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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33화 (33/169)

〈 33화 〉 아카바퀴 ­ 33

* * *

“……피어싱 말입니까?”

“그래, 피어싱을 샀는데 귀를 뚫어본 경험자가 없어서 말이다. 네가 도와주면 좋겠다.”

소환사 아카데미의 2학년 기숙사.

데킬라는 건네받은 피어싱과 로제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확실히 제가 귀를 많이 뚫기는 했습니다만……. 엘프의 귀를 뚫는 것은 처음이라…….”

“본인 말로는 하프라 상관없다더군. 그렇지 로제?”

“네? 마, 맞아요! 상관은 없는데……. 아주 조오오금? 더 민감할 수는 있어요.”

“그렇다는군.”

“로제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쿠루쿠루.”

푱. 하고 보라색 연기와 함께 등장한 작은 털 뭉치 박쥐가 나왔다.

“그건 마취 박쥐 아닌가?”

등급 N

나오면 갈아버리거나 재료로 써버리는 잡몹이었다.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로제님은 처음이니까 아프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판단했습니다.”

자신의 손에 앉은 마취 박쥐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데킬라.

“쿠루쿠루. 로제님의 귀를 잠깐 핥아줄 수 있나요?”

“쿠루쿠루!”

“네엣?! 자, 잠깐만! 귀를 핥다니! 이게 무슨……!”

여유롭게 날아가 로제의 오른쪽 어깨에 앉는 쿠루쿠루. 나는 당황하는 그녀의 왼쪽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마취 박쥐의 타액에는 약한 마취 효과가 있다.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그런가요? 그래도 귀를 핥는다니 뭔가 이상……후읏!”

가볍게 로제의 귀를 두어 번 핥은 쿠루쿠루가 테킬라의 어깨 위로 돌아왔다.

“으으…… 느낌이 이상해요.”

“잠시만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몸을 로제 쪽으로 기울여 귀를 손톱으로 귀를 살짝 누르는 데킬라.

“감각은 있으십니까?”

“아니요오……. 그냥 뭔가 짜릿짜릿한데요.”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로제가 귀엽다는 듯 데킬라가 미소를 짓는다.

“마취가 잘 들었다는 겁니다. 자, 그럼 한 번에 뚫겠습니다.”

“크읏!”

완전 눈까지 감고 제대로 겁을 먹은 로제. 데킬라가 피어싱을 귀에 가져다 대며 카운트다운을 셌다.

“하나……둘……셋!”

옆에서 본 나는 ‘하나…….’ 라고 말하자마자 뚫는 걸 봤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는 못 느꼈다.

“……뚫었나욧?”

“네. 뚫었습니다. 바로 치유하겠습니다.”

곧바로 치유마법을 귀에 사용하는 데킬라.

확실히, 저 방법이라면 며칠 밤낮으로 관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네, 잘 뚫렸습니다. 확인해보시겠습니까?”

간단한 치유마법을 끝낸 데킬라가 옆에 놓인 손거울로 로제를 비춰주었다.

고개를 살짝 틀어 피어싱을 확인하는 로제. 그녀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와아……….”

“잘 어울리십니다. 로제님.”

“헤헤. 그런가요?”

머리카락까지 귀 뒤로 넘겨가며 이리저리 살피는 로제.

그 모습에 데킬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아팠죠?”

“네! 언제 귀를 뚫었는지 몰랐을 정도였어요. 그레고리님! 어때요? 잘 어울려요?”

로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의 얼굴 같았다.

“그래, 잘 어울리는구나.”

“진짜죠? 역시 이걸 사길 잘했어요!”

어울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염색 꼴초 피어싱 엘프라니. 이러다 타락엘프라 불리게 되는 게 아닐지 걱정까지 되었다.

여기서 종족이 다크 엘프였다면 로제는 금태양 그 자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분이 좋아하시는 걸 보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쉬어야 하는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보여주신 것이 있었기에 어떻게 보답할지 생각하던 찰나였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마침내 이 예의범절 없는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예의가 넘치는 학생을 보았다.

정말이지, 왜 지금껏 보아왔던 아카데미 학생들은 죄다 그 모양이었을까.

“앞으로 막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라.”

“예……?”

정했다.

데킬라도 내 뉴들박 클래스에 들이기로.

“아무튼, 힘든 일이 있거나 하면 말하도록.”

“아, 예……. 감사합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데킬라.

그래, 아직 병아리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까.

앞으로 계속해서 뉴들박 해주면 알아서 따라오겠지.

“우린 이만 가보도록 하지. 우리가 몇 호실에 묵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데킬라. 내가 호수를 말해주려 하자 로제가 먼저 선수를 쳤다.

“1109호에요! 무슨 일이 있으면 찾아와 주세요. 당연히 데킬라라면 그냥 놀러와도 돼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한 뒤.

방앞에 도착하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프리실라?”

“아! 지금 오셨네요! 두 분.”

황녀, 프리실라가 우리 방 앞에 서 있었다.

“프리실라! 어쩐 일이에요?”

“별일은 아니구요. 저녁 식사나 같이하자는 말을 하려고 왔어요. 아 맞다! 대련! 정말 감명 깊게 봤어요! 마르바스라니,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대악마잖아요?”

눈을 반짝이며 뚜벅뚜벅 걸어와 로제의 양손을 붙잡는 프리실라.

“으에엣?!”

“그래서 말인데요. 로제! 궁금한 게 있어요.”

“뭐, 뭔가요?”

“마르바스님은 어떤 곤충! 어떤 벌레로 변하시는 건가요?”

“……네?”

로제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표정이었다. 나 역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레고리님의 본 모습은 벌레시잖아요. 마르바스님은요? 분명 단단하고 멋진 벌레겠죠?”

“어……그게 말이죠……. 그, 그레고리님?”

마치 도와달라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로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르바스는 본래 인간형 악마다. 벌레형 악마는 꽤 희귀한 편이지.”

“네? 그런가요…….”

쳇.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악마들의 종류가 많은 편인가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편이지.”

크게는 벌레형, 인간형, 요정형, 정령형이 있었고 세심하게 파고들면 끝도 없었다.

“그렇군요……. 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주실 수 있으신가요?”

딱히 가고 싶다는 마음은 안 들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가 끝나자마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덕분에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로제 역시 그런 기색이 역력했고 말이다.

“이번에 남쪽의 명물이라고 불리는 멀랭카우 고기가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요……. 안될까요?”

“스, 스테이크! 그레고리님! 당장 가요! 프리실라. 감사히 잘 먹을게요!”

로제 역시 고기라는 말에 훌쩍 넘어가 버린 모양.

피곤해 보이면서도 고기는 포기 못 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 로제를 설득할 때에는 고기를 내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저으며 황녀의 방으로 들어서자 시종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늦으셨군요. 황녀님.”

“시, 시종장! 조용히! 조용히!”

문을 열자마자 호다닥 달려나간 프리실라가 시종장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입을 막혀주는 시종장.

이내, 두 사람은 짧은 아이컨택을 하더니 프리실라가 먼저 손을 뗐다.

“하하! 시종장이 이상한 말을 하네요. 착각한 거죠?”

“그렇군요. 제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황녀님은 분명 방금 전에 나가셨죠.”

“맞아요! 시종장도 참! 힘들면 말을 하지! 아 시종장, 멀랭카우 스테이크 3개. 준비해 주겠어요?”

“예.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시종장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곤 그대로 주방으로 사라졌다.

자리에 앉은 우리에게 차를 따라주는 프리실라. 마지막으로 자기 잔에 차를 따른 프리실라가 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로제. 그 피어싱. 못 보던 거네요? 오늘 한 건가요?”

“아! 이거 말인가요? 맞아요! 오늘 그레고리님이 사주셨어요.”

“정말인가요? 평범한 피어싱은 아닌 것 같은데, 부러워요.”

황녀의 칭찬에 로제가 멋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보는 것만으로 평범한 피어싱이 아닌 걸 눈치채다니. 괜히 황녀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 그레고리님. 로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소환수를 불러도 될까요?”

프리실라의 소환수?

“네 소환수라면 그때 보았던 천사 말인가.”

“네, 맞아요. 그때 그레고리님께 도움을 받았는데 감사의 말을 못 전했다며 제게 부탁하더라고요.”

우리를 부른 이유가 이거였나.

“상관없다.”

“네, 감사합니다. 라파엘?”

……라파엘이라고?

기숙사에서 이프리트에게 비둘기마냥 처맞던 천사가?

황녀의 옆에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이내 뭉쳐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

서서히 색을 갖추고 모습을 드러내는 천사.

긴 적갈색 머리에 커다란 가슴. 그리고 붉은 눈동자까지.

확실히, 저것은 내가 알고 있는 라파엘이 맞았다.

“와아……. 천사님……. 엄청 아름다워요.”

내 옆에 앉아있던 로제가 멍하니 천사의 등장을 바라본다.

그야, 그럴 수밖에.

SSR+등급 라파엘.

성속성의 소환수로 리세마라에서 뽑으면 성공했다 일컬어지는 소환수였다.

“……오랜만이지? 그레고리 존스.”

설마 날 알고 있는 건가? 저 녀석에 대한 기억은 없는데.

[특성 : 귀족]이 발동합니다.

우선 최대한 연기해보기로 했다.

“그래.”

그레고리로서 모르는 인물을 대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답으로 짧고 굵게 말하면 대부분 ‘그래, 너는 원래 그런 녀석이었지.’ 라며 째려보고는 끝났기 때문이었다.

“설마 너에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자존심 상하네.”

게임 속에서의 라파엘은 츤데레 속성의 캐릭터였다. 매일 툴툴거리면서도 부탁하면 다 해주고 인연을 올려놓으면 선물도 주곤 했지.

아마, 저게 라파엘의 방식일 터였다.

“네게 감사를 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니 신경 쓸 것은 없다.”

“여전히 싸가지 없네.”

역시 그레고리 존스류 단짧굵(단답으로 짧고 굵게)은 언제나 통했다.

“시비를 걸러 온 건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온 건가. 하나만 하지 그래.”

“……그래, 그랬지. 우선, 감사의 말부터 전할게. 그레고리 존스. 너는 나와 내 소환사를 구해줬어. 이건 변하지 않지.”

그래그래.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너는 친절하네.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대로야.”

“뭐?”

“네?”

“응?”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라파엘.”

“무슨 소리를 하긴, 아무리 네가 내 고백을 거절했어도 이 정도 말은 해도 되지 않아?”

“뭐?”

“에엑?!”

“라, 라파엘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다시 한번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친다.

그야말로 폭탄 발언.

아니, 라파엘이 나한테 고백을 했었다고?

“하아……. 그 차가운 눈빛, 굳게 닫힌 입. 여전히 그대로구나. 그레고리.”

몸이 굳은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라파엘. 재빨리 내 옆에 앉아있던 로제가 일어서며 몸으로 라파엘을 막아섰다.

“음? 뭐니? 이 하프엘프는.”

“그레고리님이 당황하셨잖아요!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으음?”

자신의 앞에서 당당히 외치는 존재라 그런 것일까? 라파엘의 눈에 흥미가 맺힌 듯싶었다.

“그래? 네가 뭔데?”

팔짱을 끼며 자신의 가슴을 받치는 라파엘. 그녀의 앞에서 로제가 당당히 외쳤다.

“저, 저는 그레고리님의 소환사! 로제 폰 유글리아에요!”

“……유글리아?”

로제의 풀 네임을 들은 라파엘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레고리, 혹시 얘 내가 아는 그 아이의 후손인 거야?”

“그래, 그 아이의 후손이다.”

“풉…!”

라파엘의 몸이 꺾였다.

“푸핫! 푸핫하하하! 그레고리! 뭐야, 너. 용사의 후손한테 잡힌 거야?”

크흣크흣흣……! 소리를 내며 배까지 부여잡은 라파엘이 식탁을 짚으며 웃어 젖힌다.

“히야아~ 천하의 그레고리 존스가 소환수라니! 진짜 말도 안 돼!”

대체 과거의 내가 어땠기에 저런 반응인 걸까.

“아, 진짜 눈물이 나네. 그래, 유글리아의 후손 로제. 반가워. 나는 라파엘이야. 장난을 너무 심하게 쳤나?”

하하……. 하……. 점점 멎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은 라파엘이 로제에게 손을 건넸다.

“……네?”

“당황하지 말라구. 장난 좀 쳤을 뿐이니까.”

“아, 네…….”

분위기가 바뀐 것을 알아챈 건지 로제가 그 손을 천천히 잡았다.

그런 로제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라파엘.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일까. 로제와의 악수를 마친 라파엘이 자연스레 프리실라의 옆으로 걸어갔다.

아니, 이대로 한 방 먹기만 해서는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아 한 방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아, 라파엘. 참고로 마르바스도 로제의 소환수로 아카데미에 있다.”

───푸웁!

천사가 쓰러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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