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아카바퀴 28
* * *
“그 미친 엘프는 대체 뭐야?! 아니, 그것보다 그 미친년은 엘프 맞아?”
흡연장을 나선 로덴 아카데미의 일행. 그중 로제에게 사과를 했던 여성, 다이레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정수리에 그 검은 머리는 뭔데? 누가 봐도 염색한 거잖아! 검은 머리 엘프가 말이 되는 소리야?”
“진정해, 다이레. 누가 봐도 고의로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 온 거잖아?”
금발의 올백머리가 다이레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마 그 엘프 옆에 있던 녀석이 주도한 거겠지.”
“옆에 그 샌님? 평범한 녀석은 아닌 거 같던데?”
“아마도 그러겠지. 기린.”
올백머리의 부름과 동시에 푱. 하는 소리를 내며 연기가 흩뿌려졌다.
상록수를 연상시키는 녹색 머리와 정수리에 뿔을 가진 외형 미남.
“무슨 일인가. 말포이여.”
손에 쥔 종이부채를 펼친 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올백 머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다 봤을 거 아니야? 그 녀석. 네가 아는 녀석인가 해서.”
기린은 재앙이 일어나기 전부터 활동하던 소환수였다.
“시가를 물고 있던 남자 말인가? 음, 소인의 기억에는 없는 얼굴이다만.”
고개를 저은 그가 말했다.
“그러면 왜 우리를 노리는 거지? 접점 자체가 아예 없는데…….”
그렇게 고민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 때, 로덴 아카데미 중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오며 외쳤다.
“알아냈어! 알아냈다고!”
헥. 헥. 거리며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소환사 아카데미의 다른 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말했다.
“애초에 그 엘프, 질이 나쁜 녀석 같더라고.”
“……질이 나쁘다고?”
“염색에 담배나 피우는 모습이 영 양아치였잖아? 평소에도 불량학생 취급 받다가 최근에는 선도부를 힘으로 찍어누르고 여러 귀족 영애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는 모양이야.”
그의 설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소환수 쪽은 끔찍한 몰골로 변신을 하는데 여자를 끌어안는 게 취미라나? 하여튼, 원래 그런 놈들인 것 같아.”
잠자코 옆에서 듣고 있던 기린이 실실 웃었다.
“……어딜 가도 쓰레기는 있다는 게로군.”
생각을 정리했는지, 말포이가 정면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히려 기회네. 그런 쓰레기들을 우리가 찍어 누르면 소환사 아카데미의 신임도 얻고, 우리 로렌 아카데미의 힘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아카데미의 악당을 물리치는 본인과 환호하는 여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그 양아치년과 그 소환수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다들 흩어져.”
그렇게 모두가 흩어지고 나고 말포이와 기린만이 남았을 때, 기린이 나지막이 말했다.
“양아치라면 오히려 당신 아닙니까? 제가 알려준 상점의 열쇠를 훔치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 그거야 네가 그렇게 추천한 장소니까. 오늘 밤에 한 번 가보지 뭐.”
“가게 주인은요?”
“알 바야? 어제처럼 몇 대 패주면 알아서 기겠지.”
“……그러다 죽으면 다시는 그 상점을 사용하지 못할 텐데요?”
[가울의 만물상]의 시스템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소환사가 다른 세계에서 소환수를 소환하듯, 가울의 일족 역시 다른 세계의 상단을 소환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그녀는 그 힘을 깨우치지 못한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 역시 그 힘을 깨우칠 터였다.
“그래? 그러면 뭐, 교육을 시켜서 내게만 물건을 팔게끔 해야지. 아니, 바치게 해야지…… 킥킥.”
말포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쓰다듬었다.
“흐흐흐, 확실히. 그 상점의 물건들은 쓸 만했지.”
“뭐…….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소인은 말리지 않겠네.”
* * *
“따분하군.”
수학 시간이었다.
어째서 소환사들이 수학 수업을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앞에서는 루트와 제곱, 콤마가 휘날리고 있다.
힐끔 교실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다음 교시까지 남은 시간은 약 5분.
그 후 쉬는 시간 15분을 가진 뒤 곧바로 대련시간이었다.
“그레고리님? 이 문제를 풀어보시겠습니까?”
수학교사로써 우리를 가리키는 것은 니자젤이었다.
어째서 행정업무자가 수학까지 가르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그래왔다는 모양이었다.
아니, 행정업무자이기에 수학을 잘 가리킬 수 있는 건가?
“싫다.”
“…예?”
“풀어보겠는지 내게 허락을 구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거절하겠다.”
그리고 대충 나는 이런 태도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수학 공식들?
배웠다. 모조리 배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기억이 안 나는 걸 어쩌겠는가.
배웠기에 또 배우는 건 귀찮고, 그렇다고 또다시 알고 싶은 상식은 아니었다.
“하……. 그러면 로제양? 로제양이 풀어볼래요?”
“에?”
내 옆에 엎드려 자고 있던 로제가 벌떡 고개를 들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츄릅.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어어…… 모르겠는데요. ……헤헤.”
저 순진무구한 웃음에 욕을 내뱉을 수는 없었는지 니자젤이 얼굴을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소환사와 소환수가 쌍으로……. 이 문제의 풀이는───”
───♬
수업의 끝을 마치는 종소리가 아카데미에 울려 퍼졌다.
“수업 끝! 감사합니다!”
그와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재빨리 달려나가는 로제.
그녀가 어디를 향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천천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흡연장.
식당 뒤편에 있는 공간으로 걸어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제님은 항상 1등으로 오시는군요.”
“그치만, 몸이 너무 힘들었는걸요. 이걸 안 피면 몸 상태가 끔찍하 게 안 좋아진단 말이에요. 아! 그레고리님!”
싱글벙글 웃으며 파이프 담배를 피고 있는 로제, 그 옆에는 백발의 소녀가 마주 서서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요즘 자주 뵙겠습니다. 그레고리님.”
“그래, 자주 보는군. 데킬라.”
데킬라 크로프트
얼마 전부터 흡연장에서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로제와 급속도로 친해진 소녀였다.
새하얀 머리와 밀랍을 연상시키는 창백한 피부. 가는 목과 팔만 본다면 그녀를 환자로 보는 인물도 있을 정도였다.
자주 기용하는 소환수들은 언데드 계열로 저코스트 소환수들을 통해 물량으로 찍어누르는 타입의 소환사였다.
“안 그래도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돌더군요. 알고 계셨는지요.”
“……이상한 소문?”
“예, 두 분이서 로덴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했다는 소문입니다. 그리고…… 로덴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두 분의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요.”
예상하던 바였다.
“그래서, 녀석들이 뭘 들은 거지?”
탁. 탁. 하고 검지로 담뱃재를 쳐낸 테킬라가 이어서 말했다.
“그레고리님의 모습이 변한다는 것과 그 대처법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물은 것 같습니다.”
“재미있군.”
내 능력의 대부분은 상대의 공포를 유발하여 혼절시키거나 정신적인 데미지를 주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이것들은 사전에 대비함으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선도부장이 준비했던 안경과 같이 말이다.
“녀석의 소환수에 대한 정보는 없나? 보답은 하도록 하지.”
내 말에 데킬라가 싱긋 웃었다.
“변변치 않은 정보이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눈꺼풀 사이로 슬그머니 보이는 하늘색 눈동자. 그 눈동자에는 왠지 모를 힘이 있었다.
“판단은 내가 하지.”
“로덴 아카데미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학생이 소환수를 소환했었긴 합니다만…… 그 소환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저, 꽤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고 녹색 머리에 뿔이 달려있다 하더군요.”
“녹색 머리에 뿔? 혹시 그 뿔이 머리 정중앙에 났다고 하던가?”
“……맞습니다. 혹, 그레고리님은 그 소환수의 정체를 아시는 겁니까?”
“……알다마다. 꽤 보기 드문 소환수를 가지고 있었군. 그러니 그렇게 우두머리 취급을 받는 거겠지.”
외형적인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 떠오르는 소환수가 있었다.
SR등급의 환상종 기린.
신체적인 능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스킬이 꽤 골치 아픈 녀석이었다.
[신성(??)]
악 속성 소환수에게 추가 데미지를 주는 스킬로 종족이 악마인 내 입장에서 쥐약이나 다름없는 스킬이었다.
“로제. 아무래도 이번 대련에는 네가 활약을 해야겠다.”
“……네? 제가여?”
갑작스레 본인 이름이 불리자 파이프에서 입을 때며 놀라는 로제.
나는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속삭여주었다.
“대련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았다만…… 가져올 수 있겠지?”
“그레고리님이 필요하다 말씀하신 거니까요!”
이내 파이프를 모두 태운 로제는 재떨이에 약초를 털어놓고는 데킬라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럼, 데킬라! 저 먼저 가볼게요!”
“네, 대련. 구경하러 가겠습니다.”
“네!”
데킬라 역시 다 채운 연초를 재떨이에 넣고는 몸을 돌려 흡연장을 떠나려 했다.
“데킬라.”
“예.”
내 부름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녀.
로제의 친구나 다름없는 그녀였기에 나는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이번 대련, 잘 보는 게 좋을 거다. 네게도 분명 큰 도움이 될 게다.”
“…알겠습니다.”
내 쪽으로 몸을 돌려 고개를 살짝 숙인 데킬라는 흡연장을 떠났다.
이윽고 덩그러니 흡연장에 남은 나. 시가를 태울까 하다 시간이 애매하다고 판단된 나는 천천히 흡연장을 나왔다.
* * *
대련이 성사되는 데에는 그리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로덴 아카데미의 2학년인 올백머리는 교관에게 다가가 수업에 참관하고 싶다. 말을 꺼냈고 교관으로서도 타 아카데미 학생의 수업 참관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에 허락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우리를 지목한 것이었다.
“저 녀석들은 1학년이다만……. 너희를 상대하기엔 아직 어리다.”
수인 교관은 우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우리는 상관없다. 오히려 다른 아카데미의 2학년이 어떤지 알고 싶군.”
하지만 그냥 1학년이 아닌 우리였다. 선도부는 물론이고 이프리트 마저 물리친 나.
교관은 잠시 생각에 빠져 무언가를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두 팀 모두 대련장 위로 이동해라.”
천천히 대련장으로 걸어가려 하는데 올백머리의 시선이 느껴졌다.
비웃음. 명백한 도발 행위였다.
“지는 쪽이 이기는 쪽 소원 들어주기. 어때?”
“재미있겠군. 받아들이지.”
올백머리는 아직 소환수를 꺼내지 않은 상황. 마침내 우리 모두 자리를 잡자 올백머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린.”
“그래, 준비되었는가. 말포이.”
저 녀석이 바로 기린.
옥을 연상시키는 녹색 머리하며 정수리에 난 뿔, 동양풍의 도포까지. 영락없이 게임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확실히, 저 녀석이라면 ‘가울의 만물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군.”
유희를 목적으로 소환되는 녀석인지라 재앙 전부터 세상을 돌아다니던 녀석이었다.
“……여성 유저를 위해 서비스로 만든 캐릭터라 그런지, 기생오라비처럼 생겼군.”
무슨 BL물 표지를 장식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로제, 대련 전에 말했던 것. 기억하겠지?”
“그럼요! 준비됐어요!”
로제 역시 전투 자세를 취하고, 나 역시 앞을 노려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에 대해 대처를 제대로 해왔다고 하니,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 궁금해졌다.
“망할 양아치 엘프. 무릎 꿇고 내 발을 핥으며 알몸으로 사과하게 해주마.”
말포이 녀석이 싱긋 웃으며 혀를 내민다.
“좆 까. 병신아.”
그렇지 잘한다!
로제의 폭언 덕분에 녀석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우리 사이의 적대감이 가득 찬 상황.
“──시작!”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교관의 목소리가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