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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37화 (37/169)

〈 37화 〉 아카벌레 ­ 37

* * *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내 몸은 검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몸을 두르고 있는 갑각은 금속 수준의 내구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뿐일까, 내 손에 달린 가시들은 마치 톱이나 다름없는 형태.

실제로, 내 손과 녀석의 팔이 맞닿을 때마다 캉캉거리는 금속 마찰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망할 벌레 새끼!”

“그것참 벌레 차별적인 발언이군.”

이 세계에서 벌레형 악마 역시 지성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차별을 한다? 벌레로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레고리류. 그레고리 펀치.”

“이제는 막 나가는군!”

“내가 그레고리류의 창시자니까, 기술을 만드는 것도 내 마음이다. ─그레고리 킥.”

아래에서 차올리는 킥을 녀석이 건틀릿으로 막아낸다.

역시, 소환수로 소환될 정도의 역량은 가지고 있다. 이 말인가?

“보아하니, 원래 세계에서 꽤 이름을 날린 놈인가 보군.”

“지금 눈치챘냐?! 드래곤 몇 마리를 혼내줬었지.”

캉! 하고 내 손 위로 목검이 떨어져 내린다.

맨 위의 두 팔을 교차시켜 검을 막아낸 후 중간 팔로 녀석의 옆구리를 두들겨주고는 가시로 녀석의 옆구리를 긁는다.

─키기기긱!

녀석의 옆구리에서 불꽃이 튄다.

“크윽! 팔이 6개라니 사기잖아!”

“그레고리류 아수라((???).”

이젠 아무 말이나 막 지껄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즐기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녀석의 수준이 딱 대련하기 적합한 정도여서 일지도 몰랐다.

“그래, 그대로 한 번만 더 막아봐라.”

뒤로 물러섰던 녀석이 양손으로 검을 잡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녀석의 목검에 붉은 기운이 서리기 시작한다.

“용살(??)”

드래곤 슬레이어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소환수들이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이건, 좀 위험한데.

“드래곤을 죽인 참격을 받아봐라.”

붉은색 기운이 내 머리로 닥쳐온다. 이런 걸 맞았다간 그대로 바/퀴가 돼버릴지도 몰랐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

온몸의 감각을 집중에 녀석의 검로를 읽고 몸을 뒤튼다.

하지만 바퀴폼으로 조금 커진 이 몸으로는 완벽한 회피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변신.”

재빨리 인간폼으로 바꿔 회피한다.

그리고 동시에, 왼쪽에 엄청난 열풍이 휘몰아쳤다.

다행히 회피하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었다.

“이걸 이렇게 피한다고?!”

그래, 꼬우면 너도 변신해라.

강력한 공격은 그만큼의 딜레이를 유발하는 법.

[스킬 : 폭발적인 속도]

스킬로 속도를 가중시켜 오른손에 든 목도로 녀석의 손목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크악!”

건틀릿에 막혀있음에도 충격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결국 검을 놓치는 녀석.

“거기까지.”

검술 대련에서 검을 놓쳤다는 것은 패배했다는 뜻.

마르바스가 우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외쳤다.

“승자는 그레고리 존스다.”

“당연한 결과다.”

“……돌겠군.”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은 기사 녀석이 하하. 하고 웃었다.

나는 아직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녀석에게 손을 건넸다.

“강하더군.”

“……그래.”

다행스럽게도 내 손을 잡아주는 녀석. 그대로 녀석을 일으켜 주었다.

“너, 이름은?”

“아, 아직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나. 내 이름은 게오르기우스. 군인이자 기사였던 자다.”

녀석도 네임드였나.

확실히, 성 조지라면 소환수로 충분히 차고 넘치는 녀석이었다.

“그래, 게오르기우스. 자주 검을 섞으면 좋겠군.”

“……네 녀석은 주먹을 섞지 않나.”

“어쩔 수 없지. 그게 최강의 검술. 그레고리류니까.”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게오르기우스. 음, 이름이 너무 기니까 조지라고 부르자.

대충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 나는 아직까지 대련을 펼치고 있는 로제쪽으로 향했다.

“호오, 여기도 대단하군.”

두 엘프의 대결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좋은 소재였는지 꽤나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제법 하잖아요! 이 열…… 로제!”

“엘레나 양도 대단한걸요!”

나와 조지가 묵직한 공방을 주고받았다면 이쪽은 쾌검을 주고받고 있었다.

계속되는 회피와 공격들.

둘의 공방을 보아하니 검술의 수준은 비슷한 듯싶었다.

“흠, 곧 끝나겠군.”

어느새 내 뒤에 서 있던 마르바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곧 끝난다고?”

“그래, 네 녀석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보이는 수준이라는 걸까.

대충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주고 묵묵히 두 엘프의 경기를 보고 있을 때, 뭔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끝내드릴게요. 로제.”

“하악……하악……오세요!”

그나마 호흡을 유지하고 있던 엘레나와는 달리 로제는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는 것이다.

엘레나가 몸을 숙이며 무게중심을 앞으로 기울였다.

빠른 발걸음으로 로제를 향해 달려드는 엘레나. 아직까지 몸을 들썩이며 숨을 내쉬고 있는 로제는 그 광경을 보며 방어할 준비를 한다.

“그대로 쓰러지세요!”

아래에서부터 위로 쳐올리는 검격. 방어를 위해 검을 아래로 향한 로제의 검이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땅에 박혔다.

“하아……. 하아……. 져버렸네요.”

땅에 박힌 검을 힐끔 바라본 로제가 엘레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여전히 순박하기 그지없는 미소.

대련에서 지고서도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로제가 대단해 보였다.

“……나쁘지 않았어요.”

로제의 미소를 본 엘레나가 그렇게 말하더니 휙 몸을 돌려 자신의 소환수인 실프와 운디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대단해. 엘레나!’

‘최고였어요! 그나저나, 로제양에게 많이 친절해졌네요?’

‘시, 시끄러!’

저번 참교육 이후로 정신을 좀 차린 모양이었다.

“앗! 그, 그레고리님! 보, 보신 건가요?”

사람들 틈에 있던 날 본 것인지 로제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 훌륭한 대련이었다.”

로제에게 다가가 그렇게 말해주니 로제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으윽…….”

숙인 얼굴 아래로 붉어진 목덜미가 보였다.

“그래도 졌는걸요…….”

엘레나의 앞에서는 잘 웃더니, 내게 보여주기엔 창피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대련을 하기 전의 너보다는 더 강해지지 않았나. 너는 어제의 너보다 강해진 것이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그, 그런가요.”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묵묵히 내 쓰다듬을 받는 로제. 이렇게 보면 정말 강아지 같단 말이지.

“아무래도 우리 소환사에겐 체력단련이 필요해 보이는군.”

“앗, 마르바스님…….”

마르바스의 목소리에 로제가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마르바스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둘의 실력은 비슷했지만, 체력적인 요소에서 승부가 갈렸어. 실전경험이 부족한 것도 한몫했고.”

“역시 그랬나요…….”

애초에 소환사이자 마법사인 로제였다. 오히려 또래 다른 학생들에 비해 체력이 좋았으면 좋았지 부족한 편은 아니었다.

물론,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엘레나는 체력도 따로 관리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하고, 마르바스가 이어 말했다.

“검술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정도라니, 본인은 만족했네.”

“……네!”

로제의 눈빛이 살아났다. 그 마르바스에게서 받은 칭찬이기에 더욱 와닿은 모양이었다.

“그럼, 본인은 다른 학생들에게 고칠 점 같은 걸 알려주러 가보겠네. 수고했네.”

그렇게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마르바스는 다른 학생들에게 한 마디씩 해주고는 수업을 끝냈다.

“수업 끝 수업 끝! 그레고리님! 담배 피우러 가죠!”

어지간히 수업이 힘들었는지 수업이 끝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 손을 붙잡고는 달리는 로제.

흡연장에 도착한 로제.

그대로 파우치에서 파이프를 꺼내 약초를 밀어 넣고 불을 붙힌다.

“파하! 살겠다! 역시 몸을 굴리고 나면 담배가 절실해진다니까요!”

그 얼굴 표정은 정말이지 행복함 그 자체였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먼저 와 계시네요.”

흡연장의 입구에서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데킬라! 어서 와요!”

연기를 내뿜던 로제가 반갑다는 듯 손을 붕붕 흔들었다.

“네, 오늘도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이네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한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힌다.

데킬라는 연초파였다.

“후우……. 아, 로제님.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 저한테요?”

“한 달 정도 뵙지 못할 것 같아서요. 곧 소환수를 찾으러 갈 예정이기에.”

“아……. 새로운 소환수를요?”

“예. 그레고리님의 말씀을 듣고 좀 더 강력한 언데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직접 촉매로 계약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 이 대륙에는 숨어있는 소환수들이 잔뜩 있으니까요.”

데킬라의 말대로였다.

게임에서도 소환 말고도 대륙순찰 임무를 통해 강력한 소환수를 얻을 수 있었는데 아마 그걸 하겠다고 말하는 듯싶었다.

대륙은 넓고 유희를 즐기고 있거나 은거해있는 소환수는 잔뜩 있었으니까.

대표적으로 마르바스나 파이몬이 있었다.

“한 달 정도면 아카데미 출석 일수를 맞추기 힘들지 않나요?”

걱정스럽다는 듯 묻는 로제. 이에 데킬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소환수를 찾으러 떠나는 거니까요. 아카데미 측에서도 한 학기당 30일 정도는 ‘소환수 탐색’ 명목으로 출석을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오, 그런 제도가 있었나요?”

총장과 담판을 지으러 가기 전, 공부를 하며 언뜻 보았던 사실이었다.

확실히, 소환사 아카데미라면 필요해 보이는 제도이기야 했다. 소환사의 강함은 소환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어디 지역을 둘러볼 생각이지?”

내 물음에 데킬라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떼며 말했다.

“델리니아 대륙의 사령의 숲을 가볼 생각입니다. 그곳이라면 강한 언데드가 있을 것 같기에.”

사령의 숲.

과거 그곳에 있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국가가 전쟁을 벌인 숲이었다.

덕분에, 그곳에 쌓인 수많은 시체가 사령의 숲을 만든 장소였다.

“확실히 그곳이라면 언데드가 많겠군. 음……. 내가 아는 장소를 하나 알려주지.”

과거 나 역시 언데드를 얻기 위해 몇 번 가본 적 있는 장소인 만큼 그곳에 숨어있는 히든 기믹도 파악하고 있었다.

“사령의 숲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향하면 거대한 바오밥나무 한 그루가 있을 거다. 그 아래를 파면 무덤이 하나 나오지. 거기서 백합 한 송이를 들고 계약을 진행해봐라. 쓸만한 녀석이 널 도와줄 거다.”

SR 등급의 데스나이트. 데모닉을 소환하는 방법이었다.

대충 스토리로는 과거 전쟁에서 아내를 잃고 혼자서 적국의 대군을 쓸어버렸다는 기사가 잠든 장소였는데 아내가 좋아했던 꽃인 백합을 들고 가면 계약을 해줬었다.

다른 녀석이 채 가지 않았다면 거기에 잠들어 있겠지.

뭐, 계약이 없는 경우에도 자기 무덤에 잠들어 있겠지만.

“……그건. 대단한 정보군요. 이런 정보를 제게 주셔도 되는 겁니까?”

생각지도 못한 정보에 멍하니 서 있던 데킬라자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다.

“로제가 언데드를 다루는 녀석도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이 정보를 준다면 우리에게 호의가 있는 네게 주는 게 맞겠지.”

언데드를 다루는데 재능이 있는 데킬라라면 충분히 녀석과 계약을 할 수 있을 터였다.

“……호의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로제랑 잘 지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만.”

“그, 그레고리님!”

너무 부모님 같은 말이었나. 로제가 부끄럽다는 듯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나를 노려봤다.

그래도 어떡하냐. 이 그레고리는 우리 로제가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는걸.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느덧 담배를 다 태운 로제와 데킬라는 한 달 뒤에 보자는 인사를 나눈 후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소환수를 찾는 여행이라……. 나쁘지 않겠는걸.

“로제.”

“네?”

마법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로제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귀를 쫑긋하며 나를 돌아봤다.

“왜요?”

“너는 어떤 종류의 소환수가 좋지?”

“네? 갑자기요?”

갑자기 얼굴을 붉히는 로제.

“저, 저는 말이죠 그……. 매너있고……. 강하고……. 그레고리님 같은…….”

“아니, 소환수의 종족 같은 거 말이다. 악마나 요정, 정령 같은.”

“아아……! 그, 그런 거 말이죠?! 하하하하하!”

갑자기 오른손으로 부채를 부치는 로제.

얘는 왜 혼자 이런데.

“음……. 지금 악마가 두 분이니까……. 역시 소환사의 로망은 드래곤이죠? 크고, 강력하고. 소환사 아카데미를 세우신 초대 총장님도 드래곤을 다루셨고요.”

“드래곤……. 드래곤인가…….”

“왜요? 어디서 드래곤이라도 잡아 와 주시려고요?”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하하하! 그레고리님. 농담도 참!”

아니, 진짠데.

“자! 빨리 수업 들으러 가요! 늦겠어요!”

속도를 높인 로제가 내 손을 잡고는 빠른 걸음으로 아카데미를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드래곤……. 드래곤이라…….

한 마리 잡아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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