든 수업을 끝냈을 때, 하루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조심히 돌아가도록.”
‘네! 감사합니다!’ 라는 학생들의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진다.
“……지치는군.”
“그러게요오……. 모르는 걸 배우는 저도 이렇게 지치는데, 그레고리님은 얼마나 재미 없으셨을지 상상이 안가요.”
지루할 뿐. 재미없지는 않았다. 정말로 학교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 슬슬 지팡이를 가지러 가지.”
“진짜요?! 지금? 네! 가요!”
지쳤다며 엎드려 있던 로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렇게 신나나.”
“네!”
우리는 같이 학원을 나섰다.
도중에 어제 만났던 경비가 왜 정문으로 안 들어 왔냐며 투덜거리는 걸 로제가 사과하며 어떻게든 넘어갔다.
오늘은 로제도 함께이기에 마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 도시로 향하는 마차가 5분 정도 후에 온다는 모양이었다.
힐끔, 로제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지팡이를 가지러 간다는 것에 들떠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는 하프 엘프.
이렇게 보고 있으니 정말 게임 속 릴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왜 그러세요?”
“그냥, 릴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헤헤헤. 그런가요? 저희 부모님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세요.”
부모님이?
“너희 부모님도 릴리를 본 적이 있는 건가?”
내 물음에 로제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어머니를 아기 때 길러 주신 게 릴리님. 그러니까…… 제 증조할머니까요.”
증조 할머니? 아, 릴리는 엘프였다. 그들의 시간에선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 그레고리님! 마차가 도착했어요!”
“그래.”
아카데미에서 서머니아까지 향하는 마차가 줄지어 정류장 앞에 늘어섰다.
우리는 그중 한 군데에 올라탔다.
덜컹덜컹 거리는 마차의 내부. 마차라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한 이동수단이었다.
“다음부터는 널 안고 날아가는 게 좋겠다.”
“네?!”
내 말을 듣더니 질색하는 로제.
“아니에요! 안 그래도 돼요! 괜찮아요!”
“……네가 그렇다면야.”
역시 아직 바퀴폼인 상태로 안기는 건 힘든 건가.
내가 로제 입장이어도 저런 반응을 보였겠지.
뭐, 나중에는 인간폼으로 날 수 있지 않을까.
“도착했습니다!”
마차 밖에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아카데미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마차로도 금방이었다.
“와! 서머니아는 진짜 오랜만이에요!”
너무나도 기뻐하는 로제. 그 모습을 보니 앞으로 자주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뻐하니 다행이다. 자, 이쪽이다.”
어제와 같이 굽이진 골목길들을 지나다 문뜩 로브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나는 카드 역할도 하는 카드를 꺼내 검은색 로브를 하나 샀다.
“그레고리님? 로브는 왜 갑자기 사시는 거예요?”
네이비색의 로브. 나는 그것을 로제에게 건넸다.
“거기에 가면 시선이 많이 쏠릴 거다. 이걸 입고 모자를 눌러 쓰고 있어라.”
“알겠어요.”
아무리 소환사의 도시인 [서머니아]라고 해도 엘프는 꽤 보기 힘든 종족.
파이몬이 있는 곳은 흑마법사들이 모인 곳이니 분명 좋은 시선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산 로브였다.
로브를 눌러 쓴 로제와 함께
[파리와 염소] 주점 앞에 도착했다.
“어…… 여긴가요? 친구분이 계신다는 곳이?”
로제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외견으로만 보면 낡아빠진 주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녀석이 좀 별난 녀석이다. 로브 잘 눌러쓰고. 따라와라.”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선들이 내게로 쏠린다.
하지만 구면임을 깨닫고는 금세 흥미를 잃는 사람들. 우리는 바텐더 앞으로 걸어갔다.
“음? 어제의 그 공자님이시군.”
두 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바텐더는 꽤 반갑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바텐더에게 어제와 같이 암호를 말한다.
“염소 젖과 압생트를 섞은 뒤 불을 붙인 걸 하나.”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로제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꿀을 섞은 우유로 주세요!”
…….
순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바텐더와 눈이 마주쳤다.
“……이 아가씨는?”
“내 지인이다. 같이 들여보내 주도록.”
내 말을 들은 바텐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쉽지만 그건 힘든데? 공자님도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잖아? 공자님이야 암호를 알고 있어서 들여보내 줬지만……. 그 아가씨는 힘들어.”
그래도 주제에 주인이라고 지키려는 건가.
“걱정하지마라. 내가 알아서 하지.”
그렇게 말하며 뒷문으로 가려 하자 바텐더가 손을 뻗으며 막아섰다.
“……안 된다니까.”
바텐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동시 다발적으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가게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전부 일어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 그, 그레고리님? 여기 친구분이 계시는 곳이라 하지 않았어요?”
공격적으로 바뀐 분위기에 당황하는 로제. 나는 로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놀러왔다고 생각해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거다.”
“그레고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런 거겠죠 뭐.”
내 말을 들은 로제가 바에 앉더니 바텐더를 바라봤다.
“바텐더씨. 여기 실내흡연 돼요?”
이런 상황에서도 명랑한 로제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 걸까. 바텐더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피워라.”
“아싸! 우유도 주실래요?”
우리의 반응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유에 꿀을 타 로제에게 건네주는 바텐더.
우유를 타는 동안 담배를 다 핀 로제는 바텐더가 건네준 우유를 받아 마시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레고리님, 그런데 저희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거예요? 친구분을 뵈러 온 거라면서요?”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로제가 한 잔의 우유를 다 마셨을 때. 뒷문이 열리며 검은 로브의 남성이 걸어 나왔다.
“그, 그분께서 두 분을 모두 안으로 들이라고 하십니다.”
“뭐?”
남성의 말을 듣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바텐더. 나는 그런 바텐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들어가라. 장소는 알고 있겠지?”
나는 까딱 고개를 끄덕이곤 로제와 함께 뒷문으로 나섰다.
술집의 뒷문 너머, 넓게 펼쳐져 있는 공간의 세 번째 방.
파이몬의 공간으로 들어서자 어제 보았던 방이 펼쳐졌다.
“로제, 여기서는 로브를 벗어도 된다.”
“아! 네! 사실 불편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귀가 계속 거슬려서…….”
그리고 그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시게.”
여전히 모습을 가리는 천막 뒤에서 여유롭게 말하는 녀석.
“나중에 한 번 들른다는 말은 했으나……설마 바로 다음 날에 찾아 올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
천막 너머로 대화하는 모습에 로제가 나를 바라본다.
“그레고리님? 여기는 대체…….”
“아! 이 소녀가 그 소녀인가? 릴리와 라스의 후손이라했던, 자네의 소환사라던 그 엘프가.”
"그래."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흠, 확실히, 용사와 옆에 있던 엘프를 닮긴 했군. 음음, 많이 닮았어.”
“어? 저희 조상님을 알고 계세요?”
로제의 물음에 안에서 앗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알다마다! 그대 조상의 업적은 우리 악마들에게도 널리 퍼져있으니 말일세.”
“에헤헤헤, 역시 우리 조상님은 대단───응? 잠깐, 악마요?”
악마라는 말에 쫑긋. 하고 움직이는 귀. 그 모습에 천막 안에서는 의외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레고리여. 설마 그 소녀에게 여기가 어딘지 말을 안한겐가?”
친구가 있는 곳이라고 했지만 굳이 그렇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아는 녀석이 있는 곳이라고 했지.”
“아는 녀석이라니…… 그렇게 말하면 이 늙은이는 서운하네만…….”
"됐고, 언제까지 천막 뒤에 있을 셈이냐. 손님이 왔는데 너무하는 군."
"하하하! 이렇게 갑작스레 쳐들어 와 놓고 손님이라니…… 알겠네. 자네는 언제나 나의 손님이지. 천막을 올리겠네."
서서히. 방 안을 반으로 가르고 있던 천막이 서서히 올라간다.
천막이 위로 올라갈 수록 천막 너머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비친다.
새빨간 옷감
가죽 질감의 의자
발바닥
무릎
가슴
그리고 마침내 모든 천막이 올라갔을 때.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와 로제에게 인사를 건넸다.
"초면에 앉아 있는 무례를 용서하시게. 생긴 건 이래도 나이를 꽤 많이 먹어서 말이야."
자신의 부를,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듯, 새빨간 실크 옷 위로 휘감은 금색의 장신구를 보이며.
"반갑네, 용사의 후예인 로제여."
자신이 별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미소를 지으며.
"본인의 이름은 파이몬."
자신을 소개했다.
"마계의 서쪽을 지배하는 마왕이자.
마계 200 군단을 지휘하는 군단장이며.
72명의 악마 중 9위라는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파이몬. 파이몬일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