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아카벌레 17
* * *
“상태창.”
[마계의 대공, 그레고리 존스]
[★★☆☆☆☆☆☆☆☆]
[특성]
1.귀족
2.지독한 생명력
[스킬 목록]
1.변신 (Lv.Master)
2.날개 펼치기(Lv.2)
3.폭발적인 속도(Lv.3)
4.바퀴벌레 킥(Lv.1)
잠금. 검은 늪 (Lv.1)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상태창이 확연히 변했다.
설마 2 서클만 올렸을 뿐인데 이 정도로 바뀔 줄이야. 그렇다면 여기서 서클이 더 늘어나면 어떻게 된다는 거지.
“와……그레고리님. 스킬이 엄청 많아요!”
로제가 놀라는 것도 이해가 갔다. 보통의 2성 소환수라면 많아 봐야 스킬을 2개 정도를 가지고 있는 게 정상.
스킬 4개를 가지고 있는 나는 이레귤러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너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늘었겠군.”
“네 맞아요! 배워놓고 못 쓰고 있던 마법들도 이제는 쓸 수 있어요!”
1학년에 3서클. 이 정도라면 정말 학년 수석도 어렵지 않게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분…… 용건이 끝났으면 이만 나가실까요?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요…….”
영약을 구하러 가야 하는 거겠지.
“그러도록 하지. 용건은 끝났으니. 로제, 돌아가자.”
“네! 총장님, 감사합니다!”
영약고를 나서며 아직도 주저앉아있는 총장에게 인사를 하는 로제.
우리는 나갈 생각이 없는 총장을 내버려 두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레고리조오오오온스!!!
“음? 누가 날 불렀나?”
“네?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요?”
“그런가.”
뭘 잘못들은 모양이었다.
영약고를 나와 곧바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나는 온종일 움직인 것에 지쳐 소파에 쓰러졌지만, 로제는 영약 탓인지 자신의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와! 진짜! 이게 되네? 대박!”
손가락 안에서 마법을 굴리며 놀고 있는 로제, 나는 그런 로제를 무시하곤 창밖을 바라보며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특성 : 귀족] 때문인지 가끔은 이렇게 쉬는 것도 좋았다.
똑똑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원래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던 로제가 의아해하며 현관문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현관에서 ‘히에엑!’ 거리는 괴상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뒷걸음질을 치다 털썩 주저앉는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로제?”
무슨 일인가 하여 이름을 불러보았더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하는 로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와…황녀.”
“황녀?”
“와, 황녀님이 오셨어요오!!!”
“뭐?”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가니 쓰러진 로제를 보며 어찌할 줄 몰라하는 황녀의 모습이 보였다.
“으아아아아아아……. 어쩌죠? 분명 저희가 황그으읍───”
나는 재빨리 로제의 입을 틀어막고 앞에 황녀를 바라보았다.
황녀의 표정을 보아선 그 일로 온 건 아닌 듯싶었다.
아무렴, 영약을 먹고 온 게 방금 전인데 황녀가 어떻게 알고 찾아 왔겠는가.
그리고 총장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이런 걸 굳이 고자질할 인물은 아니었다.
즉, 황녀는 다른 이유로 우리를 찾아온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나는 로제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로제.”
“흐훕! 훕!”
아, 귀가 민감한가. 아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황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혼자 호들갑 떨지 말아라. 알겠나.”
로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나는 로제의 입을 막았던 손을 떼고는 자리에 서서 말했다.
“학년 수석인 황녀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로제 폰 유글리아와 함께 있는 거로 봐선 그대가 소환수인 그레고리 존스인가 보죠?”
“그렇다. 용건은?”
“왜, 왜 찾아오신 거예요?”
로제 역시 이대로 쓰러져 있을 수는 없다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서 같이 황녀를 향해 물었다.
그 모습에 황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쁜 일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음……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황녀는 아직 복도에 서 있었다.
로제가 힐끔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으로 들어오세요.”
“실례할게요.”
사뿐사뿐 황녀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확실히, 왕족이라 그런지 품격이 느껴지는 걸음걸이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손님용 테이블과 소파를 보더니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앉으면 될까요?”
고개를 끄덕여주자 황녀는 자연스레 그곳에 앉았다.
나와 로제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황녀의 표정을 살펴보려 시선을 올리니 나를 바라보고 있던 황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를 왜 찾아 왔는지 물어도 되겠나.”
내가 먼저 말문을 열자 그녀가 싱긋 웃었다.
“모르셨나요? 1학년 기숙사가 붕괴되고 저도 2학년 기숙사 11층으로 오게 됐어요. 1110호. 바로 옆방이랍니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황녀. 그 모습에 긴장이 풀렸는지 로제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와! 정말인가요? 황녀님이 옆방에 계셨다니! 몰랐어요!”
“그래서, 황녀나 되시는 분이 이웃끼리 인사나 하자고 온 건가?”
차갑게 말하는 내 모습에 황녀가 하하 웃는다.
“설마요, 그런 이유로 찾아온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중요한 이유로 찾아 왔죠.”
“중요한 이유?”
갑자기 황녀가 일어서더니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허리까지 90도로 숙인, 완벽한 인사였다.
“어젯밤. 저를 구해주신 그 검은 소환수가 그레고리님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 어제. 확실히 어제 황녀가 휘말리지 않게 창밖으로 던지긴 했었다.
안전할 거라는 계산을 하고 던진 거긴 했지만 이렇게 호의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누구라도 당연히 했을 일이다.”
보상을 받고 나니 새로운 보상이 찾아 왔구나!
이럴 땐 최대한 예의 바른 척을 해야 보상이 커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역시, 마계의 대공이시라 그런지 귀족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발언을 하시는군요.”
문뜩, 불안함이 느껴졌다.
이 여자, 왜 날 이렇게 치켜세우는 거지?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오늘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찾아온 것은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와 함께 보상을 드리기 위해서랍니다.”
역시 보상이었나.
입꼬리가 올라가려 했지만, 지금은 협상이나 다름없는 자리. 포커페이스가 중요했다.
일해라, 일해라 귀족 특성!
[(특성 : 귀족)을 발동합니다.]
[표정의 관리가 수월해집니다.]
바로 반응해주는 특성. 다행히 무표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걸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만…… 받지 않는다면 황녀인 네 체면도 서지 않겠군.”
“네, 맞아요. 그래서 두 분이 꼭 제 보상을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황녀가 그렇게 말하며 박수를 치자 밖에서 줄줄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나무상자가 들려있었다.
“열어주시죠.”
“예.”
황녀의 명령에 상자를 들고 있던 사용인들이 모두 상자를 열었다.
“저, 저건……!”
옆에 앉아있던 로제가 놀라 소리쳤다.
상자 안에 가득 담겨있는 것들은 모두 영약과 프리즘 스톤이었다.
“프리즘 스톤 20개와 암(?)속성의 영약이에요. 받아주시겠어요?”
영약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자란다는 암흑 버섯으로 R 등급의 영약이었다.
저걸 먹는다면 3성까지는 힘들어도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한 번 구해준 것 치고는 과하지 않나. 상대도 황녀인 그대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는데.”
저것들을 모두 골드로 환산한다면 대략 500골드. 상대적으로 큰돈이었다.
사람 한 번 던지고 오 천만원이라니. 개꿀이잖아.
“그레고리님은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구해주신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부디,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한 번 튕긴 걸 이렇게 다시 받아주다니.
황녀는 좋은 녀석인게 확실했다.
“황녀인 그대를 봐서 거절하지는 않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여기는 아카데미이니 편하게 프리실라. 프리실라라고 불러주세요.”
그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로제가 화들짝 놀란다.
“와, 황녀님을 이름으로 부르시는 걸 허락하신다니. 정말인가요?”
이마저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는 프리실라.
“네, 여러분이라면 오히려 기쁜걸요? 아카데미에서 저는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이 아닌 프리실라로 불리고 싶었거든요. 부디 편하게 불러주세요. 로제님, 그레고리님.”
“헤헤…… 아니! 로제님이라니! 저도 편하게 로제라고 불러주세요!”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로제.”
“네!”
순식간에 친해지는 두 사람. 드디어 로제에게 친구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아, 그리고 그레고리님께 부탁이 한가지 있는데 들어 주실 수 있나요?”
“……부탁?”
역시, 이 정도 선물을 들고 온 이유가 있었나.
쉽지 않은 부탁인지, 프리실라는 들어와 있던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보……안 될까요.”
“다시 한번 말해주겠나.”
대체 무슨 부탁이기에 저렇게까지 힘들게 말하는 거지?
“그…… 그때 그 모습, 그 모습을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뭐?”
“네?!”
황녀의 부탁에 나와 로제가 동시에 놀랐다.
아니,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변신한 모습을 보여달라는 건가?”
“네, 맞아요.”
“아니, 황녀……프리실라. 정말 그 모습이 보고 싶은 거예요?”
“네, 맞아요! 하아……. 그 새까만 광택의 등은 어떻고 날카로운 가시들…… 길게 뻗은 더듬이와 무엇이든지 씹어 먹을 수 있을 듯한 턱까지! 아아…… 너무 멋져…….”
마치 약을 먹은 것 마냥 흐리멍덩한 눈과 붉게 오른 홍조.
설마, 연기하는 건가?
“변신.”
“우와아악! 그레고리님 갑자기 제 옆에서 변신하시면……으아악!”
갑자기 옆에서 변신한 나를 보고는 옆으로 물러서는 로제.
그래, 저게 원래에는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이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황녀를 보자.
“멋져……최고야……섹시해…….”
……….
저게 맞나.
“아아…. 그때 자세히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더 잘 보이네요. 심연을 들여보는 듯한 새까만 두 눈동자와 검붉은 몸체. 무엇이든 썰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팔과 가시까지……. 이 얼마나 멋진 생물인가요…….”
아니, 이거 뭐랄까….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만져봐도 될까요?”
“저, 저도 아직 시도하지 못한걸!”
더욱더 힘들다는 듯 이제는 의자 뒤로 숨어버리는 로제.
황녀의 손은 점점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만져봐라.”
“감사합니다!”
텁. 하고 황녀가 내 가슴팍에 손을 올린다. 부드러우면서도 조금 차가운, 황녀의 손바닥이 내 갑피 너머로 느껴진다.
“이 오돌토돌하고 단단한 느낌. 마치 무엇이든 지켜낼 것만 같은 느낌이네요……. 앗, 움직이는 더듬이도 귀여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황녀는 미친년이 확실하다고.
세상에 어떤 미친년이 바퀴를 보고 귀엽다고 말하는 거지?
얼마나 특이한 이상 취향을 가지고 있어야 이런 표정을 짓는 거야.
“흐으응……최고야.”
심지어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내 갑피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프, 프리실라! 그만! 그만 하세요! 그레고리님도 이만 변신 푸시고!”
손길이 점점 거칠어지는 게 보였던 걸까. 로제가 우리의 중간에 서서 중재에 나섰다.
로제 역시 내 소환사답게 바퀴폼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변신.”
변신을 풀고 다시 인간폼으로 돌아오자 눈동자에 총기를 되찾은 황녀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앗, 죄, 죄송해요! 이렇게 멋진 소환수는 처음 봐서 제가 큰 실수를…….”
“아니, 괜찮다.”
그래도, 항상 공포와 혐오, 그리고 징그러움을 느끼는 시선만 느끼다가 이렇게 존경과 경외의 시선을 받는 것은 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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