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아카바퀴 38
* * *
마법 수업은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수업 방식은 책을 보며 교관의 지시에 따라 마법을 발현하는 것.
그리고 우습게도…… 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거기 그레고리 학생?”
남색의 커다란 마녀 챙모자를 쓴 교관이 가만히 앉아있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교관은 분명 손가락 끝에 마력을 집중해보라고 했는데요?”
아이보리색 머리와 복숭아빛 눈동자, 그리고 쪼그마한 외견은 서브 컬쳐에서 보던 마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외형으로만 보면 많아 봐야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아니, 그래서 마녀인 건가.
“그레고리 학생?”
“음, 안되는 걸 어떡하나.”
교관은 마법을 처음 사용하는 나를 집중적으로 마크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스스로도 잘하고 있으니까.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악마라니, 오랜 세월을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에요.”
악마의 마력적 재능은 인간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악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아무래도 이 모습으로는 안되는 것 같군. 변──”
“그, 그만! 제 수업을 망칠 속셈인가요! 여기서 그 모습을 하는 건 그만두세요!”
까치발까지 들며 내 입을 틀어막는 교관. 작디작은 손으로 내 입술을 막아버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참관만 하는 거로 하죠.”
입이 막혀있었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마법 수업(관전)이 끝나고 역사 시간이라 하기에 마르바스가 있는 대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학년들의 검술 시간인지 처음 보는 얼굴들이 잔뜩 있었다.
“음? 자네가 이 시간에 여기는 무슨 일인가.”
내 기척을 눈치챈 마르바스가 눈썹을 올리며 내게 물었다.
“그냥, 단순한 산책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곤 대련장에서 검을 섞는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여성 쪽은 꽤 익숙한 얼굴이었다.
“선도부장인 아멜 발멩가군. 상대는…… 타 아카데미 학생인가?”
“맞네. 나이트 아카데미생이지. 확실히, 기사를 육성하는 곳이라 그런지 검술의 수준이 높더군.”
아멜의 공격을 검과 방패로 차분히 막아내고 있는 금발의 남성.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아서라고 하는 나이트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더군. 어딜 방어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 보기엔 아멜이 맹공하고 있지만, 상황은 아직 나이트 아카데미 학생에게 유리하네.”
마르바스의 냉철한 발언. 내 눈에는 막기만 하는 나이트 아카데미생인 아서가 불리해 보였지만 마르바스는 다르게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발동작이 바뀌었군. 이제 공방이 바뀔걸세.”
실제로 마르바스의 말대로 아서가 발을 틀더니 닥쳐오는 공격을 방패로 튕겨냈다.
갑작스러운 패링 공격. 아멜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빈틈이 생겼다.
아서는 그대로 숄더태클을 걸어 아멜을 넘어뜨린 후 목검을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끝났군. 승자, 아서 드라고니아. 방패를 활용해 상대의 버릇을 파악하고 역공을 펼치는 모습이 훌룡했다.”
“하아…하아… 감사합니다.”
“아멜 역시 공격의 밸런스는 잡혀 있었지만, 방패에 대한 대응력이 부족하더군. 나중에 따로 개인지도를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아서가 건네는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멜.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마르바스의 옆에 서 있는 나를 본 것인지 움찔 몸을 떨었다.
아직도 날 무서워하는 건가.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남은 모양이었다.
“아, 마르바스. 오늘 아카데미가 끝나고 할 일 있나.”
“음? 딱히 없다만. 집에 가서 이삿짐이나 정리하려 했네.”
“좋군. 저녁에 서머니아에서 잠시 만나지.”
“……갑자기 말인가?”
“기껏 서머니아까지 왔는데 파이몬에게 인사는 해야지.”
“아, 그녀가 있었군.”
아무래도 이 녀석. 파이몬이 서머니아에 있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었다.
“파이몬에게 해야 할 설명도 많지 않나. 그러니까 로제랑 같이 얼굴이나 보러 가자고.”
“뭐, 그렇게 함세.”
그리고 우리는 다시 다른 학생들의 대련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2학년의 대련을 바라보고 있다가 로제의 수업이 끝날 때쯤, 로제의 곁으로 돌아갔다.
로제는 밥 먹을 생각이 잔뜩 들떠있었다.
점심시간 이후는 평소랑 비슷했다. 식후빵 후 잠깐 아카데미 내부를 산책하다 대련.
다만 오늘은 우리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인원이 없었기에 다른 학생들의 대련을 관전하기로 했다.
“……와, 엘레나양의 정령연계. 장난 아니네요.”
실프와 운디네를 동시에 소환해 제대로 된 연계가 무엇인지 보여준 엘레나를 보며 로제 역시 나름 무언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같은 종족끼리의 시너지라는 거다.”
게임 속에서는 스킬데미지 상승이나 체력 증가 같은 식으로 효과가 올라갔었는데 이쪽에서도 그런 시너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흐음……. 그렇군요.”
또 그렇게 관전을 하며 시간을 녹이고 대련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로제는 기숙사로 돌아가자 내게 말했다.
“갑자기 기숙사는 왜 들르려고 하지?”
평소에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서머니아로 향하던 로제였다.
그런데 갑자기 기숙사라니, 뭐라도 놓고 온 것일까?
“아, 이번에 그레고리님이 새로 사주신 옷들이 있잖아요? 기왕 나가는 김에 사복을 입고 나가려고요.”
“그런 거라면야.”
로제 역시 한창 멋을 부리고 싶은 나이대의 소녀였기에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방 안으로 들어선 로제, 이내 그녀는 내가 사준 옷 중 하늘하늘한 드레스 차림의 옷을 입고 나왔다.
“어, 어떤가요?”
봄의 따듯한 하늘과 어울리는 아이보리색의 원피스.
원래 세계에서 대학교에 처음 들어오는 신입생들이 자주 입는 스타일의 원피스였다.
다만, 그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로제가 비현실적인 몸매와 하프엘프다운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
“…어울리는군.”
“헤헤, 그런가요?”
싱긋 웃으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도는 로제.
옷을 사면서 피팅룸에서 보았던 모습이지만 기숙사 안에서 보니 뭔가 색달랐다.
마치 내 소환사가 아닌 진짜 엘프 소녀 같은 모습 같다고 할까.
이렇게 보니 로제가 미녀라는 사실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지. 저녁에 마르바스를 만나기로 했으니 빨리 가야 할 거다.”
“마르바스님이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로제. 무슨 용무로 만나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기왕 서머니아에 왔으니 파이몬과 만나게 해줘야지. 누가 등 떠밀어주지 않으면 평생을 안 찾아갈 녀석이니.”
파이몬 역시 마르바스가 서머니아에 정착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도망갈 터. 이럴 때는 기습을 하는 게 좋았다.
“마르바스님과 파이몬님의 만남이라니……. 재미있겠네요.”
후후, 하고 웃은 로제가 바깥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빨리 가요! 아마 뿌리 쪽만 염색할 거라 머리는 금방 할 거예요.”
* * *
‘요정의 바람’
로제가 염색하러 자주 온다는 미용실의 이름이었다. 다행히 유리창 너머에 사람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바로 시술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딸랑. 하는 종소리에 미용사들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겼다.
“어머, 로제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어쩌죠? 오늘은 로제를 봐주기 힘들 것 같은데.”
“네? 무슨 일 있나요?”
“그게…… VIP 손님분이 오셔서요……. 시술하는 동안 샵 자체를 빌리셨거든요.”
미용사는 그렇게 말하며 힐끔 안쪽을 바라보았다.
미용실의 안쪽, 수많은 미용사에게 둘러싸여 있는 인물.
그 틈으로 보이는 백금발 머리에서는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혹시, 안에 있는 게 하인베른 제국의 황녀인가?”
“네? 어…… 그게…….”
아무래도 보안상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인 듯 싶었다.
제국의 황녀 정도가 되면 샵을 이렇게 빌리는 건가.
뭐, 오히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실라.”
안쪽을 향해 그녀의 이름을 듣자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미용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 목소리는…… 그레고리님이신가요?”
역시 프리실라가 맞는 듯싶었다. 서서히 퍼지는 미용사들의 너머로 프리실라의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그분들은 제 친우예요. 안으로 들어오게 하세요.”
“네. 황녀님.”
프리실라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인 미용사가 길을 비켜주었다.
“로제양도 함께네요?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미용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몰렸다.
아마 프리실라와 함께 하는 경호원들인 듯싶었다.
“보다시피 로제가 염색할 때가 돼서 말이다. 로제는 염색, 나는 머리 스타일을 바꿔볼까 해서 왔다.”
“그리고리님이 머리를요? 좋네요. 원장님? 이분들의 시술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자자, 빈자리에 앉으세요.”
역시 이게 인맥인가.
로제 역시 평소 자신을 대하던 태도와 달랐던 것인지 꽤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로제~ 아카데미 학생인 건 알았는데, 황녀님과 친구 사이셨나요?”
“네? 아, 네! 옆 방에 있는 친구예요!”
“그렇군요~ 어머, 뿌리 좀 봐. 이번엔 신경을 좀 써서 염색해줄게요. 그나저나 어째 염색을 해도 우리 로제양은 머릿결이 상하지를 않네~ 호호호!”
“원장님도 참~ 헤헤헤.”
그렇게 순식간의 둘만의 대화를 시작한 로제와 원장. 내 옆으로 다가온 미용사는 토끼 수인이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손님?”
새하얀 머리에 붉은 눈동자. 흔히 볼 수 있는 묘인(?人)의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미용실에서도 보통 깔끔하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던 나였기에 이런 부분에서 막히고 말았다.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프리실라가 말했다.
“포마드 스타일은 어떠신가요? 그레고리님이랑 어울릴 것 같은데.”
“…포마드?”
“네, 그레고리님은 워낙 훤칠하시니까요. 양옆을 깔끔하게 치고 머리를 오른쪽으로 올리면 어울리실 것 같아요.”
이런 건 프리실라가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겨우 스타일을 정하고 묵묵히 앉아있는데, 케어를 받고있는 프리실라가 내게 말했다.
“역시 로제님의 금발은 염색이었던 모양이네요. 확실히, 뿌리 부분이 까맣긴 했었죠.”
“혼혈이다 보니 생긴 문제라더군.”
“그런가요? 보통 제가 본 하프 엘프들은 금발인 쪽이 많았는데 말이죠……. 역시 용사님의 핏줄은 남다른 걸까요?”
“뭐, 용사니 말이다.”
이 세계는 용사가 일으킨 비정상적인 현상은 모두 ‘용사니까.’로 해결되는 세상이었다.
“그렇겠죠? 그래도……. 로제양이 부럽긴 하네요. 저렇게 염색을 해도 머릿결이 저렇게 좋다니…….”
“……그거, 아마 담배 때문일 거다.”
“네? 담배요?”
무려 세계수의 잎사귀를 말린 담배다. 세계수의 잎사귀 정도라면 머릿결을 좋게 하는 건 식은 죽 먹기겠지.
“뭐, 그건 나중에 로제에게 물어보도록 하고. 프리실라, 네 머리는 염색 같은 게 없어도 충분히 이쁘다.”
“……넷?”
프리실라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묘인 미용사가 중얼거렸다.
“……제법이시네요. 손님.”
뭐가 제법이라는 거지?
“감사합니다아…….”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프리실라의 목소리.
한창 커트하는 중이었기에 고개를 돌려 프리실라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 그렇지.”
문뜩 어제 라파엘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프리실라가 성장하기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었지 분명.
문뜩 머릿속에서 엄청난 계획이 떠올랐다.
파이몬은 마르바스에게 갚을 돈이 필요하고 프리실라에겐 엄청난 돈이 있다.
그렇다면 파이몬은 프리실라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프리실라.”
“네?”
“혹시 조금 있다 시간이 있나.”
“네? 시간이요? 그, 그건 갑자기 왜…….”
“없나?”
그저 물어봤을 뿐인데, 프리실라가 무척이나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 아니욧! 있어요! 시간 있어요!”
“그래? 다행이군. 나와 함께 어디 좀 들르지.”
“……그레고리님이랑요?”
“그래, 네게 도움이 될만한 일이 있어서 말이다. 아, 다른 수행원들은 같이 가지 못하는데, 그래도 괜찮겠나?”
잠깐의 정적. 이내 프리실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제가 명령하면 돌아가겠죠. 다들.”
“그럼 다행이군. 아, 라파엘은?”
“지금 심상공간에서 쉬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3명의 대악마와 한 명의 대천사가 만나게 되는 건가.
“……상관없겠지.”
뭐, 다른 녀석들의 특성상 싸움이 나거나 하진 않을 것 같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씩 형태를 잡아가는 머리를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