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아카바퀴 23
* * *
“실비 엘리고스가 곧 죽을지도 모르네.”
그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했으니까.
“……다시 한번. 자세히 말해라.”
실비가 죽는다니,
며칠 전에 보고 왔을 때만 해도 그렇게 건강했던 실비가 죽는다고?
“병 같은 거로 죽는 건 아닐세. 악마. 실비 엘리고스가 죽을 위기에 처한 이유는 악마들 때문일세.”
“악마? 악마가 실비를 죽인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실비는 15위의 악마. 절대 평범한 악마에게 당할 악마는 아니었다.
거기에, 실비와 함께 영토를 수호하는 악마들까지 있음에도 마르바스가 저렇게 말한다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설은 단 한 가지였다.
“……평범한 악마들이 노리는 게 아니군.”
내 추측에 마르바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대가 생각하는 게 맞네. 애초에 마계지하공사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는 엘리고스에 뒤에 있다던 대악마에 관한 소문이 큰 역할을 했었네.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그 대악마가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
즉, 소문이 아닌 실제 나를 알고 있는 녀석들이 범인들이라는 것이었다.
“최소 마계에 영토와 작위를 가지고 있는, 상위권의 악마들이 내 영토를 노리는 게로군.”
“바로 그걸세. 물론 엘리고스가 그 순위에 걸맞게 강하다고야 하다만, 그대가 후견인이나 다름없었으니 가능한 순위이기도 했지.”
순위는 꼭 강함의 순서가 아니니 말일세.
라고 말하며 마르바스가 컷팅기로 시가의 끝을 잘라냈다.
뎅겅. 하고 시가의 끝부분이 날아간다.
“엘리고스를 노리는 것은 30위에서 10위 사이에 있는 악마들이네. 아마 자네의 영토를 침략하고 마계지하공사의 지분을 나눠 가질 생각이겠지.”
즉, 내가 없으니 벌어진 일이라는 말이었다.
깜깜해지는 마르바스의 발언에 한숨을 내쉰 나는 마르바스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뭔가? 그 손은.”
“……시가 좀 빌리지.”
“자네, 흡연도 할 줄 알았나?”
“이런 상황인데, 안 피고는 못 배기겠군.”
내 말에 마르바스는 다시 상자를 열어 시가 하나를 꺼낸 뒤 끝부분을 잘라 내게 건네주었다.
“불도 좀 부탁하지.”
마르바스의 검지에 생기는 새빨간 불꽃. 그곳에 시가를 가져다 대고 뻐끔뻐끔 빨자 시가 끝이 새빨갛게 물드며 불이 붙는다.
“……후, 개판 났군.”
담백하고도, 쌉쌀하며, 특유의 시큼 달달한 냄새가 마치 머리 안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
이 좆 같은 세상은 어떻게 금연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들숨과 날숨.
방금보다 훨씬 차분해진 정신으로 마르바스를 바라본다.
“마르바스.”
“왜 그러는가?”
정말로 걱정된다는 표정을 짓는 마르바스. 그 표정을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은 나는 묵묵히 말했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음?”
움찔. 하고 마르바스의 몸이 떨린다.
그리고 이내, 아래로 쳐져 있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나?”
그 표정은 그야말로 악마다.
“손해 보는 짓을 극도로 혐오하는 네가 이런 정보를 공짜로 주리라곤 생각을 못 했을 뿐이다.”
잘 웃고, 잘 받아주고, 잘 챙겨준다고 하더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었다.
“그대는 내게 뭘 줄 수 있겠나.”
이 녀석은 악마다.
이런 시기에 정보를 준다는 것은 둘 중 하나.
내가 움직여야 이득을 볼 수 있거나, 손해를 피할 수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마르바스의 경우에는 무엇일까.
과연, 어째서 이런 정보를 주며 내게 강해지라고, 내 영토를 지키라 하는 것일까.
시가의 연기가 입구멍, 비강, 두개골을 통해 뇌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마치 뇌 속에 안개가 낀 것만 같은 느낌.
뭔가, 뭔가 이상하다.
분명 이상한 점이 있다.
하지만 조금씩, 연기는 뇌 속의 이물질들을 싣고 입 밖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가벼운 것들이 모조리 나가고 무거운 정보만이 남았을 때.
그게 바로 정답이다.
“……자네 영토 지하에 마석 광산이 발견됐다 했지.”
“하, 그랬었지.”
마르바스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포도주를 들이킨다.
“내 기억으로는 그대는 나나 다른 악마 영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토를 관리했었지.”
악마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악마들의 영토 운영 방식은 보통 3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1.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부류.
2.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부류.
3. 제후가 되어 귀족들을 다스리는 부류.
그리고 마르바스는 3번째 부류에 속하는 경우였다.
마르바스는 본인의 영토를 나누어 통치권을 뿌림으로써 소규모 영지를 제외하고는 통치하지 않는 것.
이 경우에는 통치가 훨씬 간단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에 관리가 훨씬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랫것들이 모인 게로군.”
반대로 제후를 제외한 다른 귀족들이 모이면 제후가 고립되고 만다. 제후의 힘은 다른 귀족들에게서부터 나오는 것.
즉, 현재 마르바스는 이빨이 모조리 나간 호랑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랬군. 그래서 마계로 돌아가지 않은 거였어.”
모든 퍼즐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 어째서 파이몬이 인간계로 도망쳤는지.
파이몬을 쫓아온 마르바스가 어째서 그녀를 쫓지 않고 이곳에 박혀있는지.
[소환사 아카데미아 – 외전] 속의 내가 어째서 다른 귀족들을 만나고 다닌 것인지.
“그대는 휴양이나 추격 따위 때문에 인간계에 온 것이 아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미소짓고 있던 마르바스의 표정이 굳는다.
그랬구나.
“자네는 피난을 온 거야.”
그리고 마침 등장한 날 이용하기로 했다.
비록 5위의 대악마라 할지라도 다른 상위 악마들이 모인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으니까.
“마석 광산은 아마 자네가 직접 통치하는 곳이 아닌 다른 녀석들의 땅에서 나왔겠지?”
마석 광산은 그야말로 대박 중에서도 초대박, 평균 매장량의 마석 광산 하나를 발견하면 근처에 도시가 3개는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그 귀족은 생각한 것이다.
이대로 보고를 올렸다간 마르바스가 모조리 독식할 것이 뻔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될 바에 다른 귀족들과 함께 작당 모의를 한 것이리라.
‘광산의 지분을 나누어 줄 테니 동참해라.’라고.
그리고 이러한 제안에 다른 귀족들이 달려들었다는 것은 광산의 범위가 최소 평균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매장량이 어느 정도지.”
“……아마 역대 최다 매장량이라 추측되네.”
그러니까 이런 사태가 난 거군.
“그러면 녀석들은 어떠한 명분이라도 만들어서 그대를 끌어내리려 했겠지. 자네는 그런 사태를 애초에 만들지 않기 위해 인간계로 온 것이고.”
아무리 그래도 본인들의 제후다. 명분도 없이 쳤다간 마계 전체에서 그들을 비난할 터.
녀석들은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야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마르바스는 돈을 들고 도망간 손녀를 잡겠다고 인간계로 간 상황.
그야말로 녀석들은 닭 쫓던 개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르바스는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재산을 들고 도망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파이몬은 알고 있나?”
내 물음에 마르바스가 고개를 젓는다.
“그 녀석은 모르네. 정말 자기가 잘나서 내 재산을 빼돌리는 데 성공한 줄 아는 게지.”
파이몬, 게임 속 그녀의 이야기를 보면 마르바스의 돈을 들고 도망간 것은 한두 번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항상 모든 돈을 갚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기에 마르바스는 그녀를 이용한 것이다.
그녀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즉.
실비가 죽는다는 것도.
내 영지가 침공당한다는 것도.
“자네가 도망친 덕분에 내 영토에 불똥이 튄 게로군.”
마르바스만 밀어내면 ‘마계지하공단’을 통해 공사를 시작하면 되지만 마르바스가 없는 상황.
그렇기에 그들은 아예 ‘마계지하공단’을 흡수하려 한 것이다.
광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만 한다면 뒷감당이 될 테니까.
그리고 마르바스가 내게 실비를 언급하며 정보를 준 것은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내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군.”
비록 악마여도 감정은 있다.
그렇기에 마르바스는 로제에게 검을 가르쳐 달라는 내 말을 ‘대가’라는 단어를 통해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날 이용할 셈이었고.”
만약 마르바스의 내전에 내가 나선다면 이야기는 편해질 수 밖에 없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중위권의 악마들이라면 절대 전면전을 하지 않을 테니까.
대부분의 최상위 악마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으며, 마계의 네 명밖에 없는 대공이자, 지하를 지배할 정도의 힘을 가졌던 나니까.
마계를 떠나기 전, 마계를 탐험하던 중 마르바스의 영토에도 들러 귀족들을 만났던 나였기에.
그저 등장만으로도 상황은 바뀔 터였다.
이 정도까지 알게 되니 화가 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내가 이 세상의 지식을 조금만 몰랐더라면, 내 앞의 악마를 조금만 더 믿었더라면.
나는 그저 이용당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기억을 잃은 그레고리였으니까.
시가의 연기를 들이마시고 이어 포도주를 들이킨다.
묵직한 목넘김이 오히려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힐끔 시선을 올려 마르바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왼손에 시가를 들고 있었으며 오른손으로는 와인잔을 흔들고 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초조함 그 자체이다.
저 녀석이 처음에 웃은 이유?
그건 그저 나를 속이려 한 것이다.
그렇게 끝내버렸다면 나는 ‘아, 속을 뻔했네.’라고 생각하고는 적당한 보상을 받은 다음 도와줬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두 들통나버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전적으로 마르바스의 잘못이었고 나는 그저 그들의 사건에 휩쓸린 것이었으니까.
“범인도 대략 짐작이 가는군. 그대 영토에서 다른 녀석들을 규합할 정도의 악마라면 단 한 명밖에 없지.”
구시온.
소환자에게 명예와 지위를 약속하는 악마.
그리고 게임에서도 뒤통수치기를 특기로 하는 악마.
그가 바로 이 상황의 주도자임이 틀림없었다.
“대략 사건의 전말도 알았다. 그대가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도, 내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도 알았다.”
그러니, 나는 당당히 말하겠다.
“그대에게 묻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에 마르바스의 몸이 움찔. 하고 떨렸다.
툭. 툭.
그의 손에 쥐어진 시가는 고개 숙인 주인을 대변하듯 마르바스의 눈동자 같은 주홍빛 눈물을 흘린다.
울지마라. 나는 그렇게 모질게 대할 생각이 없다.
나는 그저 물을 뿐이다.
“마르바스여.”
이건 [특성 : 귀족] 으로도 안 된다.
이건 정말로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검성.
재앙의 왼팔을 잘라낸 악마.
악마들의 제후
서열 5위
마계의 의장
마계의 기사
마계를 대표하는 최고위 악마이자──
──나의 친우여.”
──사기꾼 새끼야.
나의 부름에 마르바스가 푹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만큼 내 목소리에 애정이 듬뿍 담겼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마르바스.
나는 그가 최대한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애정과 친절
그리고 미소를 담아 말했다.
“그대는 내게 무엇을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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