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41화 (41/169)

〈 41화 〉 아카바퀴 ­ 41

* * *

“……허허,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아카데미의 정문.

나와 라파엘의 모습을 바라본 아카데미의 경비, 워커 스카이블루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천사님과 악마님이 나란히 오셨군. 소환사님들을 업고 말이야.”

그렇다. 현재 내 등에는 로제가, 라파엘의 등에는 프리실라가 업혀있는 상황이었다.

“저 녀석이 장난을 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됐다.”

“뭐? 여기서 내 탓 하기야? 술을 권한 건 내가 맞지만…….”

“하하! 천사님이 장난을 친 거였군. 절차는 내가 대충할 테니 어여 들어가시게나.”

“고맙다.”

나와 라파엘의 등 뒤에서 잠든 두 소녀가 꼼지락댔다.

“어이쿠, 내가 단잠을 깨울 뻔했군. 조심히 들어가게나.”

“감사합니다. 워커.”

프리실라가 깨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라파엘. 그대로 기숙사로 향한 우리는 같은 층에 도착하고 나서야 따로 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그래, 악마를 찾는 게 목표인 거지?”

“그래, 파이몬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평범한 녀석은 아닐 거다.”

“그래, 그럼 나는 우리 공주님 데리고 돌아가 볼게. 너도 그쪽 공주님, 잘 눕혀드리고.”

“…공주라니.”

뭐, 로제가 들었으면 좋아했으려나.

“들어가라.”

“응. 조심이 들어가. 자기야.”

자기라는 소리를 듣고 표정을 찡그리자 라파엘이 킥킥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로제를 침대 위에 뉘였다.

“으으응~”

꿈틀거리며 몸을 배배 꼬는 로제. 다행히 나갈 때 입었던 옷이 편한 원피스 차림이라 옷을 갈아입힐 필요는 없을 듯싶었다.

“헤헤헤……. 도너스은~ 이렇게 하는 거예요오~”

그리고 침대 위에서 뻐끔뻐끔 거리고 있는 저 모습을 보아하니 당사자도 편한 것 같고 말이다.

“……그럼 나도 쉬러 갈까.”

검술 수업에 마법 수업까지 들었더니 나 역시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다녀왔습니다.”

심상세계로 들어오자마자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비록 현실의 내 방을 흉내 낸 공간일 뿐이지만, 이런 말 한마디로도 나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게임 속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고, 스스로 되새기는 것이다.

그래야만, 돌아가기 위해 더욱 처절해질 수 있으니까.

그게 내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침 7시 정도였다. 힐끔 시선을 돌려 TV를 바라보니 TV의 화면이 새까맸다.

“로제는 아직 안 일어난 건가.”

오늘도 어김없이 변신 2콤보로 몸단장을 한 후 밖으로 나서자 아직도 침대 이불을 껴안고 있는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로제. 일어나라. 아침이다.”

적당히 옆에서 속삭여줬지만 아무래도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로제?”

“시끄러어!”

흔들어 깨우기 위해 손을 뻗자 내 손목을 잡아채고는 잡아당기는 로제.

“잠깐──”

그대로 내 몸이 기울어 로제의 몸 위에 포개졌다.

“으으음…….”

갑작스러운 무게감 때문인지 일어나려고 하는 로제. 이 상황에서 일어 났다간 대참사다.

“변신.”

순식간에 바퀴폼으로 변신했다.

“왜 이렇게 무겁……?”

내 겹눈과 눈을 마주치는 로제.

“……….”

“……….”

“으갸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악!!!!!!!!!”

엄청난 비명을 지르던 로제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휴, 위험했다.

“변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몸을 일으킨 다음 로제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라. 로제.”

“으으으……음? 그, 그레고리님? 아, 아까전에 제 위에……!”

“악몽을 꿨나 보군.”

“악몽……이요?”

“그래, 막 깨우려고 할 때 갑자기 혼자 비명을 지르더구나. 그래서 깨운 거다.”

“그, 그렇군요……. 꿈이었어요……. 역시…….”

일단 어떻게든 넘어가는 데 성공한 듯싶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늦을 거다.”

“네? 벌써 시간이…… 7시?! 빠, 빨리 준비해야겠네요!”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침대에서 일어서는 로제.

“욱…!”

갑자기 헛구역질한 로제가 표정을 구겼다.

“왜 그러지?”

“속이…… 안 좋아요…….”

숙취인가.

빈속에 럼주를 그렇게 때려 넣었으니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으으……. 무울…….”

마치 기력을 잃은 좀비처럼 터벅터벅 부엌으로 걸어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로제. 이내 그녀는 파이프를 물고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분명 누군가 숙취에는 담배가 좋다고 했었는데 말이죠…….”

가볍게 파이프 끝에 불을 붙이며 평소와 같이 모닝빵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로제.

확실히, 로제가 피는 세계수의 잎사귀라면 숙취에도 효능이 있으리라 생각됐다.

“그럼 준비를 끝내고 내 방으로 와라. 방에서 쉬고 있으마.”

“네에…. 금방 준비 할게요오.”

그렇게 방에 들어가 멍하니 누워 있으니 모든 준비를 끝낸 로제가 노크를 하며 나를 불렀다.

숙취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는지 평소보다도 조금 퀭한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서자 로제와 같이 얼굴이 퀭한 프리실라 일행과 마주쳤다.

라파엘의 말로는 정화마법을 걸었는데도 저 정도라고 한다.

“앞으로 술은 자제해야겠어요.”

아직도 속이 쓰린지 배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프리실라.

‘마! 그 나이에는 아무리 먹어도 괜찮다!’라는 학교 선배의 말이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냈다간 꼰대 취급을 받을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로제의 말로는 오늘 오전 수업은 대부분 이론계열의 수업이라고 했다.

즉, 오전 시간은 완전히 자유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로제의 등교 전 흡연에 어울려준 나는 로제를 뒤로하고 아카데미를 탐색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까지 끌고 가는 거라고?”

“악마의 기척은 네가 더 잘 느끼지 않나.”

내게 붙잡혀 투덜거리며 따라오는 라파엘.

“확실히, 그건 맞지만……. 너, 아카데미에 악마와 계약한 소환사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뭐, 적당히 많겠지. 중, 하위 악마라면 간단한 대가만으로 소환되니 말이다.”

물론 게임에선 전부 경험치로 갈아버렸다.

“그래도 타 아카데미에서 온 교환학생들을 위주로 조사하다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타 아카데미생들은 2학년이라고 했으니 2학년 수업을 위주로 살펴보면 될 터.

마침 눈앞에 내가 아는 2학년이 지나가기에 불러 세웠다.

“아멜 발멩가. 잠시 기다려라.”

“음? 누가……너, 너, 너는!”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 아멜.

움찔하며 놀란 덕분에 위아래로 크게 흔들린 그녀의 가슴에는 선도부임을 인정하는 뱃지가 달려 있었다.

“잠깐 우리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뭐? 네 녀석을 말이냐? 어림없는 소리! 네 녀석이 꾸미는 일이라면 사악한 일밖에 더 없지 않은가!”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런 녀석들에게는 예로부터 ‘변신’이 특효약이었다.

“그래, 내가 변신하고 나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보도록 하──?”

내 옆에 서 있던 라파엘이 급하게 내 입을 틀어막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멜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 이 녀석 성격 잘 알잖아? 이 녀석은 무시하고, 나를 봐서 잠깐 도와주면 안 될까?”

“그쪽은……라파엘님?”

역시나 네임드 천사이자 황녀인 프리실라의 소환수라서 그럴까. 내게 향해있던 아멜의 적개심이 라파엘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라파엘님! 그 녀석은 위험합니다! 어서 떨어지십시오!”

“흐응? 그렇게 위험한 남자는 아니니까 걱정 마. 무엇보다 나는 라파엘인걸?”

“……확실히, 라파엘님 정도라면 그 악마를 다루실 수 있으신 거군요.”

“맞아맞아~ 그러니까. 잠시 우리 좀 도와주지 않을래?”

“…라파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최대한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된다고?

내 ‘변신 맛 좀 볼래?’ 작전보다 더 잘 먹힐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떤 걸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멜의 물음에 내 입에서 자연스레 손을 뗀 라파엘이 흐음~ 소리를 내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지금 우리 아카데미에 교환학생들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오늘 그 아이들의 수업 일정을 알 수 있을까?”

평소에 짓지도 않는, 연기 100의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묻는 라파엘.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선도부장인데 그런 연기가 먹힐 리가──

“아아……. 라파엘님. 역시, 타 아카데미생들의 실력을 파악하고 더욱 정진하시기 위해!”

먹히네.

“응~ 맞아. 그래서, 그 아이들의 일정 좀 알 수 있을까?”

라파엘의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아멜은 순순히 우리에게 교환학생들의 일정을 알려준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교관님의 심부름을 하던 도중이었기에!”

“응~ 그래 잘 가~”

아멜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라파엘. 환하게 웃으며 본래 가던 길을 향해 걷던 아멜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라파엘님의 말씀을 잘 듣도록. 악마.”

그리고는 도망치듯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다음에 만나면 변신 맛 좀 보여줘야겠군.”

“음? 변신 맛? 그게 뭔데?”

“있다. 저런 녀석들에게 통하는 내 비기가.”

아멜의 말에 따르면 각 아카데미의 교환학생들은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A반에는 로덴 아카데미가. B반에는 제국 아카데미가. 마지막으로 C반에는 나이트 아카데미가 갔다는 것이다.

“한 번에 전부를 돌아보는 것은 무리일 테니……. 오늘은 먼저 나이트 아카데미 쪽부터 가보도록 하지.”

“응? 나이트 아카데미?”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해 하는 라파엘.

“나이트 아카데미에 소환사가 있나?”

“있다.”

이 세계는 수많은 기사가 있는 세계다. 그리고 그런 기사 중에서도 소환수와 함께 싸우는 기사 역시 존재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있는 것이 바로 ‘정령기사’

정령의 힘을 빌려 함께 싸우는 기사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맞네, 그런 녀석들도 있었지. 마검과 계약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그래, 그러니 악마와 계약한 생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악마와 계약한 모험가나 기사 카드가 있을 정도였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 그럼 우리, 나이트 아카데미 애들을 만나러 가볼까? 지금쯤이면 분명…… 수학 시간이라고 했지?”

아, 수학.

그 말을 들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응? 왜 그런 표정이야?”

“아니……. 그 수업은 꽤 귀찮은 여자가 담당이어서 말이다.”

“귀찮은 여자? 설마…… 니자젤을 말하는 거야? 하하하하! 확실히, 그 아이가 악마를 싫어하긴 하지.”

실컷 나를 비웃던 라파엘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이 누나가 있잖아.”

“누가 누나라는 거지.”

“이럴 땐 능력 있는 사람이 누나고 오빠인 거 몰라? 자~ 가자~ 이 누나가 해결해 줄게요~”

자신만만하게 나를 끌고 가는 라파엘.

“……이건 좀 풀지 그래.”

계속해서 오른팔에 닿는 그녀의 가슴이 신경 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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