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아카바퀴 43
* * *
리실이 진각을 밟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오른쪽 아래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 재빨리 손을 움직여 그 경로에 검을 가져다 댄다.
“이걸 예측하시다니, 놀랍군요. 하지만 이것까지 예측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검격을 막아내며 가드가 풀리자 리실이 내 머리를 향해 박치기를 해왔다.
갑각 덕분에 큰 충격을 받진 않았지만, 뇌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스킬 : 날개 펼치기]
스킬을 발동해 날개를 펼치며 흙먼지를 일으킨다.
갑작스러운 흙먼지 세례에 질끈 눈을 감는 리실. 그대로 발을 차올려 녀석의 복부를 후려쳤다.
“크헉!”
잠깐 공중에 붕 떠오른 리실이 배를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섰다.
추가타를 먹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조금 전 박치기의 영향이 컸는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아, 하아, 이런 전투는 처음입니다.”
방금 전의 박투가 마음에 들었는지 홍조까지 띄우며 잔뜩 고양된 목소리로 리실이 중얼거린다.
“그래, 이것이 실전의 전투이지. 들어와라. 다 받아주마.”
“예! 사양하지 않고 들어가겠습니다!”
모래 먼지가 가라앉음과 동시에 달려드는 녀석. 녀석의 검을 쳐내자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닥쳐든다.
내 왼손으로 녀석의 발을 막아내자 이번엔 오른 다리를 옆구리를 향해 휘두르는 녀석.
왼 다리를 들어 장딴지로 막아낸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그녀의 팔다리는 4개이고 나는 6개라는 점이다.
“막아봐라.”
나는 중간다리로 리길의 명치를 후려친다.
“크흑!”
복부에 힘을 주며 고통을 참는 리길. 다시 한번 휘두르는 팔을 위에서 팔꿈치로 쳐내 막아내고는 숄더태클을 걸어 내 몸을 밀쳐내려 한다.
“어림없지.”
내 팔에는 가시들이 돋아나 있다. 즉, 녀석의 몸에 팔을 박아넣으면 매달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발끝이 녀석의 옷을 파고들어 날아가는 것을 버텨냈다.
리실의 옷이 위로 말려 올라가며 탄탄한 복근이 슬며시 보였다.
“확실히…… 이형과의 전투에는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왼손으로 내 팔을 잡아낸 리실이 옷에 박힌 내 손을 뽑아내고는 몸을 회전시키며 돌리기 시작했다.
적당한 속도가 붙자 그대로 나를 날려버리는 리실. 날개를 펼치며 속도를 줄여보았지만, 바닥에 부딪히는 것은 막지 못했다.
“큭!”
뒤집힌 상태에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나를 향해 달려오는 녀석이 보인다.
재빨리 몸을 옆으로 뒤집어 6개의 다리로 바닥을 짚는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
아마 녀석의 눈에는 내 모습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으리라.
리실이 당황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훑는다.
“느리다.”
녀석은 시선을 밑으로 내렸어야 했다. 땅에 엎드린 나는 시선을 꽤 아래로 내려야만 발견할 수 있으니까.
그대로 검으로 녀석의 다리를 후려쳐 몸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린다.
“이런!”
뒤로 넘어진 녀석의 마운트 포지션에 올라탄 나는 4개의 다리를 이용해 녀석의 팔다리를 구속한다.
“크윽……!”
여기서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에겐 아직 2개의 다리가 남아 있었으므로 연타를 갈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기해라.”
“하아… 하아…”
리실이 코앞에서 거친 숨을 내뱉는다. 녀석의 뜨거운 숨결이 내 얼굴에 닿으며 뜨거움이 느껴진다.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곤 자리에서 일어나 변신을 풀었다.
격한 움직임을 잔뜩한 덕분인지 변신을 했음에도 거친 숨이 그치지 않았다.
“이건…… 검술 대련이라 부르기도 힘들군.”
“무슨 소리냐, 너라면 알 텐데? 실전에서 검을 든 상대와 싸우게 된다면 결국은 몸을 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글쎄다. 본인이 검을 들면 다들 한 합에 나가떨어져서 잘 모르겠군.”
내 말을 들은 마르바스가 피식 웃으며 이죽거린다.
재수 없는 놈.
“꺄~ 자기 너무 멋졌어.”
우리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라파엘이 어디서 들고 왔는지 모를 새하얀 수건을 건네주었다.
냉수에 한 번 담근 것인지 얼굴을 파묻자 시원함이 느껴졌다.
“다른 녀석들이 오해할만한 말은 하지 말아라. 라파엘.”
“그래도 멋진 걸 어떡해?”
요염하게 웃으며 얼굴을 닦은 수건을 다시 돌려받는 라파엘.
부담스럽게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소득은 있었나.”
“아니, 아무래도 나이트 아카데미 쪽은 아닌 모양이야. 다른 아이들의 대련을 봤는데 악마의 힘은 느껴지지도 않더라.”
나이트 아카데미는 제외인가.
“그럼 다음은 로덴 아카데미 쪽을 살펴보지.”
“로덴? 로덴이면 분명 그레고리한테 잔뜩 맞은 애가 있는 아카데미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무래도 소환사가 있는 만큼 악마의 힘을 쓸 가능성이 있을 거다.”
“흐음, 그러네. 그럼 그쪽으로 가볼까?”
근처에 있는 2학년을 붙잡고 물어보자 로덴 아카데미가 있는 반이 오후에 대련이 잡혀있다는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우선 밥부터 먹어야겠군.”
“그럴까? 벌써 우리 프리실라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어. 프리실라늄이 필요해.”
“…프리실라늄? 그건 또 뭐냐.”
“프리실라를 껴안아야만 회복할 수 있는 자원.”
“그냥 프리실라가 그리운 거군.”
“흐응? 맞아~”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하며 식당으로 향하고 있을 때, 식당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로제와 프리실라를 발견했다.
“프리실라!”
날개까지 퍼덕이며 프리실라를 향해 달려드는 라파엘.
엄청난 속력을 뛰쳐나간 라파엘이 낙하산을 피듯 날개를 펼치며 프리실라를 껴안았다.
“흐음~ 이 냄새~ 역시 우리 프리실라가 맞네~”
“으으……! 라파엘! 주변에서 다 쳐다보잖아요!”
“흐응? 그게 부끄러운 거니?”
이윽고 날개로 가림막을 만들고는 프리실라에게 얼굴을 잔뜩 부비는 라파엘.
“이러면 됐지? 자아~ 나한테 프리실라늄을 나눠줘!”
“으윽! 그런 건 없다니까요!”
평소에도 저러고 놀았던 건가.
그 어이없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로제가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음? 왜 그러지 로제.”
“저도……”
“응?”
“저도…… 그레고리늄이 필요해요…….”
“…….”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얼굴이 조금 불그스름한 게 보였다.
자기가 말해놓고 부끄러운 건가.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거면 되겠나.”
“헤헤……. 충분해요!”
저쪽이랑은 상황이 완전 정반대군.
* * *
점심 식사를 마치고, 대련 수업을 위해 로제와 함께 대련장으로 나섰다.
프리실라는 오후에 대련 수업이 없다며 내게 라파엘을 붙혀주었다.
“그레고리, 괜찮겠어? 오전엔 검술 대련까지 했잖아.”
대련에 들어가기 전, 내게 조심스럽게 묻는 라파엘. 확실히 평소보다 지친 상태였지만 대련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없다.”
“네? 그레고리님, 오전에 대련하셨어요?”
내 옆에 서 있던 로제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녀에게 대충 리실과 마르바스에 대해 말해주자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그러면 오늘 대련은 쉴까요? 다른 사람들의 대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요.”
“아니, 곧 있으면 3성이 될 수 있을 텐데 경험을 더 쌓아야 확실하게 3성이 될 수 있을 거다.”
파이몬이 줄 영약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련을 통해 얻는 경험치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레고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대신 무리는 안 돼요!”
“참고하지.”
대련장에 도착한 교관이 우리를 한 번 둘러보고는 안전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한 후 대련의 파트너를 정하라는 말을 했다.
우리의 목적은 2학년 교환학생인 로덴의 학생들이었기에 교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로덴의 교환학생과 대련을 하고 싶다만…… 저쪽에 가서 대련을 신청해도 되겠나?”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교관.
“저쪽 대표는 얼마 전에 네가 부숴버렸는데 저쪽에서 받아주겠나.”
“도망치지는 않겠지.”
오히려 복수하겠다며 열의를 불태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그래도록. 저쪽에서 거절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교관의 허락을 받은 우리는 곧바로 2학년 대련 교관에게로 가 로덴 학생과 대련을 할 수 있겠느냐 물었다.
2학년 교관 역시 그쪽에서 허락하면 상관없다는 투였다.
“말포이.”
그나마 이름을 아는 녀석에게 말을 붙였다.
“응? 너, 너는…….”
갑자기 그렇게 말하곤 주변을 돌아보는 녀석. 아무래도 마르바스가 있는지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마르바스는 없다. 오늘은 나 혼자지.”
“그럼 무슨 일인데. 열쇠는 돌려줬잖아.”
그래도 아직 그때의 감정이 남아 있는지 녀석의 기분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로덴측과 대련을 하고 싶다. 네 동료들에게 우리와 대련할 상대가 있는지 물어봐 줬으면 좋겠군.”
“어차피 이번에도 위험해지면 그 영감을 불러올 거 아니야?”
역시 그쪽에 앙금이 남았던 건가.
“잘못된 점은 없을 텐데? 오늘은 마르바스 없이 대련할 생각이니 걱정하지 말도록.”
“……우선 물어는 보지.”
그렇게 말한 녀석이 뒤돌아 일행에게 다가가더니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과열되는 분위기. 이내 그쪽에서 몇 번 보았던 남자 녀석이 걸어 나왔다.
“그 강한 소환수는 없이 왔다 이거지? 내가 상대해주마.”
아무래도 마르바스가 없으면 본인이 이길 거라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좋다. 바로 대련장으로 가지.”
우리는 곧바로 대련장으로 향하곤 각자 대련장의 양측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녀석이 소환수를 소환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네 녀석은 소환수를 소환 안하나?”
이미 이쪽은 싸울 준비가 모두 된 상황.
내 말을 들은 녀석이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나는 소환사가 아닌 무투가다. 그러는, 네 녀석은 그 이상한 벌레로 변하지 않을 생각인가?”
“시험해 볼 게 있어서 말이다.”
소환사가 아니었던 건가.
여러 학생을 받는 로덴인 만큼 인재 폭도 넓은 모양이었다.
녀석이 한 준비라고는 건틀릿을 장착한 것뿐.
우리 둘의 대련을 봐주기로 한 것은 교관이었다.
“그럼, 두 팀 모두 준비──”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붙는 무투가.
“시작!”
과연 그는 내 그레고리류를 어떻게 평가할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죽어라!”
특이한 발걸음을 펼치며 나를 향해 달려드는 녀석. 점프와 동시에 오른팔을 뒤로 당기는 그 모습은 게임 속 ‘팔콘 펀치’를 연상시켰다.
“순식간에 끝내주마!”
……아무래도 내가 너무 기대한 모양이다.
“이 녀석은 아닌가 보군.”
숨을 크게 들이쉬며 공기를 몸 전체에 순환 시킨다.
양다리를 살짝 굽히고, 양팔을 허리에 붙힌 후, 녀석을 노려보며 있는 힘껏 팔을 뻗는다.
“그레고리류 오의──”
화려하면서도 우직한, 그레고리류의 검술이 펼쳐진다.
“그레고리 펀치──”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과 내 주먹이 격돌한다.
단순히 두 주먹이 격돌했을 뿐인데 폭탄이 폭발하는 듯한 소리.
내 반격에 뒤로 날아간 녀석의 주위로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확실히, 교환학생으로 온 이유가 있군.”
“…크윽! 어떻게 내 공격을!”
아, 아직 녀석에게 말하지 않았나?
나는 녀석을 향해 손을 까딱거리며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나 역시 무투가 주특기다.”
과연, 이 몸으로는 어디까지 싸울 수 있을까.
기대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