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아카벌레 15
* * *
그것은 ‘죽음’ 그 자체였다.
수많은 검은색 죽음이 휴고와 아멜을 삼키자 두 사람은 마치 그림자처럼 변했다.
검은 형체가 발버둥 치기 시작한다. 허나 그 표면은 마치 검은 바다가 파도를 치듯 출렁인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래, 나를 직접 보는 것 만큼은 특별한 아이템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수 많은 벌레에게 온몸이 갉아 먹히는 것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10초 정도가 지났을 때.
“그만!”
대련장 밖에 서 있던 교관이 외쳤다.
마법을 해체하자 온몸에 잔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벌벌 떨며 어떤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싫어싫어싫어싫어' 같은 소리였기에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는 듯 싶었다.
“……승자는 로제 폰 유글리아와 그레고리 존스다. 아멜과 휴고는 따로 치료를 받아야겠군.”
교관의 말에 대련장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선도부원이 두 사람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째서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걸까. 결국 대련이었을 뿐인데.
“그레고리님! 방금 그건 뭔가요? 뭔가 그림자 같은 게 두 사람을 삼켰었는데…….”
대련이 끝나고 로제가 나를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멀리서는 그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은 듯 싶었다.
“내가 일반 벌레만큼 작아진 것들이다.”
“……네?”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는 듯 표정이 굳는 로제.
“그, 그렇다면 두 사람을 덮은 건 벌레였다는 소리인가요?”
“그래.”
부르르. 하고 로제의 몸이 떨렸다.
“상상도 하기 싫은데요……. 아! 그레고리님, 상처는 괜찮으세요? 제가 쓴 마법, 꽤 아프셨을 텐데.”
“아, 더럽게 아프더군.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죽음의 위협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마법이었으면 [특성 : 지독한 생명력]이 발동하지 않았으리라.
“네?”
“그건 나중에 설명하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스킬에 대해 말하는 건 밑천을 떠벌리는 거나 다름 없었다.
로제 역시 주변의 시선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나는 좀 쉬고 싶군.”
“확실히 저도 지치네요. 이렇게 마나를 많이 쓴 건 처음이에요.”
대규모 광역마법까지 사용했으니 당연했다. 파이어밤은 아직 로제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마법이었다.
“너희도 들어가서 휴식하도록. 오늘은 수고했다.”
교관이 나와 로제를 바라보며 손을 건넸다. 이번 대련을 꽤 높게 본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 변신한 상태였기에 로제가 대신 그 손을 잡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아직까지 예비로 쓰고있는 2학년 기숙사 건물로 돌아왔다.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여 오는 중간에 인간폼으로 돌아와야 했다.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며 힐링을 하고 있을 때, 로제가 홍차를 내 앞에 놓으며 말했다.
“그레고리님, 아까 그 스킬, 뭐였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저도 처음 보는 스킬이었는데…… 조건부인가요?”
소환사는 소환수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렇기에 그녀 역시 꽤 놀랐을터였다.
“특성이었다. 죽을 위기에 처하면 지능과 회복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특성.”
“그런게 있었나요?”
“나도 놀랐다. 네가 물은 그 스킬은 지능이 상승하며 잠시 열렸던 스킬이겠지.”
지금 상태창을 켜봐도 [스킬 : 검은 늪]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확실히 지금은 안 보이네요. 나중에 등급업을 하면 다시 나타날까요?”
“아마 그렇겠지.”
내가 사용한 첫 마법이라 그럴까. 다시 한 번 쓰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럼 저녁시간 때 까지 휴식을 할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다만…… 저녁을 먹고 나와 함께 가야할 곳이 있다.”
“네?”
“너는 설마 내가 총장한테 전액 장학금만 받고 만족했으리라 생각하는 건가?”
“서, 설마 다른 걸 더 뜯어 내신건가요…?!”
로제의 얼굴이 기대감이 잔뜩 부풀었다. 그 모습에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그건 저녁을 먹고 말해주지.”
나는 그렇게 말하곤 심상공간으로 이동했다.
공간을 이동하며 ‘그레고리니이임~~’ 이라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만족했다.
바퀴폼으로 돌아와 침대에 털썩 앉자 앞에 있는 모니터에 새로운 알람이 와있는게 보였다.
“뭐지?”
가까이 다가가 확인 해보았다.
[소환사 아카데미아 외전(그레고리 존스)의 다음 챕터가 오픈되었습니다.]
“하, 지금 와서 이게 열린다고?”
아마 오늘 [스킬 : 검은 늪]을 사용했기에 열린 듯 싶었다.
“쉬고 싶었지만…… 게이머에게 최고의 휴식은 게임이지.”
이렇게 알람까지 날리며 플레이 해달라고 난리인데 안 하면 그게 바보다.
“그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게이밍 의자에 앉았다.
* * *
띵동!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시간을 보아하니 저녁시간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마침 챕터2도 끝난 상항.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스트레칭을 하며 로제의 곁으로 이동한다.
“진짜 저녁을 먹고나면 말해주시는 거 맞죠?”
아무래도 심상공간으로 움직이기 전 내가 했던 말을 아직까지 신경쓰는 모양이었다.
“그래, 너에게 손해되는 일은 아니니 걱정 말아라.”
“알겠어요! 그러면 빨리 밥먹으러 가요!”
로제가 내 옷소매를 붙잡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야 하는데 왜 뛰는지…….
그렇게 나는 로제에게 끌려가며 [소환사 아카데미아 외전(그레고리 존스)] 의 챕터 2 내용을 떠올렸다.
챕터2의 내용은 내가 마계에서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든 일을 떠넘긴 나의 취미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여기서 의외인 점이 나왔는데 내 글은 마계에서 대히트를 친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인간폼을 개발했고, 가명으로 활동했던 이름이 [카프카]였던 모양.
내 캐릭터를 디자인한 녀석은 어지간히 카프카의 팬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카프카라는 이름으로 마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악마를 만나는 게 챕터 2의 주 내용이었다.
덕분에 중요한 내용이라면 중요했다. 인맥에 대한 기억을 얻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그레고리님?”
“왜 그러지 로제?”
“아, 어떤거 주문하실 거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아, 토마토 파스타로 부탁하지.”
“저는 토마호크 스테이크! 바싹 익혀서요!”
“……항상 궁금했는데, 엘프가 그렇게 고기를 좋아해도 되는 건가?”
내 말을 들은 로제가 무슨소리냐는 듯 말했다.
“아이 참, 그레고리님도. 그런 건 나이 드신 분들이나 그렇게 말하죠. 요즘 엘프들은 고기를 잘 먹어서 키나 가슴도 과거에 비해 엄청 커졌다구요~.”
“……확실히.”
여기서 보았던 엘프들은 게임 속에서 보던 것보다 평균 이상으로 가슴이 컸었다.
그런 이유가 있었나.
“무엇보다 저는 하프엘프니까요. 일반 엘프라면 모를까. 저 같은 하프엘프들은 풀만 먹고 못 버텨요.”
“다양한 이유가 있군.”
“그렇다니깐요?”
그때, 우리 앞에 음식이 놓였다. 조리 시간은 정말 순식간이였다.
“와! 고기! 그레고리님! 맛있게 드세요!”
“그래, 너도 맛있게 먹어라.”
토마호크 스테이크의 끝 부분을 잡은 로제가 시원하리만큼 고기를 물어 뜯었다.
과연 어느 누가 저 모습을 엘프로 볼까.
“음?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거예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후 일과는 평소와 같았다. 식사 후 식후빵.
“푸하! 역시 식후연초불로장생이라는 말이 맞다니까요!”
파아~ 하는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연기. 이런 모습을 볼때마다 정말 꼴초로 밖에 안 느껴졌다.
“로제. 저 녀석들, 지금 우리를 보는 거 같지 않나?”
“음? 누구요?”
나는 눈동자로 힐끔 우리 뒤쪽에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부터 식당 건물 뒤에서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뭐, 담배 피다보면 눈도 마주치고 나중에 인사도 하고 그러는 거죠 뭐.”
“그게 학연, 지연, 흡연. 뭐 그런건가.”
“오. 꽤 잘 아시네요?”
원래 세계에서 군대에 있을 때 맨날 들었던 이야기였다.
설마 이세계에서도 통용될줄은 몰랐는데.
”그럼 저 녀석들이 우리랑 친해지려고 한다는 소린가.“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이거 피고 어디로 가요?“
”총장실.“
”……네? 어디요?“
”우리는 총장실로 간다.“
총장실이라는 단어에 당황하는 로제였지만 금세 내 모습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는다.
“그레고리님이라면 별 문제 없겠죠.”
“좋은 믿음이다.”
본관에 위치한 총장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어제 보았던 선도부원 한 명과 처음보는 남성이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로 총장실에 온 거지?”
녀석들의 눈에는 적대심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오늘 있었던 일이 선도부원들 사이에 퍼진 듯 했다.
“총장과 약속이 있다. 못 믿겠으면 총장에게 그레고리 존스가 찾아왔다고 말해보도록.”
내 말을 들은 선도부원이 뒤에있던 선도부원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총장실에 노크를 하는 다른 선도부원.
“총장님. 그레고리 존스가 찾아왔습니다.”
[들여보내세요.]
안에서 총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못마땅하다는 듯 우리의 앞을 막은 선도부원이 입을 열었다.
“……들어가라.”
“고맙군. 가자 로제.”
“네!”
총장실에 들어서자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총장의 모습이 보였다.
“영약고를 들어가게 해준다고 말을 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 저를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걸 중요시 하는 편이다.”
“……그런가요. 그쪽이 그레고리 존스의 소환사인 로제 폰 유글리아양 인가요?”
“네! 로제 폰 유글리아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긴장하고 있던 로제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총장이 웃음을 지었다.
“네, 반가워요. 정말이지…… 훌륭한 소환수를 두셨네요.”
“헤헤…….”
꼽을 주려고 한 것 같은데 로제는 정말 칭찬으로 들은 듯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저를 찾아온 이유는 영약고의 개방 때문이겠죠?”
“그래, 총장 없이는 영약고가 열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것도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인데 대체 어떻게 아시는 건지…….”
고개를 저은 총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저었다.
몸을 일으킨 총장, 메를린의 복장은 꽤나 특이한 복장이었다.
신관복을 개조한 듯한 디자인의 옷은 신비스러운 그녀의 모습을 한 층 더 신비롭게 꾸며내고 있었다.
“……가시죠. 영약고로.”
주머니에 손을 넣은 그녀를 필두로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층수 버튼 가장 밑에 있는 열쇠 구멍에 목에 걸고 있던 열쇠를 꽂아 돌리는 총장.
그러자 보이지 않던 지하 5층의 버튼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신기하죠? 아무래도 아카데미의 영약고다보니 보안에 신경을 썼죠.”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5층
3층
1층
B1
B3
B5
마침내 지하 5층에 도달해서야 멈추는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리 눈앞에 웅장하리만큼 커다란 철문이 나타났다.
“여기가 아카데미의 영약고에요. 아카데미를 빛낸 학생들에게 보상으로 주는 영약이 있는 장소죠. ……특수한 경우에 주는 경우도 있지만요.”
“보안은 이게 끝인가?”
“설마요. 저 문이 한철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아직 부족하죠.”
총장이 손가락을 모아 휘파람을 불자 쇠사슬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르르르릉…….
짐승이 위협하는 듯한 소리가 문 옆에 난 구멍에서 들려온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마침내 모습을 나타낸 것은 높이만 3m는 될법한, 머리가 3개 달린 거대한 개였다.
“켈베로스. 아카데미의 영약고를 지키는 파수꾼이죠.”
켈베로스. 무언가를 지키는데 특화되어 있는 소환수.
침을 질질 흘리며 우리를 노려보는 켈베로스를 바라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귀엽게 생겼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