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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22화 (22/169)

〈 22화 〉 아카벌레 ­ 22

* * *

“──미친 건가. 로제.”

“히잉…….”

로제의 말은 그야말로 터무니없었다.

마르바스를 소환수로 삼고 싶다고? 다른 악마도 아니고 저 마르바스를?

“하아……. 강한 소환수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네 마음은 이해한다 로제. 하지만, 이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네? 불가능한가요?”

“네 그릇의 부족이다. 다른 평범한 악마나 정령 같은 거라면 몰라도 나와 계약한 상태에서 마르바스마저 계약하게 된다면 네가 버티지 못할 게다.”

게임에선 이걸 코스트 제한이라 불렀다. 레벨과 진행도에 따라 코스트는 점점 커져가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로제의 수준은 아직 뉴비에 그쳐있는 수준, 아무리 용사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나라는 소환수 하나 때문에 대부분의 코스트가 가득 찬 상태였다.

“무엇보다 마르바스가 거절할 거다. 과거 용사 파티에 묶여있던 것도 불편해했던 마르바스가 과연 너와 다시 계약할 것 같으냐?”

게임에서 마르바스의 인연 포인트는 올리기 힘든 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안 그래도 미소녀 보면서 룩딸하라고 만든 게임인데 성능상 안 쓸 수는 없고 능력을 상승시키려면 어쩔 수 없이 인연을 강화해야만 했다.

“……그렇군요.”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로제. 그녀의 기다린 귀 역시 아래로 축 처졌다.

“무엇보다도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너는 마왕이 될 셈이냐?”

“네엣? 마, 마왕이요?”

이 녀석은 자기가 마르바스랑 계약하면 어떤 상황에 닥치게 될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마계의 대공인 나와 계약한 상황인데 마르바스까지 부리게 된다면 너는 최고위 악마를 두 명이나 다루는 게 된다. 그리고 그걸…… 다른 녀석들이 곱게 볼 것 같진 않군.”

분명 악의 강림, 마왕의 재림이라며 온갖 별명을 붙이겠지.

완전히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로제.

그래도, 이렇게 보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한 마디 더 해주기로 했다.

“다만, 방법이 있기야 하다.”

“네? 그게 무슨 방법이죠?”

봐라. 금세 기운을 차리고 물어온다.

“강해져라.”

“네? 강해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느 누구도 널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강해지는 거다. 악마를 몇 명이나 거느리던, 드래곤을 길들이던, 천사를 길들여도 아무도 네게 뭐라 할 수 없게 강해지면 된다.”

실제로 게임에서 내가 그랬다.

누구보다도 높은 레벨과 코스트, 그리고 실력으로 모두를 짓눌러 놓으니 NPC는 물론이고 다른 유저들도 내게 뭐라 하지 못했다.

“너라면 가능할 거다.”

냉정하게, 성장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로제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네! 강해질 거에요! 강해져서 엄~청 강한 소환수들을 부릴 거에요.”

“그래그래.”

“그리고 그레고리님이 소환수들의 대장이 되시는 거예요.”

“……내가 말이냐?”

“그야, 그레고리님이야말로 최강의 소환수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낯부끄러워지는데. 나는 재빨리 몸을 돌리곤 팔을 휘적였다.

“그때 가서 생각해보지. 얼른 들어가서 쉬어라. 생각할 게 있으니.”

“네!”

도도도도 발소리를 내며 로제가 방 밖으로 나간다.

나는 침대에 털썩 드러누워 먼 미래의 일을 상상했다.

수많은 악마를 거느리며 드래곤을 출격시키는 로제의 모습.

“……마왕 로제인가.”

그렇게 되면 별명은 내가 지어줘야지.

“마왕스러운 별명이라면…… 로제놈. 로제놈이 좋겠군.”

피식 웃으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똑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자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디브라오스입니다. 식사가 준비되어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곧 나가지. 로제는?”

“먼저 식당으로 가셨습니다.”

“알겠다.”

나는 변신을 연속으로 발동해 차림새를 재정비하고 문밖으로 나갔다.

디브라오스는 식당까지 나를 안내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대기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가지.”

“예.”

식당은 우리가 있던 응접실의 건너편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웃는 얼굴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마르바스와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늦어서 미안하군.”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는걸요?”

“아직 애피타이저 밖에 안 나왔으니 상관없네. 자리에 앉지.”

나는 목의 크라바트를 정리하며 로제의 건너편에 앉았다.

상석에 마르바스가 앉아있는 것은 꽤나 거슬렸지만 [특성 : 귀족] 때문인지 그가 집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자 참을 만했다.

그레고리 존스. 대체 얼마나 성격이 꼬인 녀석이었던 거냐.

“점심 식사 후에는 디브라오스가 로제의 마법을 봐주게끔 하려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포도주로 입술을 축인 마르바스가 먼저 말꼬를 틀었다.

그의 말에 나는 내 뒤에 서 있던 디브라오스를 힐끔 바라보았다.

“마법이 전문인가?”

“부족한 실력입니다.”

공손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는 디브라오스. 그 모습에 마르바스가 웃었다.

“그는 내 산하 군단 중 하나를 맡고 있는 군단장일세. 실력 하나는 확실하지.”

이 집사가 군단장이라고?

“……군단장이나 되는 악마를 집사로 사용하는 네 성격이 매우 의심되는군.”

오해하지 말라는 듯 마르바스가 손을 젓는다.

“인간계로 떠나는 나를 따르겠다며 먼저 나선 건 디브라오스일세. 무슨 일이든 하겠다며 내게 싹싹 비는데 어떡하나.”

아무래도 둘의 주종관계는 꽤 단단한 모양이었다.

“그대의 군단을 지휘하는 군단장이라면 부족함 없겠지. 로제를 잘 부탁하마.”

“성심성의를 다하겠습니다.”

그리고나서 로제를 바라본다. 그녀는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스프를 먹으며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로제.”

“넴?”

오물오물. 스프 속 고기를 씹는 그녀의 볼이 이완과 수축을 반복한다.

“군단장이나 되는 악마에게 교습을 받을 기회는 흔치 않다. 많은 걸 배워라.”

“……네!”

그리고 마르바스의 의도도 짐작이 갔다.

그는 로제가 없는 장소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로제여. 아까 하고 있던 이야기를 이어서 말해주겠나?”

마르바스가 웃는 얼굴로 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오기 전 하던 이야기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아! 그거 말이죠?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음……. 자네를 무시하던 엘프에게 그레고리가 달려간 부분까지 이야기했네.”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아! 그랬었죠! 그래서 말이죠. 그레고리님이 제 보조 마법을 받으시고는 그 앞에서 날개를 펼치시는데! 눈앞이 호롤로로──”

그냥 듣지 않는 게 이로울 거 같아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얼마 후.

식사를 모두 마치자 마르바스와 로제가 시가와 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놈의 식후빵이었다.

“허허! 식후연초불로장생. 그대도 잘 알고 있군?”

“하하! 오래 살려면 이 정도는 기본 상식이죠!”

이게 그 3대 인연 중 하나라는 흡연(??)인가.

“아까부터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담배 치고는 특이할 정도로 냄새가 좋군. 어떤 걸 피우는지 물어도 되겠나?”

“이거요? 세계수 이파리요.”

“세계수 이파리? 하하! 세계수 이파리를 피우는 엘프라니. 귀한 걸 태우는군.”

엘프에게 있어 세계수는 지켜야만 하는 성물이나 다름없는 존재.

그런 세계수의 이파리를 말려서 태우는 로제를 보고 웃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마 알로에에게 잘 자라라고 알로에주스를 부어주는 것과 동급으로 보지 않을까?

“저는 약으로 태우는 거니까요. 몸이 살짝 안 좋아서요.”

푸후. 하고 향긋한 냄새가 식당 안에 조금씩 퍼져나간다.

“확실히, 세계수 정도나 되는 이파리라면 약재로써도 좋겠군.”

“음……. 조금 드릴까요?”

“그 귀한걸? 받아도 되겠나?”

로제의 말에 마르바스의 눈이 희번득 커졌다.

애연가다운 반응이었다.

“네! 부족할 정도는 아니라서요.”

“그러면 나중에 부탁하도록 하지! 세계수를 말아 피는 시가라니. 상상만 해도 짜릿하군.”

“네! 피시면 반할지도 몰라요.”

하하하! 하하하! 하고 웃으며 계속해서 담배 이야기만 하는 통에 끼어들 틈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도 연초를 피던 때가 떠올랐지만 그렇다고 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지는 않았다.

굳이 피고 싶지 않달까.

아무래도 그레고리의 몸은 담배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음, 다 피웠으면 이만 일어나지. 그레고리여, 로제양이 마법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오랜만에 대화나 나눌까?”

“좋지.”

과연 로제가 없는 곳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로제는 우리에게 ‘나중에 만나요~’ 라는 인사말을 남기곤 손을 흔들며 연무장 쪽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서재에 도착했다. 마르바스가 생각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장소라고 했다.

“그대가 글도 썼었나?”

“하루하루 훈련 일지 같은 거지만 말일세.”

마르바스의 훈련일지라니, 평범한 검사에게 전해주면 단숨에 달인의 경지에 이룰 수도 있을 물건이었다.

“그것참 탐나는군.”

“하하! 자네에게 줘봤자 아무 소용 없겠지만 말일세. 자네는 뭐…… 검이나 쥐고 또 주먹질이나 하겠지.”

“그레고리류 검법은 원래 그렇다.”

“그레고리류 검법?”

“방금 만든 검법이다. 물론 창시자는 나다.”

“하, 그것참 웃긴 농이로군.”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럼, 묻도록 하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기에 로제를 물린 거지?”

솔직히 말해 나는 이야기를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뭐랄까,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랄까.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정도의 대화라면 몰라도 본론을 숨기고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참지 못했다.

“곧바로 본론이군. 시간은 아직 많네만?”

“자네가 할 말이 짧지는 않을 것 같아서.”

“……정론이군.”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대화였다면 로제는 마법 수련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리를 비웠을 것이었다.

“자네, 아침에 대련 후 내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나?”

“영토를 잘 돌보라고 했었지. 설마 내 영토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렇네. 자네라면 어련히 알아서 하리라 생각했다만…… 아무래도 자네가 마계로 왕래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말이네.”

마르바스는 방구석에 진열된 포도주와 와인잔 두 개를 집어 들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한잔하겠나?”

“나쁘지 않지.”

쪼르르르.

잔에 따랐을 뿐인데 향긋한 향이 벌써부터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파이몬의 술 취향은 마르바스에게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좋은 술이군.”

“좋은 술이지.”

가볍게 잔을 나눈 뒤 목을 축인다. 달달하면서도 신맛이 미뢰를 자극하며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천천히, 잔을 내려놓은 마르바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석양을 연상시키는, 마르바스의 주홍빛 눈동자에는 힘이 느껴졌다.

무겁고도, 자애로우며, 올곧고, 뜨겁다.

그 눈동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르바스였다.

그 눈동자가 내게로 향하는 이상, 나는 그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일 셈이었다.

그는 언제나 진실을 말하는 악마였으니까.

허나, 그의 입이 떨어지고 나서, 나는 방금까지의 생각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실비 엘리고스가 곧 죽을지도 모르네.”

그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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