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아카바퀴 40
* * *
“……동맹이라니,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군.”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시가를 집어 드는 마르바스, 이내 그는 힐끔 파이몬을 바라보았다.
“어, 펴.”
손날로 간단하게 시가를 절단한 마르바스는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하고 연기를 뱉은 마르바스가 말했다.
“자네가 하는 말은 지금 파벌을 만들자는 소리나 다름없네. 그것도 천사와 함께 말이야. 아무리 영토가 위험하다 한 들 파벌을 만드는 건 매우 위험하네.”
“동감이야. 안 그래도 서열의 상위권인 우리끼리 뭉쳤다간 마르바스 영감마냥 다른 파벌에 공격 받기 딱 좋지. 거기에 천사까지 끼어있다? 사실 상 마계의 공적이나 다름없게 되겠네.”
악마들의 특성은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설정집을 독파하고 수많은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래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다. 동맹의 형태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을테니까.”
“그건 무슨 소리지?”
의도를 알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마르바스.
남들의 눈에 동맹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대들을 [마계지하공사]에서 고용하겠네. 적당히 [마계지하공사]의 보안담당 정도면 되겠지.”
“……뭐?”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써 그대들의 영토에서 나오는 지하자원의 개발을 허용하도록 하겠네. 이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동맹이 아닌 거래관계로 볼 터. 다른 파벌들의 눈을 피하기에는 딱 좋지.”
[마계지하공사]는 말 그대로 마계의 공공기관이나 다름없다. 그런 곳에서 이들을 고용하겠다는데 다른 이들이 어찌 동맹으로 생각할까.
[마계지하공사]의 실질적인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악마도 얼마 없으니 우리의 관계를 숨기기도 딱 좋았다.
“그렇다면, 저 천사는 어쩔 셈이지? 천사와 함께 움직였다간 모두의 공분을 살텐데?”
이번엔 파이몬의 질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점에서 일정 기간 동안 천사를 타락시키는 아이템을 팔 때가 있다. 그때 물건을 미리 구해놓지. 타락천사라면 마계에 넘쳐나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거다.”
“자, 잠깐! 지금 너, 나를 타락시키겠다고 한 거야?”
라파엘이 테이블을 박차며 벌떡 일어섰다. 나는 그녀에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타락이 적용되는 기간은 7일. 그 이후 어떠한 부작용도 없이 원래대로 돌아오니 걱정하지 말아라.”
물론 그 물건은 [가울의 만물상]에서 팔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대들이 걱정하는 것들에 대해 해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파이몬에겐 지하 개발권을 넘겨주었다고 했으니 그녀의 마음은 더욱 이쪽으로 돌아섰을 것이라 생각했다.
“잠깐, 그럼 나한테 오는 이득이 적잖아!”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거리는 라파엘. 그녀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을 텐데. 그걸로 퉁친 거로 하지.”
그녀는 내게 신성 교단 건을 부탁한 전적이 있었다. 이것까지 들먹이면 뭐라 하지 못하리라.
“이것으로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군.”
대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한 모양이었다.
“그럼 프리실라, 라파엘, 로제, 우리는 잠시 주점쪽으로 가있지.”
“네? 지금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 로제. 아직 파이몬과 마르바스는 서로 제대로 된 이야기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충 눈빛으로 눈치를 주자 자리에서 일어서는 로제.
“아! 배고프긴 하네요! 저번에 저기서 먹은 우유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프리실라! 라파엘님! 같이 가요!”
역시 내 소환사여서 그런지 재빨리 눈치채주었다.
그대로 주점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으니 바텐더가 힐끔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손님은 정체가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파이몬님이 친우라고 표현하실 정도라니, 손님도 악마이신 겁니까?”
그래도 눈치는 있었는지 로제나 프리실라와 계약한 악마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대충 비슷하다.”
“역시……! 미천한 흑마법사가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역시 바텐더도 흑마법사인 모양이었다.
“아! 바텐더님. 혹시 우유 부탁드려도 될까요?”
“우유? 뭐야 로제, 아직 애기였네?”
우유를 시키는 로제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는 라파엘.
그 말이 신경쓰인 것인지 로제가 다급히 ‘우유말고 잠시만요!’ 라고 외치며 바텐더의 뒤쪽에 쌓인 술들을 바라보았다.
“주인장. 나는 럼으로. 병째로 줘.”
“……병째로 말입니까? 드실 줄 아시는 분이군요.”
씨익 웃으며 라파엘의 앞에 럼주병을 내려놓는 바텐더.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사가 럼주라니……. 애초에 그걸 다 마실수나 있나?”
“흐흐, 몰랐어? 프리실라 몰래 밤마다 술 먹으러 다니다 보면 금방 늘어.”
“라, 라파엘?”
프리실라도 몰랐던 건가.
바텐더로부터 받은 잔에 럼주를 따라 그대로 목에 때려넣는 라파엘. 크으~ 하는 소리를 낸 그녀가 외쳤다.
“이 맛이지! 우리 프리실라는 이런 걸 안 먹으니까 몰래 나와서 먹을 수밖에.”
“……그게 그렇게 맛있나요?”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라파엘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 앉아 있던 프리실라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조심스래 물었다.
“음? 프리실라도 먹어볼래?”
잔에 럼주를 반 정도 채워 건네주는 라파엘. 그 잔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프리실라가 조심스레 잔을 들었다.
“…꽤 독한 술인데 괜찮겠나?”
내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묻자 결연한 표정을 짓는 프리실라.
“네! 새로운 도전이니까요! 이래봬도 저, 포도주는 꽤 잘 마신다고요!”
포도주에 비할 바가 아닐텐데…….
벌컥벌컥 한 번에 입에 럼주를 모두 털어 넣는 프리실라.
마침내 모든 술을 털어넣고 잔을 내려놓은 프리실라가 표정을 찡그린다.
“으으으읏! 뜨거워!”
“하하하하! 프리실라~ 잘마시네~ 아이 착해~”
그 광경이 귀여웠는지 라파엘이 프리실라의 작은 머리를 껴안고는 쓰다듬기 시작했다.
“라, 라파에엘~”
“왜에? 더줄까?”
“아니요……. 뭔가 엄청 뜨겁고……. 달달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었어요…… 후아……”
“이게 다 어른이 됐다는 거야. 로제, 너도 도전해볼래?”
프리실라를 가슴에 파묻고 있는 라파엘이 로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찰랑찰랑. 잔 안에서 흔들리는 럼주. 한눈에 보아도 점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제,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술을 먹이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말했지만 로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사실 옛날부터 독한 술과 담배는 로망이라고 들었거든요.”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한 거지?
“괜찮을 거 같은데요? 저도 한 잔 주세요!”
“후후후, 그래.”
꿀렁꿀렁 소리를 내며 잔에 따라지는 럼주. 프리실라와 비슷한 양을 따라준 라파엘이 로제에게 잔을 건넨다.
“자, 너무 무리 하지는 말고?”
“네!”
잔을 마시기 전, 입에 파이프를 물고 불을 붙이는 로제.
연기로 한 번 입을 닦은 로제가 잔을 들고는 한 방에 럼주를 목구멍으로 때려 넣었다.
그리고 동시에 파이프를 깊게 빨아 들인 후 내뱉는 로제.
“파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로제가 살짝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독한 술이네요. 점도부터가 다른 것 같아요. 무슨 설탕물로 만든 술 같달까.”
“사탕수수로 만드는 술이니 말이다.”
아마 불도 붙을 것이리라.
“흐으……. 라파엘님은 이런 걸… 대체 어떻게 병째로 드시는 거에요?”
“어른이 되면 다들 이 정도는 마신단다?”
“나이로만 따지면 할머니 아닌가.”
“그레고리! 그렇게 나오기야?”
나이 이야기는 금지인가. 나는 손을 대충 뻗어 사과를 한 후 바텐더에게 주문했다.
“시원한 물 두 잔. 부탁하지.”
“예. 알겠습니다.”
“으으……. 라파에엘……. 뜨거워…….”
“후헤……. 후헤헤…….”
겨우 럼주 반 잔을 마셨다고 인사불성이 된 두 녀석을 위한 주문이었다.
잠시후, 얼음이 동동 띄워진 물잔을 로제와 프리실라의 앞에 놓는 바텐더.
두 사람은 마치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마냥 물잔을 소중하게 들더니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하…. 술에 타 죽을뻔 했네요. 감사합니다.”
“우…….”
그래도 방금 보다는 상태가 훨씬 나아진 두 명. 그래도 라파엘이 아직 두 사람에게 정화를 걸지 않은 것을 보면 괜찮겠지 싶었다.
“그레고리, 너는 뭐 안마셔?”
“당기지는 않는 군.”
나는 그렇게 말하곤 주머니에서 시가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렇게 반쯤 태웠을까. 주점 안에 있는 모든 인원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니 마르바스와 파이몬이 서 있었다.
“…이야기는 잘 했나보지?”
“덕분에.”
마르바스가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그리고 그 옆에서 주점을 두리번 거리는 파이몬. 그녀가 손을 휘적휘적 젓자 일어섰던 이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루크.”
“예. 파이몬님.”
바텐더의 이름이 루크였나.
“녀석들의 술값은 받지 말거라. 기쁜날이다.”
“알겠습니다.”
“흐응? 우리 악마님도 배풀 줄은 아시네?”
마시고 있던 럼주병에서 입을 땐 라파엘이 싱긋 웃으며 파이몬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파이몬.
“요즘 시대가 천사가 배푸는 시대는 아니지 않는가. 이 악마라도 배풀어야지.”
“……흥.”
파이몬의 말을 들은 라파엘이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시 술을 마시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파이몬이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레고리여, 저기 왕녀의 성장에 필요한 물건을 팔아달라고 했지?”
갑자기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한다고?
우선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마침 내가 그대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말이다.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면 그 물건의 값을 받지 않지. 어떤가?”
의뢰의 보수 형태로 제공하겠다는 건가.
“물건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만.”
“물론 그대에게도 따로 물건을 주도록 하마. 로제는 3성인데 그대는 아직 2성이지 않은가. 3성에 올라갈 수 있는 영약을 제공하지.”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우선 들어보도록 하지. 의뢰 내용을 여기서 말해도 되나?”
내 물음에 파이몬은 손가락을 튕겼다.
예민한 내 감각이 우리 주위로 투명한 막이 씌워졌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됐는가?”
“그래. 말해봐라.”
자연스레 내 옆에 앉은 파이몬이 턱을 괸체 내 눈을 응시한다.
“의뢰의 내용은 별 것 아니니라. 최근에 도시로 흘러들어온 녀석들이 있는데, 녀석들이 이 뒷골목을 마구 들쑤시고 다닌다는 구나.”
여기까지 들으면 평범한 양아치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 아이들 중 한 명이 그들에게서 악마의 기운을 읽었다고 하더군. 아무래도 평범한 녀석은 아닌 듯 싶어서 말이지.”
“……그 정도라면 네 아이들이라 불리는 녀석들을 시켜도 될텐데?”
이 녀석이 다스리는 흑마법사들이 힘을 합친다면 악마의 힘을 빌린 녀석들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허나, 그녀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지. 그 녀석들이 아카데미 제복을 입지 않았으면 말이야.”
“…아카데미 제복?”
“그래, 아카데미 제복.”
내 손에 쥐고 있던 시가를 장난스럽게 가져가 한 입 머금은 파이몬이 싱긋 웃는다.
“지금 이 도시에 들어온 타 아카데미의 학생들 중 악마와 계약한 이가 있느니라. 그것도 우리에게 적대적인 악마가.”
후우. 하고 연기를 내뱉은 파이몬이 다시 내 손에 시가를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마르바스와 내 추측으로는 마르바스의 영지를 노린 악마들 중 한명으로 추측된다만……. 그대와 천사가 함께 녀석을 찾아주거라.”
싱긋.
마치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악녀 그 자체였다.
“미리 상대를 줄여놓으면 편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참.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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