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아카바퀴 47
* * *
“프리실라! 나 왔어!”
쾅! 하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문을 열어 젖힌 라파엘이 큰소리로 외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라파엘! 소리가 너무 커요. 제가 자고 있었다면 어쩌려고 했어요?”
“당연히 들어오기 전에 자는지 안자는 지 확인하고 했지~.”
“라파엘도 참…… 응? 라, 라, 라파엘! 지금 머리 위에 든 그, 그건 뭔가요! 서, 설마 그레고리님을 납치해 온 거예요?”
라파엘의 머리 위에 들린 것을 바라보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프리실라.
아무리 벌레와 곤충을 좋아하는 그녀라도 납치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하하! 프리실라도 그렇게 보이지?”
조심스럽게 껍데기를 자신의 옆에 세워놓은 라파엘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거, 그레고리의 탈피껍데기야.”
“네? 탈피껍데기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표정을 회복하고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프리실라.
검지를 편 그녀가 툭. 하고 그레고리의 껍데기를 찔렀다.
“오. 확실히, 그러네요. 그레고리님이 탈피하는 곤충이었나요?”
“나도 처음 알았어. 그레고리도 몰랐다는 눈치였고. 그레고리가 껍데기를 바로 버리려고 하기에 내가 들고 와버렸지. 어때? 마음에 들어?”
“라, 라파에엘…….”
자신만만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을 향해 프리실라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고……! 최고예요! 하아…….”
새하얗고 가냘픈 손으로 탈피껍데기의 배 부분을 쓰다듬는 프리실라.
“단단해……. 매끄럽고……. 새까메요.”
“당연하지. 다른 것도 아닌 그레고리의 탈피껍데기니까. 그리고,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니야.”
“네? 이게 끝이 아니라니…….”
“짠! 오히려 이쪽이 진짜 선물이지.”
새빨간 색을 유지하며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는 과일. 처음 보는 과일의 모습에 프리실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과인가요?”
“그런 평범한 과일이 빛을 낼 리가 없잖아? 이건 천상과라는 거야. 천계에서만 열리는 과일이지.”
“영약이란 말인가요? 라파엘도 알잖아요? 지금 제 상태는 영약을 먹어도 그렇게 성장 폭이 높지 않다는 걸.”
“그런 영약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 이건 지금의 너에게 꼭 필요한 영약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소환사니까.”
라파엘이 프리실라의 손에 천상과를 억지로 쥐여주며 말했다.
“천상과는 나와 같은 속성인 영약이야. 먹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한 이해도가 큰 폭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아마, 이걸 먹으면 너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거야.”
“……그 정도인가요?”
프리실라의 말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는 라파엘. 그런 라파엘의 붉은 눈동자를 응시하던 프리실라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먹으면 될까요?”
“응,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곁에 있어 줄 테니까.”
“……네!”
아삭.
프리실라가 작은 입을 벌려 천상과를 베어 물었다.
* * *
라파엘이 떠난 지 30분 정도가 지난 후. 몸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힘도 적당히 돌아온 것 같군.”
그대로 자고 있는 파이몬을 뒤로하고 날개를 펼쳐 아카데미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오늘 경비는 워커가 설 테니 정문으로 가는 게 맞겠지.
정문 앞에 도착하고 날개를 접자 나를 본 워커가 허허,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왜 그러지?”
“아니, 라파엘님이 자네가 조금 늦게 올 거라 했거든. 그 말을 확인하니 조금 웃음이 나는군.”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인데.
나는 ‘그렇군.’ 이라고 대답을 해주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내 바퀴 형태를 알고 있는 워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열어주었다.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되도록 벌레폼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이 나를 보면 발작이라도 하는 듯 기절하거나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인간폼으로 2학년 기숙사로 천천히 걸어가 안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엘리베이터 앞에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확인해 보았는데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종의 이유로 여기서 잠든 듯싶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흔들었다.
“으으음……?”
“정신이 드나.”
“여, 여긴?! 제, 제가 왜 여기에 쓰러져 있는 거죠?”
“……내가 묻고 싶군. 언제부터 여기에 쓰러져 있던 거지?”
“모, 모르겠어요. 분명 바람을 쐬러 나왔는데…… 괴, 괴물! 괴물을 봤어요!”
“괴물?”
2학년 기숙사에 괴물이라니. 신성 교단이 침공해 온 것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워커가 아카데미의 경비를 강화했으니까.
그렇다면, 제국 아카데미의 그 녀석 말고도 다른 악마가 있는 건가?
“새까맣고…… 마치 벌레 같이 생긴 흉측한……꺄아아악!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잠깐만.
“혹시, 그 괴물이 두 발로 서있지 않았나.”
“네? 네 맞아요!”
“가만히 서 있기만 했고?”
“네!”
대충, 이야기의 흐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꿈을 꾼 모양이군. 혹시 그 괴물이 대련장에서 봤던 모습을 하지 않았었나.”
“……맞아요! 여, 역시 그랬군요. 얼마나 끔찍한 모습이면 헛것으로 제 눈앞에 나타나다니.”
“몸이 쇠한 모양이군. 건강식도 챙겨 먹고 그러도록.”
“가, 감사합니다.”
여학생을 일으켜 세워준 나는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11층의 버튼을. 그녀는 10층의 버튼을 울렀다.
“11층이라니…… 엄청난 귀족분이신 모양이네요.”
“뭐, 그렇지.”
일단은 대공이라는 직위가 있으니까.
“여학생 기숙사에 오신 것을 보면 소환수 분인가 보죠?”
“뭐, 그렇다.”
“11층의 악마 소환수……. 나중에 꼭 보답할게요!”
띠링. 소리를 내며 멈춰서는 엘리베이터. 소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게 허리를 숙였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군.”
“네?”
덜컹. 하고 닫히는 문.
마침내 엘리베이터에 혼자 남게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라파엘, 그 망할 천사는 대체 내 껍데기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안 그래도 최근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서머니아의 도시 전설 10개 중 하나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점점 소문이 와전되어가면 내 평판에 안 좋은 영향만 끼칠 뿐이었다.
잠겨있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 자고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다녀왔다.”
“앗! 그레고리님! 라파엘님의 말대로 금방 오셨네요?”
“그래, 너는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있던 걸 보면 밀린 과제라도 하고 있던 건가?”
“정확해요!”
“그렇군. 그러다 자기 전에 라파엘을 만나 내 이야기를 들었고?”
“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 앞에 기절해 있던 여학생에 대해서도 알겠군.”
“네!, 네?”
“대충 정황상 내 껍데기를 들고 가다 여학생을 기절시킨 거겠지. 너희는 놀라서 도망간 거고.”
“라, 라파엘님이 큰 문제는 없다고 하셨어요! 조금만 있으면 일어날 거라고, 이런 건 그냥 꿈에서 봤다고 믿는 게 좋을 거라면서 모른 척하자고 했어요!”
갑작스러운 내 추궁에 몸을 바둥바둥거리며 로제가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 그레고리님의 껍데기를 봤으니 실제로 깨워봤자 또 기절했을 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죄송해요오…….”
이내 침울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푸욱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다만, 나중에 그 학생을 보면 그때의 일은 사과하도록.”
“네. 꼭 할게요. 저, 그런데 그레고리님.”
“설마 또 다른 사고라도 친 거냐?”
내 말에 로제가 당황하며 양팔을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그레고리님에게 평소보다 더 강한 힘이 느껴져서요. 혹시 3성으로 올라가신 건가요?”
“역시 알아채는군.”
지금은 바퀴폼도 아닌 인간의 형태. 외형으로는 절대 추측할 수 없다 생각했으나 내 소환사인 로제는 예외인 모양이었다.
“헤헤, 그야 저는 그레고리님의 소환사니까요.”
“이제는 3서클과 3성 관계가 되었으니 4서클과 4성을 노려봐야겠지?”
“네? 그, 그게 그렇게 빨리 될까요?”
“글쌔, 네가 하는 걸 봐야겠지.”
“우으으…….”
나는 그렇게 말하곤 로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그녀를 뒤로하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기 전에 찝찝한 기분을 샤워로 날려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스킬을 사용해보지 않았군.”
이번에 3성으로 올라가며 새롭게 생긴 스킬 후각 상승.
이름만 들어서는 그저 냄새를 더 잘 맡게 하는 정도로밖에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후각 상승.”
눈을 감고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스킬 : 후각 상승]을 발동합니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무언가가 느껴진다.
“……이건, 로제의 담배 냄새인가.”
달달하면서도 구수한. 세계수의 잎을 태운 잔향.
그 잔향의 흐름이 후각으로 느껴진다.
마치 제3의 눈이 생긴 것 같은 감각으로 거리와 위치마저 희미하게 느껴졌다.
“……상상 이상이군.”
더 놀라운 사실은 방 너머의 냄새마저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프리실라의 방 쪽에서는 꽤 이상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맡는 것만으로도 상쾌하지만 고통스러운, 맡고 싶지 않은 냄새.
“…신성력.”
악마의 본능이 그 냄새는 신성력의 냄새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프리실라가 3서클에 다다른 모양이군.”
이 정도의 성능이라니, 나에게 제3의 눈이 생긴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력한 거냐 바퀴벌레…….”
이 세계에 처음으로 바퀴 모습을 하고 올 때만 해도 좆됐다고 생각한 나였다.
바퀴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존재였으니까.
심지어 인간 크기의 바퀴?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앙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습은 그야말로 강력하게 작용했다.
적들은 내 모습에 기절했고 내 마법에 쓰러졌으며 내 능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끔찍하군.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라파엘에게 돌려받았던 심연의 가면을 꺼내 들었다.
“변신.”
바퀴폼으로 변신한 후 눈앞에 떠오른 커스텀마이징 창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3성으로 오른 상황. 저번보다는 훨씬 많은 변화가 가능할 터였다.
“조금 만져볼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커스텀마이징 창을 조금씩 조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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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니아의 도시전설 10]
늦은 밤 골목길을 돌아다니면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벌래 형태의 괴물에게 정신력을 흡수 당한다.
가끔 서머니아의 하늘에서 이 괴물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절대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