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아카바퀴 16
* * *
“귀엽게 생겼군.”
내 말을 들은 총장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사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그러면 한 번 만져볼래요?”
“그래도 되겠나?”
“네~ 얼마든지요. 우선 저와 계약한 소환수 중 한 마리니까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총장의 소환수였나.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켈베로스.
머리 세 개 달린 거대한 강아지가 내게 다가오는 풍경은 그야말로 판타지스러웠다.
“그레고리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저 멍멍이…… 엄청 무서울 것 같은데.”
뒤에 있던 로제가 걱정이 됐는지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다.
나라고 모르겠는가. 총장이 나를 골려주려고 저런다는 것을.
하지만 이건 예상 못했겠지.
“켈베로스. 앉아라.”
“왕!”
다가오던 켈베로스가 내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헥헥 거리며 혀를 내민 세 개의 머리. 한 개뿐인 꼬리가 붕붕거리고 있다.
“이게, 무슨…….”
그리고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는 총장.
굳이 내가 설명해 줘야 하는 건가.
“아! 그레고리님이 악마라서 저러는 거군요.”
다행히도 로제가 대신 설명해 주었다.
“……그레고리. 당신은 분명 대공이라고 했죠.”
“그래, 녀석이 내 격을 알아본 거다.”
켈베로스는 마계에서 생활하는 고위 마수. 평범한 악마라면 몰라도 대공 정도 되는 악마를 보면 자동으로 꼬리를 마는 게 당연했다.
“켈베로스 중에서도 특이한 녀석 같군. 이름이 있는 놈인가?”
“……갸름. 켈베로스 무리의 보스예요.”
오, 네임드 몹이였나. 카드로도 발매가 된 적 있는 녀석이었다.
등급은 R등급. 소환사인 총장의 수준도 있으니 웬만한 SR등급 까지는 씹어먹을 수 있을 수준이리라.
지금은 이렇게 굴어도 내가 억지로 영약고에 들어가려고 하면 날 한입에 먹을지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켈베로스는 충분히 귀여워 해 줬으니 슬슬 들어가도록 하지.”
몸을 숙인 켈베로스의 머리들을 잔뜩 쓰다듬어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게 말하자 총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죠. 갸름. 영약고에 들어갈게요.”
“멍!”
갸름이 뒤로 물러서더니 본래 있던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저 안에 갸름의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총장은 영약고 문 앞에 서서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레고리님! 저거, 고대어예요!”
“……고대어도 알아들을 수 있었나?”
의외였다. 꼴초 하프엘프인 로제가 고대어를 알고 있다니.
“어릴 때 배웠어요. 저, 이래 봬도 유글리아 가문이거든요?”
그 꼰대 엘프들의 문화라면 충분히 조기교육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봉인을 푸는 종류의 영창 같아요. 이 정도 보안은 세계수에나 하는 줄 알았는데, 대단하네요.”
“그만큼 귀한 게 많다는 거겠지.”
실제로 게임에서 나왔던 것보다 보안이 훨씬 강화되어있는 모습이었다.
몇 번 털려서 그런가.
그렇게 뒤에서 로제와 시답지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철로 만들어진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가시죠.”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
“아카데미에서 가장 값비싼 물건들이 모여있는 창고니까요. 갸름이 당해도 여는데 시간이 걸리도록 설계했거든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렇죠?”
문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약 하나하나가 모두 유리관 속에 담겨 보관되어 있었다.
“아카데미 최고의 자랑인 영약고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약속은 잊지 않으셨죠?”
“그래, 단 한 개만 가지고 가는 거였지?”
“네, 개인적으로는 백년매화꽃을 추천해드려요.”
“100년에 단 한 송이만 핀다는 그 꽃을 말하는 건가?”
게임 속에서도 경험치 재료로 많이 사용하던 재료였다.
“알고 계시네요? 유글리아양은 하프엘프니까 목(?) 속성의 영약과 잘 맞을 거예요.”
확실히 로제라면 다른 영약보다 더 많은 마나를 쌓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생각해 놓았던 영약이 있었다.
“아쉽지만 그건 다음을 노리지.”
“그렇게 말한다면야…… 잠깐만, 다음이요?”
나는 그렇게 말하는 총장을 무시하고 영약고 제일 안쪽으로 걸어갔다.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로제. 내가 멈춰 선 곳은 영약고 끝에 있는 벽이었다.
“열어라.”
“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총장.
그 정도 연기로 내가 속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네가 말한 건 영약고 내에 있는 영약 한 가지였다. 이 안도 영약고로 포함되니 내겐 안에 들어가 영약을 고를 권리가 있다.”
손으로 벽을 두드리자 통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이 비어있다는 소리였다.
“자, 잠깐만! 당신이 대체 거기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식방해는 물론이고 온갖 마법으로 숨겨 놓은 공간인데?”
나도 걸어오면서 긴가민가 했다. 게임 속에서는 이곳에 제 2 영약고가 존재 했으니까.
제2 영약고. 우리가 지금 있는 영약고 보다 단계가 더 높은 영약고들을 보관하는 장소.
원작에서도 안 나오고 프리퀄 게임인 [소환사 오브 더 월드]에 나오는 장소였다.
“그것까지 내가 일일이 너에게 말해야 하나?”
굳이 설명하기 귀찮아 그렇게 말했건만 총장은 내게 다가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네! 당연히 말해야죠! 제 2 영약고는 아카데미 소속 교직원 중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장소인데, 소환된 지 일주일도 안 된 당신이 알고 있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아, 귀찮게. 그냥 있는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기로 했다.
“13대 총장인 슈나글로와 함께 와 본 적이 있다. 됐나.”
소환사 아카데미의 13대 총장.
슈나글로 오르페. 용사인 라스가 재앙을 봉인한 직후 아카데미의 총장에 오른 인물이었다.
지금의 총장이 25대이니 까마득한 선배나 다름 없는 인물이었다.
“1, 13대 총장님이랑요? 대체 당신은…….”
이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는 제 2 영약고 문 앞에 서는 총장. 총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문 손잡이를 잡고는 옆으로 열었다.
“……이게 끝인가?”
“뭐 대단한 보안장치라도 있는 줄 아셨나보죠? 이미 인식방해와 온갖 마법을 뚫은 인물이라면 어떤 마법을 써도 뚫을테니까요. 그냥 미닫이 문으로 만들어놨죠.”
의외로 미닫이 문을 못 여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렇게 말한 총장이 제 2 영약고 안으로 들어섰다.
제 2 영약고는 작은 방과 같은 모습이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은행에서나 볼 수 있는 개인 금고들.
개인 금고마다 안에 어떤 영약이 들어있는지 쓰여져 있었다.
“하, 고르세요. 여기서 당신이 뭘 고르던 전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어요.”
포기했다는 듯 벽에 등을 기댄 총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만 한숨을 대체 몇 번을 내쉬는 건지 괜히 걱정이 됐다.
“한숨을 많이 쉬면 복 떨어진다.”
“그건 또 저희 할머니가 자주 하던 말이네요. ……악마 아니랄까봐.”
아니, 나도 우리 할머니한테 듣던 이야기였다고.
넋이 나가있는 총장을 뒤로 하고 개인금고를 바라보았다. 로제 역시 신기하다는 듯 영약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그레고리님! 여기 대박이에요! 전설이나 설화 속에 나오는 영약들이 있데요!”
“그러겠지. 여기가 진짜 보물고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한 개인금고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턱. 하고 내 손을 가로막는 손이 있었다.
“자, 잠깐!”
“……왜 그러지. 놀랄 힘도 없다 하지 않았나.”
“그거랑 이거는 다르죠! 저, 정말로 그걸 고르시려는 건가요?!”
총장이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는 개인금고. 그곳엔 [세계수의 황금열매] 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맞다. 이 영약 역시 목(?) 속성이니 로제와 잘 맞겠지.”
이 열매는 재앙이 사라진 후 세상에 퍼진 생명의 힘을 세계수가 응축 시킨 열매로 목(?)속성 영약 중에서는 최상급 티어에 속해있는 열매였다.
“아, 아니. 그래도 이건 안돼요!”
“무슨 이유라도 있나?”
“이, 이건 1학년 수석이신 황녀님께 드릴려고 제가 힘들게 구한 영약이란 말이에요!”
황녀도 목(?) 속성이었던 건가.
“그런 이유라면 뭐…….”
“이해해주시는 건가요?!”
“우리가 가져도 상관없겠군.”
“네에?!”
나는 싱긋 웃으며 금고를 바라보고 있던 로제를 불렀다.
“로제.”
“네!”
“세계수의 황금열매. 네가 가져라.”
“알겠습니다!”
“잠깐만! 그것만은 제발!!”
별도의 잠금장치는 없는지 손쉽게 열리는 금고. 아무래도 수납용도로만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와……이게 그 세계수의 황금 열매군요. 저희 할머니께서 직접 따셨다고 말로는 들었는데……. 제가 직접 먹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할머니? 아, 엘프의 수명은 인간보다 기니 크게 이상한 건 아닌가.
“아아……아아…….”
로제가 열매를 꺼내 가는 것을 보며 총장이 울부짖는다.
힘으로 막지 않는 것은 그래도 약속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거겠지.
“그레고리님? 이거 이대로 먹으면 되요?”
“그래, 한 입에 삼켜라.”
“네!”
방울토마토 만한 크기의 열매. 로제는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한번에 입에 넣었다.
“음……음! 그레고리님!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그러──”
냐. 라고 말을 끝내기도 직전, 로제의 몸에서 황금빛이 폭발하듯 퍼져 나왔다.
다행히 물리력은 없어 뒤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놀랄만한 상황이었다.
빛이 조금씩 옅어지고, 자신의 몸을 둘러보는 로제가 보였다.
“그, 그레고리님…! 저, 3서클이 됐어요!”
로제의 몸 주위로 은은한 빛이 돌고 있었다. 영약의 효과가 생각보다 강했는지, 1서클이었던 로제가 무려 2서클이나 뛰어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럼 나도 3성까지는 무리 없이 갈 수 있겠군.”
이 세계는 빌어먹을 게임이었던 세계답게 성장에 락(Lock)이 걸려 있었다.
내가 마계에서 그렇게 마석과 프리즘 스톤을 그렇게 먹고도 2성 밖에 못 간 이유도 다 그것 때문이었다.
원래 2성을 무리 없이 찍기 위해선 로제를 먼저 2서클로 만들어야 했지만, 그때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아 억지로 뚫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로제가 3서클을 이룬 만큼 내가 3성이 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적당한 전투와 공포 그리고 영약만 있으면 되겠지.
3성부터는 성장 경험치가 크게 증가하니 그래도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아아, 세계수의 황금 열매가…….하, 하하, 하.”
털썩 주저앉으며 계속해서 헛웃음을 내뱉는 총장. 왠지 저러고 있으니 내가 정말 나쁜 짓을 저지른 것 같았다.
아니, 악마니까 당연한 건가.
그래도 괜히 마음이 찔려 위로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걱정 마라 총장. 이번 시험때는 우리가 수석을 차지해줄 테니. 넌 차석이 된 황녀를 위로해주면서 대충……백년매화꽃이나 주면 된다.”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건가요.”
“그렇게 안 들렸나?”
그럼 유감이지 뭐.
내 위로를 듣고도 넋이 나간 듯 웃고 있는 총장을 뒤로하고 나는 로제에게 다가가 물었다.
“몸에 이상은?”
“없어요. 오히려 컨디션이 어느 때보다도 최고에요.”
다행히 세계수를 관리하는 일족 답게 영약을 완벽히 흡수한 모양이었다.
원래라면 제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마력을 갈무리해야만 완벽히 흡수할 수 있지만…….
“시도때도 없이 세계수 잎으로 담배를 피워대는 너니 말이다.”
이미 로제의 몸은 세계수에 완벽 적응한 상태,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이 영약을 선택했다.
“……대체, 여기에 세계수의 황금열매가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신 건가요.”
뒤에 주저앉아있던 총장이 내게 물었다.
“아는 녀석이 말해 줬다.”
파이몬이 헤어지기 전에 따로 말해준 내용이었다.
‘최근 아카데미의 총장으로 보이는 자가 세계수의 황금열매를 구했다는 소식이다. 그대의 소환사인 로제가 섭취한다면 큰 성과가 있을게다.’
1 영약고에 없으니 제 2 영약고에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맞아떨어져 다행이었다.
“로제, 서클이 2단계나 올랐으니 상태창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거다. 확인해 보도록.”
“네!”
소환사인 로제가 성장했으니 내 상태창도 달라졌을 터.
“상태창……음?”
그렇게 읊조리고, 내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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