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아카바퀴 59
* * *
“내가 개발한 독약. ‘맥스 포스’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면 썩 꺼져!”
……진짜 위험한 약 같은데?
“고모! 그만 하세요!”
파이의 뒤에서 당황하고 있던 로제가 재빨리 파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로, 로제?!”
“저 분은 괴물 같은 게 아니라 제 소환수란 말이에요!”
“뭐?! 저게?! 하, 하지만 저건 누가 봐도 괴물이잖아! 나조차도 몸이 벌벌 떨릴 정도인데?!”
“……너무하는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인간폼으로 변신했다.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무서운 약을 서서히 내려놓는 파이.
“어? 그 모습은…?”
“…이 모습은 알고 있는 건가?”
“카프카! 마계 최고의 작가 카프카 맞죠!”
여기서 카프카가 나온다고?
“당신이 쓴 책은 정말 감명 깊게 봤어요! [악마, 서열투쟁의 과정]은 얼마나 마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던지……! 역시 악마였던 거군요.”
나도 기억에 없는 책 이름을 읊으며 아이돌을 앞에 둔 소녀팬 마냥 ‘꺄아~’ 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는 파이.
“그런 멋진 모습을 할 수 있으면 진작 그렇게 오시지, 왜 괴상한 괴물 모습으로 와서 놀라게 한 거예요? 괜히 긴장했네! 진짜.”
다시 허리춤에 약병을 꽂아 넣은 파이가 털썩 침대에 주저앉는다.
“어……. 해결 된 거 맞죠?”
그리고 그런 파이의 옆에서 어리둥절한 듯 조심스럽게 묻는 로제. 그런 로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파이가 싱긋 웃었다.
“당연하지! 그 ‘카프카’님이라면 오히려 걱정할 게 없는걸? 우리 로제가 정말 훌륭한 소환수를 뒀구나.”
“헤헤……. 그런가요?”
“그럼그럼~ 그런데……. 염색한 거니? 우리 로제는 엄마를 닮은 흑발이 어울리는 데 말이야.”
“헤헤…….”
그리고는 순식간에 고모 모드로 돌아가 로제를 잔뜩 귀여워해 주고 있다.
대충 상황도 정리된 것 같고, 나는 방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로제의 머리를 잔뜩 쓰다듬고 있는 파이에게 물었다.
“방금 전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음? 비적들이 온 거요? 처음에는 나설까 하다가 다른 분들의 마력이 느껴져서 별일 없겠거니 하고 잠들었죠.”
……이런 녀석이 정말로 용사파티였던 파이가 맞는 걸까.
“그럼 그 비적들이 널 노리고 있었다는 건?”
“…네? 절요?”
로제를 쓰다듬고 있던 파이의 손이 멈춘다.
“굳이 절 노릴 필요가 있을까요? 공작이라고 해봐야 명예직이라 영토도 쥐꼬리만 하고 정계 일에 관여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공작이 혼자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명예직이라 괜찮았던 건가.
“그럼, 서머니아에서 오는 길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을 하고 온 건지는 물어도 되겠나?”
그렇다면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에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수의 열매를 구할 수 있다고 해서 갔죠. 친가가 있는 델리니아의 엘프들은 저를 배신자 취급해서 열매를 구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도 저는 고모가 좋아요!”
“그래그래~ 나도 우리 로제가 너무 좋아.”
“헤헤…….”
세계수의 열매라니. 아무래도 파이몬이 세계수의 지팡이를 이용해 열매를 따로 판매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열매는 구했나.”
“아니요. 판매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빈손으로 돌아가고 있었죠.”
“그렇군.”
역시나인가.
“세계수의 열매가 왜 필요한 거지?”
“어……. 그건 좀 말씀드리기 어려운데요.”
그렇다면 그 열매를 구하려는 목적 때문에 타겟이 된 것일까?
“이야기를 듣고, 합당하다 생각나면 네게 판매할 생각이 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파이의 눈동자가 커진다.
“예? 세계수의 열매를요? 그거, 길거리에 널린 열매 같은 게 아닌데요? 아무리 카프카님이여도 그건 좀 힘들지 않나요?”
즉, 증거를 보여달라는 건가.
“로제, 그걸 보여줘라.”
“네? 그거요? 아! 그거 말이죠!”
그렇게 대답한 로제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세계수의 지팡이’를 꺼냈다.
“이거 맞죠?”
“이, 이건!”
로제의 손에 들린 ‘세계수의 지팡이’를 보고 턱이 벌어지는 파이.
“세, 세계수의 나뭇가지……! 세계수의 열매를 맺게 만든다는 보물…! 로제! 이건 어디서 얻은 거니?”
“네? 그레고리님이 사주셨는데요?”
얇고 새하얀 로제의 손에 들린 세계수의 지팡이. 그 끝부분에는 이미 새파란 열매가 작게 맺혀있었다.
“이, 이걸 사줬다고? 대체 이런 물건을 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당황하며 내게 물어오는 그 모습은 로제와 닮아있었다.
역시 로제의 조상님이나 다름없는 인물인 것일까. 괜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는 친구에게서 구했다. 그래서, 이 정도면 무슨 목적으로 구하려고 하는지 물어도 되겠나?”
“……어쩔 수 없죠. 그 방법밖에 없다면요.”
한숨을 내쉰 파이는 다시 로제를 끌어안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폐하의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거든요. 제가 어릴 때부터 귀여워해 주던 아이였는데……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겠더라고요.”
엘프니까 가능한 발언. 제국의 황제를 귀여워해 주던 아이라 부르다니. 다시 한번 그녀의 나이가 떠올랐다.
“…뭐죠 그 눈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걸 읽는다고?
“아무튼, 그래서 지금 이곳저곳에 있는 온갖 영약들을 드셔보시기도 하고, 저를 포함한 의사들도 진맥을 살폈는데……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더라고요.”
황제는 점점 야위기 시작했다고 했다. 과거 제국 철혈의 황제라 불렸던 위명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진 황제.
제국 내에 있는 약들로도 치료가 안 되자 그녀가 떠올린 것은 과거 재앙과의 전쟁 때, 릴리가 용사에게 주었던 세계수의 열매였다.
“그때 용사였던 라스, 그 씹새끼도 지금의 황제와 비슷한 증상을 겪었던 적이 있거든요.”
씹새끼라니……. 아니, 자신의 언니를 임신시키고 도망갔으니 저 정도로 표현한 것은 오히려 양반이리라.
“그때 언니가 그 씹새끼한테 세계수의 열매를 줬었어요. 그리고 녀석의 몸 상태는 점점 좋아졌죠. 아마 세계수의 열매라면 황제를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에요.”
파이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는 대충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용사 라스가 겪었던 병.
그거라면 원인이 무엇인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황제의 몸에 보라색 반점이 생겼겠군.”
“……네?”
“허기와 갈증이 일어나는 주기가 잦아지고, 상처의 재생이 늦어지며 체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겠지.”
“잠깐만. 혹시 당신…….”
“그래.”
황제의 증상을 줄줄이 말하고 있는 나를 벌벌 떠는 동공으로 바라보고 있는 파이.
“나는 황제가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알고 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당연한 질문이었다. 나는 황제와 전혀 접점이 없었을뿐더러 용사인 라스가 그 병을 앓았을 때 곁에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어째서 알고 있는 것이냐. 그녀는 내게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레고리 존스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재앙을 처리한 게이머라고, 이 세계를 구원한 적이 있는 인물이라고 말해봐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평소처럼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당신이 범인이라는 건가? 라는 물음이 담긴 질문.
무슨 뜻이냐니. 나는 그 어떤 이유보다도 확실한 이유를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너와 나의 적이 같다는 소리다.”
황제가 앓고 있는 병.
그것은 바로 아몬의 저주였으니까.
* * *
“…그러니까. 지금 황제가 앓고 있는 건 병이 아닌 저주라는 건가요?”
“그래, 평범한 저주도 아니고 대악마가 걸은 저주이지. 약으로 치유가 안 되는 건 당연했던 거다.”
과거 용사 라스가 세계수의 열매를 먹고 회복된 것은 그것이 바로 ‘세계수’의 열매였기 때문이다.
세계수는 그 자체로도 한 종족에게 숭배받는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에게서 나오는 열매가 저주에 효과가 없을 리가 없다.
“초기라면 신전의 고위 사제나 천사들에게 축성을 받는 것으로 현상 유지를 시킬 수 있었겠지만…… 내가 말한 증상들이 지금도 발현되고 있다면 ‘세계수의 열매’를 사용하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
“역시 그런가요? 하아, 다행이네요. 저주를 해주할 수 있다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파이. 하지만 그녀가 안도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단, 네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제가 알아둬야 할 것. 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몬의 저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아몬의 저주는 그 대상에게 직접적인 접촉이나 저주를 섭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누군가 황제의 근처에서 아몬의 저주를 걸었다는 것이지.”
아몬의 저주는 독이나 다름없다. 형체가 존재하는 그의 저주는 무색무취이며 어중간한 자는 알아볼 수도 없다.
“즉, 황궁 안에 아몬이라는 대악마에게 붙은 악마숭배자가 있다는 것이고 그 악마숭배자는 황제를 노리고 있다는 뜻인가요?”
“정확하다.”
아몬이 인간계에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그 과정 중에 황제의 암살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 황제를 치료하고는 천상교의 고위 사제들과 함께 황제의 측근들을 조사하는 게 좋을 거다.”
고위 사제 정도가 된다면 저주나 아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충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공짜는 아니실 텐데요? 카프카… 아니, 그레고리 존스님도 악마시니까요.”
악마에게 공짜를 바라는 것은 천사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 있듯, 악마들은 절대 무언가를 공짜로 주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내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지금의 나는 악마이니까.
“그대는 로제의 고모가 아닌가. 비싼 값을 받을 수는 없지.”
내 말을 들은 로제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녀 역시 자신의 고모인 파이를 걱정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내가 그대에게 부탁할 것은 오히려 너무나도 간단하고 별 것 아닌 부탁이다. 이것만 해준다면 세계수의 열매도 그냥 줄 수 있지. 괜찮겠느냐 로제?”
“네! 저는 고모를 돕고 싶어요. 마음만 같아선 그냥 드리고 싶지만…… 그레고리님이 나쁜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알아요!”
……기특하다! 잘 자라줬구나. 로제!
“그렇다면 경청하겠습니다. 그 부탁이란 게 뭔가요?”
그 부탁은 정말로, 별 게 아니었다.
“지금 이 배에 로제의 친구가 타고 있다.”
“…친구 말인가요?”
내 말을 들은 파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옆에 앉아있는 로제 역시 어째서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래, 지금 로제와 제일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지. 파이 폰 유글리아. 그대는 그저 그 아이와 친한 친구가, 뒤에서 응원해주는 존재가 되면 된다네.”
“그런 건가요? 어렵지 않겠네요. 정말로 그걸로 되겠나요?”
“아무렴. 충분하지.”
정말로 내 부탁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로제의 친구라니, 제가 못 해줄 이유는 없죠. 그 아이의 이름은요?”
“프리실라.”
“……네?”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프리실라의 풀 네임을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이것 참, 우연스럽게도 그녀 역시 제국의 왕족이구나.”
약간의 웃음이 섞인 내 목소리에 파이 온 유글리아.
제국의 공작 작약공(?藥?)의 표정이 맹해졌다.
“……넹?”
정계 진출.
그거, 지금부터 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