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26화 (26/169)

〈 26화 〉 아카바퀴 ­ 26

* * *

[가울의 만물상]

귀족 상업 구역에서도 가장 모서리에 숨어있는, 동네 구멍가게를 연상시키는 외관을 가진 건물이었다.

“어…… 정말 여기가 맞나요?”

아마 이곳까지 오며 보았던 가게들과는 다른 외관에 로제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외관은 이렇지만, 안에 있는 물건은 비교가 불가능 할 거다.”

문을 젖히자 딸랑. 하고 정겨운 종소리가 가게 내부를 채웠다.

그러나, 우리를 맞이하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음? 혹시 여기 무인 판매점인가요? 들어본 적이 있어요! 손님의 양심에 따라 물건을 사고판다는……”

“아니, 아쉽지만 그런 가게는 아니다.”

터벅터벅 가에 안으로 들어간다. 양쪽에 어디에서나 볼법한 마법 도구나 로브, 먹거리들이 보였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평범한 가게들과 다를 게 없었다.

“손님 받아라.”

가게 내부, 생활공관을 나누기 위해 세워놓은 미닫이문을 있는 힘껏 열자 ‘흐갸악!’ 하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다, 당신! 대체 뭐에여?! 호, 혹시 강도?! 가게 꼴을 보면 아시겠지만 털어갈 것도 없어여!”

입가에 묻은 침과 반쯤 풀린 눈, 그리고 떡져 있는 밤색 머리까지.

대충 외견과 짜증 나는 말투를 보아서는 원작 세계관 상점 주인의 후손쯤 되는 모양이었다.

“……손님이다. 가게 문을 열었더니 반응이 없더군.”

“에? 그거야 뭐 대충 물건 값에 맞게 카운터에 던지고 가시지…….”

“그레고리님! 역시 무인 판매점이었어요!”

얘는 또 왜 이래.

“하, 이쪽 상점에 볼일 있어서 온 게 아니다. 아래쪽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거지.”

“……네? 아래여?”

하반신이 아래쪽에 묻혀있던 밤색 소녀가 벌떡 일어섰다.

“무, 무슨 그런 말을……! 여기는 창관이 아니라고여!”

“혹시 지금 싸우자고 내게 시비를 거는 건가?”

“네? 그것도 아닌 아래쪽이라면…… 다, 당신 설마 가울의 만물상을 찾으러 온 건가여? 정말로?”

드디어 이야기가 제대로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책자와 상점의 문을 좀 열어줬으면 좋겠군.”

[가울의 만물상]은 게임의 후반부에 조건부로 오픈되는 상점이었다.

재앙마저 격퇴하고 칭호의 80% 이상을 획득해야만 열리는 상점이기에 이용하는 플레이어는 적었지만 그만큼 확실한 물건들을 살 수 있는 상점이기도 했다.

물론 이쪽 세계에서는 칭호 같은 시스템이 없기에 장소만 알고 있다면 들어올 수 있으리란 생각에 온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표정은 뭐지?”

갑자기 눈을 돌리더니 식은땀을 흘리는 밤색 머리.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우, 우선 자리에 앉으세여! 금방 차를 가져올게여!”

힐끔 로제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이 있는 위치에 나란히 앉은 우리.

주방에서는 차를 준비하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아! 주인분! 혹시 실내 흡연이 될까요? 연초가 아닌 약초인데요.”

“아, 네! 약초라면 괜찮아여!”

아무래도 약초를 피는 사람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밤색 소녀가 찻잔 3개를 가져와 두 개는 우리의 앞에 하나는 자기 앞에 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나는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차까지 들고 온 거냐.”

차라는 게 그렇다. 일단 차를 상대에게 주면 상대는 차를 마실 때까지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드라마나 만화에서도 이야기를 끝마칠 때 ‘차는 잘 마셨네!’ 하며 원샷을 때리는 것이리라.

하지만, 보통 이렇게 뜨거운 차를 한 번에 털어 마시는 짓은 하지 않기에 긴 이야기를 하려고 차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게 말이져…… 설마 제 세대에 손님이 오실 거라곤 생각을 못해서여…….”

“본론부터 말해라.”

“열쇠를 잃어버렸슴돠! 죄송해여!”

다짜고짜 머리부터 박아버리는 밤톨 머리.

“…………뭐?”

지금, 이 밤톨이가 뭐라고 한 거지?

“저희 어머니 때도 손님이 뚝 끊겼다 해서 가게 열쇠를 대충 방치해 놓고 있었는데…… 잃어버렸어여……. 정말 면목이 없어여!”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너, 이름은.”

“네! 체스넛 가울이에여! 아는 사람들은 체스라고 불러여!”

“체스넛.”

“체, 체스라 불러주세여!”

조금 무겁게 불렀더니 바로 꼬랑지를 내려버린다.

그래, 우선 대화를 하는 거다.

결국, 상점의 문을 여는 건, 이 꼬맹이여야 하니까.

“……체스. 그 말은 즉 상점은 앞으로 평생 열지 못한다는 소리인가.”

“아, 아니 고것이…… 방법이 있기야 하다만……. 꽤 복잡해서…… 제가 하기엔 시간도 없고 해서여…….”

방금까지 쳐 자고 있던 녀석의 입에서 나오니 정말 믿을 만했다.

암, 그렇지. 자는 것도 일이지.

“잘 들어라. 체스.”

“넵. 경청 하겠어여!”

“내 옆에 이 엘프가 보이나.”

내 말을 듣고 힐끔 고개를 쳐드는 체스.

“넵, 아리따우신 하프엘프 여성분이 보여여.”

“아니, 틀렸다.”

내 대답에 ‘예?’ 라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우뚱해 하는 체스. 로제 역시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이 녀석은 이 동네 악마들의 수장이다.”

“예?”

내 발언에 파이프를 물고 있던 로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발로 녀석의 발등을 툭툭 쳤다.

알아서 행동하라는 의미였다.

“이 녀석 뒤에는 3명의 대악마가 있지. 모두 이 녀석을 딸처럼 아끼고 있고 말이야. 그렇지 로제?”

내 물음에 로제가 물고 있던 파이프를 때곤 우아하게 연기를 내뱉었다.

체스의 위로 뿌연 연기가 흩뿌려진다..

“맞아요. 마르바스님과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이고…… 파이몬과는 친구죠…….”

“히이이익!”

누구라도 다 아는 대악마들의 이름. 아직 몸을 숙이고 있던 체스의 몸이 진동모드마냥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다시 한번 묻지. 시간이 없는 체스여, 이 정도의 고객이 기다리는데 그놈의 열쇠를 다시 얻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나?”

“히이익! 한 달! 최소 한 달의 시간은 필요해여!”

“1주.”

옆에 앉아있던 로제가 내뱉듯 말했다.

“1주 드리겠어요. 그 안에 해결하세요.”

“예……!”

“차는 잘 마셨어요. 그레고리님? 여기에 옷은 팔지 않는 것 같으니 다른 데로 가는 건 어떨까요.”

“그러지. 체스, 문제가 있으면 소환사 아카데미의 그레고리 존스를 찾아와라.”

말하는 동안 식었던 차를 모두 마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거리로 나가려 할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뭐지?”

고개를 돌리자 아직 무릎을 꿇고 있던 페스넛이 말했다.

“세 분의 대악마가 엘프분을 아끼고 있다 하셨는데…… 나머지 한 분은 누구인가요?”

아, 그게 궁금했나.

생각보다 어이없는 질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다.”

“아아……!”

“가자 로제.”

“네!”

대충 녀석도 알았으리라. 상점을 못 열면 죽는 거로 끝나진 않을 거라고.

죽일 생각은 하나도 없었지만.

“괜한 곳에서 시간을 잡아먹었군. 미안하다. 로제.”

“아니에요. 그레고리님이 이렇게까지 하실 정도라면 평범한 가게는 아닌 거 같네요?”

“괜찮은 물건이 꽤 많이 있지. 그나저나 아직 옷을 못 샀구나.”

그러자 로제가 팔짱을 끼더니 씨익 웃는다.

“상관없어요! 애초에 성능이 좋은 옷을 바란 건 아니여서요.”

갑작스러운 스킨십이 당황스러웠다. 그러자 조용히 속삭이는 로제.

“뒤에서 아직 보고 있어요. 그레고리님도 대악마라고 정체를 밝혔으니 더 가까워 보이는 게 좋겠죠?”

아, 그런 이유였나.

“그래, 잘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면 무슨 옷을 바라고 있던 거지 로제?”

내 물음에 로제가 입술을 검지로 누르며 음~ 소리를 냈다.

“저요? 그레고리님이 좋아하는 옷이요!”

……….

[(특성 : 귀족)을 발동합니다.]

[표정의 관리가 수월해집니다.]

원래 엘프가 이렇게 요망한 종족이었나?

* * *

길고도 짧은 일요일의 끝이 찾아왔다. 가울의 만물상을 떠나고 우리는 결국 옷들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를 찾아갔다.

여자 옷을 골라준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내 눈에 이쁜 것만 추천해줬는데 신기하게도 로제가 입기만 하면 전부 어울렸다.

아마 뛰어난 외모가 패션의 전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다.

그 다음은 뻔했다.

쇼핑하고, 밥 먹고, 구경하고. 중간부터는 꽤 피곤했지만 즐거워하는 로제의 모습을 보니 돌아가자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로제 역시 꽤 만족했던 것일까.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알람이 떠오른 것이었다.

[소환사와의 인연이 깊어집니다.]

[인연 포인트 상승! (현재 2단계)]

로제 역시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얼굴을 붉혀 하는 헤프닝이 있었지만 말이다.

“히야~ 그래도 너무 즐거웠어요!”

아카데미의 정문.

양손에 쇼핑한 물건을 가득 들고 있던 로제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중간에 내가 들어주겠다 했지만, 로제는 괜찮다며 자기가 들기를 자처했다.

“즐거웠으니 다행이군. 내일부터는 다시 아카데미에 등교를 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안 잊어요~ 아 맞다! 그레고리님, 내일부터 타 아카데미에서 교환학생이 오는 거 알고 계신가요?”

“교환학생?”

교환학생이라면 서로 다른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교류시키기 위한 이벤트였다.

보통 1년에 2, 3번 정도 생기는 이벤트였는데 그게 내일인 줄은 몰랐다.

“어디 아카데미에서 오는 거지?”

“음~ 제국이랑 나이트, 그리고 로덴까지 총 3개의 아카데미에요.”

“우리 쪽은?”

“이번에는 선배들이 간다는 모양이던데요.”

로제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이랑 나이트는 알아도 로덴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에 흥미가 생겼다.

“로덴은 새로 생긴 아카데미인가?”

“네 맞아요. 생긴 지 이백 년 정도밖에 안 됐다고 들었어요. 제가 알기론 소환사나 마법사, 정령술사 등등 특정 부분 없이 교육하기로 유명한 아카데미에요.”

아마 내일 대련시간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걸요?

라며 로제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지, 될 수 있으면 짐에 반이라도 주도록. 다른 녀석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

확실히 소환사를 부려먹는 소환수로 소문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로제에게 짐의 반을 받고 나서 우리는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가려고 할 때,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용무라도 있는가?”

“아니 아니, 그쪽이 그레고리 존스 맞지 않았나 싶어서.”

“맞다만.”

내 대답을 들은 경비원이 역시 그렇구먼. 이라고 중얼거리더니 자기 뒤쪽에 있는 초소를 가리켰다.

“조금 전에 왠 갈색 머리 꼬맹이가 엉엉 울면서 그레고리 존스님에게 볼일이 있다며 찾아왔더라고. 그래서 아직 안 들어왔으니 기다려보라고 했지.”

체스가 찾아왔다고?

헤어진 지 10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찾아오다니,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저기 있다고 했나?”

경비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걸 확인한 나는 초소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체스 무슨 일이지?”

“그, 그레고리니이임……….”

가울의 만물상의 주인 체스넛 가울. 그녀는 몰골이 엉망이 된 채로 엉엉 울고 있었다.

“도와 끄윽, 주세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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