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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32화 (32/169)

〈 32화 〉 아카바퀴 ­ 32

* * *

“핫! 꿈을 꿨어여! 심연에서 태어난 듯한 괴생명체가 저를 덮치는 꿈……!”

“아쉽지만 꿈이 아니다.”

“히에에에에에에에엑?!!!!!!!!!”

그나마 다행일까, 가면을 벗은 내 모습을 본 체스가 기절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질렀다.

“심연의 괴물! 악마! 전능하신아라카트여우리를구원하소서전능하신아라카트여우리를구원하소서전능하신아라카트여우리를구원하소───”

“지랄은 거기까지 해라. 체스. 나다. 그레고리 존스.”

“──그레고리님?”

내 이름이 나오자 괴상한 주문을 멈춘 체스. 참고로 아라카트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신 중 한 명으로 SSR 카드로 나온 적 있는 쭉쭉 빵빵 누님계 카드였다.

”그래, 설마 내 본 모습을 보자마자 기절할 줄은 몰랐다. 사과하지.“

”아, 아니여! 오히려 제가 사과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 그런데 그게 본 모습이신가여?“

”그래, 악마라서 말이다.“

아무래도 이 모습으로 대화를 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것 같아 변신을 풀었다.

”하……. 이 모습이 훨씬 좋아여. 제발 그대로 있어 주시면 안 될까여? 제발!”

“……그래, 그러도록 하지.”

“가, 감사해여!!!”

이 가면을 구매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퀴폼으로 어느 정도의 신체변형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사용해 본 것이다.

체스가 기절한 동안 바퀴폼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해봤다.

팔의 개수를 줄여보기도 했고 최대한 인간형으로 몸을 바꿔보기로 했다.

모 만화책에서 화성에 사는 바퀴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실험은 실패했다.

마치 바퀴폼은 절대로 모습을 바꾸지 못하겠다 말하는 듯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 가면이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공포 증폭이라는 효과는 나와 무척이나 어울리는 효과였으니까.

“우선 이거 하나를 사도록 하지.”

“네! 확인했어여. 다른 것도 사시나여?”

내 눈에 차는 물건은 없었다.

“로제가 가져오는 걸 보고 생각해보지.”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했던가. 가게 안으로 사라졌던 로제가 돌아왔다.

“저 부르셨어요?”

“그건 아니고, 무슨 물건을 골랐지?”

내 물음에 로제가 환하게 웃으며 쥐고 있던 손을 활짝 폈다.

“짠! 이거에요! 카탈로그를 들고 돌아다녔는데 이게 가장 좋을 거 같더라고요!”

“……피어싱인가?”

“네!”

은색의 깔끔한 디자인의 피어싱이었다.

카탈로그에 적힌 피어싱의 이름은 「사자의 고리」

공포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상승시켜주는 아이템이라 나와 있었다.

“확실히, 좋은 아이템이구나.”

“그렇죠? 이것만 있으면 그레고리님과 함께 싸울 때 제약도 훨씬 덜 할거에요!”

“다만……. 괜찮겠나. 그거, 귀를 뚫는 거 같은데.”

“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로제.

“엘프들은 귀가 민감하지 않나?”

작중 라스가 릴리의 귀를 만지기만 해도 부르르 떨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엘프가 귀를 뚫는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 하프엘프는 귀가 민감하긴 하지만 엘프 정도는 아니에요. 아마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가? 로제가 괜찮다면 그런 거겠지.

“체스, 귀를 뚫을 줄 아나?”

“예? 아니요?”

……아무래도 뚫을 줄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 피어싱과 가면만 부탁하지. 총 얼마지?”

“음…… 특별 할인가를 적용해서 총 금화 20개예여!”

생각보다 비쌌다.

“특별 할인가가 몇 퍼센트지?”

“90%여!”

양심상 깎지도 못하겠네.

“여기 있다.”

다행히 품위 유지비로 해결이 됐다. 빈털터리가 된 게 문제이지만.

돈을 벌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레고리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닌가요?”

내가 품위유지비를 얼마 받는지 알고 있는 로제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한 달에 받는 품위유지비가 약 30골드 정도였으니 로제의 입장에서는 큰 지출로 느꼈을지도 몰랐다.

“이 정도는 문제없다.”

돈이야 벌면 그만이었고 나에겐 충분히 그만한 능력이 있었으니까.

“……그런가요? 감사히 쓸게요. 혹시, 귀는 그레고리님이 뚫어주실 수 있을까요?”

쫑긋쫑긋. 귀를 움직이며 내게 피어싱을 건네는 로제.

내가 귀를 뚫으라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밀었다.

“나도 귀를 뚫은 적은 없어서 말이다……. 데킬라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확실히, 데킬라양은 피어싱을 잔뜩 하고 있었죠. ……알겠어요.”

왠지 시무룩해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귀를 뚫는 건 반영구적이니 실수를 해선 안 됐으니까.

“그럼, 돌아가도록 하지.”

“네에…….”

간다는 말을 들은 재빨리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벌써 돌아가시는 건가여?”

“그래,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음 재입고는 언제지?”

“음…… 최근에 물건을 입고한 게 20일 전이니까…… 10일 후에여!”

“그런가. 그럼 10일 후에 오도록 하지.”

덜컹. 하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 섰다. 우리가 모두 나오자 열쇠를 돌려 문을 잠가 버리는 체스.

그녀는 어느새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있었다.

“예! 그럼 10일 뒤에 뵐게여! 다음에도 할인 해드릴 테니 꼭 오세여!”

“체스도 열쇠 잃어버리지 말고요!”

“헤헤, 걱정 마세여! 절대 안 잃어버릴게여!”

가게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주는 체스를 뒤로하고. 아카데미로 향하는 마차를 기다리기 위해 마차 정류장에 서 있을 때.

아카데미 쪽에서 도착한 마차에서 내리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앗! 마르바스님!”

반가운 얼굴에 손을 붕붕 흔들며 다가가는 로제. 별수 없이 그녀를 뒤따라 갔다.

“오, 로제와 그레고리군. 서머니아에 있다 돌아가는 모양이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리를 반기는 마르바스. 그의 조끼깃에는 아카데미 교관임을 증명하는 배지가 달려 있었다.

“총장과 이야기는 잘 끝낸 모양이군.”

“그래, 생각보다 예의가 바르더군. 말도 잘 통하고 말이야. 별 어려움 없이 검술교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네.”

……이 나이를 먹고 교관이라니. 웃기지 않은가?

그렇게 말한 마르바스가 껄껄 웃자 로제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마르바스님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을까요? 대련 교관님만 해도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눈치던걸요?”

“아아, 그 수인 교관 말인가. 확실히, 검에 대한 관심이 크더군.”

“아 맞아! 교관님이 마르바스님을 끌고 가버려서 감사 인사도 못 드렸었네요! 늦었지만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대로 허리를 90도로 숙여버리는 로제. 그 광경에 마르바스가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로제. 마르바스는 네 소환수가 됐다. 본인을 구해준 소환수에게 감사 인사라니,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 마르바스가 당황하고 있지 않은가.”

“네? 아무리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잖아요!”

허리를 원위치로 되돌린 로제가 헤헤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오히려 이런 캐릭터가 더욱 로제다움을 강조하는 것 같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하겠지.”

“살다 보니 재미있는 소환사를 뒀어.”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는 마르바스였지만──

“그래도 공식 소환수는 나뿐이라는 걸 명심해라. 마르바스. 교관이 됐다고 로제에게 특혜를 줄 생각도 말고.”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오히려 내 소환사인 만큼 심하게 굴릴 생각이네.”

“네에?”

당황하는 로제를 보며 사악한 표정을 짓는 마르바스. 그 광경에 로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오, 오히려 환영인데요?!”

“그런가? 뭐, 좋겠지. 아. 그레고리. 그대도 앞으로 검술 시간에 참여하도록 하게. 총장의 말로는 수업에 잘 참여도 하지 않는다지?”

총장 녀석. 그걸 마르바스한테 이른 건가?

“……내 그레고리류를 감당할 수 있겠나.”

“검술이라 우기는 망할 권법 말인가.”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레고리류 검술은 세계 최강이다.”

“……답이 없군.”

마음만 같아선 그레고리류 검법 그레고리 펀치를 먹여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저거, 아카데미로 향하는 마차 아닌가?”

마르바스가 검지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어느새 아카데미 행 마차가 도착해 있었다.

“맞네요! 마르바스님!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내일 봬요!”

“그래, 내일 보지.”

우리는 재빨리 학생증을 제시하고 마차 위에 올라탔다.

서머니아에서 아카데미로 향하는 마차의 교통비는 아카데미 측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데킬라양의 방으로 갈까요?”

건너편에 앉은 로제가 피어싱을 쓰다듬으며 내게 물었다.

“음? 데킬라의 방을 알고 있나?”

“네! 데킬라양은 2학년 기숙사 8층 824호에 있다고 했어요.”

“그런가. 그럼 방에 돌아가기 전에 잠시 들르도록 하지.”

“네!”

마차는 순식간에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자 어느새 눈에 익은 경비가 보였다.

“오, 그레고리님이랑 하프엘프 아가씨군. 산책은 잘하고 오셨나?”

“네! 워커씨도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워커 스카이블루.

소환사 아카데미의 경비인 그는 언제나 아카데미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었다.

“고럼고럼. 자자, 들어가게 들어가게.”

“네~ 고마워요. 워커씨!”

“항상 고맙군. 워커.”

“하하! 이게 내 일인 걸 어떡하겠나.”

예전부터 [소환사 아카데미아]의 플레이어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격언이 있다.

‘아카데미 경비에게 깝치지 말아라.’

그 이유를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왜냐고? 대부분은 그 이유를 알자마자 죽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정체는───

“워커씨는 항상 친절하시네요~ 저번에 그레고리님이 늦게 들어왔을 때도 엄청 걱정하셨는데.”

“워커가?”

“네~ 저번에 변신해서 하늘로 돌아오실 땐 벌레인 줄 알고 잡으려다 그레고리님인 걸 눈치채고 둔 거였데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을 뻔 했군.

“어? 기숙사, 꽤 많이 지어졌네요?”

2학년 기숙사를 향해 걸어가는 길. 아직도 공사 중인 1학년 기숙사가 눈에 띄었다.

“확실히, 소환수들이 함께 일을 하니 금방이군.”

사대 속성 정령은 기본이고 골렘과 여러 소환수들까지 모여 하는 공사는 그야말로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그러게요. 저 정도면 내부만 하면 끝나겠는데요?”

“금방 돌아가겠군.”

“……프리실라가 옆방이어서 좋았는데 아쉬워요.”

“아, 그것 말인데. 아마 1학년 기숙사가 완공되면 14층으로 갈 거다.”

“……넹?”

얼마나 당황했는지 발음마저 뭉게며 묻는 로제.

“내가 이프리트를 잡은 보상으로 14층으로 보내 달라고 했지. 13층이라니. 대공인 내 격과 맞지 않는다.”

“……제가 14층이라니, 뭔가 현실성이 엄청 없는데요.”

“잊지 마라. 네 소환수는 나니까.”

“그레고리니임……!”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는 로제. 나는 재빨리 아카데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버하지말고……. 빨리 가서 데킬라에게 귀나 뚫어달라고 하지.”

“네에……! 그레고리님! 역시 그레고리님은 최고의 소환수에요!”

내가 최고의 소환수라고?

“마르바스보다 말인가?”

“……생각보다 유치하신 면이 있네요.”

“……닥쳐라.”

하여튼.

장난을 못 쳐요. 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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