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42화 (42/169)

〈 42화 〉 아카바퀴 ­ 42

* * *

“니자젤이 가르치는 수학이라면 이 교실이었지?”

라파엘과 도착한 곳은 아카데미 3층에 위치한 수학 교실. 안에서는 니자젤의 열띤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수업이 끝나고 오는 게 좋지 않겠나.”

아무래도 수업 중이기도 하고 니자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한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지금 들어갔다간 대참사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레고리, 니자젤의 수업을 제대로 안 들었구나?”

“그게 무슨 소리지?”

“지금 시간을 봐. 니자젤이 수업 시작한 지 40분 정도가 지났지?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거야.”

라파엘이 그렇게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 안쪽에서 니자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5분만 휴식하도록 할게요. 화장실 다녀오실 분은 빨리 다녀오도록 하세요.”

“봤지? 지금 들어가면 돼.”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자 싱긋 웃으며 내 손을 붙잡고는 당당히 교실 안으로 들어서는 라파엘.

그녀의 모습을 본 니자젤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다.

“라파엘님…! 여긴 어찌한 일로?”

와, 나를 처음 봤을 때랑은 전혀 다른 태도로 맞이하는 니자젤.

라파엘 역시 그런 니자젤의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아니이. 다름이 아니고 네 수업을 청강하려고 하는데. 괜찮아?”

“물론이죠! 라파엘님은 훌륭한 학생이자 소환수시니까요. 그런데…… 그 남자는 왜 데리고 오신 건가요?”

니자젤이 시선을 내 쪽으로 옮기자 그녀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여전히 나를 싫어하는 눈치였다.

“음? 아~ 나랑 아.주. 친한 친구라서 말이야. 같이 들어도 될까?”

“…친한 친구이신가요. 라파엘님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 남자는 제 수업 때 한 번도 집중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남자입니다. 타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있는데 피해를 줄 수도 있어요.”

니자젤의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라파엘.

“그레고리. 저 말이 사실이야?”

“……문과에게 수학은 필요 없다.”

“뭐? 하하하하하! 아, 맞아. 그레고리. 소설가였던 네가 수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 그래도, 니자젤의 수업은 앞으로 잘 들어주면 안 될까?”

“노력해보마.”

내 대답을 듣고서야 다시 니자젤을 바라보는 라파엘.

“자, 됐지? 수업 들어도 될까?”

그 모습에 니자젤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라파엘님께서 부탁하시는 거니까요. 자리는 아무 빈자리에 앉으시면 돼요.”

“응! 고마워~ 자, 가자. 그레고리.”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빈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퍼져있던 학생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니자젤이 말한 5분이 지난 것이었다.

“자, 그럼 수업 재개할게요. 방금까지 우리가 풀었던 문제들을 살펴보면……”

“라파엘. 느껴지는 기운은 있나.”

작은 목소리로 옆에 앉아있는 라파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음? 아직은? 뭐, 지금은 잠깐 정찰을 하러 온 거니까. 나중에 대련시간 정도나 되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가.”

“거기, 그레고리 존스?”

교단 앞에 서 있던 니자젤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왜 그러지.”

“방금 제가 풀이해 준 문제. 응용해서 이 문제를 풀 수 있겠나요?”

니자젤의 옆, 칠판에는 어느새 니자젤이 지우고 다시 적은 문제가 적혀 있었다.

……저게 루트였나.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대충 알고 있으나 전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요? 못 풀겠나요?”

씰룩. 하고 니자젤의 입꼬리가 움직인다.

저년, 일부로 내게 문제를 풀도록 시키는 게 틀림없었다.

“좋다. 순식간에 풀어주지.”

그렇게 말한 나는 일어서기 전, 라파엘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라파엘. 지금 당장 날 죽일듯한 살기를 내뿜어라. 내게 집중되도록. 할 수 있겠나?”

“음? 뭐……. 할 수는 있는데 왜? 혹시, 그레고리는 그런 게 취향이야?”

이 미친 천사를 어떻게 할까.

“이상한 소리는 그만하고 지금 바로 해라.”

“……뭐, 알겠어.”

그렇게 말한 라파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애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날 죽이려고 한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라면, 여기서 이 특성이 발동해야 한다.

[지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스킬 : 검은 늪]이 사용 가능합니다.

[특성 : 지독한 생명력]에 달려있는 지능 향상이 발동한 것이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였다.

이 몸이 바퀴이기에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방식.

방금까지 외계 언어로만 보이던 칠판의 문제가 지금은 구구단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뚜벅뚜벅 자신 있게 걸어 나간 나는 풀이도 없이 당당하게 답만 적었다.

내가 암산으로 풀었다는 것을 티 내기 위해서였다.

“에?”

그리고 그 광경을 얼빠진 듯 바라보는 니자젤.

“됐나.”

“아, 아니. 잠깐만요…….”

멍하니 문제를 바라보는 니자젤. 이내 그녀의 입에서 ‘이게 맞다고?’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녀 역시 암산으로 문제를 풀어 본 것이다.

“당신, 정말로 당신이 푼 거 맞아요?”

“못 믿겠나? 다른 문제라도 적어보시던지.”

“하! 좋아요!”

자신만만하게 새로운 문제를 적자마자 바로 옆에 답을 써 갈긴다.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

“이 정도는 문과인 나도 풀 수 있다. 앞으로 문과를 무시하지 말아라.”

나는 그렇게 말하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니자젤은 아직도 넋이 빠진 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니자젤 교수님? 수업 진행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이트 아카데미생도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니자젤.

“아, 그렇죠……. 이어서 수업 진행할게요.”

아까보다도 훨씬 기가 죽은 상태로 수업을 진행하는 니자젤.

그런 니자젤을 뒤로하고 라파엘과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수업시간이 끝나있었다.

“벌써 끝났네? 아, 한창 재미있었는데.”

“네가 과거에 악마 모가지를 썬 이야기가 내게도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나?”

“음? 재미없었어?”

“…재미있더군.”

확실히 라파엘은 이야기를 잘하는 부류에 속했다.

아니, 어떻게 악마 모가지 썬 이야기를 이렇게 재밌게 풀 수가 있지?

[특성 : 귀족]이 없었다면 현웃 터질 뻔한 포인트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재미있었다니 다행이네. 그럼, 다음 수업도 따라가 봐야겠지?”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옆에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다음 수업에 관해 물었다.

“오, 마침 잘됐네. 그레고리. 얘네. 다음 수업이 검술 수업이라는데?”

* * *

“……어쩌다. 내가 2학년 검술 수업을 도와야 하는 거냐.”

2학년의 검술 수업.

어째서인지, 나는 목검을 들고 있었다.

“음? 수업을 청강하겠다고 내게 물은 건 그레고리 자네 아닌가.”

내 앞에서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고 있는 마르바스와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킥킥 웃고 있는 라파엘.

“그러면 라파엘, 너는 왜 참여를 하지 않는 거지?”

“나야 기운을 느끼려면 집중을 해야 하니까 못하지? 그렇다면 우리 그레고리가 노력을 해줘야겠지?”

말은 잘하는군.

“그대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으니, 나 역시 전력으로 도와야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마르바스가 몸을 풀고 있던 한 남학생을 불렀다.

복장을 보아하니 나이트 아카데미의 학생인 듯싶었다.

“그대들 중 가장 검의 형이 자유로운 이가 누구지?”

“예, 저희 중에서는 리실 루나크. 그녀의 검이 가장 자유롭습니다.”

아까 니자젤의 앞에서와 달리 완전히 예를 갖추며 공손히 대답하는 나이트 아카데미의 생도.

아무래도 검을 사용하는 그들이다 보니 마르바스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른 듯싶었다.

“좋군. 리실 루나크. 그 학생과 이자를 대련시키고 싶은데, 의견을 물어봐 주겠나?”

“알겠습니다.”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쪽으로 향하는 남학생. 나는 마르바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굳이 검의 형이 자유로운 녀석과 싸움을 붙이려는 이유가 뭐냐.”

내 말에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는 마르바스.

“자네는 그 좆 같은 그레그레류인가 그레놀라류인가 하는 검술을 쓰지 않나. 그대의 검술이 자유로운 만큼 어울리는 상대와 대련했으면 싶었던 게지.”

“…그레고리류다.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받아들이지.”

검사와의 대련은 언제 해도 배울 점이 많았으니 말이다.

“부르셨습니까. 검성님.”

갈색 머리를 뒤로 묶은 여학생 한 명이 다가와 마르바스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시했다.

그녀의 가슴에 걸린 명찰에 적혀 있는 이름은 [리실 루나크].

나이트 아카데미의 제복은 카키색에 붉은 선이 들어가 있는 디자인이었는데 교복이라기보단 오히려 군인의 제복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아마, 그것이 나이트 아카데미의 정체성이리라.

“검성이라니, 지금은 교관의 입장으로 있는 것이니 교관이라 부르게.”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교관님. 그런데, 저를 부르신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녀 역시 검을 사용하는 자 답게 마르바스에게 깍듯한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그대가 사용하는 검의 형이 가장 자유롭다고 들었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 친구 역시 검이 무척이나 자유롭지.”

마르바스의 이야기를 들은 리실이 나를 바라보았다.

검은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와 편안한 움직임을 위해 뒤로 묶은 갈색 머리. 한눈에 보아도 단련되어있음을 알 수 있는 몸은 그녀가 얼마나 훌륭한 기사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2학년 중에서는 보지 못한 얼굴입니다만.”

“1학년인 로제 학생의 소환수인 그레고리 존스일세. 내 친우이기도 하지. 어떤가. 그와 대련을 해줄 수 있겠는가?”

마치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미소를 지으며 묻는 마르바스를 향해 리실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예, 그리고 이 대련에 저를 지목하신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나와 리실은 비어있는 대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들끼리 심판을 봐주고 있는 다른 대련장과는 달리 우리의 대련은 마르바스가 심판을 볼 예정인 듯싶었다.

“그럼, 준비──.”

마르바스가 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제스쳐를 취했다.

상대는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교환학생으로 올 정도의 기사.

‘변신’을 통한 공포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시작과 동시에 ‘변신’을 할 준비를 했다.

“시작!”

“변신.”

그의 외침과 동시에 대련이 시작되고, 나는 변신을 한 뒤 눈앞에 있는 리실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레고리류── 비연각(??)”

뛰쳐나가며 점프함과 동시에 날개를 파닥이며 추진력을 붙이고,몸을 회전시키며 가속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오른발을 휘둘렀다.

“자, 잠깐! 이건 검술이──”

“내겐 6개가 모두 다리고 6개가 모두 팔이다. 즉, 이것 역시 내 검술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벌레이자 곤충이었으니까.

“크윽! 어째서 마르바스님께서 대련을 주선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양손으로 검을 잡고 왼편으로 꺾은 리실의 검이 내 발차기를 막아냈다.

나무와 내 갑각이 부딪히며 뭉툭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럼 저 역시 보여드려야겠지요!”

검으로 내 발을 튕겨낸 그녀가 그대로 앞발을 뻗으며 내 몸을 걷어찼다.

갑작스러운 발차기 공격에 내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나며 거리가 벌어졌다.

“하, 검의 형이 자유롭다는 게 이런 소리였나.”

즉, 검술을 위해 체술을 섞어가며 사용한다는 뜻이었다.

“더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 잔뜩 기대하마.”

드디어, 그레고리류의 적수가 나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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