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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25화 (25/169)

〈 25화 〉 아카바퀴 ­ 25

* * *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인가요! 마르바스를 아카데미에 데려오다니! 당신은 아카데미를 마계의 전진기지로 만들 셈인가요?!”

데자뷰를 겪는 듯한 느낌이었다.

행정실로 걸어들어 오는 우리. 우리를 보고 표정을 찡그리는 하이 엘프 니자젤.

그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멀쩡했다고 할 수 있으나 내 옆에 서 있는 인물이 마르바스라는 말을 듣자마자 소리부터 치는 니자젤 이었다.

하여튼 히스테릭 노처녀 아니랄까 시작부터 발광이다.

“우선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라 니자젤. 주위에서 쳐다보지 않나.”

실제로 행정실의 다른 직원들이 웅성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설 속 악마나 다름없는 마르바스가 찾아왔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진정하라니! 이게 진심으로 진정해서 될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 아카데미에 오며 짐작은 했지만 역시 대놓고 악마를 혐오하니 괜시리 나까지 기분이 나빠졌다.

“마르바스는 악마이기 이전에 재앙을 토벌하는데 큰 기여를 한 영웅이기도 하다.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정말 맞다고 생각하는 건가.”

게임 속에서 중년 남캐임에도 불구하고 성능 때문에 마르바스를 키운 나였다.

그만큼 정이 들기도 했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는 싫었다.

“화,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요……. 이건 세계를 뒤 흔들만한 사건이라고요. 아카데미에 대악마가 둘이라니. 분명 다른 아카데미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꺼에요.”

다른 아카데미에서 견재를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는 걸까.

“소환사 아카데미를 제외한 다른 아카데미. 예를 들어 나이트 아카데미는 과거 소드 마스터를 4명이나 보유했었지. 제국 아카데미에서는 용 두 마리와 대악마 한 명이 있었고.”

모두 게임에서 나온 사실이었다.

“우리라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는 법은 없다. 다른 아카데미들의 전성기가 모두 그때였다는 건 본인이 더 잘고 있겠지? 당시 같은 시대를 살던 그대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서 있는 마르바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니자젤을 바라볼 뿐 이었다.

“마르바스는 소환사 아카데미에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다 줄거다.”

이내 생각하기를 그만 둔 것일까. 한숨을 깊게 내쉰 니자젤은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말했다.

“……하아. 이건 제 권한이 아니에요. 소환수 등록이라면 모를까, 교직원이 되고자 하신다 했으니까요. 총장님께는 보고를 올려 보겠어요.”

단, 하고 니자젤이 덧붙혀 말했다.

“총장님이 반대하시면 그땐 정말 답이 없는 거라는 것만 알고 계세요.”

그녀의 말에 지금껏 가만히 있던 마르바스가 고개를 숙였다.

“고맙네, 하이 엘프. 니자젤이여. 훌륭하게 자랐구려.”

“……기억 하시고 있나요?”

“아무렴. 기억하고 말고. 그때는 꽤 당돌하고 여린 아가씨였었지.”

아마 재앙이 나타났던 시절의 이야기인 듯 싶었다.

확실히 동시대에 활동하던 이들이니 한 두 번 쯤은 마주쳤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그때 이야기는 꺼내지 마세요! 아무튼, 그래도 마르바스님이기에 제가 결재라도 올려보는 거에요.”

“감사를 표하지.”

악마이기 이전에 온건파 중 한 명으로 유명한 마르바스이기에 한 말인 듯 싶었다.

아마 아몬을 데려왔다간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격을 받았으리라.

“지내실 곳은 있나요?”

“우선은 근처 여관에서 지내려 하네.”

“네, 교직원이 되시면 무료로 기숙사가 제공 되는데 신청은 하실 예정이신가요?”

“도시 안에 저택을 하나 장만할 것이기에 괜찮네.”

“네, 알겠습니다. 결재가 떨어지는대로 로제양과 그레고리님을 통해 통지해드릴게요.”

사무적인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니자젤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음? 왜그러는 겐가?”

그리고 그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마르바스. 니자젤은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야 그렇잖아요. 대악마가 가르치는 검술이라니. 검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기연이네요.”

그 의견에 공감했다.

아마 마르바스의 가르침만으로도 소환사 아카데미의 검술 실력이 월등히 상승하는 것은 예정된 사실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 수업은 꽤 엄격하다네.”

“저희 아카데미가 원하는 인재시네요. 참고할게요. 자, 그럼 저는 지금도 밀린 업무가 있어서…….”

축객령이었다.

확실히 일요일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로 봐선 꽤나 업무가 많은 듯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수고하게.”

나는 대표로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행정실 밖으로 나왔다.

“마르바스, 지금부터 뭘 할 생각이지?”

“나 말인가? 음, 우선 집부터 알아봐야 겠지. 아카데미 내부도 둘러봐야하고……할 게 많겠군.”

마르바스는 이미 본인의 합격을 확신하는 듯 싶었다.

뭐, 나라도 절대 안 놓칠 기회이기야 했지만.

“그럼 우린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 로제와 약속이 있어서 말이네.”

일요일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소환사와 소환수의 사이에서는 이런 사소한 약속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알겠네. 그러면…… 다음에 보도록 하지.”

“앗,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음 수업은 아카데미에서 하는 걸로 하지. 로제.”

“네!”

마르바스가 건물 밖으로 나선다. 이대로 바로 서머니아로 갈 모양이었다.

옆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로제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그게 말이죠.”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로제. 이내 마르바스가 떠나간 곳을 가리킨 로제가 하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저희도 서머니아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

확실히 그랬다.

주말을 즐기려면 결국 도시로 나가야만 했으니까.

“이렇게 작별인사까지 했는데 길에서 마주치면 어떡하죠?”

확실히, 심각한 사안이다.

“……우리는 조금 더 늦게 출발하지.”

“네, 그게 좋겠어요…….”

* * *

인생이란게 그렇다.

별로 되지 않는 확률의 불행도 걱정하다보면 찾아오는 것.

아마 그게 인생이 아닐까.

“……….”

“……….”

“……….”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서머니아로 향하는 마차의 안.

그곳에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는 한 명의 엘프와 두 명의 악마가 있었다.

와, 이걸 진짜 여기서 만나네.

계속해서 감도는 적막.

이내, 마르바스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만나는 군 그래.”

마르바스 역시 이 분위기가 무척이나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그러게 말일세. 이럴 줄 알면 같이 갈 껄 그랬어.”

솔직히 말하자면 마차에 타기 전부터 우리는 서로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모른 척 하다 이 지경이 되고 나서야 말을 꺼낸 것이고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정적.

이런 분위기가 될 걸 알았기에 모두가 입을 다문 것이었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마르바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가 시도한 행동만으로 그의 용기는 입증되었으니까.

결국 그렇게 서머니아에 도착하고 나서야 헤어진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진짜,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나도 설마 그 녀석이 마차를 탈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마르바스의 속도라면 오히려 뛰어가는게 훨씬 빠를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네 소원대로 놀러 왔다만…… 계획은 있는가?”

어제 잘 버티면 오늘 하루 같이 놀아주겠다고 한 약속.

이곳에 나보다 더 오래있었던 로제라면 계획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한 질문이었다.

“……에?”

아무래도 그 예상은 틀린 모양이었지만.

“혹시, 어디서 놀지 생각을 못한 건가.”

아무 생각 없이 로제를 바라보며 물은 것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로제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저, 그게 말이죠……. 제가 입학식때부터 쭉 여기에 살고 있긴 했는데…… 놀러 나온 건 처음이라서요.”

입학실 날부터 혼자일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아무래도 입학식 때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가. 그러면 내가 안내하마.”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이 게임을 하며 도시의 지형을 외웠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몇 백년이 지나긴 했지만 저번에 파이몬을 찾아가며 본 바로는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

다만, 그것 말고 큰 문제가 있다면…… 내가 데이트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 왜 인생을 헛살고 있던거지?

“……그레고리님?”

“아무것도 아니다. 해보고 싶었던 거라도 있었나?”

“해보고 싶었던 거요?”

내 질문을 받고 검지로 입술을 누르며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로제가 입꼬리를 올렸다.

“옷이요!”

“……옷?”

“네! 같이 옷을 사러 가고 싶어요.”

확실히 로제는 항상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었지 평상복을 입은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 그러면 그쪽으로 가지.”

“네!”

서머니아는 계획도시다. 구획에 따라 다른 성향의 건물들이 존재했고 우리가 향하는 곳은 상업지구라 불리는 장소였다.

수많은 노점상과 매점, 그리고 사람들. 각가지의 것들이 한 대 어울려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풍경은 나에게도 신비하게 느껴졌다.

이게 정말 판타지지.

처음 보는 과일과 동물, 그리고 수 많은 인종의 사람들.

아카데미에서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수인이나 요정, 드워프 같은 종족들도 보였다.

“와! 그레고리님! 사람이 엄청 많아요!”

로제의 말을 들어보면 상업구역은 와본적도 없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러한 풍경은 충분히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법한 광경이라 생각되었다.

“아아! 그레고리님! 저기 옷가게가 있어요!”

로제가 가리킨 곳은 많은 종류의 옷들을 팔고 있는 가게였다.

물론 저기도 옷 가게이긴 하지만…….

“로제, 거기가 아니다.”

나는 발걸음을 때려는 로제의 손을 붙잡았다.

“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로제.

나는 큰길의 위쪽, 위병들이 서서 지키고 있는 다른 구역을 가리켰다.

“우리가 갈 곳은 저기다.”

“네? 저기는 뭔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거 같은데요?”

흔히 귀족 상업구역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이런 시장과 같은 장소와는 결이 다른, 선택받은 자들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라면 괜찮다.”

일단 나부터가 마계의 대공이기도 했고 로제 역시 유글리아라는 용사의 가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터벅터벅 함께 걸어가니 입구를 지키고 있던 위병들이 자연스래 길을 열었다.

애초에 내 복장과 유글리아의 제복을 보고 길을 안 열 리가 없다 생각했다.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준남작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와아…… 그레고리님. 완전 다른 세상 같아요.”

방금까지의 시장이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면 이곳은 명품 백화점 같은 느낌이었다.

뛰는 이가 없고 시끄럽게 떠드는 이가 없으며 도로의 포장 마저도 수준이 달랐다.

“이쪽이다.”

그리고 내가 향하는 곳은 여기에 있는 옷 가게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장소였다.

지랄 맞은 수준의 퀘스트를 완수한 사람만 갈 수 있다고 전해지는 옷가게.

이름하여 고인물의 히든 상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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