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아카벌레 18
* * *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
신성하리만큼 눈부신 백금발과 지중해 바다를 연상케 하는 눈동자. 밀랍 같은 새하얀 피부와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보조개는 신성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배경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말이다.
대륙에 존재하는 국가 중 강력함으로는 손에 꼽히는 신성 하인베른 제국의 장녀이자 제 1 왕위계승권을 가진 인물.
그런데 그런 인물이 바퀴 같은 곤충들을 좋아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꽤 실례가 많았네요.”
“아니에요! 저도 프리실라와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어요!”
두 사람은 서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미녀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풍경. 보기에 나쁘지 않은 풍경은 아니었다.
“로제, 그레고리님. 자주 놀러와도 될까요?”
싱긋 웃으며 묻는 황녀. 그런 그녀의 눈은 어째서인지 아직도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무섭기까지 한데.
“그럼요! 우린 친구니까요!”
황녀의 손을 잡으며 방긋 웃어주는 로제. 그런 로제의 모습에 황녀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친구. 고마워요. 로제!”
“네! 조심히 들어가요! 옆방이지만…….”
그렇게 황녀가 떠나고, 방금까지의 시끌벅적함이 거짓말인 듯 방이 조용해지자 로제가 소파에 드러누우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아~ 친구라니, 아카데미에서 친구가 생길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다행이군. 둘이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지 않나?”
“네! 제가 2살 정도 많은데 저는 하프엘프니까요! 친구면 충분해요.”
아무래도 엘프들은 다른 종족을 만날 때 나이에 큰 신경을 안 쓰니까요. 라고 말한 로제가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지금까지 참고 있었군?”
“네, 아무리 그래도 첫 만남인데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조금 부끄러워서요.”
뻐끔뻐끔.
달달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방안에 은은히 퍼진다.
뭔가 지금은 혼자 생각하게끔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프리즘 스톤이랑 영약을 사용하고 오마.”
“아, 맞네요. 여기서요? 아니면 심상 공간에 들어가셔서요?”
“아무래도 심상 공간이 편하겠지. 프리즘 스톤을 섭취하는 모습이 꽤…… 남에게 보여주기 좀 그렇다.”
“아…… 제가 지금까지 못 봤었네요. 그레고리님은 흡수가 아니라 섭취 쪽 이신가보네요.”
“그래.”
흡수는 말 그대로 들고만 있어도 흡수가 되는 것을 뜻했고 섭취는 입으로 먹는 것을 뜻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바퀴폼으로 씹어먹어야 하니까 섭취가 맞았다.
“오늘은 섭취를 끝내고 기숙사 방에서 쉬마.”
“진짜요? 진짜로요?”
기숙사에서 잔다는 말은 처음 들어서일까. 누워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로제가 벌떡 일어섰다.
“그래, 어차피 내 방에서 잘 텐데 그렇게 기뻐할 일인가?”
“……헤헤. 그레고리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잖아요.”
“확실히,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별로 없구나.”
게임 속에서도 유대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었으니 이곳에서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었다.
“좋다. 오늘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꾸나. 내일이 쉬는 날이기도 하고 말이다.”
“네!”
로제의 대답을 듣고 심상 세계로 돌아온다.
심상 세계는 몇 번을 와도 항상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상태였다.
우르르르.
바닥에 프리즘 스톤와 영약을 쌓아놓고는 바퀴폼으로 변신했다.
“이걸 다 먹으면 음…… 50%는 차겠군.”
프리실라 덕분에 3성까지는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까드득 까드득 프리즘 스톤을 씹어 먹었다.
마계에서는 급하게 퍼먹어서 맛을 몰랐는데 지금은 왠지 달달한 맛이 느껴졌다.
마치 과일사탕 같은 맛이었다.
다만 단단함에서 크게 차이가 나서 인간폼으로 이걸 먹다간 이빨이 모조리 날아갈 것만 같았다.
까드드득. 까드드득.
나는 묵묵히 TV 속 저녁을 시간을 기대하며 신나있는 로제를 바라보며 프리즘 스톤을 씹었다.
* * *
“역시 기대 이상이었어요.”
방에 돌아온 프리실라는 기숙사 문을 닫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바퀴폼의 그레고리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황녀님.”
프리실라의 방 안에는 원래 시종장을 포함한 13명의 사용인이 있었다.
허나 기숙사 붕괴 후 방을 옮기게 되며 어쩔 수 없이 시종장만이 황녀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네,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프리실라는 로제의 방에 가기 전 유글리아 가문과 그레고리에 대해 사전 조사를 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안중에도 없던 로제라는 인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과거 용사인 라스와 그 파티원 릴리의 직계 후손인 로제.
심지어 그 가문은 세계에 단 한 그루밖에 없다는 세계수를 관리하는 엘프계의 왕족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그뿐이랴 세계수 주변의 땅은 용혈이나 다름없는 것을 이용해서 영약을 농사짓는다는, 영약 카르텔이라 불리는 가문.
그런 가문의 일족인 로제와 친해지는 것은 본인의 계승권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 프리실라의 생각이었다.
“그레고리 존스라는 소환수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나요?”
“예, 연락되는 대로 악마와 계약한 소환사들에게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어떤 악마든 그레고리에 관한 내용은 모른다고 한답니다.”
“……그런가요.”
“다만,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상한 점이요?”
프리실라의 물음에 사용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를 머뭇거린다.
“그, 그것이…….”
“판단은 제가 합니다. 시종장.”
“……예. 몇몇 악마들은 그레고리 존스를 아느냐는 말을 듣고는 크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두려워했다고요? 그 악마들이……?”
“예. 하지만 그들도 결국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뗄 뿐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그에게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요.”
조사에 의하면 그레고리 존스의 직위는 대공. 마계의 대공이라면 마계에서도 한 손에 꼽는 강자라는 것인데……. 어째서 그를 아는 자가 없는 걸까.
프리실라는 큰 의문을 느꼈다.
“뭐, 그것도 차근차근 밝혀지겠죠.”
무려 그의 소환사인 로제와 친구를 먹은 참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시종장 또 다른 조사를 명할 게 있어요.”
“말씀하시죠.”
프리실라는 우아하게 테이블 위에 있던 종이와 깃펜을 들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빈 종이에 그레고리의 바퀴폼이 그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건……곤충입니까? 머리 가슴 배로 나누어진 구조이며, 더듬이와 생김새는 영락없는 곤충이군요.”
“네, 이렇게 생긴 곤충을 조사해주셨으면 해요.”
“……확실히, 저조차도 보지 못한 곤충입니다. 예, 황녀님의 말대로 조사를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시종장을 뒤로하고, 프리실라는 본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보석으로 장식한 침대 커튼과 수많은 장식품들, 허나 프리실라는 그런 장식품들보다는 방 한구석에 진열되어있는 유리 상자들을 보았다.
“마마가 왔어요~”
싱긋 웃으며 서랍장을 연 프리실라는 귀족들이나 먹을 수 있다는 간식. 젤리를 잔뜩 꺼내 유리 상자 쪽으로 걸어갔다.
“자, 오늘 밥이에요, 후후, 우리 헬스톤은 오늘도 뿔이 번쩍번쩍하네요. 아~ 율리우스의 집게도 멋져요~”
그것들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라 불리는 곤충과 벌레들이었다.
“아! 우리 튤립도 밥을 줘야죠!”
그렇게 말하며 바로 옆에 있는 유리관을 바라보는 프리실라, 모래밖에 없어 보이는 이 상자 가운데에는 실로 만들어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아…… 튤립, 집을 너무 이쁘게 지었네요.”
사용인들이 잡아 놓은 메뚜기를 튤립이 있는 상자에 집어넣는 프리실라. 잠시 후 손바닥만 한 거미 한 마리가 튀어나와 메뚜기를 잡아채 간다.
“후후…….”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황녀. 모든 애완곤충과 벌레에 밥을 준 프리실라는 침대로 뛰어든다.
“그레고리님……. 그분의 등을 쓰다듬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아직은 앞의 가슴밖에 못 쓰다듬어봤지만, 다음번에는 날개 쪽도 쓰다듬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런 다짐을 하며 프리실라는 베개를 세게 끌어안았다.
* * *
토요일.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쉬는 날이었다.
쉬는 날이라면 본래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뒹굴뒹굴 굴러야 하지만…….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마차를 타고 5시간가량을 내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레고리님! 그래서 저희는 어디 가는 거예요?”
나는 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불쌍한 어린양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불쌍한 바퀴벌레가 옳은 표현인가.
아무튼.
“네 성장을 도와줄 인물을 찾아가고 있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내 대답에 로제의 표정이 굳는다.
“……네? 저, 저희 놀러 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훈련을 즐기라는 말도 모르나. 네가 훈련을 즐기면 그게 노는 거지.”
“사, 사기꾼! 거짓말쟁이! 오늘 놀러 간다기에 제가 얼마나 기대했는지 아시나요오!”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 팔을 붙잡고는 위아래로 붕붕 흔든다.
그렇게까지 기대했던 건가.
“내일은 일정이 없으니 내일 노는 걸로 하지. 단, 네가 오늘 하루를 잘 버텼을 때의 이야기다.”
“히이잉…… 사기꾼……악마 같은 사람…….”
“나는 원래 악마다.”
“히이이잉……….”
이렇게 울먹이는 로제를 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이렇게 로제를 잔뜩 놀려주다 보니 어느새 마차가 멈춰 섰다.
“손님들, 마차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고생했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마부에게 은화 한 개를 건넸다.
은화 한 개의 가치는 약 만원.
직위에 따라 품위 유지비를 제공해주는 아카데미였기에 이 정도 지출은 딱히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헤헤,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내일 아침에 여기로 오면 되겠습니까?”
“음. 부탁하지.”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마부는 떠나고 우리는 덩그러니 길이 끊긴 산 앞에 도착했다.
“여긴 대체 어딘가요…? 설마, 계곡에 놀러 오시는 걸 서프라이즈로 숨기고 계셨던 게──!!!”
“산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 내가 찾는 인물이 있지.”
“히잉.”
게임 속에서의 설명은 도보로 약 3시간 거리라고 했으니 내가 달린다면 금방 도착할 터.
마음만 같아서는 로제에게 따라오라며 훈련을 시키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로제, 업혀라.”
“네?”
“네 걸음으로는 3시간 정도가 걸릴 거다. 될 수 있으면 빠르게 가는 게 좋겠지.”
“알겠어요…….”
입술이 댓발 튀어나온 로제. 아무래도 제대로 삐진 모양이었다.
내가 누구한테 데려가는지 알게 되면 꽤 놀랄 텐데 말이다.
“그럼 출발하마.”
뒤에 업혀있는 로제를 생각해 굳이 변신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훈련으로 내 변신폼을 보고도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게 된 로제였지만 그래도 변신한 내 몸과 스킨십을 하는 것은 아직 훈련 중이었다.
어제는 더듬이만 살짝 만졌을 뿐인데 기겁을 했었지.
“헤이스트. 스트렝스.”
내 뒤에 업혀있던 로제가 보조 마법을 걸어준다. 정말 이대로라면 금방 도착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내달렸을까.
순간 오싹한 느낌이 내 온몸을 훑었다.
“로제! 실드!”
“네?”
나는 재빨리 로제를 내 앞으로 끌어와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바람이 등 뒤를 훑고 지나갔다.
마치 폭풍을 연상케 하는 바람.
바람이 잦아들자 우지끈거리는 소리와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운다.
“그, 그레고리님…… 이게 대체…….”
고개를 들자 경악한 로제의 표정이 보인다.
덜덜 떨며 주변을 훑고 있는 로제. 나 역시 주변을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본 풍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미쳤군.”
주변의 모든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마치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것만 같은 상황.
현실적이지 않은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한 인영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본인이 찾아왔다.”
“네?”
지금 검을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녀석.
저 녀석이 바로 내가 찾던 로제의 일일 선생님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