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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52화 (52/169)

〈 52화 〉 아카바퀴 ­ 52

* * *

도시를 돌아다니며 적당히 시간을 때운 후, 대련시간에 맞춰 아카데미로 돌아가자 워커가 나를 반겼다.

“일찍 왔군?”

“곧 대련이 있다.”

“그래? 응원하겠네.”

워커를 뒤로하고 로제를 찾아 나섰다. 지금 시간에 그녀가 어디 있을지는 불 보듯 뻔했기에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레고리님!”

“……역시 여기 있었구나.”

“헤헤. 찾으셨어요?”

그녀는 마르바스와 함께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니, 여기 있을 거 같아서 곧바로 달려왔지.”

“나를 너무 잘 아신다니까~. 아! 마르바스님도 함께 대련장으로 가신다는 모양이에요. 대련 교관님께 부탁을 받았다나?”

마르바스의 표정을 보아하니 신입이라고 짬 맞은 모양이었다.

“자네, 지금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지?”

“전혀.”

이걸 읽는다고? [특성 : 귀족]으로 표정을 관리했는데?

“미리 말하지만 절 때 업무를 떠넘겨 받거나 한 건 아니라네.”

짬 맞았네. 짬 맞았어.

“그래, 알겠다. 그럼 바로 갈 건가?”

“흠, 지금쯤 가면 딱 맞겠지.”

그렇게 우리는 대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대련장 주위에 모여있는 학생들.

마르바스가 다가오자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오늘은 대련 교관이 부총장님께 불려간 관계로 내가 대련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계로 2학년의 검술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같이 듣게 되었으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아, 제국 아카데미 학생들이 섞여 있던 이유가 그거였나.

물론 악마 사건에 연루된 녀석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는 친구들이 소환사 아카데미의 미래들인가? 반가워!”

환한 미소를 머금고는 우리를 향해 밝은 인사를 건네는 남성.

백금발에 인싸 죽어. 가 절로 나오는 외모를 가진 남성이었다.

“나는 나무엘 론 하인베른. 짧은 시간이지만 잘 부탁해!”

머리색과 하인베른이라는 성. 황녀인 프리실라의 친척쯤 되는 모양이었다.

“로제, 알고 있나?”

“네? 아니영?”

로제가 모르는 걸 보면 중요한 인물은 아니겠지.

“아! 그쪽이 1학년의 초신성이라는 로제와 그레고리 존스. 라는 소환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그리고는 갑자기 우리한테 말을 걸어온다.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고?”

내가 인생을 살며 깨달은 진리 중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웃으며 다가오는 놈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초면에 웃으면서 다가오는 놈들은 대부분 사기꾼이거나 사이비였으니까.

“맞아. 까불던 로덴 녀석들을 제대로 혼쭐내줬다지? 아마 다른 아카데미에서 온 녀석들도 다 알고 있을걸?”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오려는 녀석. 재빨리 로제의 앞에 서서 녀석의 접근을 차단했다.

“하하……. 친해지려고 한 건데. 불편했다면 사과할게.”

“그 사과 받아들이지. 볼일 보도록.”

면상에 대놓고 꺼지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예의를 갖추어 꺼지라고 돌려 말해주었다.

그러자 멋쩍은 미소를 짓는 녀석.

“하하, 내 볼일은 너희였는데 말이야.”

…계속 달라붙네.

바퀴도 아니고 무슨.

“대체 무슨 볼일이지.”

“사실 너희 실력이 보고 싶었거든.”

“……결국, 싸우고 싶다는 말을 돌려서 말하는군.”

“하하! 싸운다니. 말이 섭섭한걸? 그냥 서로의 실력을 겨뤄서 위를 목표로 하자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눈에서 호승심이 느껴진다.

“……알아서 하도록.”

“그래? 좋아! 규칙은 서로 한 명의 소환수만 사용하기, 어때?”

“소환사였나?”

“소환사라기보단, 소환수를 다루는 기사에 가깝지.”

정령기사 같은 존재라는 거군.

“굳이 소환수를 한 명만 두는 이유는?”

내 물음에 녀석이 힐끔 마르바스를 바라본다.

“마르바스 교관이 나서면 나도 좀 힘들 것 같거든.”

그 소리를 뒤에서 듣고 있었는지 마르바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보는 눈이 있군.”

저 녀석은 왜 껴들고 난리야.

“나는 안 힘들다 이건가?”

“글쎄?”

이 정도면 아예 오늘 수업 때 우리와 싸우려고 작정을 하고 온 건가?

마침 파이어 바퀴의 희생양도 필요했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제?”

의사를 묻기 위해 뒤를 돌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고 있는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그레고리님.”

“음?”

“저 녀석, 반 죽여버리죠.”

“뭐?”

쾅! 하고 로제가 맨땅에 발을 구른다.

“그레고리님을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데 소환사로서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그리고…… 프리실라가 따로 해준 이야기가 있어서요.”

“프리실라가 말인가?”

그녀도 이 녀석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가.

“네, 자기랑 같은 하인베른 성을 가진 사람이 시비를 걸면 반 정도 죽여달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프리실라에게 저 녀석은 그리 중요한 녀석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야기가 쉬워지지. 올라와라.”

나와 로제는 그대로 대련장 위로 올라섰다. 그런 우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무엘.

“라구엘.”

그의 부름에 하늘에서부터 빛의 기둥이 쏘아졌다.

갑작스러운 섬광에 모두가 눈을 찡그리고, 이내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을 때.

우리는 빛이 떨어진 그 자리에 한 여성이 서 있음을 깨달았다.

“한창 낮잠을 즐기려고 했는데 말이죠…….”

졸린 눈을 손으로 비비며 웅얼거리는 단발머리의 소녀.

등 뒤에 달린 순백의 두 날개는 그녀가 천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자신 있는 이유가 있었군.”

대천사 라구엘. 라파엘처럼 4대 천사는 아니었지만 7대 천사에 포함된 네임드 유닛이었다.

“신성 제국의 왕족들은 대게 천계의 존재와 계약을 맺으니까.”

그렇게 말한 나무엘이 대련장 건너편에 서자 그의 뒤를 따라 하품을 하며 대련장에 올라서는 라구엘.

“로제.”

“네.”

“라구엘의 능력은 치유와 징벌이다. 상대의 카르마 수치에 따라 데미지가 달라지지.”

“네? 그건 신성 아닌가요?”

“신성은 마기 계열에 한정되지만, 저 녀석의 능력은 그렇지 않아, 삶 속의 죄의 유무에 따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능력이다. 최대한 녀석의 징벌만큼은 피해라.”

“……네!”

우리의 대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무엘이 싱긋 웃는다.

“그럼, 시작해도 될까?”

그의 물음에 마르바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로제. 보조 마법.”

“네!”

로제의 대답을 들음과 동시에 나무엘을 향해 달려갔다.

로제의 마법이 몸에 깃들며 점점 빨라지고 힘이 넘쳐흐른다. 아직 변신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스킬 : 화염 인챈트]를 발동합니다.

양손에 깃드는 불꽃.

시작부터 파이어 펀치를 녀석의 면상의 날려주기로 결심했다.

“아까 내가 기사라는 말을 못 들은 거야?”

그리고 그런 나의 공격이 우습다는 듯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고는 불꽃에 휘감긴 손을 쳐내는 나무엘.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그대로 스킬을 적용. 몸을 회전시켜 녀석의 허리춤을 향해 발로 일격을 먹였다.

“크윽! 무투는 제법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 라구엘!”

“네에…네에…….”

그녀의 손에서 새하얀 빛의 무리가 생겨나며 내 발차기가 먹혀들어 간 녀석의 허리를 감쌌다.

이내 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나무엘.

“계속할까.”

이 녀석. 지우 같은 부류다.

포켓몬에게서는 지원을 받고 소환사 스스로가 싸움에 나서는 괴상한 녀석들.

설마 소환수를 다루는 기사라는 게 이런 뜻이었을 줄이야.

“로제! 라구엘은 네가 상대해야 한다!”

“네!”

내 말과 동시에 로제 역시 검을 뽑아 들며 라구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무엘……직접 움직이기는 귀찮은데요…….”

“이번 대련 끝나면 이틀 동안 안부를 게!”

“……약속 지켜야 해요.”

로제가 달려오는 것을 본 라구엘이 날개까지 활짝 펴며 기지개를 켰다.

“끄으으응……. 정말 귀찮은데.”

그녀의 손에서 빚어지는 새하얀 빛의 검.

저게 바로 라구엘의 특수 능력. 「징벌」 이었다.

“그레고리. 너무 저쪽에 신경 쓰는 거 아니야? 네 상대는 난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참격.

“변신.”

빛무리를 일으키며 변신한 후 양팔을 교차시켜 녀석의 검을 막아낸다.

“윽! 징그러워!”

“닥쳐라.”

갑각에 닿은 검이 기기기긱거리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팔을 따라 흘려내린다.

힐끔 확장된 시야를 통해 로제쪽을 바라보니 그녀는 라구엘의 공격을 잘 받아내고 있었다.

“저쪽 아가씨가 쓰는 검, 보통이 아닌가 봐?”

불굴. 용사 라스의 신화가 담긴 검. 그런 검이 「징벌」 따위에 밀릴 리가 없었다.

“네 걱정이나 하시지.”

[스킬 : 화염 인챈트]를 발동합니다.

순식간에 온몸에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다.

“무, 뭐야 그건?”

“파이어 바퀴 모드.”

줄여서 불바퀴 모드라 부르기로 한 형태였다.

“이제부터는 꽤 따끔할 거다.”

그대로 4개의 팔로 녀석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주먹을 흘려내고, 피하고, 막아내는 녀석.

자신을 기사라고 소개한 게 거짓은 아니었는지 나이트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요컨대, 맞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스킬 : 날개 펼치기]를 발동합니다.

날개를 움직여 흙먼지를 일으킴과 동시에 폭발적인 속도를 이용해 신체 능력을 증가시킨다.

점점 녀석의 표정이 구겨지기 시작한다.

“라, 라구엘!”

“……바쁜데요오.”

그녀의 검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 빛이 나무엘의 몸을 감싼다.

“하하! 이러면 소용없지?”

화염에 조금씩 데미지를 입기 시작한 녀석의 피부가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로제! 막아야 한다!”

“……네!”

로제는 있는 힘껏 불굴을 휘두르며 라구엘을 공격하고 있지만, 라구엘 역시 검술에 조예가 있는지 요리조리 로제의 공격을 잘 받아내고 있었다.

아니, 잘 받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프엘프. 당신의 죄는 어느 정도인가요?”

그리고, 라구엘의 검이 로제의 몸을 대각선으로 갈랐다.

“아.”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다. 「징벌」은 외부가 아닌 내부를 공격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겠죠…….”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한 로제의 몸 곳곳을 「징벌」이 여러 번 훑는다. 도합 4번이 넘는 참격.

라구엘의 모든 공격을 허용한 로제가 몸을 부르르 떨며 뒤로 물러섰다.

“로제!!!!!”

“네 상대는 나라니까?!”

한쪽 눈으로는 로제를 다른 한쪽 눈으로는 나무엘 녀석을 바라보며 공방을 동시에 펼친다.

신경의 반이 로제쪽으로 치우쳐져서인지 녀석이 내 공격 사이로 반격을 넣기 시작했다.

“그, 그레고리님! 저는 괘, 괜찮으니까!”

“징벌을 그렇게 맞지 않았나!”

“지, 진짜로 괜찮은데요.”

“……뭐?”

확실히, 그렇게나 징벌을 얻어맞은 것 치고는 로제의 평온이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응? 그럴 리가 없는데 ……보통은 불로 달군 검으로 쑤시는 느낌이라 하고…….”

눈이 반쯤 감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로제를 바라보며 웅얼거리는 라구엘.

“……어. 그냥 조금 따끔한데요?”

그런 그녀에게 로제는 멋쩍다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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