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아카벌레 13
* * *
“이 정도면 되겠지.”
기지개를 켜며 옆에 놓여진 수첩을 바라보았다.
20페이지에 달하는 설정과 아카데미의 약점들. 띵동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밖으로 나섰다.
“어? 오늘은 바로나오셨네요?”
“그래, 오늘은 즐거운 날이 될 예정이니 말이다.”
“즐거운 날 인가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로제.
아카데미와 담판을 지으러 갈 예정이었지만 혼자서 갈 것이었기에 굳이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평소와 같이 VIP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서는 온통 어제 있었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나에 대한 소문도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어제 그거 들었어?’
‘뭐? 기숙사 테러사건?’
‘아니, 거기서 어제 끔찍한 벌레 같은 게 하나 나왔었잖아.’
‘아~ 그거? 으으, 상상만해도 끔찍한데. 그게 왜?’
‘그게 사실 우리를 지켜준 소환수였데.’
‘뭐? 그 끔찍하게 생긴게? 싫다아~’
‘생각만해도 소름끼쳐~’
저 새끼들 얼굴 다 기억했다.
“그레고리님?”
“음? 왜 그러지?”
로제가 갑작스레 나를 불렀다.
표정을 보아하니 저 년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요, 식사하시다말고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지셔서요……. 혹시 음식이 이상한가요?”
“아니다, 음식은 맛있다. 잠시 안 좋은 생각이 났을 뿐이다.”
“그런가요……. 오늘 수업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오늘도 오전은 수업 위주고 오후에 대련이 있어요.”
“오후까지는 돌아오지. 아카데미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아카데미에서요? 위험한 일은 아니죠?”
“오히려 즐거운 일이지.”
“네! 그럼 기다릴게요.”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따로따로 헤어졌고 나는 곧바로 아카데미 총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총장실이 있는 층에 도착 했을 때, 총장실 근처에 있던 두 명이 나를 막아섰다.
“약속이 없으시면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총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가슴에 달려있는 뱃지의 문양은 선도부인가.
“약속은 안잡았다. 용무가 있을 뿐이다.”
나를 막아서는 두 명을 제치고 들어가려 하자 포니테일의 여성이 손을 뻗어 나를 제지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약속을 잡고 와주십시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꽉 다문 입과 하늘색의 눈동자, 뒤로 묶은 포니테일과 새하얀 리본까지.
흔히 선도부 선배라고 부르는 캐릭터였다.
“네가 날 막을 권리는 없다. 나는 피해자의 입장으로 정당히 총장을 만나러 온 것이니.”
“……피해자?”
말로 해봤자 소용없겠지.
“변신.”
잠깐의 섬광. 이내 변신에 완료한 내 모습을 본 선도부원의 표정이 굳는다.
아. 더듬이가 얼굴에 닿았다.
“히에에에엑!!!!”
뒤로 물러서더니 벽에 막힌 그녀. 뒤로 도망갈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벌벌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 당신 대체 뭐야!”
뚜욱뚜욱 흘러내리는 눈물. 나는 터벅터벅 걸어가 그녀애게 중간에 있느 팔 중 하나를 건내며 말했다.
“아카데미 학생이다.”
“히이이이익!”
이어 실금까지 지린 그녀는 기절하고 말았다.
“…….”
이걸 어떡하지.
기분이 참 오묘했다.
이런 식으로 얻어내는 공포의 감정이 차곡차곡 경험치가 되어 들어오는 느낌은 좋았지만 모습을 보고 무서워하고 끔찍하다 여기는 건 좀 그랬다.
“인간폼은 잘생겼으니 됐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뒤처리를 위해 같이 있던 학생을 찾으려 눈동자를 돌렸다.
“……먼저 도망갔나.”
선도부도 별거 아니군.
기왕 변신까지 한 거. 그냥 이대로 들어가는 게 좋으려나.
선도부들을 해치운 나는 총장실에 두어번의 노크를 했다.
“네~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네~ 무슨 일로…… 히끅!”
나를 보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굳으며 딸꾹질을 하는 여성. 그녀가 바로 이 아카데미의 총장이자 현 아카데미 최강의 소환사 메를린 리큐르 였다.
“다, 당신은…….”
“1학년. 로제 폰 유글리아의 소환수인 그레고리 존스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는 어쩐일로?”
호오, 정면에서 나를 보고서 이 정도 반응밖에 안보이는 건가?
애매랄드를 연상시키는 연두빛의 머리와 눈동자.
머리에 쓴 흰색의 모자와 학자같은 느낌을 연출하는 외알 안경은 교육자라는 모습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배상과 보상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
“배상과 보상이요? 보상이 아니라요?”
이내 어느덧 익숙해졌는지 나를 응시하며 묻는 리큐르.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배상과 보상이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서있게 할 셈이지?”
“……앉으시죠. 차는 홍차로 괜찮으신가요?”
“차는 필요 없다.”
그녀는 내게 손님들을 위해 마련해놓은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건너편에 리큐르가 앉는다.
“어제 있었던 일이라면 1학년 기숙사 테러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잘 알고있군.”
“혹시…… 어제 구조대들이 말했던 괴물이란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다. 황녀의 구출, 이프리트의 저지까지 했더니 교직원들이 나를 공격했지.”
“그런…….”
“보다시피 내 외형이 이래서 말이다. 보자마자 괴물이라며 공격을 하더군. 덕분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고 말이다.”
사실 상처라 해봐야 마음의 상처 정도였지만.
“그 건에 대해선 제가 사과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의외로 총장은 쉽게 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해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였으면 여기까지 안왔지.
“사과만 듣고 끝낼 거면 오지도 않았다. 합리적인 보상과 배상을 바란다.”
“……보상과 배상말인가요. 어떤걸 바라시는 거죠?”
“우선 보상부터 말하도록 하지. 1학년의 로제 폰 유글리아에 대해 졸업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요구한다.”
“전액 장학금이요? 그건 무리입니다. 아카데미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수 있는 건 상위 1% 이내의 학생들 뿐입니다. 그리고 저희 학비가 얼마인지는 잘 아실텐데요.”
소환사 아카데미의 한 학기 학비는 금화 500개. 일반 평민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엘프 사회에서 존중받고 세계수까지 관리하는게 로제의 가문이지만…… 그렇다고 학기당 금화 500개가 부자에게도 여유로운 금액은 아니었다.
“상위 정령인 이프리트에게서 승리한 나다. 불과 1학년인 학생의 소환수가 말이다.”
이프리트 자체는 그럴 수 있다. 상위 정령을 다루는 학생은 존재하니까. 하지만, 상대 소환사는 격이 다른 상대였다.
“이프리트의 소환사는 못해도 최고위 소환사였다. 그건 총장인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적을 물리쳤다.”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내 소환사인 로제는 이만큼 유능하다고.
“그뿐인가. 소환사 아카데미 특별 장학금에 관한 학칙 3항을 읽으면 이런 내용이 있지.
[아카데미에서 특수한 사건에 의해 특출난 재능 및 실력이 인증 된 학생이 있을 시 총장의 권한으로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다.] 라고.”
내 말을 들은 그녀가 눈을 감고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 내용이 있는지 떠올리는 것이다.
“……확실히 그런 내용이 있었죠.”
“그리고 나는 그 특출남을 대부분의 학생과 교직원들 앞에서 인증했다. 정말 내 실력이 의심되면 황녀를 증인으로 내세우면 되겠지.”
“그게 끝 인가요.”
이게 끝일 리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학생답게 14층에 방을 줬으면 좋겠군.”
“14층은 왕족이나 고위 귀족이 사용하는 방입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라도 무리에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앞에 내 학생증을 올려놓는다.
“난 대공이다.”
멍하니, 그녀가 내 학생증을 바라본다. 내 이름 옆에 적힌 직위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소환사는 엘프 중에서도 왕족으로 취급 받는, 세계수를 관리하는 일족이자 용사의 후손이기도 하지. 자격은 충분하다.”
“……이 모습과는 많이 다르시네요.”
“이게 본래 내 몸이라 말이다. 불편하다면 원래 몸으로 돌아가주지. 변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말씀하신 조건은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현명하군.”
“이걸로 보상에 대한 이야기는 끝난 거겠죠?”
“그래, 보상은 말이다. 자, 이제 배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21세기 나일롱 환자의 수법을 보여주마.
* * *
협상은 완벽한 내 승리였다.
나는 배상을 요구하기 전 상처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을 계속해서 어필했고 피아식별도 없이 나는 공격한 아카데미측에 책임을 물었다.
그렇게 요구한 것은 아카데미 영약고의 개방. 총장은 말도 안되는 제안이라 소리쳤지만 나는 당당히 맞받아쳤다.
‘그렇단 말이지? 윽, 상처 때문에 협상이 힘들군. 난 도시 의료시설 중 가장 실력 좋은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마.’
‘그러시죠.’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누가 물으면 상처 때문에 입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어. 오는대로 설명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군.’
‘……….’
‘치료비 정도는 아카데미측에서 지불 하겠지? 최고의 약제들과 치료만 있다면 나을 수 있겠지. 물론 그래도 계속 아플 거 같지만.’
‘……영약고에서 가지고 갈 수 있는 영약은 1개로 제한하죠.’
‘좋은 배상이었다.’
이렇게 된 것이었다.
자기 딴에는 영약고에 있는 좋은 물건은 잘 숨겨놨으니 상관 없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가장 가치있는 물건을 가지고 올 예정이었기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아! 그레고리님 오셨네요!”
점심시간 전, 교실로 돌아오자 로제가 나를 반겼다.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나.”
“헤헤, 그렇죠. 그런데 일은 잘 끝내셨나요?”
“만족스러울 정도로.”
“다행이네요!”
“그래, 로제. 너는 앞으로 졸업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아카데미를 다니게 될 거다.”
“…네?”
“어제 네 소환수인 내가 큰 활약을 했으니 말이다. 보상으로 받아왔다.”
“그, 그게 사실인가요? 한 학기에 500골드인데요?”
“총장이 의외로 친절하더군.”
나는 총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로제에게 설명해 주었다.
“와……. 그레고리님. 믿기지가 않아요. 그 총장님이 굴복하다니.”
눈에서 반짝이가 쏟아내릴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로제, 괜히 부끄러워서 눈을 돌려버렸다.
“자꾸 그렇게 바라보면 변신할꺼다.”
“아아앗! 그것만은!”
이건 또 이것대로 상처인데.
내 표정을 본건지 로제가 외쳤다.
“밥! 밥 먹으러 가죠! 대련을 하려면 밥을 든든히 먹어야 하니까요!”
“그래.”
그렇게 점심식사까지 마친 우리는 오늘 하루가 이렇게 무난히 끝날 줄 알았다.
오늘 만큼은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차, 찾았다 이 파렴치 벌레!”
오줌싸개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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