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아카벌레 10
* * *
“파이몬일세.”
어제와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폼을 잡으며 본인을 소개하는 파이몬.
아무래도 우리가 왔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이걸 준비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를 바로 안 들여보내 준 거겠지.
실제로 준비가 먹힌 것인지 로제의 눈과 입이 크게 벌어진 상태였다.
”파, 파, 파이몬…! 파이모오온!“
얘는 왜 고장이 난 거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파이몬을 바라보았다.
”파이몬, 폼은 적당히 잡지.“
내 눈에는 그저 멋져 보이려는 꼬맹이로 보일 뿐.
심지어 멋있어 보이겠다고 손에 마력까지 뭉친 모습은 비효율의 끝판왕이었다.
”그레고리여. 이래 봬도 본인은 마계의 왕 중 한 명인데 이 정도는 괜찮치 않은가.“
끌끌끌. 웃으며 마력구를 없애며 웃던 파이몬은 그렇게 말하곤 아직도 얼어 있는 로제를 보았다.
”그리고 요즘엔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인간이 별로 없단 말이네. 음, 만족스럽구만. 만족스러워.“
”앗!“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걸까. 로제가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레고리님이 말씀하셨던 친구분이 파, 파이몬님 이었던 건가요?“
”음? 친구? 그레고리여, 본인을 그대의 친구라고 말했는가?“
”그렇게 말하는 게 데려오기 편했을 뿐이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렇게 말한다. 나와 파이몬의 눈치를 보던 로제 역시 빈 의자에 앉는다.
”흐음, 그렇구만. 그래서, 그레고리여. 어째서 하루만에 본인을 다시 찾아온 겐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건가. 나쁘지 않았다.
”안쓰는 지팡이가 있겠지? 있다면 좀 주면 좋겠군.“
”……뭐?“
예상 못했다는 듯한 표정.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 소환사가 쓰던 지팡이가 망가졌다. 네가 대충 좋은 걸로 하나만 주면 좋겠다. 값은 치르지.“
황당하다는 듯 파이몬이 입을 열었다.
”자, 잠깐. 겨우 지팡이 하나 얻겠다고 본인을 찾아왔다고 말하는 겐가?“
”그렇다.“
내 말을 들은 파이몬이 본인 머리에 손을 올리며 어이없다는 듯 숨을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팡이 하나 얻겠다고 나를 찾아오는 놈은 그대 밖에 없을 것이네. 그레고리여.“
그녀가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그 뒤쪽으로 새까만 공간이 펼쳐졌다.
”따라와라.“
그 말을 하고는 안으로 발을 옮기는 파이몬.
불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로제가 나를 바라보았다.
”가지.“
”아, 네!“
내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조심스럽게 따라오는 로제. 공간 안으로 들어서자 일렬로 전시되어있는 장비들이 보였다.
”…대단하군.“
”그렇지? 본인의 취미 중 하나라네.“
그녀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벽에 걸려있던 지팡이 하나가 날아와 로제의 손 위에 안착했다.
”이건?“
”마계신목으로 만든 지팡이네. 마계 최고의 지팡이 제작자 중 한 명인 자간이 만들었지.“
그리고 다시 진열장으로 날아가는 지팡이. 다시금 새로운 지팡이가 날아온다.
”아크위저드이자 지팡이 제작사이기도 한 아칸의 아칸 시리즈 NO. 44 이네. 나도 이걸 구하느라 애 좀 먹었지. 리치의 뼛조각이 들어가 사령계통 능력이 증폭된다네.“
그리고 다시 진열장으로 돌아가는 지팡이. 파이몬은 양 팔을 벌리며 자신있게 말했다.
”자, 고르게. 값도 지불한다는데, 내가 안 건네 줄 이유가 없군.“
”지, 진짜인가요!“
파이몬의 말을 들은 로제가 창고를 이곳저곳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따금 ‘우와!’ ‘미쳤어요!’ ‘세상에!’ 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걸로 보아 확실히 좋은 물건들이 모여있는 모양이었다.
”파이몬, 여긴 어디지?“
“창고지 내가 취미로 모은 무기들을 모아 놓는 창고. 위치는 우리가 있던 공간의 바로 옆방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바로 옆방이라고?”
파이몬이 이곳으로 이동한 것은 공간이동 마법.
바로 옆방에 오겠다고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는 악마는 이 녀석 밖에 없지 않을까.
내 표정을 읽었는지 파이몬이 웃었다.
“움직이는 건 꽤 귀찮으니 말일세. 한 번씩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군. 로제.”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아직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로제를 불러들였다.
“네?”
통통 뛰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온 로제. 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우리가 찾는 물건은 여기에는 없는 모양이니 그렇게 신중히 고르지 않아도 된다.”
“그런가요?”
파이몬이 여기에 쌓아놓은 무기들은 쓸만한 무기였지만 어디까지나 R 등급이거나 S등급의 무기들 뿐. SR 등급 무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진짜배기는 다른 곳에 숨겨놓았다는 거겠지.
“세계수의 지팡이. 파이몬, 그 물건은 어디있지?”
“호오. 알고 있었는가?”
내 말을 들은 파이몬이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내가 모르는 건 없다.”
“아무렴, 그러겠지. 그대는 모든 지하의 왕이니. 정말로 그 물건을 이 아이에게 줄 셈인가?”
“이 녀석 말고 그 물건을 제대로 쓸 녀석이 존재하겠나.”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로제의 표정이 모르겠다는 듯 눈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어…… 세계수의 지팡이라니, 그게 대체 뭔가요.”
그 모습에 파이몬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별거 아니다. 그대의 조상인 릴리가 사용한 지팡이일 뿐이지.”
“네?”
세계수의 지팡이.
게임 속에서 릴리 폰 유글리아가 사용하는 지팡이로 본래 S 등급의 지팡이이지만 재앙을 쓰러뜨리며 SR 등급으로 개화한 무기였다.
“그나저나 궁금해 지는군. 어떻게 알고 있는 겐가? 내가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낸 적이 없는데.”
파이몬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사실상 지팡이 중에서는 최고 등급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무기.
세간에 알려져 있는 내용으로는 재앙과 함께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중요하고 말고! 내가 그 지팡이를 얻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으니 말이네!”
내 말을 들은 파이몬이 소리친다. 분노한 보랏빛 눈동자에는 방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적의가 담겨져 있었다.
“자네는 잘 모르고 있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정보가 자네에게로 흘러 들어갔단 말일세.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내부자가 정보를 내게 팔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그것 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있는가? 그거라면 내가 숨어있는 곳에 자네가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도 설명이 되지.”
아무래도 자기 진영에 배신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내가 아니라고 해봤자 믿을 수 없다며 파이몬은 배신자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일 터.
파이몬 진영에 피바람이 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굳이 이걸 설명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군. 파이몬. 네가 있는 곳? 과거 자네가 용사를 만난 곳이 그곳이 아닌가. 네놈의 은신처라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정보다. 마르바스 마저 알고 있을 정도지.”
“……뭐, 뭣?! 잠깐, 그러면 그 영감이 왜 날 잡으러 안오는 거지?”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여긴 서머니아다. 마르바스가 와서 널 잡겠다고 난리를 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지? 마르바스는 그저 널 내버려 두는 것에 불과했다.”
어떤 할아버지가 손녀가 돈 좀 빼갔다고 죽을 듯이 쫒아 오겠는가. 잠깐 화가 날 뿐이지.
“그리고 지팡이에 대해서 말하자면…… 넌 바보인가?”
“무, 뭐?!”
“그렇게 세계수 냄새를 내 앞에서 풀풀 풍겼으면서 그걸 못 본체 해달라고 하는 말인가.”
세계수 지팡이의 또 다른 특징. 달에 한 번 지팡이에 열매가 열린다는 것 이었다.
세계수의 열매의 효과는 일정시간 동안 모든 상태이상 회복.
파이몬 역시 이 열매를 노리고 세계수의 지팡이를 얻은 게 확실했다.
“파이프에 넣고 피던 게 세계수의 열매를 말린 거였지? 그렇게 내 앞에서 뻐끔뻐끔 펴놓고 배신자가 있다 생각하다니, 한심하기 짝이없군.”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파이몬이 소리친다.
“세계수의 열매 냄새를 네가 어떻게 안다는 게냐! 세계수의 열매는 오직 세계수를 관리하는 일족과 지팡이 소지자만이 먹을 수 있을 터인데!”
이것 역시 한숨이 절로 나오는 질문이다.
“내 옆에 붙어있는 이 녀석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저요?”
파이몬이 소리칠때부터 내 옆에 붙어서는 벌벌 떨고 있던 녀석. 로제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용사의 후손이라 했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로제, 담배를 펴라.”
“네? 지금요?”
내 말을 들은 로제가 파이몬의 눈치를 보며 물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담배를 피라니, 저런 반응을 보일만도 하지.
“걱정마라. 아무일도 없을거다.”
“……네!”
내 말을 들은 로제가 파이프 담배에 약초들을 꾹꾹 눌러 담고는 불을 붙였다.
뻐끔뻐끔. 연기가 새어나온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파이몬의 눈이 커졌다.
“……이 냄새는.”
“이제야 알겠는가.”
연기 치고는 향긋하고 꽃 내음이 나는 듯한 냄새.
“세계수 이파리군.”
익숙하다는 듯. 파이몬이 중얼거린다.
“켈럭! 쿨럭! 쿨럭! 이, 이게요?”
세계수의 잎이라는 말을 듣자 기침을 하며 놀라는 로제.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로제는 릴리 폰 유글리아의 후손이다. 유글리아의 후손이 뭘 하고 있는지는 내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세계수를 관리하고 있지.”
유글리아라는 이름은 엘프 내에서도 이름 높은 집안. 과거부터 세계수를 관리하는 가문을 뜻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이 농사나 짓고 있다고 말할 때는 웃을 뻔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었겠지만 세계수 관리도 그 안에 포함되나 싶어서.
“이 녀석이 허구한 날 피워대는 담배 냄새와 네 녀석의 담배 냄새가 매우 흡사했다. 그래서 추론 한 것 뿐이다. 따로 설명이 필요한가.”
내 설명을 모두 듣고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 파이몬, 기껏 대악마가 반성을 하고 있건만, 내 옆에 녀석은 본인 페이스다.
“이, 이게 세계수의 이파리라니……! 우리 가문이 세계수 이파리를 빼돌리고 있었다니이!”
세계수에서 나오는 모든 것. 이파리, 나무 껍질, 수액을 반출 하는 것은 엘프 사회에서 큰 중죄.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네 녀석이 피고 있는 건 땅에 떨어진 이파리로 만든 거니 상관 없다. 완전히 말려 약초로 보내는 걸로 보아선 그쪽 담당자와 이야기도 됐을 거 같고 말이다.”
“아,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싱싱한 이파리였다면 굳이 하루에 한 번씩 피지 않아도 됐을 터이니 아마 맞는 추론이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큰 무례를 저질렀군. 내 사과하도록 하지, 그레고리여, 용사의 후손, 로제여.”
무턱대고 화냈으니 그것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일 터였다.
“아, 아니에요! 오해가 풀렸으면 됐 으읍───?!”
나는 사과를 받아주려는 로제의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미안하면 세계수의 가지나 내놔라. 값은 네가 매입했을 때의 가격 그대로 치러주지.”
내 말을 들은 파이몬이 눈을 좁히며 나를 노려본다.
“……악마 같은 자식.”
……나 악마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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