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49화 (49/169)

〈 49화 〉 아카바퀴 ­ 49

* * *

오르가 레빈포트.

총장인 메를린 리큐르가 아카데미 내부적인 일을 처리한다면 그녀는 외부적인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아쿠아마린색의 긴 머리와 파랑과 노랑으로 이루어진 오드아이. 새하얀 제복 차림으로 교단에 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둘러보고 있었다.

“저, 저분이 부총장님…….”

“로제, 너도 처음 보는 건가.”

“네, 부총장님은 항상 바쁘시다며 교내일정에 참여하시는 법이 없었거든요. 역시 소문만큼 아름다우시네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색이 매우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톡톡. 교단에 붙어있는 마이크를 두어 번 두드린 오르가가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만나서 반갑다. 자랑스러운 소환사 아카데미의 학도, 소환수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부총장이라 부르는 자. 오르가 레빈포트라고한다.]

푸른 자신의 머리처럼 청명하고도 올곧은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는 그녀. 부총장이라는 직위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있었다.

[어젯밤, 우리 아카데미는 미증유의 위협을 받았다. 바로 악마가 별관에서 제국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테러를 일으킨 것이지.]

사실은 내가 한 거지만.

[물론, 테러를 일으킨 학생 역시 제국 아카데미의 학생들이었기에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질 책임이 없다. 오히려 보상을 받아야 하지.]

그녀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나는 너희들에게 죄를 묻기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대들에게 아는 것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대들은 입을 닫을 것이란 것을 안다. 아카데미의 법은 그대 종족의 법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레고리 번역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들이 제대로 말하지 않을 걸 안다. 너희는 악마고 악마들은 이런 것에 민감하니까.’

[그렇기에, 그대들끼리 1교시 동안 오늘의 사태에 대해 서로 말하게 할 셈이다. 부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군.]

“……대단하군.”

“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로제가 휙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소환사로서의 아카데미 생활을 얼마 하지 않은 로제는 저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발설하게 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정보가 흘러들어오게끔 만든거라네.”

“자연스럽게요?”

어느센가 우리 옆에 다가온 마르바스가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 자리를 통해 악마들이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의 소환사들에게 이야기를 하게 될거네. 자신의 소환수가 그 일에 휘말리는 것은 피해야 하니 말이네.”

“아! 그렇게 된다면 소환사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돌고 그 정보는 아카데미로 흘러들어간다. 이 말인가요?”

“우리 소환사는 훌룡하군.”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제의 머리를 쓰다듬던 마르바스가 시선을 옮겨 부총장, 오르가를 바라본다.

[본인은 앞으로 3일가량 부총장실에서 제국 아카데미로 책임을 묻는 글을 써야하기에 상시 부총장실에 있을 예정이다. 용무가 있다면 찾아오도록. 이상.]

삐이이익­ 소리와 함께 끊기는 마이크. 오르가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체육관 밖으로 나섰다.

“어제 일에는 그대가 연관되어 있겠지?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주지 그런가.”

손가락을 튕기며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는 마르바스.

역시 검성이라 할지다로 최상위 악마답게 마법 또한 조예가 있던 모양이었다.

“별 건 아니다만…….”

그렇게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추려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니까. 테러를 가한 건 결국 자네였다? 이 말인가?”

“그렇지.”

“……어이가 없군. 그런 주제에 뻔뻔하게 다른 악마가 저지른 일이라고 하다니.”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오히려 이것으로 제국 아카데미에 빛을 지운 셈이니 좋지 않나.”

또한, 그 과정에서 아몬이 인간계를 노린다는 정보까지 얻었다.

흐름 상, 이대로 할파스를 악당으로 모는 쪽이 훨씬 이득이라 판단했을 뿐이었다.

“그대가 대충 어떤 생각으로 일을 벌였는지는 알겠군.”

“그래,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기왕 다른 악마들까지 모조리 모은 김에 아몬에 대한 정보를 캐자는 거군.”

“그래, 정답이다.”

내 제안에 미소를 지은 마르바스가 마법을 해체한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들리는 웅성거림.

수많은 악마들이 나와 마르바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자연스럽게 로제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마르바스.

“로제, 한 번 해보겠나?”

“네? 뭘요?”

“별 것 아니라네. 우리를 뒤에 두고, 다른 악마들을 모조리 이곳으로 모으면 되는 일이지.”

“아! 그런가요? 할래요! 할래요!”

그렇게 외치고는 통통 튀는 걸음으로 교단을 향해 달려가는 로제.

우리는 묵묵히 미소만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아─아─ 들리나요. 다들?]

로제의 흥 많은 목소리가 금세 체육관 안에 울려 퍼진다.

순식간에 모여드는 시선. 그 시선을 느낀 로제가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저는 과분하게도 그레고리 존스님과 마르바스님을 소환수로 두고 있는 소환사 로제라고 해요. 제 얼굴을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다시 한번 체육관이 술렁인다.

나보다는 마르바스 때문인듯했다.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마이크를 잡았답니다아~. 그럼 여러분~ 모두~]

싱긋 미소 짓는 로제.

[집합하세요. 1분 드리겠습니다.]

로제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괴물이 깨어났다.

[각자 서열과 계급을 생각해서 확실하게 집합하세요. 반박하실 분? 당장 마르바스님께 가서 싫다고 하세요. 역소환 맛좀 보여드리게.]

[네? 왜 제 말을 들어야 하냐고요? 꼬우면 그레고리님이랑 마르바스님 같은 악마랑 계약하시던가요.]

[우리 소환수분들이 시키신 일인데 발이 보이네요?]

그야말로 행복하다는 듯이 외치고 있는 로제. 듣기엔 오싹한 발언들일지 몰라도 그녀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와~ 다들 말을 참 잘 들으시네요. 착해요. 착해. 네? 본인이 아카데미 선배라고요? 그래서, 여기가 지금 아카데미로 보여요? 여긴 사실상 소마계에요 소마계. 악마들만 모인 공간이라고요. 말은 좀 가려서 하시죠?]

[봐봐요! 거기 소환수 악마님도 말리고 있잖아요. 아카데미에서 뒷감당? 어차피 저랑 친한 선배도 없는데 무슨 뒷감당이에요~ 얼마 전만 해도 이미 혼자였답니다~]

그야말로 폭주하는 기관차. 핸들이 고장이 난 8t 트럭이나 다름없는 모습.

분위기가 더욱 가열될 것 같기에 나는 재빨리 그녀의 마이크를 꺼버렸다.

“엣? 재미있었는데…….”

“거기서 더 했다간 정말 복잡해졌을 거다.”

이 안에는 3학년도 있었으니 더했다간 정말 아카데미 생활이 고달파질 수 있었다.

“헤헤……. 그래도 재미있네요!”

“생각보다 잘 다루더군. 예전에 사람들을 다뤄본 적이 있는 건가?”

“저희 가문은 세계수를 노리고 온 도적들한테 밭일을 시키고 있거든요. 부모님이 하시는 걸 보고 배운 거죠.”

……세계수 카르텔의 떡잎이다. 이건가.

“대충 정리는 다 되었군.”

로제의 고향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르바스가 체육관에 도열 한 악마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마르바스가 마이크를 잡는다.

[길게 말하지 않겠네. 살아서 마계에 발을 붙이고 싶으면 아몬에 대해 아는 정보를 모조리 털어놓도록.]

……….

순식간에 휩싸이는 정적.

그 광경을 보며 로제는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역시 마르바스님이시네요!”

“이런 녀석들은 이렇게 말해야만 말귀를 알아먹으니 말이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말을 꺼내는 악마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 로제 파티에선 나 혼자만 정상인가.

“그레고리.”

묵묵히 미소만 짓고 있던 마르바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음?”

“그걸 사용하지.”

“……뭘 말인가.”

“그거 말이네 그거. 어제 사용했다는 그거.”

“……그걸 사용하면 어제 일도 내가 했다고 자백하는 거나 다름없게 되는데.”

“대충 말만 맞추면 되지 않겠나. 그대가 할파스를 막으려 했고 할파스가 마법으로 자네 마법을 폭주시켰다. 이 정도로 말일세.”

미친…….

“마르바스.”

“음?”

“천재인가.”

그렇게 말하면 의심은 받더라도 내가 범인이라고는 말 못 하겠지.

이 전개로 가는 게 아카데미에서도 이득이 될 테니까.

“변신.”

나는 곧바로 변신을 펼치고 도열해있는 악마들을 바라보았다.

“저, 저 끔찍한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심연! 심연이 느껴진다!”

“끄, 끔찍해! 이쪽을 보지마!”

“괴, 괴물이야! 저딴 게 악마라고?!”

“전능하신아라카트여전능하신아라카트여전능하신아라카트여전능하신아라카트여”

……여기에도 아라카트의 신도가 있는 건가.

변신만으로도 순식간에 충격에 휩싸이는 체육관.

그 와중에도 심연의 가면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고위 악마들마저도 내 겉모습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오랜만에 겪는 상황이라 그런가.

여전히 내 겉모습을 보고 욕을 때려 박는 것은 꽤 짜증이 났다.

……재미있어지겠네.

엄청난 공포의 감정이 내 몸을 훑고 있었다.

역시, 나는 악마 체질이다.

”말을 쉽게 열지 않는 그대들을 위해, 내가 잠깐 도움을 주지.“

[스킬 : 검은 늪]을 발동합니다.

체육관의 허공에 새까만 구멍 하나가 생겨났다.

”저, 저게 뭐야?“

”구멍?“

”전능하신아라카트여전능하신아라카트여전능하신아라카트여전능하신아라카트여전능하신아라카트여“

출렁. 하고 어둠이 흘러내린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씨발 이게 뭐야!!!!!!!!!“

”살려줘!!!!!!!!!!!!!!!!!!!“

검은 구멍에서 흘러내린 바퀴의 무리가 순식간에 체육관 바닥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다.

물론, 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돌아다녀라. 라는 명령만 내렸을 뿐.

”와……. 여기 서 있는 게 다행이네요.“

내 뒤에 서 있던 로제가 중얼거린다. 힐끔 시선을 돌리니 그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귀에 걸려있는 피어싱 덕분인지, 기절하거나 패닉을 일으킬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살려줘어어어어어!!!!!!!!!!!!!!!!“

물론 아래는 그야말로 지옥도다.

”푸르푸르! 푸르푸르! 푸르푸르!“

”예, 여기는 안전합니다.“

온몸에 전류를 두르고 공중으로 대피했던 푸르푸르가 파르페를 안아 들고는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아직도 고개를 푸르푸르에 파묻고는 벌벌 떨고 있는 파르페.

이에 곤란하다는 듯 푸르푸르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잠시 여기에 있어도 되련 지요?“

”알아서 해라.“

나는 가볍게 그렇게 말하곤 아래서 펼쳐지고 있는 현란한 춤사위들을 바라보았다.

음, 역시 재미있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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