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아카바퀴 50
* * *
우리의 뒤에서 파르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옥도를 바라보고 있는 푸르푸르.
그 모습은 너무나도 평온스러웠기에 의문을 가지고 말을 걸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저 앞의 풍경을 보고도 말이다. 고위 악마들도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말이지.”
실제로 고위 악마들은 공중으로 대피해 작금의 상황을 피하고 있었다.
뭐, 플라잉 바퀴의 참교육이 들어갔지만.
“당연히 저도 무섭지요. 어째서일까요. 처음 보는 생명체임에도 이렇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그렇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군.”
“표정 관리만큼은 자신 있기에.”
“……그러냐.”
그런데 어째서일까.
녀석에게선 공포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푸르푸르여.”
뒤에 있던 마르바스 역시 그런 푸르푸르에게 관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그대 정도의 악마라면 아몬에 대해 아는 바가 있겠지? 내 영토에서 일어난 일들도 포함해서 말일세.”
“글쎄요. 저 역시 마계에 돌아간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말입니다. 최근에 벌어진 일이라면 잘 모르겠군요.”
“……그런가.”
이 자리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마르바스가 물러선다.
“그레고리. 슬슬 이 정도면 될 것 같네.”
“그래? 알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체육관을 가득 돌아다니던 바퀴들이 검은 가루가 되어 공중에 녹듯 사라졌다.
“흐에에에………….”
“살았어! 살았다고!”
“어머니…….”
바퀴가 사라진 직후, 그를 대신하듯 눈물과 울먹임이 퍼지기 시작했다.
공격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사역마들을 풀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역시 바퀴의 공포는 최강이군.
[마르바스다. 시간 관계상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아몬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다면 언제든지 본인을 찾아오도록.]
의외로 쉽게 보내준다는 말을 하는 마르바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 그때까지 그대들은 자면서도 경계해야 할 걸세. 그 검은 벌레가 그대들의 침대 밑에 있을지, 화장실에 있을지, 자는 동안 얼굴 위를 기어가지 않을지 걱정하면서 말일세.]
부르르─ 하고 아래 있던 인물들이 몸을 떨었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녀석들에겐 이미 바퀴에 대한 공포가 몸 구석구석까지 박힌 모양이었다.
그와 동시에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이에 마르바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1교시 끝. 방금 있었던 일은 우리들만의 비밀로 하지. 무슨 말인지는 다들 알아들었으리라 믿겠네.]
그렇게, 아카데미의 악마들은 마르바스 아저씨와 비밀친구가 되었다.
* * *
정신없던 1교시를 보낸 우리는 2교시인 마법 수업을 듣기 전 흡연장으로 향했다.
“아, 그레고리님. 그거 아세요? 벌레들은 담배 연기에 약하대요.”
“음? 갑자기 말인가.”
“헤헤, 갑자기 생각나서요. 제가 있는 마을에서 가끔 용돈이랑 편지가 오는데 거기에 적혀있더라구요.”
로제의 집안인 유글리아 가문은 세계수를 관리하는 만큼 그 지역에서만큼은 커다란 위용을 가지고 있다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런가. 그래도 네 담배 연기라면 오히려 벌레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로제는 담뱃잎을 태우는 게 아니라 세계수 잎을 태우는 거니까.
“음, 그럴까요? 그나저나 데킬라양이 안보이니까 쓸쓸하네요.”
데킬라는 아카데미에 몇 없는 로제의 흡연 친구였다. 그런 그녀가 ‘소환수 탐색’을 떠났으니 외로워하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데킬라 말고도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은 많을 텐데?”
“그건 맞지만……. 절 아직까지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로제에 대한 시선이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열등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훨씬 즐거워지지 않았나.”
“맞아요! 엘레나양이랑도 친해졌구, 파르페양도 마주치면 인사를 해줘요. 그 외에 다른 분들도 제게 인사를 먼저 해주시고요.”
헤헤 웃으며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내는 로제.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게 소환수와 소환사의 인연이라는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든다.
“다 피웠네요. 그레고리님은 이번에도 안 들으시나요?”
“아니, 이번엔 마법 수업에 들어갈 생각이다.”
과거에는 마력을 일으키지 못했으나 3성으로 오른 지금은 충분히 운용이 가능했다.
간단한 마법 정도는 가능하리라.
“네! 그러면 같이 가요!”
늦지 않게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 수업 교관이 들어왔다.
“자, 여러분 반가워요. 요즘 아카데미가 매우 시끄럽죠? 그래도 뭐, 부총장님이 오셨으니 해결되겠죠. 자자, 다들 수업 시작할까요?”
조그마한 몸을 이끌고 교단 뒤에 서자 그 작은 체구가 가려 모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읏차!”
그렇기에, 마법을 배우는 교실의 교단에는 항상 발 받침용 상자가 있었다.
“후, 수업 시작할까요? 응? 그레고리 학생. 오랜만에 보네요?”
“그래, 오랜만이군.”
“마법적인 발전은 있었나요?”
“그래서 나왔지.”
“……뻔뻔하네요. 자, 오늘은 몸에 속성 마법을 부여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볼 거에요. 다들, 무기에 속성을 부여하는 정도는 할 수 있죠?”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교관. 이내 그녀의 지팡이 끝에 불꽃이 서렸다.
“자, 이렇게 무생물인 물건에 속성을 부여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생명체라면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손을 튕기자 그녀의 검지에 불꽃이 서렸다.
“물론 가능하답니다. 어때요? 이 손으로 딱밤을 때리면 엄청 아프겠죠?”
……불꽃.
“자, 그럼 우선 술식부터 적도록 할게요. 초반에는 무생물에 부여하는 술식과 다를 게 없어요. 몸 안의 마나를 이렇게…… 이렇게…… 돌린 다음에 영창으로 마무리를 하면 되는 거죠.”
……파이어 바퀴.
그래, 나는 파이어 바퀴가 되겠다.
마법 교관의 손에 따라 칠판에 펼쳐지는 기하학적인 문양들.
물론 현대인이자 마법사가 아닌 나는 봐도 모르는 그림일 뿐이었다.
“물론, 술식과 영창만 안다고 다 사용할 수 있다면 개나 소나 다 마법사를 했겠죠? 한 번 해봅시다.”
……파이어 바퀴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그레고리님? 도와드릴까요?”
옆에서 술식들을 공책에 옮겨적고 있던 로제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괜찮다. 저기 놀고 있는 교관에게 부탁하지.”
“뎃? 지금 교관이 놀고 있다고 한 건가요?”
“앉아서 사탕이나 빨고 있으면 그게 노는 거지 일하는 건가?”
“……당 충전은 마법에 큰 효과가 있는데요. 그래서, 그레고리 학생은 뭐가 문제인데요?”
투덜투덜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교관. 여전히 그녀의 입에는 사탕이 물려있다.
“칠판에 적힌 걸 전혀 모르겠다.”
“……저건 마법의 기초인데요?”
“나는 저런 거 없이도 마법을 쓸 수 있다만.”
실제로 스킬을 발동만 해도 마법이 자연스럽게 발동되니 저런 걸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하아, 그래서. 몸으로 일단 부딪혀 보겠다는 건가요?”
“말이 잘 통하는군.”
“확실히, 옛날에 술식을 모르는 제자들에게 스승님이 해주셨던 방식이 있죠. 한 번 해보실래요?”
“그런 방법이 있다고? 그렇다면 그쪽이 효율적이지 않은가.”
“그야 그렇지만……. 당신은 한 번 본 그림을 똑같이 그릴 수 있나요?”
한 번 본 그림을 똑같이 그린다니, 그런 게 가능하다면 화가들은 모조리 길바닥에 나앉았겠지.
“흉내 정도야 가능하겠지.”
“일단 해드릴게요. 원래라면 수십 수백 번을 반복시켜서 몸이 기억하게끔 만드는 건데……. 다른 반도 교육해야 하는 제 입장인 만큼 자주는 못 해줘요.”
그럼에도 그녀는 내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역시, 아무리 수업시간에 사탕이나 먹고 있어도 아카데미의 교관이라는 건가.
“혹시 모르죠? 그레고리 학생이 마법에 엄청난 천재라서 한 번에 가능할지도.”
그렇게 말한 그녀가 말하느라 입에서 빼고 있던 사탕을 다시 물고는 내 뒤로 돌아간다.
“욧차.”
까치발을 들고는 내 등에 양손을 가져다 대는 교관.
등 너머로 그녀의 작은 손바닥이 느껴진다.
“지금부터 손가락 끝에 불꽃을 부여하는 술식을 만들 거에요. 이걸 하기 위해선 그레고리 학생의 마력을 제가 운용해야 하니까 힘은 쭉 빼고요.”
그녀의 말대로 몸에 힘을 뺀다.
“이제 몸 안에 있는 마나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려고 할 텐데, 이때도 절대 마나를 움직이려고 하면 안 돼요. 그냥 내버려 두고 저에게 통제권을 넘겨요. 알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몸 안에서 흐르는 마력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자, 시작할게요.”
인체에는 마치 혈관처럼 넓게 퍼져있는 마력이 흐르는 길이 있다.
그리고 이 길을 어떤 순서로, 어떤 속도로, 어떤 생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마법이 발현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몸 안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 발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간지럽히는 느낌. 그렇기에 간지러움이 느껴지는 것이리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오른손 검지에 불꽃이 서렸다.
“끝. 느낌은 알았나요?”
화르륵 하고 손끝에 피어오르는 불꽃.
잠깐, 이거 마르바스랑 파이몬 같은 놈들이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쓰는 마법이 아닌가?
실제로, 그 방식이 너무나 똑같았다.
“음. 꺼졌네요.”
교관이 등에서 손을 뗀 직후, 마법이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어때요, 어렵죠?”
확실히, 방금 전 몸에 흐르던 느낌을 기억하라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나에겐 그게 있었다.
[새로운 스킬을 획득합니다!]
[화염 인첸트 (Lv.1)]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창.
방금전의 흐름을 내가 사용한 것으로 판단한 시스템이 몸에 흐르는 마력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기억한 것이었다.
“……쉽군.”
“네?”
역시 ‘시스템’은 사기다. 이러니까 사회에서 술 먹던 친구 놈들이 그렇게 ‘상태창! 상태창!’을 외쳤겠지.
나는 마음속으로 상태창을 불렀다.
[마계의 대공, 그레고리 존스]
[★★★☆☆☆☆☆☆☆]
[특성]
1. 귀족
2. 지독한 생명력
3. 탐(?)
[스킬 목록]
1. 변신 (Lv.Master)
2. 폭발적인 속도(Lv.4)
3. 후각 상승 (Lv.1)
4. 화염 인첸트(Lv.1)
지금은 인간폼이라 스킬의 개수가 줄어든 상태이지만 확실히 스킬이 등록돼있음이 눈에 보였다.
“이렇게 하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속으로 화염 인첸트를 발동시킨다.
그와 동시에 손가락 끝에 피어오르는 불꽃.
“뎃?”
“쉽군.”
파이어 바퀴.
조금만 기다려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