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아카바퀴 14
* * *
“차, 찾았다 이 파렴치 벌레!”
오줌싸개가 찾아왔다.
“파렴치에 벌레라니, 요즘 쓰는 말이 아니군.”
일본 라노벨이냐고 무슨.
“어? 선도부장? 무슨 일이세요?”
오줌싸개를 본 로제가 놀라며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든다.
선도부장? 저 오줌싸개가?
“로제? 그대가 어째서…… 물러서라! 그 녀석은 변태괴물벌레다!”
변태괴물벌레는 또 처음 듣는 별명이었다.
“네? 이분은 제 소환수이신 그레고리님이신데요?”
"그, 그 녀석이 말이냐?!"
나는 기가차서 말했다.
"자기 혼자 내 모습을 보고 실금까지 지리며 기절해 놓고는 내게 잘못을 따지는군."
"무슨 소리냐! 네 녀석이 갑자기 변신해서는 나한테 그 더, 더……."
"더?"
"더, 더듬이로 내 얼굴을 훑지 않았나!"
"넌 병신인가?"
내 더듬이가 촉수도 아니고 그거에 닿았다고 저 지랄을 하는 건가?
"병신이라니!"
"너는 남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았다고 신고하는 그런 인간인가."
오늘은 쉽게 넘어가나 했더니 이상한 이유로 또 시비를 걸어온다.
예절교육 마렵네 진짜.
“어…… 선도부장, 그레고리님과 서로 오해가 있던 모양인데요. 그레고리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예요.”
“로, 로제 너마저…….”
로제의 변호를 듣고 더욱 경악하는 표정으로 물드는 선도부장.
“로제, 저 여자랑 친한가?”
“네! 예전엔 같이 밥도 먹어 주시던 분이예요.”
그래도 너무 나쁜 놈은 아니라는 건가.
“불쾌했다면 내가 사과하지. 이거로 됐나?”
“될 리가 있나! 너 때문에 나는…… 선도부에서 내 체면이……!”
사과까지 했는데 이렇게 나오면 답이 없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계속 네 징징거림을 들어 주면 되는 거냐?”
내 말을 들은 선도부장이 부릅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대련이다….”
“대련?”
“너를 꺾고 내 체면을 살릴꺼다! 바로 다음 시간이 대련이니 그때 승부를 겨루자!”
아니 이건 뭔.
“너, 2학년 아닌가.”
“그렇다만.”
넥타이 색깔이 달라서 물어 봤는데 역시 그랬나.
“2학년이 1학년에게 대련을 걸면서 체면을 따지다니 어이가 없군.”
1학년과 2학년은 경험부터가 다르다. 로제와 비교하자면 뉴비와 일반 플레이어의 수준.
결코 정당한 대련이 될 수 없었다.
“그레고리님. 저 하고 싶어요!”
갑자기 로제가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진심인가? 네 실력으로는 힘들지도 모른다.”
“각오하고 있어요!”
“……아무리 나라도 힘들다.”
소환사는 물론이고 소환수로써의 스펙도 많이 딸릴 터였다.
“저희라면 할 수 있어요! 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런가.”
확실히, 이번 대련은 로제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의 전투였으니.
뭐, 그렇지 않았던 적이 없는 거 같지만.
“그럼 그러도록 하지. 대신에…… 내기를 할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직 나를 노려보고 있는 선도부장을 바라보았다.
“내기말이냐?”
“너, 선도부장이라고 했나.”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선도부장.
“우리가 이기면 너는 우리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 줘야겠다. 네가 이기면 뭐…… 우리가 네 부탁을 들어 주는 거로 하지.”
“……후회하지 마라.”
휙. 고개를 돌리며 선도부장이 사라진다. 그러자 갑자기 내 손을 잡는 로제.
“그레고리님! 빨리 가요!”
대련 전 연습을 하려는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끌려가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로제. 여긴 대련장 쪽이 아니다만?”
“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담배피러 가는 건데. 담배는 혼자 피면 안 되는 거 몰라요?”
………꼴초엘프.
* * *
“로제 폰 유글라아와 그레고리 존스. 너희는 매번 결투신청을 받아오는구나.”
나와 로제를 본 수인교관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그녀의 눈에는 우리가 항상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는 학생들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계속해서 싸움을 걸어오더군. 아카데미의 예절교육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다.”
내 대답을 들은 교관이 피식 웃는다.
“확실히,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이야기다만……. 정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걸로 3번째 대련이다. 너에 대한 분석은 충분히 이뤄졌을 거다.”
오, 그래도 1학년이라고 걱정해주는 걸까.
“우리도 계속 강해지니 걱정 없다.”
내 겉모습을 이용한 승리만 2번째다. 분명 상대는 대처법을 가져 왔을 터.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상대를 부숴 버리면 될 터였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 슬슬 시작하도록 할까.”
손목시계를 바라보던 교관이 이내 크게 소리쳤다.
“로제 폰 유글리아와 그레고리 존스. 아멜 발멩가와 휴고. 대련장으로 들어와라.”
우리는 대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 서 있는 건 선도부장과 털가죽 치마를 입고 있는 남자.
“웨어울프군.”
“네? 저 남자가요?”
로제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R등급의 카드. 웨어울프 휴고.
아니, 왜 이 아카데미에서 우리랑 붙는 것들은 죄다 R등급 이상인 걸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 옆에 선 선도부장, 아멜을 보았다.
눈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썬글라스?”
렌즈가 까맣게 칠해져 있는 썬글라스였다. 내 변신을 저걸로 대응하겠다는 건가?
분명 무슨 마법처리가 되어 있는 물건이겠지.
“로제, 지팡이로 새로 장만 했으니, 네 실력을 제대로 보여 줘라.”
“네!”
이윽고 교관의 대련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와 동시에 나와 휴고가 대련장의 중앙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소환사를 제대로 엿먹였다지? 그 복수다!”
처음부터 있는 힘껏 내게 주먹을 날리는 휴고. 녀석의 주먹을 옆으로 흘려보내며 무릎으로 복부를 가격한다.
“제법인데?!”
단련된 몸이라는 건가.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 몸을 껴안았다.
“잡았다!”
이건, 위험한데.
“변신.”
잠깐의 섬광으로 휴고가 눈을 찡그린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2쌍의 팔에 힘을 주어 녀석의 품에서 벗어난다.
내 모습을 본 휴고가 표정을 찡그린다.
“징그럽게 생긴 벌레군.”
“너는 꼬리 잘 흔들게 생긴 강아지 같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건가?”
나는 녀석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고 곧바로 달려들었다.
녀석이 자리를 벗어나려 몸을 뒤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뒤로 넘어지고 만다.
“소환사 쪽인가…!”
녀석의 발 밑에 자라 있는 나무 뿌리. 로제가 힘을 쓴 것이었다.
이윽고 뒤에서 로제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힘이 솟기 시작했다. 보조 마법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제빨리 녀석의 몸 위에 올라타 파운딩을 걸었다. 맨 위에 있는 팔들로 녀석을 공격하지만 녀석은 요리조리 피하며 몸을 뒤틀었다.
내 몸이 기울어진다. 재빨리 팔을 움직여 몸을 다시 뒤집는다.
덕분에 세 쌍의 다리를 모두 땅에 붙힐 수 있었다.
녀석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좌측으로 회피 기동하자 곧바로 불덩어리가 내 머리에 작렬했다.
순간적으로 고통이 느껴졌지만 금세 사라지며 시야가 돌아왔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휴고의 모습이 보엿다.
“잡았다! 벌레자식!”
[스킬 : 폭발적인 속도]
순식간에 뒤로 물러선 나는 곧바로 아멜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아직도 나를 향해 주문을 영창을 하고 있었다.
녀석의 마법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6개의 얼음 송곳. 하지만 내 뒤에서 날아온 마법에 의해 요격당한다.
“마법은 제가 요격할게요!”
“아니! 너는 저 늑대로부터 몸을 지켜라!”
상대 휴고 역시 소환사를 노릴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
[스킬 : 날개 펼치기]
엄청난 속도로 아멜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둥그런 몸과 유선형 몸통은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 해주고 있었다.
“바로 끝내도록 하지.”
나는 그대로 자세를 잡는다. 현재 내게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
“바퀴벌레 킥.”
검은 정의가 몸에 꽂힌다.
그것은 마치 한 줄기의 흑뢰(?雪) 모든 것을 불태우는 자연재해와 같다.
허나, 내 공격을 맞은 것은 아멜이 아니었다.
“……뻔하지. 소환사를 우선 공격하는 네 특징은 이미 파악했다.”
어느새 반인반수, 웨어울프의 모습으로 아멜에게 다가온 휴고가 양팔을 교차하곤 내 공격을 막아 낸 것이었다.
“아우우우!!!”
근거리에서 녀석의 피어가 내 고막을 때렸다. 찌르르르거리는 소리가 몸을 진동시키며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 차례다. 벌레.”
녀석이 나를 향해 정권을 날렸다. 양팔로 막아보지만 내 몸은 저멀리 날아간다.
날개를 펼쳐 착지하려 했으나 어느새 내 위로 점프한 녀석이 그대로 날 땅에 내다 꽂았다.
엄청난 통증이 등에서부터 느껴졌다. 내 위에 올라탄 녀석이 싱긋 웃는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지?”
“망할새끼.”
두 쌍의 다리로 녀석의 주먹을 막아 낸다.
강해진 내구력으로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혼자 힘으로 빠져나가긴 힘들었다.
눈동자를 돌려 로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스 불릿! 스톤 불릿!”
2중 영창. 동시에 두 가지 마법을 발현 한 것이었다.
이게 현질의 힘인가. 다른 눈동자로 바라보니 아멜의 눈이 놀란 듯이 커져 있다.
“요격하겠다!”
아멜이 마법으로 아이스 불릿을 격추시킨다. 하지만 스톤불릿이 남았다.
이대로 스톤불릿을 맞은 녀석을 떨쳐 내면 되겠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쇠로 무언가를 쳐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도부장, 아멜이었다.
그 모습에 주먹을 휘두르고 있던 휴고가 싱긋 웃었다.
“몰랐어? 우리 소환사는 원래 검사야.”
“검사주제에 마법까지 쓰다니, 사기군.”
“그렇지?”
이렇게 되면 방법은 없었다. 최소한 아멜까지 날 공격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로제는 계속해서 마법을 써야만 했다.
방법은 단 하나.
“로제! 광역마법을 사용해라!”
“……네? 진심이세요?!”
“물론이다!”
안 그래도 주먹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데 칼까지 들어오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광역마법으로 한 번에 쓸어 버리는 쪽이 훨씬 승산이 높았다.
2성이 되며 강화된 내 키틴질의 몸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로제! 제정신인가! 네가 광역마법을 사용하면 우리야 괜찮지만 네 소환수는 무사하지 못할거다!”
심상치 않은 마력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로제를 노려보고 있던 아멜이 소리쳤다.
그녀가 로제의 영창을 막기 위해 달려가려 했으나 나는 더듬이를 움직여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크윽! 또 그 더듬이인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나를 노려보는 아멜. 역시 나를 거침없이 바라보는 걸로 봐선 안경빨이 확실했다.
“다 같이 우리 소환사의 마법맛이나 느껴보자고.”
이윽고 로제의 지팡이 위로 거대한 화염덩어리가 생성된 것이 보였다.
파이어 밤.
주변의 모든 것을 화염으로 휩쓸어 버리는 마법이었다.
“어떻게 1학년이 파이어 밤을……!”
경악하며 로제를 바라보는 아멜.
이래 봬도 저 녀석은 용사의 핏줄을 타고난 녀석. 아이템까지 받쳐주는데 저 정도는 기본이었다.
“저는 그레고리님을 믿어요!”
그렇게 외치며 파이어 밤을 날리는 로제. 거대한 화염이 우리를 향해 날아온다.
“칫, 아멜! 내 뒤로 숨어라!”
파운딩을 포기한 휴고가 아멜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멜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듯 주변에 새하얀 얼음 벽을 만들어낸다.
거대한 폭발과 동시에 주변이 초토화 된다.
나 역시 몸을 최대한 수그렸지만 불꽃은 피아식별 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고통을 주었다.
아니, 녀석들은 생각보다 잘 막아 내고 있었다. 오히려 내게만 데미지가 들어오는 듯 싶었다.
아프다.
뜨겁다.
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아프다뜨겁다.
이렇게 죽나?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몸이 죽음에 근접합니다.]
[(특성 : 지독한 생명력)이 발동합니다.]
[지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회복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고통이 줄어들고, 머리가 상쾌해진다.
역시, 이게 바퀴벌레인가.
죽음의 위기가 닥치면 IQ가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바퀴벌레의 특성이 발휘한 것이었다.
[새로운 스킬 : 검은 늪]이 사용 가능합니다.
지능이 상승했기 때문일까 새로운 스킬 마저 사용할 수 있다는 알람이 떠올랐다.
새로운 스킬은 못 참지.
아직 꺼지지 않은 대련장의 불길. 나는 천천히 일어서며 숨을 고르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저 녀석. 아직 안 쓰러졌던 건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두 녀석.
아직도 몸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나는두 녀석에게 손을 뻗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바퀴다.”
[스킬: 검은 늪] 발동.
새까만 무리가 적들을 삼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