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아카바퀴 55 (삽화추가)
* * *
“갑자기 제국 아카데미라니.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군.”
부총장의 호출이라기에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은 했지만 그게 설마 제국으로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음, 너무 갑작스러웠나. 확실히,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간단하게 설명해주도록 하지.”
제국 아카데미 학생들 중 한 명이 악마와 계약해 우리 아카데미에 테러를 저지른 일은 쉽게 처리될 일이 아니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각 국가, 지역의 귀족, 영재들이 모여 교육을 받는 아카데미에 대한 테러는 국가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테러는 내가 저지른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학생이 악마와 계약해 인간계에 피해를 끼치려고 한 것은 사실이었고 이 때문에 제국 아카데미는 막대한 보상을 토해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 아카데미가 떠올린 것은 바로 증언이었다.
목격자이자 사태를 해결한 우리에게서 증언을 듣고자 우리를 호출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마지막 발악.
우리 소환사 아카데미에서는 거절해도 그만이었지만 부총장은 이 기회를 역이용하기로 했다.
“즉, 그대들이 그곳에 가서 최대한 많은 이득을 가져오면 된다는 것이다.”
말은 쉽게 하네.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다. 하지만 서머니아나 근처 도시도 아닌 제국 아카데미다. 그 먼 길을 굳이 우리가 가야 하나?”
제국 아카데미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마차로만 걸리는 기간이 3주. 그런데 우리보고 아카데미의 이득을 위해 가라니, 우리에겐 그저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물론, 그대들을 공짜로 부려먹을 생각은 없다.”
“……그 말은?”
“총장 녀석이 오늘 아침 엄청난 영약을 얻어서 영약고에 넣어놓았다더군. 영약고에 있는 영약들을 한 가지씩 고르도록 해주지.”
“엄청난 영약이라는 말만으로는 못 믿겠다만.”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고 자랑하는 꼴. 아무리 부총장의 말이라 하지만 어떤 영약인지도 모르고 갈 수는 없었다.
“듣기로는 최소 전설급의 영약이라더군. 그대들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래도 못 믿겠다고는 할 수 없었다.
“……멤버는? 그 먼 길을 우리끼리 가라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멤버는 총 7명. 그대들과 황녀인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과 라파엘, 선도부장인 아멜 발멩가와 그의 소환 수 휴고. 마지막으로 그대들을 인솔할 대련 교관 셀루아 네갈 일세. 제국 아카데미인 만큼 황녀의 영향력을 이용하면 충분히 유리한 거래를 할 수 있겠지.”
프리실라와 라파엘이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이미 부총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일은?”
“조금 촉박하긴 하다만…… 내일이네. 그대들의 이름으로 비행선을 수배해놨지. 비행선이라면 이틀 안에 제국 아카데미에 갈 수 있을 터. 어떤가.”
비행선까지 수배해놓은 건가.
그야말로 우리의 편의를 봐주겠다는 소리였다.
“로제, 어떻게 생각하지?”
아무리 내가 좋다 하더라도 나는 소환수의 입장. 나보다도 로제의 입장이 더욱 중요했다.
“……비…행…선!!!”
아무래도 나보다도 빨리 결정한 모양이지만.
“갈래요! 무조건 갈래요! 비행선이라니! 꼭 타보고 싶어요!”
두 눈을 반짝이며 힘껏 외치는 로제.
아무래도 비행선에 대한 로망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카데미 중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 아카데미잖아요? 이번에 가게 되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좋군.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마. 아, 그리고 그대들이 돌아올 때쯤 1학년 기숙사가 다시 완공될 예정인데 짐은 어떻게 해주는 게 좋겠나.”
“전부 거실에만 옮겨주세요. 정리는 저희가 할게요.”
“알겠다.”
그러고보니 1학년 기숙사도 공사하고 있었지.
생각보다 공사가 빠르게 진행 된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알겠네.”
그렇게 부총장과의 면담이 끝났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로제가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레고리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가 말인가.”
“제국 아카데미에 가는 거 말이에요! 저는 거래라고는 모르는 주제에 여행을 가는 거라고, 다른 아카데미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덥석 동의해 버렸지만…… 과연 맞는 선택이었을까요?”
과연,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나는 그런 로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당연히 너와 나라면 충분하고도 남지. 너는 생각보다 더욱 거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 너무 자신을 얕잡아 보지 말아라.”
“헤헤……. 그런가요?”
“그래. 별일은 없을 테니 단순히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
겁이 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어찌 보면 아카데미에 입학 후 처음으로 타지로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등생 취급을 받던 로제라면 더욱더.
허나, 내가 그녀의 옆에 있는 한. 그녀는 평범한 하프엘프 소환사가 아니었다.
무려 나의 소환사인 로제 폰 유글리아였다.
“그레고리님이 그렇게 말해주시니까 왠지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다행이군.”
“음…… 머리를 쓰다듬어 주셔서 그런 걸지도?”
“그런가?”
“네! 앞으로도 자주 해주셔야 해요!”
싱긋 웃으며 앞으로 뛰쳐나가는 로제. 왠지 모르게 그녀의 발걸음이 여느 때보다도 더욱 가벼워 보였다.
* * *
“오르가님! 그 둘을 보낸다고요?! 보내는 건 황녀만으로 충분하잖아요!”
소환사 아카데미의 총장 메를린 리큐르.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당당히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부총장, 오르가 레빈포트를 향해 소리쳤다.
“그 둘은 문제아예요! 심지어, 결국 그 테러 사태도 그 둘이 일으킨 거라면서요?”
“정확히는 라파엘과 그레고리 존스다.”
“어쨋든요! 그 둘을 다른 아카데미에 보냈다간 오히려 저희가 책을 잡힐 거라고요!”
헉─헉─
거친 숨을 내뱉는 메를린. 그런 그녀의 앞에서도 묵묵히 업무를 보던 오르가가 펜을 내려놓았다.
“진정하도록. 총장.”
“……죄송해요.”
기세를 죽이고 숨을 고른 뒤 오르가에게 사과를 건네는 메를린. 그런 그녀의 사과에 오르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다. 총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둘의 성장세는 다른 이들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그, 그건!”
“전교에서 바닥을 치던 하프엘프가 자신의 소환수, 그레고리 존스와 계약한 후 엄청난 속도로 성적이 오르고 있다. 내가 알기론 곧 있으면 1학년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겠더군.”
“…….”
“심지어 그런 그녀가 대악마 중 한 명인 마르바스와 계약했음은 물론이고 아카데미에 검술 교관의 자리를 주선해주었지. 그야말로 우리 아카데미에는 큰 축복과 같은 사건이었고 말이네.”
“……동의해요.”
검성에게 가르침을 배울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마르바스가 검술 교관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나이트 아카데미 측에서 마르바스를 초청할 기회를 달라며 보낸 편지만 벌써 수십 통이었다.
그뿐이랴, 대륙 전체에서 소환사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한 귀족들의 편지는 이미 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레고리 존스. 바로 그의 존재겠지.”
“……그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은 니자젤에게 보고를 들어 알고 있어요. 상당히 강력한 악마라고…….”
“상당히 강력한 악마? 하! 그자는 겨우 그런 존재가 아닐세.”
“네? 오르가님은 그자의 정체를 알고 계시는 건가요?”
“글쎄”
“네?”
대답을 듣고는 잘못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해 하는 메를린.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오르가는 알아 맞춰보라는 듯 싱긋 웃었다.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군.”
* * *
“속옷이랑……. 제복이랑…… 앗! 담뱃잎!”
부산스럽게 방을 빙빙 돌아다니며 짐가방을 싸고 있는 로제. 나는 소파에 앉아 그런 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제도 참……. 그렇게 많은 짐은 필요 없다니까요?”
프리실라와 함께. 말이다.
“그, 그런가요? 하지만 여행은 처음인걸요!”
“여행이라……. 확실히, 여행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하겠죠.”
멤버부터가 막강했다.
대천사 라파엘과 나, 그리고 2학년 중에서도 꽤 강한 편인 선도부장과 교관 중 무력으로는 상위권이라는 대련 교관까지.
무엇보다도 제국 아카데미에 제국의 황녀가 함께하는데, 무엇이 걱정일까.
“끄응……! 이, 이 정도면 되겠죠?”
어느덧 자신의 상체만큼 거대해진 가방을 바라보며, 로제는 자랑스럽다는 듯 외쳤다.
“……줄이는 게 좋겠는데요.”
“줄이는 게 좋겠군.”
“그, 그런가요……. 으으……. 정말 뺄 게 없는데…….”
그 모습을 바라본 프리실라가 한숨을 내쉬더니 로제의 가방 앞으로 다가갔다.
“제가 도와줄게요. 로제.”
“앗! 고마워요! 프리실라!”
“우선…… 여분의 신발? 필요 없어요. 하나면 충분할 거예요.”
“앗! 그건 놀러 나갈 때 신으려고…….”
“머그컵? 컵은 거기도 있으니까 안 가져가도 돼요.”
“그건 제가 아끼는 컵!”
“……피리? 이건 또 왜 들어가 있나요.”
“……심심할 때 불려고요.”
“아마 불 일은 없을 거예요. 이것도 빼죠.”
“피리는 안돼요! 제발!”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같은 나이의 두 미소녀가 짐가방을 두고 투닥거리는 풍경이라니. 너무나도 평화로운 광경이 아닌가.
“로제의 피리연주는 꽤 일품이지.”
“들었죠?! 그러니까 프리실라! 제발 피리만큼으은───!”
“좋아요. 대신 베개는 뺄게요.”
“내 애정 베개가아──!!!”
음, 정말로 평화롭다.
“프리실라. 제국 아카데미아 가봤나?”
로제의 짐 대부분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있는 프리실라를 향해 묻자 그녀는 계속해서 로제의 짐을 뽑아내며 대답했다.
“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여기와 다를 게 없어요. 그저 제국의 귀족들이 더 많은 정도죠.”
게임 [소환사 아카데미아]에서 언급하는 제국 아카데미는 제국의 유능한 귀족과 평민들을 교육시키는 기관.
그리고 과거 재앙에 의해 한차례 궤멸한 전적이 있는 아카데미이기도 했다.
“제국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템플 시간이 있었지?”
“음? 잘 알고 계시네요? 맞아요. 신성 하인베른 제국은 창조신님을 숭배하는 천상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있──”
“──프리실라아! 그것만큼은!”
“로제!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대체 나침반은 왜 들고 가는 건데요!”
“길을 잃을 수도 있잖아요오! 아아앗!”
즉, 제국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악마를 배척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천상교에 있어서 악마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본격적으로 악마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다니는 신성 교단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황녀인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로제와 그레고리님은 여행을 다녀오신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
“프리실라아아 그것만큼은──!”
“아앗! 로제에! 글쎄 구명조끼 같은 건 필요 없다니까요! 그것보다 대체 이건 왜 가지고 있는 거예요!”
“물에 빠지면 죽는 다고요오!”
“물에는 왜 빠지는데요! 그럴 일 없다니까요!”
……제발 여행 같은 여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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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실라 앤 하인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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