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아카바퀴 11
* * *
파이몬은 그런 악마다.
본인이 잘못했으면 무조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악마.
그런 악마가 어째서 마르바스의 돈을 훔치고 도망치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그 덕분에 파이몬은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앞에 ‘세계수의 지팡이’를 가져왔다.
“이, 이게 세계수의 지팡이……!”
자기 손 위에 지팡이를 올려 놓고는 대단하다는 듯 바라보는 로제.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냥 이파리 달린 나뭇가지 아니에요?”
……그럴 줄 알았지.
“세계수에서도 가장 오래된 가지 중 하나를 잘라 만든 지팡이다. 너야 세계수 옆에서 자랐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팡이 중에서 그것보다 좋은 물건은 별로 없을 거다.”
내 설명을 듣고는 ‘그런가요?’ 라고 말하며 휙휙 휘둘러보는 로제.
“확실히…… 전에 쓰던 지팡이보다 훨씬 가벼운 거 같기도 하고……. 바로 쓸 수는 없는거죠?”
“그렇지, 아직 너에 맞게 조정이 되어있지 않으니 말이다. 조정도 이 녀석이 해줄 거다.”
“내가 말이냐?”
갑자기 본인이 언급되서 놀라는 파이몬. 이내 입술을 깨물며 로제로부터 지팡이를 건네 받는다.
조정은 그야말로 필수적인 의례였다.
소환사의 마력과 스타일에 따라 조정해야만 효율적인 지팡이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끼는 지팡이를 빼앗긴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조정이나 시키고 있다니……. 네 놈은 양심이라는 게 있는 게냐?”
“양심은 태어나자마자 옆집 강아지에게 줬다.”
“……한마디를 안 지는 군. 로제여, 잠깐 손을.”
“손이요?”
파이몬에게 본인의 손을 건네주는 로제.
로제의 손을 잡은 파이몬은 눈을 감고는 조정을 하기 시작했다.
“음, 이건…… 확실히……호오.”
그렇게 약 1분 정도가 흐르고, 파이몬이 눈을 떴다.
“이 아이, 잠재력이 대단하군.”
“그렇겠지. 용사의 후손이니까.”
심지어 용사와 함께 활동한 엘프 릴리 폰 유글리아의 후손이기도 하다.
최강의 피가 둘이나 섞였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헤헤…… 그렇게 말하면 부끄러운데요.”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히는 로제.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만……. 이 아이, 지금 슬롯이 가득 찼다.”
“네? 슬롯이요? 저는 소환수가 그레고리님 밖에 없는데요?”
슬롯.
소환수를 담는 그릇을 뜻하는 말 이었다. 즉, 슬롯이 100이면 1용량의 소환수를 100마리 계약할 수 있다. 50이라면 2마리 100이면 한 마리라는 뜻 이었다.
“수치로 계산하면 어느 정도지?”
내가 묻자 파이몬이 눈을 꿈뻑이며 말했다.
“이 정도라면…… 지금은 3000 정도 되는 구나.”
“에엑?! 삼천이요?! 제가 재능충이라고요?!”
설정상 이 세계의 천재들이 슬롯을 모두 채우면 용량이 1만 정도 된다고 한다.
로제의 나이와 학년,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무척 높은 수치였다.
푸르푸르 정도라면 용량이 1000 정도 되리라.
“그래. 뭐, 그 3000을 모두 저 녀석이 먹어버린 거 같다만, 네가 더 성장한다면 다른 소환수도 부릴 수 있겠지. 노력하거라.”
“네!”
조정을 마친 파이몬이 로제에게 지팡이를 건네주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여기서의 볼일은 끝났겠지? 나가서 이야기 하자구나. 여긴 너무 건조해.”
바로 옆방임에도 포탈을 여는 녀석의 마법에 어이없음을 느꼈다.
전사라는 놈이 마법을 저렇게 다루다니. 저 녀석보다도 더 상위의 악마들은 얼마나 괴물일지 감이 안잡힌다.
원래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파이몬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를 바라지?”
가격 협상. 세계수의 지팡이에 대한 가격을 물은 것이었다.
“프리즘 쥬얼 150개. 협상이나 할인은 불가한다.”
프리즘 스톤의 100배 이상의 가치를 가진 프리즘 쥬얼.
프리즘 스톤이 금화로 10장. 현대 물가로 100만원 정도 되니 150억을 부른 것이었다.
“마계에 있는 내 영토에서 받도록. 아라크네가 처리 할거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이에 내용과 서명을 적는다.
다행히 이 세계는 한글을 사용하는 세계관이었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150 프리즘 쥬얼이라니…… 그레고리님, 정말 제가 이걸 써도 괜찮은 걸까요.”
현실적이지 않은 가격에 벌벌 떨며 지팡이를 바라보는 로제에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교적 싸게 산 것이지. 아마 경매에 내놓는다면 200 프리즘 쥬얼은 받을 거다."
"200프리즘 쥬얼……! 금화로 치면…… 금화 2만 개?!"
한 도시의 1년 수입에 달하는 금액. 마계에 재산이 잔뜩 있는 내겐 큰 부담은 아니었다.
"걱정 말거라, 용사의 후손인 로제여. 저 녀석은 마계에서도 재력으로만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다"
"그, 그런가요? 그레고리님, 대단한 분이셨군요!"
그 반응에 어깨를 으쓱여주었다.
마계 지하에 위치한 광물이 다 내껀데, 이정도야 별것도 아니었다.
"아! 파이몬님!"
”음? 왜 그러는가 로제여?“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 로제가 갑작스래 파이몬을 바라보며 말했다.
"열매가 맺히면 나눠드리러 올게요! 세계수의 열매, 좋아하시는 거 맞죠?"
"으음?"
로제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당황하는 파이몬.
"어렸을 때 몰래 먹어봐서 알거든요. 세계수 열매가 엄청 맛있는 거."
어쩐지. 세계수의 열매가 맺히는 지팡이라는 소리를 듣고 군침을 삼키더니.
"몸 아픈 건 집에서 보내주는 이파리로 충분해서 열매는 많이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열매는 나눠드릴게요. 그…… 마, 맛있는 건 같이 나눠 먹어야 하니까요!"
로제의 말을 들은 파이몬의 얼굴이 벙쪘다.
찰나의 고요. 이내, 파이몬의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큽, 크흡! 크핫하하하하하!"
이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는 파이몬. 그녀는 이내 그렁거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레고리여! 로제는 정말이지…… 최고구나!"
그 반응에 나도 피식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동의한다."
"네? 어…… 왜 웃으시는거에요? 네?"
당황하는 로제에게 말해주었다.
"파이몬에게 있어 세계수의 열매는 기호식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반대로 너나 평범한 인간들에겐 마력을 상승시키고 병을 치유해주는 영약. 그런 걸 나눠주겠다고 하니 저러는 거다."
이어 파이몬이 말한다.
"심지어 동네 친구도 아닌 마계의 대공이자 마계의 군단장, 악마 서열 9위인 내게 저렇게 말하다니. 어찌 안 웃을 수가 있겠는고."
"아우……."
얼굴이 붉게 물드는 로제. 파이몬은 자리에서 일어서 고개를 푹 숙인 로제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주었다.
"그래도 너의 마음은 잘 보았느니라 로제여. 심심하거나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본인을 찾아오도록 하거라."
처음 보았을 때랑은 전혀 다른, 부드러운 눈동자.
릴리. 그녀와 로제를 겹쳐 보고 있는 것이리라.
게임을 하다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파이몬 이것 좀 먹어볼래요?’
[오우거 무리와의 격전 후. 한 구석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파이몬에게 릴리가 다가간다.]
‘음? 이건 무엇이더냐?’
‘세계수의 열매요! 어제 전투에서 저를 지키다가 많이 다쳤잖아요. 라스가 회복물약 같은 거 안줬죠?!’
[파이몬의 소환사인 라스를 들먹이며 화를 내는 릴리. 그녀는 파이몬에게 새빨간 열매를 건내준다.]
‘이걸 먹으면 괜찮아 질 거에요!’
[릴리가 건넨 열매를 받은 파이몬이 이리저리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한입 베어문다.]
‘……맜있군.’
[파이몬의 대답을 들은 릴리가 환하게 웃는다.]
‘그쵸?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만…… 사실 엄청 맛있거든요.’
‘그런데, 어째서 이걸 내게 건네주는 거지?’
[과일을 으적으적 씹으며 묻는 파이몬. 이에 릴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맛있는 건 같이 먹어야 하니까요!’
게임에서 파이몬의 호감도를 올리면 볼 수 있던 에피소드.
아마 그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겹쳐 본 것이 아닐까.
"네! 꼭 찾아올게요!"
그렇게 우리는 작별인사를 마치고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그렇게 좋으냐."
"네! 최고에요! 한 번 마법을 써보고 싶을 정도에요!"
"그럼 대련장으로 가보지."
아카데미 대련장은 방과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그 수만 30개. 그 중 한 가지만 비어있어도 학생증을 인식 시키고 사용하기만 하면 됐다.
"생각보다 많이 비어있네요?"
우리가 향한 곳은 24번 대련장으로 양 옆 대련장에선 소환사들이 소환수와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럼 한 번 시험해 보도록 하지."
“네!"
로제가 대련장 끝에 위치한 허수아비를 향해 지팡이를 뻗는다. 그리고 양옆으로 생겨나는 마법진.
"파이어 불릿!"
기초 마법이지만 범용성이 높은 마법. 파이어 불릿이 사출되며 허수아비에 닿음과 동시에 폭발한다.
”느껴지는 게 있나?“
로제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영창과 사출 속도가 빨라지고 탄막이 커진거 같아요."
"그러겠지."
무려 150억 짜리 무기였으니까.
"다른 것도 시험해보도록 하지. 내게 보조 마법을 걸어보도록."
"네!"
곧 바로 몸에 걸리는 헤이스트와 스트렝스. 확실히 어제의 버프보다 훨씬 성능이 향상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1성때 바퀴폼과 비슷하군."
주먹, 발차기, 가벼운 뜀박질을 해 보았다. 확실히, 지팡이는 제값을 하고 있었다.
”따로 뭐 시험해 볼게 있나?“
"네? 뭐, 다른 것도 사출 계열이라 예상이 돼서요.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럼 돌아가도록 하지."
그렇게, 대련장에서 나오려고 할 때.
──────!!!
저 멀리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뭐, 뭐죠? 방금 소리는?!"
”기숙사 쪽이였다."
우리는 재빨리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기숙사로 다가갈수록 보이는 새까만 연기.
기숙사 앞,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마주한 것은 전쟁터나 다름 없는 현장이었다.
"아파! 아파요!"
"물의 정령과 계약한 사람 없어?!"
"6층에 친구가 있어요! 살려주세요!"
"엄마……엄마……."
나는 벌벌 떨며 아카데미를 바라보고 있는 익숙한 인물, 엘레나에게 다다가 물었다.
"이게 무슨일인지 물어도 되겠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엘레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위로 올라가려 했는데…… 갑자기 최상층에서 폭발 소리가 났어요."
"폭발?"
기숙사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기숙사의 맨 위. 불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그레고리님! 불꽃이 움직이고 있어요!"
"……이프리트다."
S등급의 소환수 이프리트. 아무래도 저 녀석이 폭발 사건의 원인인 듯 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프리트가 저기에 있는 거지?
“와, 황녀님! 황녀님이 아직 최상층에 계세요!”
누군가 건물에서 남성에게 안긴 체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파르페와 푸르푸르였다.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대피시키느라 황녀님이 혼자 테러범과 싸우고 계세요! 도와드려야 해요! 푸르푸르! 빨리 다시 안으로!”
황녀?
대충 상황이 정리됐다.
“황녀를 노린 테러군.”
밖에 나가 있던 것이 다행이었던 것일까. 최상층이라면 우리가 있던 13층에도 영향이 적지 않았을 터였다.
“그레고리님! 아직 황녀님이 안에 계신대요! 저희가 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로제가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우리가 저 안을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교관들이 알아서 하겠지.”
폭발이 일어난 건 1학년 기숙사 건물. 2, 3학년 학생들도, 교관들도 멀쩡했다.
그들이라면 곧 불길을 제압하고 황녀를 구해올 터였다.
“……그런가요.”
순식간에 침울해지는 로제. 하지만 우리가 저런 불길 속을 헤치고 이프리트를 건너 황녀를 구하러 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봐라. 벌써 구조대가 가는 군.”
비룡을 탄 교관 한 명이 기숙사 위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최상층에 접근하는 비룡.
“이, 이프리트가 움직인다!”
이프리트가 비룡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피하려 했으나 날개 끝 부분을 스치고 마는 비룡.
“떠, 떨어진다!”
괴성을 지르며 땅으로 추락하는 비룡. 다른 소환사들이 본인의 소환수들을 소환해 비룡의 추락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속도를 줄이고 물의 정령을 이용해 안전하게 착지 시킨다.
비룡이 역소환 되고, 소환사는 안전히 구조되어 의료진들의 진찰을 받기 시작했다.
구워어어어───!!!
울부짖는 이프리트. 문뜩, 그 위에 새까만 무엇인가가 서있는 게 보였다.
“……사람?”
좀더 자세히 집중해서 보니 검은 로브를 쓴 누군가가 이프리트 위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저 녀석이 테러범.
문뜩 녀석의 얼굴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한 나는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저 녀석이 왜.”
그레고리 존스 (인간 폼) [Ice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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