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아카벌레 36
* * *
오늘 1교시는 검술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첫 부임한 마르바스의 수업을 매우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그가 가장 먼저 지시한 것은 달리기였다.
“뛰게나.”
아침 1교시이기에 달리기를 함으로써 몸을 풀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침부터 운동장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고, 몇몇 소환수들은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달릴 필요가 없는 정령이나 비행형 소환수들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왜 안 뛰는 거지.”
멍하니 앉아있던 내게 마르바스가 다가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몸이 안 좋다.”
“뭐? 자네가 몸이 안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안 좋다.”
“……하. 마음대로 하게.”
결국,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는 마르바스.
아침부터 운동장을 10바퀴 뛰라니. 내게 있어선 비효율의 극치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이 몸으로 운동장 10바퀴를 뛰어봤자 준비운동도 안될뿐더러 그런 걸 안해도 몸이 충분히 풀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르바스 역시 그걸 알고 내버려 둔 거겠지.
다시 묵묵히 운동장에서 달리고 있는 로제를 바라보고 있을 때, 정령 하나가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당신, 저번에 이프리트랑 싸우던 그 소환수지?”
힐끔 고개를 돌리니 장난스럽게 생긴 소녀가 싱긋 웃고 있었다.
“……실프인가.”
“헤헤, 맞아!”
게임 속에서 보았던 외형과 비슷했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작은 키와 신발이 없는 맨다리, 그리고 단발의 연두색 머리까지.
흔한 실프들의 특징이었다.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나와 만난 적이 있나?”
“음? 그때 소환돼있지는 않았지만, 우리 소환사가 뚜들겨 맞는 건 옆에서 잘 봤지.”
지금 뛰고 있는 녀석 중 나한테 맞은 소환사?
“엘레나인가.”
“정답이야~”
소환되자마자 처음으로 대련을 한 깐프의 소환수인 모양이었다.
“운디네 말고도 실프도 소환할 수 있었나 보군.”
“응! 최근에는 나랑 운디네를 같이 소환할 수 있게 됐어! 아무래도 너한테 진 게 자극이 컸나 봐! 그것 때문에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왔어!”
아무래도 지금까지 무시하던 로제와 그 소환수인 내게 처참히 발린 게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실프를 소환할 정도로 운용슬롯을 키우다니, 어중간한 노력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말하니 다행이군.”
아무리 그래도 결국은 재앙을 함께 물리쳐야 할 아카데미의 학생.
그녀가 성장했다는 소식은 그리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소식이지.
“헤헤, 다음에는 안 당할 테니까 기대하라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실프. 이내 그녀는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깐프, 엘레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나갔다.
“흐에에……. 죽을 것 같아요……. 담배가 절실하다…….”
너덜너덜해진 로제도 뒤따라 걸어들어와 벤치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나는 로제가 달리기 전 내게 맡긴 물통을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아…….”
물통을 받음과 동시에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로제. 얼마나 급하게 마시는지 입 옆으로 물이 흘러내려 옷을 젖히고 있었다.
“푸하! 살 것 같다아! 이제 여기에다 담배까지 딱 걸치면──”
“달리기를 마친 학생들은 모두 모이도록.”
“으에엑……”
바로 모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마르바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로제.
그 광경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뒤따랐다.
모든 학생을 모은 마르바스는 모든 학생을 훑어본 후 입을 열었다.
“어제 나를 본 사람도 있겠지. 소환수랍시고 나타난 노인이 왜 오늘은 검술 교관이라고 나타나서 달리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마 어제 그 압도적인 우위를 보았기에 마르바스의 말에 따른 거겠지.
그리고 그 점은 마르바스가 교관으로서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제대로 소개하도록 하겠네. 내 이름은 마르바스 G 레이. 어제 봤다시피 검사이자 악마이며 저기 있는 로제의 소환수라네. 지금은…… 검술 교관의 자격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말일세.”
그의 말에 학생들의 시선이 로제에게 쏠렸다. 어제의 대련으로 대부분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이름이 언급되기에 관심이 쏠린 것이었다.
“헤헤…….”
그리고 그 관심이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이는 로제.
다시, 학생들의 시선이 마르바스에게로 몰린다.
“물론 내 소환사라고 차별을 두거나 하지는 않을 걸세. 공평하게 평가할 것을 맹세하지.”
마르바스의 말을 의심하는 학생은 없었다.
어제 하늘을 가르는 광경을 봤는데 누가 거짓말하지 말라 소리를 치겠는가.
“자, 그럼 지금부터 수업 방식을 설명하겠네. 두 사람씩 짝을 이뤄 대련. 그 과정을 보고 내가 부족하거나 고쳐야 할 점을 알려주는 것으로 하지. 질문 있나?”
입을 여는 학생은 없었다.
“좋네, 그럼 각자 짝을 지어서 대련을 시작해보도록 하지.”
바르바스가 손뼉을 침과 동시에 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장 실력이 맞는 짝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레고리님. 저희는 둘이 할까요?”
내 옆에 서 있던 로제가 물었다. 확실히, 소환사와 소환수가 서로 대련을 하는 수련 방식도 있었지만, 굳이 로제를 공격하고 싶진 않았다.
내 검술 실력도 로제에 비하면 부족했고 말이다.
“다른 대련 상대를 찾아볼 예정이다. 로제, 너도 이번 기회에 다른 녀석들에게 네 실력을 보여줘라.”
“네! 알겠어요.”
주먹을 불끈 쥔 로제가 학생들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럼……. 나는 누구와 대련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레고리 존스?”
뒤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대와 대련을 하고 싶은데, 받아주겠나?”
수업을 진행하며 몇 번 보았던 플레이트 아머 기사였다. 게임에서도 본 적이 없는 녀석.
아마 다른 차원에서 이름을 날린 기사 정도 되겠지 싶었다.
“굳이? 나와 말인가.”
기사이면서도 소환수로써 이쪽에 소환될 정도면 검을 꽤 쓰는 녀석일 터.
지금까지의 대련에서 검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내게 대련을 신청한 걸 보니 아무래도 날 노리는 모양이었다.
“그대의 실력이 궁금해서 말일세. 부디 한 수 가르쳐주지 않겠나?”
명백히 비웃음이 담긴 미소.
검으로 싸우면 이길 줄 아는 건가?
이렇게 대놓고 도발을 해오는데 받아주지 않는 것도 매너가 아니었다.
“상관없다. 저쪽 비어있는 곳에서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대련에 사용하라고 비치해 둔 목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크기에 비해 무겁지 않고 적당히 그립감이 좋은 목검이었다.
“그런 검으로 되겠나? 약해 보이는데.”
새까만 목검을 집은 녀석이 피식 웃으며 물어왔다.
“그레고리류 검술에 검의 내구도는 상관없다.”
나의 검술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레고리류 검술? 검을 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검을 사용할 줄 아나 보지?”
자기가 대련을 걸어놓고 뻔뻔하게 말한다. 검을 쓰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대련을 건 거라고 말하는 건가.
“보면 알겠지.”
힐끔 로제 쪽을 바라보니 로제는 엘레나와 대련을 할 모양이었다.
엘레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로제라면 적당히 잘 고른 거겠지 싶었다.
나와 플레이트 아머는 서로 거리를 두고 검을 들었다.
두 사람 간의 대련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학생들을 봐주고 있던 마르바스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심판을 봐주겠네.”
이걸 갑자기 끼어든다고?
내 기분을 읽은 것일까, 마르바스가 내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이니 내가 심판을 보는 게야.”
허튼짓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알아서 해라.”
우리 둘 사이에 선 마르바스가 나와 플레이트 아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손을 번쩍 들어 올린 마르바스가 오른팔을 내렸다.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키야아아앗!”
플레이트 아머를 입었음에도 믿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내게 달려드는 기사 놈.
재빨리 변신을 외쳐 변신한 후 왼쪽 맨 윗팔로 검을 집어 들었다.
“한 방에 끝내주마!”
여러 경험을 많이 해본 녀석인지 내 모습을 보고서도 쫄지 않고 있는 힘껏 달려온다.
무게를 실어 있는 힘껏 횡 베기를 시전하는 기사.
공기가 파르르 떨린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
공기를 읽고 몸을 재빨리 숙이자 내 위로 검이 지나갔다.
“으라차!”
그대로 추진력을 이용해 손목으로 한 바퀴 돌려 다시 공격해오는 기사.
과거 유튜브에서 보았던 클레이모어와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가속을 받아 더욱 빠르게 닥쳐오는 목검. 내가 들고 있는 목검으로 막았다간 순식간에 목검이 부러질 것 같았다.
시작하자마자 제대로 하게 생겼군.
[스킬 : 폭발적인 속도]
[스킬 : 날개 펼치기]
두 다리로 있는 힘껏 땅을 박차 뛰어올랐다.
마치 서전트 점프를 하는 모양새.
날갯짓을 동시에 펼쳐 더욱 빠르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무슨!”
갑자기 날아오른 내 모습에 당황하는 녀석.
위로 날아오르고서야 녀석의 몸 주변에 붉은 오라가 피어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 이펙트는 [스킬 : 브레이브 하트] 전투 시 공포를 억제하고 신체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스킬이었다.
저것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은 건가.
외형이 통하지 않는다면 검술 실력으로 보여주면 될 뿐이었다.
“──그레고리류.”
공중에 날아오른 상태에서 두 개의 팔을 이용해 검을 붙잡는다.
어렸을 적, 합기도 해동검도를 다니며 배웠던 그립으로 검을 붙잡으며, 나지막이 기술의 이름을 내뱉었다.
“바퀴벌레 킥.”
나는 하나의 검은 섬광(?光)이 되어 적을 꿰뚫는다.
“이 미친 벌레 새끼가!”
재빨리 검을 들어 올려 내 검을 막아내는 기사.
녀석이 악인이 아니여서 그런 것일까, 카르마 수치에 영향을 받는 바퀴벌레 킥이 제대로 통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를 튕겨낸 녀석이 부르르 떨며 이쪽을 노려본다.
그래도 조금은 데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한 모양인지 녀석의 왼팔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건 검술이 아니잖아!”
“검을 들고 있지 않나.”
검 들고 싸우면 그게 검술이지.
“검술은 말 그대로 검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다! 그딴 발차기는 검술이 아니라고!”
……내 바퀴벌레 킥을 그딴 발차기라고 말하다니.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내 몸은 검으로 이루어져 있다.”
“……뭐?”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녀석. 그러나, 나는 녀석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진정한 검사는 몸을 검처럼 다뤄야 하는 법. 즉, 내 몸은 검이니 내 공격은 모두 검술이나 다름없다.”
즉, 나는 지금 최후의 월아천충이다.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먹힐 거라고 생각해? 교관! 저딴 개소리를 인정할 셈이야?”
심판을 보고 있는 마르바스를 향해 바락바락 외치는 기사.
이에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서 있던 마르바스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검술 수업에서 저딴 행동을 보이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네.”
“그, 그렇지?!”
“──그러나. 진정한 검사는 몸을 검처럼 다뤄야 한다는 말에는 충분히 공감되는군. 확실히, 진정한 검사는 몸을 검처럼 다뤄야 하는 법.”
그렇게 말한 마르바스는 마치 선고하듯, 기사를 향해 말했다.
“몸을 검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류라면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이, 이, 이 망할 악마들이!!!”
분한 듯 울부짖는 기사.
이에 우연치 않게, 나와 마르바스의 대답이 동시에 겹쳤다.
““우리는 악마가 맞다만?””
자, 즐거운 그레고리류의 시간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