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아퀴벌레 34
* * *
상황이 좀 진정되고 나서야 우리는 모두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힐끔. 힐끔.
로제와 황녀의 눈치를 살피니 그녀들 모두 라파엘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야? 왜 다들 그렇게 날 쳐다보는 거야?”
시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 라파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몸을 기울이며 말을 내뱉는 프리실라.
“라파엘! 방금 그레고리님께 고백을 했었다고 하셨는데,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게 궁금했던 거냐.
그래도 나 역시 궁금했던 사항이었기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음? 프리실라. 그게 궁금했던 거야? 귀엽네~”
라파엘이 프리실라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머리를 털며 손을 떨쳐내는 프리실라.
“라파엘!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전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어머, 나한테 그렇게 말하기야? 그러면 나 서운한데~”
둘의 대화는 예전부터 그랬다는 듯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라파엘님과 프리실라는 옛날부터 함께 했었던 건가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묻는 로제. 이에 라파엘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한 5년 정도 됐나? 그즈음에 계약했었지.”
아마 황녀나 되는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판단되었다.
이 게임의 왕족들은 최고위 촉매를 가지고 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밤에 울면서 천사님, 다친 늉늉이를 살려주세요~ 이러면서 기도를 하는데──”
“우와아아악! 그만! 그마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라파엘의 입을 틀어막는 프리실라.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으아아아──! 그때 이야기는 왜 지금 꺼내는 거예요!”
늉늉이?
아무래도 어릴 때 있었던 창피한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제가 물어본 거나 빨리 대답해주세요. 네?”
“그렇게 궁금해? 딱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닐 텐데……. 그렇지 그레고리?”
아니, 나도 모르는데.
“후후, 그렇게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옛날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아니, 모른다고.
“별거 아니야. 저 녀석이 옛날에 책을 좀 썼었거든. 카프카라고.”
이건 내가 아는 내용이었다.
“근데 그 책이 천계에서도 엄청 히트를 쳤었지. 없어서 못 볼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카프카가 낭독회를 연다는 소문이 퍼진 거야. 그것 때문에 몰래 천계에서 나와 마계에 갔는데…….”
꿀꺽. 하고 모두가 집중해서 라파엘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뜸을 들이는 이유가 있을 터.
“거기서 딱───”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황녀님. 바로 내오면 되겠습니까?”
“부탁할 게~ 시종장.”
“예, 라파엘님.”
갑자기 툭, 하고 끊이진 이야기. 이에 황녀와 로제가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라파엘!”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아, 이런 모습.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모험가 시절 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와 마을 꼬맹이들.
등장인물이 천사와 엘프, 황녀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행동거지는 완전 그거다.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도 되잖아? 나도 멀랭카우 좋아한단 말이야.”
꼬르륵. 하고 로제의 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로제가 배를 움켜쥐더니 나와 황녀, 라파엘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뺨에 붉은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헤헤……. 확실히, 라파엘님 말씀대로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네요.”
로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프리실라조차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한숨을 한 번 내쉰 프리실라가 시종장에게 말했다.
“네, 준비해주세요.”
프리실라의 말에 시종장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주방 쪽에서 줄줄이 나오는 메이드들.
그녀들은 음식이 올려진 카트들을 끌고 와 우리 앞에 있던 찻잔을 치우고 음식을 올려놓았다.
“기숙사의 크기는 같을 텐데 우리 방과는 분위기가 다르군.”
“그렇죠? 확실히 저한테는 주방도 커서 혼자 요리를 할 때는 힘들단 말이죠…….”
메이드들이 접시에 씌인 뚜껑을 걷어내자 모락모락 연기를 내는 스테이크가 눈에 띄었다.
확실히, 무척 자극적인 냄새였다.
“그, 그레고리님…… 냄새부터가 장난이 아닌데요? 치즈 냄새도 나면서도…… 고기 냄새도 나고…… 우유 냄새도 나는 것 같고…….”
킁킁.
코를 움찔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는 로제를 본 프리실라가 싱긋 웃었다.
“네, 맞아요! 멀랭카우의 특징이 우유와 치즈 그리고 고기의 풍미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거거든요. 자, 그럼 식사하시죠.”
긴장을 풀었다간 표정이 풀어질 것 같은 냄새. [특성 : 귀족]의 힘으로 어떻게든 표정을 유지한 체 조심스럽게 나이프질을 시작했다.
“……부드럽군.”
“그렇죠?”
마치 달군 나이프로 버터를 써는 느낌이었다. 고기가 이렇게까지 부드러울 수 있는 거였나?
한입 크기로 썰어 입에 넣어보았다.
“…….”
[특성 : 귀족]이 발동합니다.
[특성 : 귀족]이 발동합니다.
[특성 : 귀족]이 발동합니다.
미치도록 맛있었다.
아니, 고기가 입에서 녹는 게 말이 되나? 이거, 고기잖아?
고기의 담백함과 우유의 부드러움, 그리고 치즈의 고소함까지.
3가지 맛이 서로서로를 증폭시키는 이 맛은 그야말로 미미(美味)라는 말이 어울렸다.
“와아아…… 엄청 맛있어요오오.”
이미 눈꼬리까지 풀려버린 로제가 양손으로 볼을 감싸며 오물오물 고기를 씹고 있었다.
그렇게도 좋은 걸까. 귀마저 움찔거리고 있다.
“음, 여전히 언제 먹어도 맛있군. 그럼, 이야기를 계속할까? 프리실라.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
“천계를 몰래 빠져나와 마계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기서──.에서 멈췄죠.”
“역시 프리실라. 똑똑하구나?”
“머, 머리 쓰다듬지 말라니까요?!”
다가오는 라파엘의 손을 몸을 뒤로 쭉 빼는 것으로 피하는 프리실라. 왠지 그녀가 나를 힐끔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끄러워하긴. 그래, 그 뒤에 말이지? 뭐…… 별거는 없었어. 그 낭독회에서 바알을 만났거든.”
“음?”
“바알?”
“그, 그 바알인가요?!”
예상치도 못한 이름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라파엘이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야? 그 반응은.”
“……무슨 소리냐. 고기가 맛있어서 감탄했을 뿐이다.”
“……그래? 뭐, 말을 이어서 하자면, 대천사인 내가 마계에 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 싸움광이 내게 싸움을 걸어왔었지.”
대천사와 서열 1위 악마의 싸움. 그것은 절대 쉽게 끝날 수 없는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근데 그 새끼가 뒤지게 쌔더라고? 뒤질 뻔했었지. 날개는 부러지기 직전이고, 오른팔은 날아갔고. 아, 물론 그렇다고 쳐 발린 건 아니었어. 나도 그 녀석의 왼팔이랑 한쪽 날개를 가져왔거든.”
그럼에도 전황은 바알에게 유리했다고 한다.
싸움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바알은 서서히 쓰러진 라파엘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끔찍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데 그때!”
탕! 하고 테이블을 내려친 라파엘이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나타난 거지. 그레고리 존스~. 깜짝 놀랐다니까? 인기 작가인 카프카가 바알을 방해한 거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 자리에 나타난 나는 두 사람 사이에 걸어간 후 바알을 노려보았다고 했다.
‘내 싸움에는 왜 끼어드는 거야? 그레고리 존스.’
갑작스러운 난입에 무척이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바알.
거기서 나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바알을 향해 말했다고 한다.
“네놈 덕분에 낭독회가 망했으니 책임져라……! 라고 말이지. 그리고 그때 깨달았지. 아! 내가 좋아하던 카프카가 사실은 그레고리 존스라는 악마구나! 하고."
그렇게 말한 라파엘이 이내 피식 웃더니 우리를 둘러보았다.
"웃기지 않아? 나랑 바알이 싸우고 있을 때는 구경이나 하고 있었으면서 막바지가 되어서야 오다니 말이야. 그 모습을 본 바알이 뭐라고 했는 지 알아?”
바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고 했다.
‘그깟 이유 때문에 내 싸움을 방해한다고? 좆까는 소리 하지 마. 그레고리 존스. 그딴 이유 때문에 내 싸움을 방해하는 게 아니잖아?’
“그때, 이 녀석이 한 말이 진국이었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라파엘이 휙 고개를 돌리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다. 난 그냥 널 좆 같게 만드는 거로도 만족한다. 바알. 푸핫하하하하하! 어때? 대박이지? 그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킥킥 웃으며 라파엘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 진짜로 바알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아무래도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의 그레고리 존스는 정상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인성 파탄자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있나?
“음?”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프리실라와 로제의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존경이 담긴 눈빛이었다.
“대단하시네요……. 그 바알제붑에게 그런 말을 하시다니……. 역시 그레고리님은 남다르시군요.”
라며 날 한껏 높여 세우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와아……우와아아……오와……와……우와아……….”
그저 감탄만 연발하는 바보 엘프도 있었다.
“녀석이 내 앞을 막아주면서 그런 대사를 쳐대는데, 내가 안 반하고 말겠냐? 완전 뻑가 버렸지. 결국, 바알은 포기하고 돌아갔고, 저 녀석이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고백을 박아버렸지. 뭐, 그리고 방금 말했다시피──.”
“──내게 차였지.”
“맞아. 차였지. 그걸 꼭 네가 말해야 해?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대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 라파엘이 해주는 이야기는 뻔했다.
그 후 몇 번 마주쳤고, 나는 장난을 치며 호감을 표시했지만, 그레고리 녀석은 무뚝뚝하기만 하더라. 같은 것들이었다.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야. 어때? 별거 없지?”
라파엘이 이야기를 끝마쳤을 땐 모두 각자의 앞에 놓인 접시에 음식이 사라진 후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냅킨으로 우아하게 입가를 닦는 프리실라.
차로 입안을 적힌 그녀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엄청 재미있는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안 해준 거예요?”
프리실라는 라파엘과 오래전부터 함께한 사이였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걸 서운해하는 모양이었다.
“음? 그야……. 창피하잖아. 고백에 성공한 이야기도 아니고 차인 이야기인데……. 지금이야 뭐 아무렇지도 않아서 이야기한 거지만.”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의 뺨이 불그스름해 보였지만, 밥을 먹고 난 직후이니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라파엘님은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잘하시는 것 같아요.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들었다니까요?”
후우~ 소리를 내며 숨을 내뱉은 로제가 배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라파엘.
“그런가? 말을 잘한다는 말은 예전부터 자주 듣기야 했지.”
“식사도 마쳤고, 이야기도 어느 정도 끝난 것 같으니 우리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지.”
나는 냅킨으로 입가를 가볍게 닦은 후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배까지 부르니 빨리 쉬고 싶다는 충동이 조금씩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런가요.”
고개를 푸욱 숙이며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프리실라. 아무래도 날 배웅해주려는 모양이었다.
“내 짝사랑이 간다는데 앉아있으면 안 되겠지? 분명…… 옆방이라고 했던가?”
라파엘마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렇게 묻자 로제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네, 맞아요. 바로 옆방이에요. 담배도 빨리 피우고 싶고, 마중까지 안 나와주셔도 돼요!”
“음, 멀리 나갈 필요는 없겠네.”
그렇게 자리를 마무리 지으려 할 때, 주방 쪽에 서 있던 시종장이 걸어와 우리에게 물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과 케이크가 준비되어있습니다만……. 벌써 가시는 겁니까?”
“케이크?! 그레고리님! 이것만 먹고 갈까요?”
……누가 저 눈을 보고 안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지.”
군것질은 흡연 욕구마저 이기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을 때.
왠지 모르게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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