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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21화 (21/169)

〈 21화 〉 아카바퀴 ­ 21

* * *

“그래서, 겨우 재능이 있나 없나 판별하러 이 늙은이를 만나러 온 건 아니겠고, 또 뭐 할 말이 있는 겐가?”

대련이 끝나고 우리는 원래 있던 응접실로 돌아갔다.

차를 마시며 대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 마르바스는 입에 시가를 물며 물어왔다.

“앗, 실내 흡연 되는 건가요?”

“얼마든지.”

마르바스의 허락을 받자마자 싱글벙글 웃으며 파이프를 꼬나무는 로제.

저 정도면 정말 약으로써 담배를 피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바라는 건 없다. 주변에 검에 대해 잘 가르치는 건 그대밖에 없으니 말이다. 추후 로제에게 검을 알려주었으면 좋겠군.”

“내가? 검을? 로제를 제자로 두라는 말인가?”

뻐끔뻐끔. 마르바스의 입에서 독한 회색빛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 연기는 로제의 입에서 나온 연기와 섞여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오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 쪽이라면 오히려 파이몬에게 묻는 게 낫지 않겠나. 위치는 파이몬 쪽이 더 가까울 텐데.”

합당한 말이었다. 마르바스를 만나러 오려면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뿐더러 실력으로는 파이몬 역시 검의 대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녀석은…… 남을 잘 가르칠만한 성격은 아니지 않은가.”

내 말을 말에 마르바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그녀는 자기 사람은 끔찍이 챙기지만, 그 뿐. 워낙 귀찮은 걸 싫어하는 녀석이니 말이네.”

후. 하고 마르바스가 연기를 내뱉는다. 잠시 연기에 가려졌던 마르바스의 눈에 강한 이체가 서렸다.

“그래서, 대가는?”

빌어먹을 악마 새끼들.

이 악마 새끼들은 꼭 대가를 받으려 하는 족속들이었다.

“내 영토에 있는 재물들로는 부족한가?”

“하하! 내가 돈이 부족해 보이는가?”

“확실히, 그렇진 않지.”

무려 한 자릿수의 귀족. 마르바스는 돈에 움직일 악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파이몬이 들고 나른 돈이 적은 돈은 아니지 않나.”

내가 아는 바로는 프리즘 쥬얼로만 다섯 마차 수준. 어디에 그 돈을 처발랐는지는 몰라도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확실히…… 그 빌어먹을 꼬맹이가 들고 나른 게 있지만……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네, 내가 돈이 급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말일세. 얼마 전에는 꼭 갚겠다는 편지가 오더군.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아무래도 내가 들르고 나서 쫄렸는지 편지까지 보낸 모양이었다.

내가 마르바스랑 만날 걸 예측이라도 한 건가.

“이렇게 말하는 그대는 결국 바라는 게 있다는 것 아닌가.”

내 말에 담배를 이에 물고 있던 마르바스가 미소를 짓는다.

“내 영토 지하에 마석 광산이 있다고 하더군.”

“마석 광산의 개발권을 달라. 이 말인가?”

마석은 현실 세계의 석탄, 석유나 다름없는 자원이다.

프리즘 쥬얼이나 스톤과 달리 소환수의 힘을 크게 강화할 수는 없지만, 아이템의 재료나 마도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네. 아무리 그대가 어둠에 숨어있다 하더라도 허락은 맡아야 하니 말일세.”

마계에서 아무리 본인 영토라 하더라도 스스로 지하를 개발하는 것은 금기로 지정되어 있었다.

마계 지하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모든 악마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마계인들은 그 지하의 주인인 악마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그저, 지하를 개발하려면 마계지하공사라는 조직의 중계를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

모든 것이 힘으로 정리되는 마계이기에 가능한 섭리였다.

“내 허락하도록 하지. 자세한 이야기는 내 영토의 실비와 이야기하도록.”

“……실비? 아, 그녀를 말하는 거군. 실비 엘리고스. 아마 그녀를 이렇게 부릴 수 있는 자는 그대 밖에 없을 거네.”

“……엘리고스?”

갑자기 엘리고스라는 이름이 왜 나온 것인지 몰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그 말을 주워들은 마르바스가 고개를 기울인다.

“유희로 소환수가 되며 기억이라도 날아간 겐가? 자네가 마계지하공사의 대표로 앉혀놓지 않았나.”

내가?

게임에서 엘리고스에 관한 카드는 물론이고 외형에 관한 정보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해봐야 ‘그녀’라는 키워드가 전부일 뿐.

그레고리의 기억을 담은 외전에서도 그저 ‘실비’라고만 나왔기에 나로서도 알 길이 전혀 없었다.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허, 정말로 기억이 날아간 모양이군. 정말 마계인들이 그놈의 ‘마계지하공사’가 무서워서 지하를 개발하지 않는 줄 아나?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지하의 주인이 무서워서?”

……물론 아니겠지. 소문만 가지고는 이렇게 지하를 통제할 수 없을 테니까.

“전부 그녀의 이름 덕일세. 서열 15위의 악마인 엘리고스가 그 지하공사의 대표로 있으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걸세.”

15위의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억지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뭐, 덕분에 자네에 대한 소문도 더욱 커져갔지. 15위의 악마가 섬기는 악마라면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라는 식으로 말일세.”

예상치 못했던 내 과거를 듣자 얼마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사용인처럼 실비를 부려먹었던 것. 갑자기 찾아가서 힘들게 벌어 놓았던 재산을 잔뜩 씹어 먹었던 것.

이거, 완전 기둥서방이잖아.

“그런 과거가 있었군. 그래도 달라질 건 없다. 실비는 어디까지나 실비일 뿐이다.”

“그래, 그대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마르바스. 이내 그의 눈동자가 내 옆에 고정된다.

대체 뭘 보기에…….

날 보고 턱이 빠지게 입을 벌리고 있는 엘프가 있었다.

“……뭐냐. 그 멍청한 표정은.”

그야말로 히에엑! 이 어울리는 표정. 내 물음을 듣고 나서야 로제는 고개를 붕붕 돌리고는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그야 대단하잖아요! 제 소환수가 15위의 악마를 다스리는 악마라니……. 거기에 마계에 존재하는 지하의 왕……!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스케일의 이야기가 방금 오고 간 거라고요!”

확실히 로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의 낙제생이라고 불리던 소녀였다.

내가 로제였어도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면 정신을 못 차렸으리라.

“그래도 너이기에 날 감당할 수 있는 거다. 용사의 후손인 네가 아니었다면 날 소환할 인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이건 거의 확신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마계 지하의 왕에 15위의 대악마를 부하를 두고 있는 소환수가 가챠에서 뽑힌다?

차라리 집행검 10강을 띄우는 게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 그렇게 말하면 부끄러운데요…….”

얼굴을 붉히고는 깍지낀 손의 엄지를 마구잡이로 비비는 로제.

칭찬 한마디에 저렇게 녹아버리는 걸 보면 정말 용사의 후손이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그렇지, 용사의 후손이 아니고서야 그대를 소환수로 부릴 수는 없겠지. 하하하!”

마르바스 역시 공감했는지 한마디 거들어준다.

그러자 이젠 고개까지 숙이며 좋아 죽는 로제.

“그럼, 이걸로 계약을 체결된 것이겠지?”

“음, 만족스러운 계약이었다.”

계약서는 없지만, 악마에게 계약이란 목숨과도 같은 것.

심지어 마르바스씩이나 되는 대악마가 계약을 무시할 리는 없었다.

“로제와 한 번씩 들르도록 하지.”

“알겠네. 이제 돌아가는 겐가?”

로제의 재능도 적당히 알았고 로제가 사용할 검도 얻었다.

거기에 스승까지, 더 이상 여기에 볼일은 없었지만…… 마부에게는 내일 오라고 한 상황이었다.

“여기까지 데려다준 마부에게 내일 오라 하여, 오늘 하루만 여기에 묵어도 되겠나?”

내 발언에 마르바스가 기쁜 듯 양팔을 벌린다.

“환영이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데, 바로 가면 섭섭할 뻔했다네.”

“그래도 로제와 나는 아카데미를 다니는 소환사와 소환수다. 내일 아침 일찍 가봐야 한다.”

“하하! 그대가 학생이라니 다른 악마들이 알면 까무러치겠군.”

그는 손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주변의 빛이 어둠에 물드며 문 하나가 생겨났다.

“나 역시 인간계에 오다 보니 힘이 많이 약해져서 말이야. 지금은 이 정도가 한계군. 곧바로 손님 방이 있는 곳으로 연결되게 해 놓았으니 쉬고 있게나. 식사 때 디브라오스를 보내겠네.”

“고맙군.”

소환사나 정당한 재물 없이 인간계에 온 마르바스였다.

아무리 마르바스여도 이 정도의 마법을 사용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문뜩, 파이몬이 빼돌린 프리즘 쥬얼이 떠올랐다.

“……그렇게 된 거였군.”

“음? 무엇이 말인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 궁금했던 게 풀렸을 뿐이다.”

인간계에 와서 약해진 몸, 검사임에도 타인을 마계로 보낼 정도의 마법과 그저 과시용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마 그것 때문이리라.

“자네, 최근에 마계에 들렀다고 했지?”

“음, 파이몬이 도와줬었지.”

마르바스 역시 눈치챘었는지 ‘역시 그랬군.’ 이라 중얼 거리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인간계에서 혼내주기는 무리겠군. 다섯 마차 분량의 프리즘 쥬얼이라면 내가 질 것 같으니.”

“그것까지 다 계산하고 튄 거겠지.”

파이몬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런데, 내가 마계에 갔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마계에서 영토에 있던 악마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다른 악마를 만난 기억은 없었다.

“그 녀석의 나이트메어. 내가 준 거라네.”

“하, 그런 거였군.”

아마 파이몬의 위치도 나이트메어를 통해 알아낸 것이리라.

파이몬은 나이트메어가 스파이인지도 모르고 아끼고 있었던 거였고.

“소환수 경험이 없던 자네는 몰랐겠지만, 나중이 된다면 스스로 마계에 갈 수 있게 될 걸세. 소환된 악마들은 5성 정도가 되면 ‘마계 이동’이라는 스킬이 생기니 말이네.”

과거, 용사 파티의 소환수로 활동했던 마르바스의 발언이었다.

역시 악마면서 왜 마계를 함부로 못가나 했더니 그런 제한이 걸려있었나.

“나중에 5성이 되면 영토를 잘 돌보게나.”

“……그게 무슨 소리지?”

“지금 말하면 재미 없지 않나. 혹시 모르지, 저녁에 같이 포도주나 적시다 보면 술김에 말할지도.”

역시, 이 늙은이는 악마다.

마르바스의 표정을 보아 여기서 더 말해줄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르바스가 만든 문을 열었다.

“그럼, 나중에 보지.”

내 반응에 만족했는지 껄껄 웃으며 ‘그래, 나중에 보세나.’ 라 대답하는 마르바스.

문을 열자 보인 풍경은 화려하게 꾸며진 복도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디브라오스의 모습이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왼편이 그레고리님이 묵으실 방이고 오른쪽이 로제양이 묵으실 방입니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건가?”

내 물음에 디브라오스가 고개를 숙인 체 공손이 대답한다.

“아닙니다. 그저 저택내에 마르바스님의 마력이 감지되어 먼저 왔을 뿐입니다.”

“……유능한 집사군.”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할 일을 마친 디브라오스가 사라진다.

“그럼, 나는 안에서 쉬고 있으마.

소개받은 방문의 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뒤에서 로제가 내 옷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레고리님!”

“왜 그러지 로제?”

“그……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저도 같이 들어가도 될까요? 아, 안에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로제가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그러도록 하지.”

방으로 들어온 우리는 나란히 침대에 앉았다.

어째서인지 방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의 로제.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기에 저렇게까지 긴장한 건지 모르겠다.

“우, 우선 마법 좀 펼칠게요.”

침대에서 일어선 로제가 파우치에서 지팡이를 꺼내 주변에 장막을 펼쳤다.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마법으로 보였다.

“……대체 얼마나 중요한 말이기에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오히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던 로제였기에 나 역시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저 그게……. 이게 정말 안되는 건 알고 있는데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는 로제.

확실히, 로제 정도면 엄청난 미인이나 다름없었다.

엘프의 피가 섞였기 때문인지 외모만 보자면 현실을 뛰어넘은 외모나 다름없었으니까.

“아까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그레고리님이 마르바스님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레고리님이 힘들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요…….”

염색했음에도 매끄럽고 상한 곳 없는 머리카락이 찰랑인다.

아카데미라는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여행을 왔다는 생각 때문일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로제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레고리님…….”

로제가 점점 내게 가까워진다.

향긋하면서도 달콤한, 세계수 잎사귀 냄새가 내 코끝을 간지럽힌다.

“지금이 아니면 말하기 힘들 것 같아서 지금 말할게요.”

대충 짐작이 간다. 이 정도로 말하기 힘든 거라면 몇 가지 없겠지.

단 둘이 여행을 가면 급발진으로 고백을 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고 들었는데, 그런 건가?

“제 생각인데…….”

로제나 되는 미녀에게 고백받는 것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허나, 나는 재앙을 물리치고 현실로 돌아가는 게 내 목표다.

“저……”

매몰차게 말하자.

나와 로제는 소환사와 소환수의 관계일 뿐. 소환수가 소환사와 교제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내게는 각오가 없다.

“미──”

미안하다고.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마르바스님이랑 계약할까요?”

“──미친 건가. 로제.”

이 미친 엘프가 뭐라는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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