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30화 (30/169)

〈 30화 〉 아카바퀴 ­ 30

* * *

삽시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서열 5위 대악마의 등장.

그것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하기엔 충분했다.

“저 영감은 대체 뭐야!”

퉷퉷소리를 내며 침을 뱉던 말포이가 마르바스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에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기린이 입을 열었다.

“……마르바스.”

“뭐? 마, 마르바스?”

말포이는 마르바스의 모습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은 마르바스의 모습을 알지 못할 터였다.

“잠깐만 마르바스라면 대악마잖아! 그런 악마가 왜 여기에? 교, 교관! 대련 중 난입이잖아! 빨리 제재 하라고!”

대악마라 불리는 남성의 난입이었다. 재빨리 교관을 불러 상황을 정리하려했으나, 그를 가로막는 목소리가 있었다.

“왜요오? 마르바스님은 제 소환수이신걸요?”

싱긋 웃으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는 로제. 그녀의 계약서 맨 위에는 이런 글씨가 존재했다.

[소환수 계약서]

그 계약서를 멍하니 바라보던 말포이가 이내 표정을 와락 구기며 외쳤다.

“지랄하지마! 저딴 계약서 하나 가지고 소환수로 인정 된다고? 개소리도 적당히 쳐라!”

“개소리는 네가 치는 것 같군.”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며 날개를 부르르 떨었다.

그것만으로도 등에 묻은 흙먼지가 모조리 떨어져 나갔다.

다시 새롭게 돋아난 팔들. 나는 뚜벅뚜벅 로제의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과거 소환사 아카데미를 세운 초대 총장만 하더라도 드래곤과의 첫 계약에 계약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

로제의 곁에 도착한 후 몸을 말포이 쪽으로 돌린다. 그의 주변엔 어느새 기린과 도철이 붙어있었다.

“또한 소환사와 소환수의 관계는 ‘계약’ 즉, 계약서로 이루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린다.

“법이 그런 걸 어쩌겠나. 로덴의 소환사여.”

“교과아아안────!!!”

어미를 찾는 아기새처럼, 말포이가 울부짖는다. 마치 빨리 이 일을 해결하라는 듯, 허나 교관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훌륭한 소환수와 계약하는 것 역시 소환사의 소질이지.”

“이 망할새끼들이! 너희! 서로 짜고치는거지! 그렇지!”

그의 눈동자는 분노로인해 새빨갛게 물든 상황이었다.

“짜고치다니, 어이가 없군.”

그리고, 그의 분노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할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 녀석의 준비가 더 철저할 것이라 생각했나? 네 녀석의 실력이 더 우월할 것이라 생각했나? 네놈의 승리가 처음부터 당연하다 생각했나?”

너는, 그렇기에 진 거다.

“네 녀석의 반지? 호수의 반지겠지. 그리고 네 녀석이 그 물건을 왜 구했는지도 대략 짐작이 갔고.”

초반에 호수의 반지를 끼는 뉴비들은 다 그거다. 고코스트 유닛은 있는데 운용슬롯이 안되는 녀석들.

말포이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호수의 반지를 샀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나는 그 정보를 듣자마자 로제에게 예의 그것을 챙기라고 말했지.”

[소환수 계약서]

서머니아로 향하며 침묵을 깨기 위해 로제가 마르바스에게 먼저 제안을 한 것이었다.

‘마르바스님은 저희에게 빚이 있죠? 그래서 말인데……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설마 로제가 계약을 먼저 제시하리라곤 생각 못했다.

전날 내가 한 말도 있고 로제의 슬롯 역시 마르바스를 함께 품기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로제가 씨익 웃으며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는 게 아닌가.

‘소환수 계약서예요.’

그리고 마르바스 역시 이를 수락할 양반이 아니었지만 로제는 이 역시도 예상했다는 듯 말한 것이었다.

‘과거 소환사 아카데미를 지으셨던 초대 총장은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알고 드래곤과 [소환수 계약서]를 통해 계약했다고 해요. 즉, 미리 찜 하는거죠.’

‘……그대는 날 그……찜. 하겠다고 말하는 건가?’

‘맞아요! 척하면 착! 하고 알아들으시네요? 헤헤. 저, 엄청 강해질 거에요. 그때가 되면 진짜로 마르바스님과 계약하고 싶은데…… 안될까요?’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을 옆에서 특성을 발동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특성 : 귀족] 이 발동합니다.

[특성 : 귀족] 이 발동합니다.

[특성 : 귀족] 이 발동합니다.

입꼬리가 올라 갈 것 같아도, 웃음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도. 억지로 겨우겨우 참아낸 것이었다.

‘………그레고리여.“

’왜 그러지, 마르바스.‘

[특성 : 귀족] 이 발동합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아가씨가 튀어나온 겐가.‘

’뭐, 라스의 후손이니 말이다.‘

[특성 : 귀족] 이 발동합니다.

그렇다. 이 둘의 모습은 과거 라스와 마르바스의 모습을 매우 닮은 것이었다.

[마르바스! 난 널 반드시 내 소환수로 만들거야!]

[어이가 없군. 그딴 실력으로 나와 계약하겠다고?]

[계약서를 쓰자! 날 널 포기할 수 없으니까…… 비록 지금은 너에게 지지만 나중에 검으로 널 이기면 넌 내게 되는 거다! 즉, 난 널 찜할 거다!]

[……찜? 어이가 없군. 그 제안, 받아주마.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이여.]

비록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 결은 같았다.

그의 후손이 그를 원한다.

그와 비슷한 말을 하면서.

그렇기에 마르바스는 그 계약을 받아들인 것 일지도 몰랐다.

”지금부터 3:3다. 제대로 발악해보도록. 로덴의 소환사.“

뿌득. 하고 말포이의 입에서 소리가 났다.

”그래봐야 상대는 가계약을 한 악마야! 제대로 된 힘도 없을 테니 힘으로 찍어 누르면 돼……. 도철!”

말포이의 부름을 받은 도철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마르바스를 향해 달려갔다.

3성에 달하는 괴력을 가진 도철. 그의 쇠방망이가 수직으로 마르바스의 머리를 향해 내려 꽂혔다.

“……찍어누른다 했는가? 이 나를?”

───기긱. 기기긱.

여유롭게 왼손으로 시가를 피며, 오른손에 든 검으로 도철의 쇠방망이를 막아낸 마르바스가 말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제 분수를 모르는 군.”

탁.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 시가와 동시에 마르바스가 검을 위로 쳐 올렸다.

“더 많은 머릿수로 여성과 약자를 괴롭히다니, 세월이 지나며 매너 역시 사라진 것인가.”

뭐?

“마르바스, 자네 방금 날 약자라고 했던 건가?”

“음? 저런 소환수에게 팔을 세 개나 내줬으면 약자지. 꼬우면 강해지게나.”

저 망할 영감탱이가……!

“말포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네. 상대는 마르바스. 서열 5위의 대 악마이자 검성이라 불리는 자일세.”

서서히 뒤로 물러서고 있던 기린이 말포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휙 고개를 돌리며 기린을 노려보는 말포이.

“네 녀석은 기린이잖아! 신성도 있는 주제에 저런 악마들을 못 잡는다고?!”

“저자는 악마이기 전에 검성일세! 나와 도철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일세!”

“……항복은 절대 안돼. 못해도 로제, 저 양아치년 만큼은 데려간다.”

“하……. 소환사가 그렇게 말한 다면……소인, 최선을 다해보겠네.”

“크핫! 크핫하하하!”

검을 쥐고 있던 마르바스가 웃기 시작했다.

“그레고리, 들었는가? 저 아해들이 뭐라 하는지 말일세.”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곤 손을 휘적였다.

“나랑 로제는 방금까지 웃어서 더 이상 웃을 힘이 없다. 너 혼자 웃어라.”

“하하하! 야박하기 그지없군. 뭐, 그대가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야…….”

웃음으로 인해 반달형으로 휘어져 있던 마르바스가 눈을 감았다.

“자네들이 노력하면 뭐라도 할 수 있는 것 같나?”

서서히

“어이가 없군.”

공기가 무거워진다.

“크윽…!”

갑자기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는 말포이와 도철, 그리고 기린.

기린이 재빨리 뿔을 밝히자 서서히 그들의 표정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신성은 좋은 스킬이야. 나 같은 악마들을 상대로는 말일세.”

하지만.

하고 숨을 고른 마르바스가 눈을 떴다.

“나 같은 검사를 상대로는 그대들은 그저 사냥감에 불과하네.”

마르바스의 능력은 4성의 소환수나 다름 없다.

SSR 캐릭터의 4성.

SR 3성 캐릭터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SSR 캐릭터가 사기 소환수 중 한 명이라 불리던 마르바스라면 말이다.

“한 번에 끝내도록 하지.”

두 손으로 검을 잡은 마르바스가 서서히 팔을 위로 들어올렸다.

검도에서 상단세라 불리는 자세였다.

“미친놈. 대련에서 상대를 죽일셈이냐?”

저 자세를 알고 있는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마르바스를 향해 외쳤다.

“힘 조절을 해보지.”

큰게 온다는 것을 자각한 것일까. 기린과 도철이 재빨리 말포이의 앞에 모여 방어자세를 취했다.

땅에 박아 넣은 쇠몽둥이와 주변을 두르는 푸른 번개.

아마 그들의 방어스킬이겠지.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잘 봐라 로제.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 될 터이니.”

“네?”

마침내 완벽히 상단세를 이룬 마르바스. 그는 마치 손에 힘을 빼는 것처럼, 천천히 일 자를 그리며 떨어진다.

그것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이변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

“뭐야 이게?”

“……지금 대련장이 뚫린거야?”

말포이의 뒤편. 대련장을 둘러싸고 있던 장막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위로는 일자로 갈라진 구름들이 골자기를 이루고 있다.

나 역시 게임에서만 보았던 동작이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이것이.

“재앙살(災??)”

재앙의 팔을 베어냈다는 전설적인 검격.

그 전설적인 모습에 이 대련을 바라보고 있던 모든이가 떡하니 입을 벌렸다.

“와아……….”

내 옆에 앉아있던 로제를 포함해서 말이다.

“저게…… 마르바스.”

“그래, 너의 두 번째 소환수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장벽이 무너져 내린다. 대련장의 구석을 바라보니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치 된 프리즘 스톤이 모조리 박살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서열 5위의 악마.

마르바스.

“음? 끝난 건가?”

“그래, 고생했네. 마르바스.”

나는 마르바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뒤로 쓰러진 체 벌벌 떨고있는 말포이를 바라보았다.

“흐악……! 마, 말도 안돼……! 이게…… 무슨……!”

녀석을 지키던 두 녀석은 엄청난 충격을 입고 역소환 된 상황.

소환사를 지키고 마르바스의 일격을 제대로 맞았으니 당분간 소환될 일은 없을 듯 싶었다.

뚜벅. 뚜벅.

나는 녀석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세 쌍의 다리가 달린 검은 벌레가 다가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심정은 어떨까.

“히, 히익! 오지마! 오지마아! 대련은 끝났잖아!”

아쉽게도 나는 녀석을 상처입힐 생각이 없었다. 그저 말만 전하려고 했을 뿐.

정신적 데미지는 오로지 녀석의 가치관이 날 징그럽다 인식하기 때문이었기에, 내 잘못은 아니었다.

아, 공포가 느껴진다.

“말포이. 대련 전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팔을 녀석의 어깨 위에 올렸다.

날카로운 가시가 녀석의 어깨를 뜯어내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사뿐하게 올려 놓았다.

“내가 네가 바라는 건 총 두 가지다.”

천천히, 녀석의 귓가에, 내 입을 가져다덴다.

“붙지마.붙지마.붙지마.붙지마.붙지마!!!!”

“첫째. 내 소환사인 로제에게 사죄할 것. 대가리까지 바닥에 붙이고 착실히 사과해라.”

“흐윽, 흐으으윽, 흐으어어어엉……! 붙지마아…… 떨어지라고오…….”

싫어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

나는 더 가까이 달라 붙어 말했다.

“둘째. 당장 ‘가울의 만물상’ 열쇠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라. 알아 들었겠지?”

내 물음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말포이. 내가 녀석의 귓가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녀석이 무릎을 꿇은 체 로제를 향해 달려나갔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이마를 착실히 바닥에 붙이며 로제에게 사과하는 말포이.

그 광경에 로제는 말 없이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뻐끔뻐금 연기를 내뱉었다.

“………?”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 서서히 고개를 드는 말포이. 하지만 그 앞에는 파이프를 물고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로제만이 있을 뿐 이었다.

“뭐해요? 더 하시지.”

싱긋,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로제. 그리고 순식간에 그 표정은 차가워 진다.

“죄송합니다…!”

나는 마르바스의 옆에 다가가 시가를 입에 물며 말했다.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

“별 말씀을, 새로운 내 소환사인데, 이 정도는 해야겠지. 그리고…….”

말을 흐린 마르바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 역시 주변을 둘러보자 아직도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편해지겠군.”

“……확실히.”

이 모습을 보고 마르바스에게 깝치는 놈은 없으리라.

우리 둘이 나란히 서서 엎드린 말포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뒤 쪽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대련 종료! 승자는 소환사 로제 폰 유글리아와 그의 소환수. 그레고리존스와 마르바스 G 레이!”

음, 아주 듣기 좋은 울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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