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아카바퀴 35
* * *
“푸하! 배불러요! 프리실라는 황녀님이라 그런지 역시 맛있는 것만 먹나 봐요. 어떻게 그렇게 맛있는 것만 먹으면서 살이 안 찌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곤 볼록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며 소파에 드러눕는 로제. 고개를 완전히 젖힌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레고리님은 오늘도 심상공간에서 쉬시나요?”
“아니, 오늘은 여기서 잘 생각이다.”
내 입장에서도 심상공간 쪽이 훨씬 편한 건 많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헤헤, 그러면 내일 제가 깨워드리면 될까요?”
“……부탁하지.”
“네!”
심상세계에서는 알람시계라던가 로제가 호출하며 나오는 소리로 깼지만, 이곳에서 자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는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음……. 그럼 저는 먼저 씻으러 가볼게요.”
“그래, 나는 내 방에 딸린 욕실에서 씻으마.”
다행스럽게도 귀족들이 사용하는 11층인 만큼 방마다 욕실이 구비되어 있었기에 로제와 서로 불편하지 않게 씻을 수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로제가 욕실로 들어갔다. 그럼 슬슬 지금 나가면 될까.
밖으로 나서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라파엘이 씨익 웃으며 나를 반겼다.
“오, 눈치는 역시 있나 보네?”
“……그렇게 티를 내는데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하지.”
프리실라의 방에서 디저트를 먹을 때, 라파엘은 계속 내게 할 말이 있다는 듯 힐끔힐끔 쳐다봤었다.
그것이 대충 눈치껏 조금 있다 나와라. 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따로 보자고 한 거지?”
“흐응? 왜, 자기를 보고 싶어서 따로 불렀다는 생각은 안 했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살금살금 다가오는 라파엘. 그 모습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랄 말고.”
“칫, 장난을 못 쳐요. 정말.”
투덜거리며 벽에 등을 기댄 라파엘이 말했다.
“기숙사를 테러하러 온 녀석들 있잖아.”
“……신성교단 말인가?”
내 말에 의외라는 듯 라파엘의 눈이 커진다.
“알고 있었어?”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공격했던 이프리트의 소환사는 아직 모르고 있지?”
“신성교단의 검인 유켈이었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하. 그것까지 알고 있었다니. 내가 바보 같잖아…….”
어깨를 추욱 늘어트리는 라파엘. 숨을 크게 내쉰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도 알겠네?”
“그건 모르겠는데. 뭐, 특별한 거라도 되나?”
“그렇지? 이건 모르지? 후후……. 역시 당신이어도 모르는 게 있었어.”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신도 아니고.
“당신도 그 상황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꼈지? 신성교단 소속인 유켈이 날 공격했으니까.”
“……확실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신성 교단은 말 그대로 천계의 신을 섬기는 교단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천사는 신들의 대리인이나 다름없는 존재. 유켈은 그런 존재를 상대로 공격을 한 것이었다.
“천계 쪽에서 연락은 따로 없었던 건가? 신성교단의 움직임이라면 천계에서도 파악하고 있을 터인데?”
“뭐? 그레고리.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신성교단이 쇠한 지가 언젠데?”
신성교단이 망했다고?
“소환되는 도중에 기억 손실이 발생해서 비는 부분이 많다. 라파엘, 지금 신성교단이 망했다고 말하는 건가?”
신성교단은 재앙과 라스가 있던 시절, 가장 큰 종교집단이기도 했다. 그런 종교집단이 망하는 게 말이 되나?
“그야 소환수로 다른 세계의 신들이 소환되기 시작했으니까. 다른 종교를 탄압하는 신성 교단의 특성상 고립되어 조금씩 망한 거지. 마지막엔 다른 종교를 받아들인다며 발악했지만…… 그땐 너무 늦은 후였어.”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아무리 본인이어도 과거 자신들을 따르던 교단이 망했다는 이야기는 꽤 슬픈 듯했다.
“그래서, 그 망한 신성 교단은 왜 널 공격한 거지?”
“──더 이상 우리를 믿지 않는 거야.”
라파엘이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신성 교단이 더 이상 천사를 믿지 않는다고?
“신성 교단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을 때, 우리 천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당시 교단에 천사를 소환한 소환사가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우리 역시 다른 소환사들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유희를 즐기고 있었으니까.”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 거지……. 라고 작게 읊조리는 라파엘.
나는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는 거지? 교단이라면 반드시 믿어야 할 존재가 필요 할 텐데?”
내 말에 라파엘이 피식 웃는다.
“똑같아. 이 세계의 천상을 관리하는 천상신님이지.”
“……천상신을 믿지만 천사는 믿지 않는다, 그런 건가?”
“뭐, 그렇지. 우리도 천상신님의 부름을 받지 못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어. 천상신님은 재앙신의 봉인과 함께 깊은 잠에 드셨으니까.”
천상신.
게임의 후반부, 엔딩 직전에 나오는 스토리 전용 카드로 U+등급의 카드였다.
마지막에 천상신의 힘을 빌린 라스가 재앙신을 봉인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천상신은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설마, 그게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그렇다면 지금 녀석들의 목적은 뭐지? 내가 물을 때에는 악마들의 멸절이라 하던데.”
“악마들의 멸절? 그거야 과거부터 하던 짓이고. 녀석들의 목적은 재앙의 완전한 부활이야.”
[특성 : 귀족]이 발동합니다.
이것 또한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천상신을 모시던 신성교단이 재앙의 완전한 부활을 바란다고?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군.”
“나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녀석들은 재앙이 완전히 부활하면천상신께서도 다시 돌아오실 거라 믿는 것 같아.”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고?”
그 새끼들은 병신인가? 그러면 지금 재앙을 깨운 것도 신성교단이고 현재 진행형으로 재앙의 부활을 돕고 있는 거라고?
“어처구니가 없군.”
재앙의 토벌에 최전선에 나섰던 교단이 이제는 재앙의 부활에 앞장서고 있다니,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그 아이들도 가엾지. 믿을 존재가 없었기에 어떤 수라도 쓰고 싶었던 걸 거야.”
“녀석들을 변호하는 건가? 교단의 칼이 기숙사를 반파시키고 학생들을 다치게 만든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나도 알고 있어. 그에 대한 책임감 역시 느끼고 있고. 내가 부탁할 건 단 하나야…….”
대충 짐작이 갔다.
“기숙사를 반파시킨 범인이 신성교단이라는 사실을 숨기라는 거겠지?”
“……맞아.”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의 표정에 슬픔이 깃든다.
그 모습은 그 자체로도 신성스러워 보여 그녀가 천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어째서지?”
“……내 목표는 신성 교단의 아이들을 구원하는 거야. 지금은 우리를 미워해도 과거에는 우리를 믿고 있던 아이들이었으니까.”
“네 말뜻은 대충 알겠다.”
사실 나도 범인들이 신성교단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진 않았다.
신성교단의 검 유켈. 그녀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무기였다.
무려 라스와 함께 재앙의 간부들을 수없이 물리친 영웅이기도 했으니까.
내게 유켈은 영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방법은 있나.”
그들은 종교집단이었다.
간단하거나 확실하지 않은 방법으로는 그들을 절대 되돌릴 수 없을 터였다.
“……아직은.”
“아직은. 인가.”
라파엘에게도 큰 방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아, 우선은 알겠다. 네 말대로 하도록 하겠다. 나중에 신성교단을 마주치게 되면 생포를 해보도록 하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라파엘의 입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목소리.
“……고마워.”
“뭐?”
“고맙다고.”
슬픔과 기쁨이 섞인 얼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그 미소는 그 모습 그대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됐다. 너도 빨리 성장이나 해라. 보아하니 황녀의 경지 때문에 3성에 머물러있는 거겠지?”
“……맞아. 재력과 재료만 가지고는 경지를 상승시킬 수 없으니까.”
황녀의 입장이기에 그런 것이리라. 소환사는 경험과 사투를 통해 성장하는 존재이기도 했으니까.
프리실라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하는 이벤트가 극도로 적었겠지.
“그나저나, 꽤 놀랐어. 너도 지금 엄청나게 약해져 있는 상태나 다름없잖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표정을 바꾼 라파엘이 장난스럽게 물어왔다.
“그렇지. 지금은 2성 정도니까.”
“뭐? 2성? 못해도 3성은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성의 경지로 이프리트를 쫓아냈다고?”
“나는 그레고리 존스다.”
무척이나 당당하게 말한 대답.
그 대답을 들을 라파엘이 푸흡. 하고 웃었다.
“맞아. 당신은 그레고리지. 그레고리 존스. 마계조차도 서열을 매기지 못한 존재. 당신 때문에 곤욕을 치른 대천사가 날 포함해서 꽤 될 정도니까.”
휘릭. 하고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는 라파엘.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었다.
“역시, 반할 수밖에 없다니까. 우리 사귈까?”
“……대답은 알겠지?”
”하여튼, 여전하다니까.“
부드럽게 눈을 감은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려 프리실라가 있는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잘자. 오늘 내 이야기랑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그래, 너도 잘 자도록.”
문뜩.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래도, 이젠 잘 자라고 말도 해주네?”
“……빨리 가라.”
“네에네에~”
뒤돌아 있는 채로 팔을 흔드는 라파엘.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나 역시 본래 방으로 들어왔다.
“음? 나가셨었어요?”
방 안으로 들어서자 돌핀 팬츠와 새하얀 티를 입은 로제가 젖은 머리를 타올로 닦으며 내게 물었다.
“그래, 잠시 바람 좀 쐬고 왔다.”
“확실히, 밤바람이 시원하긴 하죠오~”
머리의 물기를 적당히 털어낸 로제가 타올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는다.
그리고는 간단한 마법을 발현해 바람을 일으켜 머리를 말린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닌지 그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로제.”
“네?”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털던 로제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염색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역시 그렇죠?”
정수리 부분만 보였던 로제의 검은 머리가 어느새 세력확장을 잔뜩 해놓고 있었다.
“내일 아카데미가 끝나자마자 바로 미용실에 가 봐야겠네요. 하, 염색하는 동안 가만히 있는 것도 심심한데.”
확실히, 이쪽 세계에는 스마트폰도 없으니 저런 고민이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럼 내일 같이 가지.”
“정말요?!”
“그래, 나도 다른 스타일을 해보고 싶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게임 속에서도 가끔 헤어스타일을 변경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있었는데, 과연 그게 내게도 적용이 될지 문뜩 궁금해졌다.
”네! 너무 좋아요!“
이야기하며 머리를 모두 말린 로제가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미용실이라…….
무슨 머리를 할지는 천천히 생각해보자.
“아, 그레고리님. 내일 수업은 참여하시나요?”
“내일 수업이 뭐지?”
“음……. 오전에는 검술이랑 마법, 역사랑 호신술이 있고 오후에는 역시 대련이에요.”
내일이라면 마르바스가 첫 출근하는 날일 터, 그의 수업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마법과 호신술도 꽤 재미있을 것 같고.
“내일은 같이 듣지.”
“네! 알겠습니다!”
마르바스의 수업이라.
과연 그 악마가 다른 학생들을 어떻게 괴롭힐지 기대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