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아카바퀴 44
* * *
지금까지 2개의 다리와 4개의 팔로 싸웠다면 지금은 상대와 동등한 2개의 팔과 2개의 다리로 싸우는 상태.
허나, 그럼에도 이 몸의 내구도는 평범한 사람과 궤를 달리했다.
“설마 그 공격으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웃기지 마라!”
다시 특이한 보법으로 다가와 나에게 연속으로 주먹을 날리는 무투가 녀석.
하지만 인간의 몸임에도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녀석의 주먹이 어디로 날아올지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잘 봐라. 이게 바로 그레고리류 위빙─”
가볍게 몸을 뒤로 숙여 녀석의 주먹을 피해낸 후 연타를 꽂아 넣는다.
“그레고리류 콤비네이션이다.”
“으아아아아아아!”
녀석의 눈빛이 변했다.
하반신 쪽에서 미세한 흐름이 느껴진다. 그대로 녀석을 끌어안듯 붙어 발차기 공격을 차단했다.
“뭐하는 짓거리야!”
“…격투기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애송이군.”
상대의 몸에 붙어버리면 공격 범위가 극단적으로 줄기 때문에 데미지를 크게 줄어든다는 건 기본 상식인데 말이지.
“떨어져!”
녀석이 내 어깨를 붙잡고 있는 힘껏 떨쳐냄과 동시에 우리 사이의 틈이 생겼다.
재빨리 오른 다리를 들어 올려 무릎으로 녀석의 옆구리를 걷어 차올린다.
“커헉!”
“이 기술의 장점은 연속으로 날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고통에 몸을 수그린 녀석의 목에 깍지를 끼고 면상에 니들킥을 한 방 더 날린다.
“그, 그만!”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녀석. 그럼에도 나는 니들킥을 멈추지 않았다.
“막는 건 네 손이 아니더냐? 계속 막아봐라.”
비록 내 무릎과 녀석의 얼굴 사이에 손이 하나 있던 하더라도 충격량은 고스란히 전해질 터.
이내 녀석의 신형이 털썩 주저앉으며 경기가 끝났다.
“하아…하아… 별거 아니군.”
아마 바퀴폼이였다면 이렇게 초근접전을 할 수 없었겠지. 바퀴폼의 손은 사용하기가 꽤 어려우니 말이다.
우리의 경기를 바라보고 있던 교관이 다가와 녀석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젓는다.
승부가 완전히 끝났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승자, 그레고리 존스.”
이번에도 패배했다는 굴욕 때문일까. 저 멀리 이미 대련을 끝냈거나 대련을 준비 중인 로덴 진형의 녀석들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물론 녀석들의 굴욕 따위,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라파엘, 이번에 수확은 좀 있었나?”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라파엘.
로덴 역시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한 군데.
제국 아카데미.
아카데미 중에서도 명문이란 타이틀이 항상 붙어있는 아카데미였다.
“그레고리님 말대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이기셨네요…….”
대련장 끝에 서 있기만 하던 로제가 시무룩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자기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어디까지나 내 기술들을 확인하려 한 것이니 말이다. 나서고 싶었을 텐데, 나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아,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귀가 축 처져 있음에도 내 기분을 생각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로제.
“그건 그렇고! 로덴과 나이트가 아니라면 남은 건 제국인 건가요?”
“그래, 아마 그곳에 악마 계약자가 있을 거다.”
“하지만 대련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제국 아카데미 학생들은 지금 대련이 아닌 거로 알고 있어요.”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
어차피, 녀석들에게 정공법으로 다가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 * *
어둠이 깃든 아카데미의 밤.
나는 라파엘과 조용히 아카데미 옥상으로 나왔다.
“프리실라늄 충전할 시간인데…… 이 시간에 가려고?”
퀭한 눈을 부비며 웅얼거리는 라파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물건 하나를 건넸다.
“응? 이건 뭐야?”
“심연의 가면. 외형을 바꿀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응? 그런 아이템을 왜 주는데?”
내 설명을 듣고 나서 흥미가 생긴 듯 가면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라파엘.
“네 날개랑 외형은 너무 눈에 띄니 말이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모습을 숨겨라.”
“흐응~ 나도 ‘변신’하라는 거지? 재미있겠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가면을 착용하는 라파엘.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변신을 사용해 바퀴폼으로 모습을 바꿨다.
어두운 적갈색의 외형.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어둠 속에 숨어들기 충분했다.
“라파엘, 준비는 다 했──”
“응? 아직인데?”
라파엘의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었다.
“……뭐 하는 거냐.”
“아니이~ 신기한 게 많아서~ 이것저것 하고 있었지. 왜에? 마음에 안 들어?”
몸을 옆으로 흔들며 나를 도발하는 녀석. 가면으로 녀석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웃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장난은 그만하고 빨리.”
“치이…… 알겠다고.”
가슴을 다시 원래의 크기로 되돌린 라파엘의 날개가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순백의 천사 날개가 검게 물들 때는 타락할 때밖에 없지만 예상한 대로 심연의 가면으로는 색을 바꾸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와, 신기하네. 내가 날개를 까맣게 물들일 줄이야.”
“색만 바뀌는 거니 걱정하지 마라.”
이윽고 입고 있는 옷까지 모두 까맣게 물들인 라파엘이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내 옆에 섰다.
“이 정도면 되겠지?”
“충분하다.”
교환학생들은 기숙사가 아닌 별관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소환사 아카데미의 별관은 6층짜리 건물로 1, 2층은 관리인들이. 3층에는 여러 시설이. 4, 5, 6층에 외부 손님들이 머무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갈 곳은 제국 아카데미 학생들이 머물고 있는 6층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갈 생각이야?”
“날아서.”
“후후…. 확실히, 그게 편하지? 그런데 괜찮겠어? 워커가 알아챌 텐데.”
워커 스카이블루. 아카데미의 경비원.
“아마 괜찮을 거다. 평소에 그와 친분을 쌓아놔서 말이지. 아마 우선은 두고 나중에 물어보지 않을까 싶군.”
군대에서 간부 한 명에게 좋은 모습을 각인시켜놓으면 나중에 편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갈까?”
기숙사 옥상에서 뛰어내린 우리는 동시에 날개를 펴며 비행을 시작했다.
부르르르──거리는 시끄러운 내 날갯소리와는 달리 펄럭이며 우아하게 비행하고 있는 라파엘.
솔직히, 흑익이라니. 내 가슴 속에 잠들어 있던 남자의 로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응?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고개를 돌리며 내게 묻는 라파엘. 둘러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솔직히 말했다.
“그 날개가 멋있다고 느껴서 말이다.”
“그래에? 그럼 가면 말고 진짜로 타락해볼까?”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대천사의 타락이라니.
루시퍼만 해도 타락을 하자 천계와 전쟁을 시작했는데, 라파엘마저도 타락이라니.
상상도 하기 싫었다.
“왜? 천사를 타락시킨다. 이것만으로도 꽤 야하지 않아?”
“…두 번 경고하지 않겠다.”
“치, 알겠어.”
결국, 혀를 차고는 다시 비행에 집중하는 라파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별관 옥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아래지?”
“그래, 지금 느껴지는 건?”
“…아직은 모르겠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창문을 찾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와, 별관 수준이 거의 기숙사 상위층이랑 맞먹네?”
별관 안으로 들어선 라파엘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의 풍경에 감탄했다.
“외지인들이 머무는 곳인 만큼 아카데미의 격을 보여줄 필요가 있던 거겠지.”
실제로 지금 로제와 머무는 2학년 기숙사의 11층과 맞먹을 정도의 인테리어였으니 웬만한 귀족들도 감탄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방이 너무 많은데?”
마치 호텔 내부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복도와 수많은 방들.
하지만 내겐 대책이 있었다.
“진동이나 공기의 흐름으로 다 느껴지니 걱정하지 말아라. 녀석들의 위치는 다 파악한 상태다.”
“그래? 유능한데?”
자연스럽게 칭찬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기에 위빙으로 라파엘의 손을 피했다.
“칫, 치사하네.”
“일에 집중해라. 라파엘.”
“알겠어. 알겠다구. 그래서, 다음 목표는 뭐야? 이대로 방에 쳐들어가서 싸움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랬다간 아카데미 측에서 처벌을 받을 터. 못해도 최소 정학일 것이었다.
“그것도 다 생각이 있지. 라파엘. 나를 끌어안아라.”
“……뭐? 갑자기? 여기서?”
이 천사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날 끌어안고 신성력을 주입해라.”
“그러면 많이 아플 텐데?”
“그러라고 시키는 거다. 스킬 중에 조건부인 스킬이 하나 있어서 말이다.”
“흐음? 정말이지? 정말 안아도 되는 거지?”
“그래, 내가 멈추라고 하면 신성력 주입을 멈추면 된다.”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귀가 씰룩거리고 있는 것을 보아 입꼬리가 찢어지도록 웃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야~ 그레고리늄 좀 충전해볼까아?”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를 와락 끌어안는 라파엘.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 갑각에 맞닿으며 그녀의 심장 고동 소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흐흐흐…. 아프면 말해?”
이윽고 날개로 완전히 나를 감싸는 라파엘.
서서히,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기운이 내게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커헉!”
가슴 부근에서 엄청난 열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새빨갛게 달아오른 유리를 끌어안은 듯한 고통.
여기서 내가 마기를 흘려보내면 중화시킬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지금 이렇게 고통받는 의미가 없어진다.
“괜찮은 거야?”
“그래에……더…… 더 해라…….”
라파엘의 신성력이 더욱 강하게 내 몸을 휩쓸기 시작한다.
까딱 잘못하다간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고통.
그렇게, 이를 아득바득 갈며 고통을 버티고 있을 때, 마침내 내 눈앞에 UI 창이 떠올랐다.
[몸이 죽음에 근접합니다.]
[(특성 : 지독한 생명력)이 발동합니다.]
[지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회복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역시나. 고통이 줄어들고 머리가 상쾌해지기 시작한다.
[스킬 : 검은 늪]이 사용 가능합니다.
“그만…!”
내 말과 동시에 신성력의 공급이 멈췄다.
“괜찮아? 그레고리?”
“그래, 이 정도면 상관없다.”
[특성 : 지독한 생명력] 덕분에 고통도 크게 줄어든 상황.
나는 그대로 복도를 바라보며 [스킬 : 검은 늪]을 사용했다.
“흐엑?! 저, 저게 뭐야?”
“음? 너는 처음 보는 건가. 내 스킬이다.”
마치 땅에서 솟아오르는 석유처럼 끊임없이 솟구치기 시작하는 나의 작은 사역마들.
나는 머릿속으로 녀석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호명하는 방에 들어가 난장판을 피워라.’
내 명령을 인식한 수많은 바퀴들이 문틈으로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초 후.
“꺄아아아아아아악───!!!”
“이, 이게 뭐야아아아아──!!!”
“버, 벌레 벌레다!!!”
“살려줘!!!”
“죽여! 다 죽여버려!!!”
별관에 지옥이 도래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