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60화 (60/169)

〈 60화 〉 아카OO ­ 60

* * *

“자, 잠깐만요. 설마 이 배에 그 아이가 타고 있나요?”

설마 그것도 모르고 이 배에 타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 위에서 비적들의 습격을 막아낸 것도 그 아이다. 즉, 너는 프리실라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지.”

“아, 아니 그 아이는 아카데미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비행선을 탄데요?”

“그와아악! 고모! 아파욧! 아파요오옷!”

자기도 모르게 힘을 준 것인지 파이에게 끌어안겨 있던 로제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미, 미안!’ 소리를 내며 재빨리 로제를 풀어주는 파이.

그 광경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조카도 아카데미 학생인데 여기에 있지 않나.”

“어? 그러네요? 로제,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니?”

“…로제, 설명해주거라.”

“고모한테요?”

고개를 끄덕이자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는 로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파이와 그 옆에서 열심히 떠드는 로제를 보니 정말 두 사람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제는 릴리를 많이 닮았다고 하던데, 그 영향인 건가.

마침내 설명이 끝났다.

“그런 일이……. 즉, 로제와 여러분은 제국 아카데미로 가고 있던 거군요?”

“그래. 이 정도 설명을 했으면 대답도 해줘야 하지 않겠나?”

사실 파이에게 프리실라를 지지하라고 말한 건 큰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제국의 황제가 우리와 친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

얼굴도 모르는 다른 녀석들보다는 프리실라가 황제가 되는 쪽이 우리에게 더욱 유용하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요……. 하, 제가 1황녀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면 제국이 시끄러워질 텐데요.”

제국에는 프리실라를 제외한 수많은 왕위계승자가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공작 한 명이 1황녀를 지지한다면 그것만으로 큰 사태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지 않나. 무려 재앙과 싸웠던 작약공(?藥?)이신데.”

“……으으, 귀찮은 건 질색인데. 알겠어요! 어떻게든 해볼게요.”

“좋은 마음가짐이다.”

파이의 확언을 받은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나를 따라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로제.

“엣? 로제! 벌써 가는 거야?”

“헤헤, 또 놀러 올게요. 고모.”

“그래, 알겠어. 고모도…… 생각할 게 좀 많네.”

“저희 202호니까 심심하면 놀러오세요~”

그렇게 방을 나온 우리는 프리실라가 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에게도 파이에 대한 사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로제.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는구나.”

“네? 헤헤. 맞아요. 고모는 제게 은인 같은 분이거든요.”

“…은인?”

이건 또 처음 듣는 소리인데.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제게 세계수의 잎을 피게 하면 괜찮을 거라고 처방해 주신 분이 바로 고모이에요. 고모 덕분에 지금처럼 울끈불끈 하다고 할 수 있죠.”

자! 보세요! 라고 말하며 있지도 근육을 보여주려는 듯 이두 부근을 내게 보여주는 로제.

로제의 팔을 가냘플 뿐이었다.

“…운동을 더 해야겠군. 앞으로는 고기를 위주로 자주 먹도록.”

“…힝.”

프리실라의 방 앞에 도착한 로제가 문을 두드렸다. 두어 번 두드리자 안에서 ‘누구야?’라는 라파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라파엘님! 저 로제에요오~”

벌컥. 하고 열리는 문.

“로제? 중간에 갑자기 사라져서 방에서 쉬는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야?”

그 물음에는 내가 대답해주기로 했다.

“비적들이 어째서 이 배를 노렸는지 알아냈다.”

“그래? 우리한테 찾아온 이유는 아마 우리가 연관되어 있어서야?”

“글쎄다. 안에 들어가도 되겠나?”

그러자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라파엘! 저는 괜찮아요!”

“프리실라가 괜찮다네? 어서 와~”

프리실라와 라파엘이 묵는 201호. 우리의 옆방이지만 배의 구조 때문인지 내부는 더욱 넓은 것 같았다.

“바로 안으로 모시지 못해서 죄송해요. 사태를 정리하고 씻고 있었거든요. 마침 옷을 입고 있을 때 두 분이 오셔서 라파엘이 그랬던 거 같아요.”

확실히, 프리실라의 얼굴이 평소보다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도 완벽히 말리지는 못했는지 살짝 젖어있었다.

“아무리 그레고리가 좋아도 프리실라는 못 줘.”

그렇게 말하고는 지치지도 않는지 또 프리실라를 끌어안는 라파엘.

프리실라는 이미 체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비적들은 왜 여길 공격한 거야? 프리실라가 목적이었던 거야? 아니면…… 역시 제국 아카데미의 소행인가?”

“아쉽게도 둘 다 아니다. 오히려 제삼자를 노린 테러 같은 거였지.”

“제삼자요?”

프리실라 역시 제삼자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는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배에 꽤나 대단한 거물이 타고 있더군.”

“거물? 우리 프리실라보다 거물이 이 배에 타고 있다고?”

제국의 왕위계승권 1위인 프리실라보다도 거물이 있다는 말에 라파엘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프리실라보다 거물이라. 파이는 어찌 보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작약공(?藥?). 파이 온 유글리아가 이 배에 타고 있었다.”

“네? 작약공이 이 배에 타고 있다고요?”

작약공의 이름을 듣자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짓는 프리실라.

그만큼 여기서 그녀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리고 비적들은 이 작약공을 노리던 거였지. 프리실라. 최근에 네 아버지인 황제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게 없나?”

“네? 음……. 네, 황궁에서 따로 들어온 정보는 없었는데요?”

역시 그런가.

아무래도 아카데미에 있던 프리실라는 정보마저도 통제당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현재 황제가 병에 들었다고 하더군. 작약공인 파이는 그런 황제를 위해 영약을 구하러 서머니아에 온 상황이었고.”

“…아바마마께서요? 마, 말도 안 돼요! 그런 정보를 제가 몰랐다니! 그레고리님이 잘못 아시는 게──”

“작약공에게 들은 정보다. 그 시기도 꽤 지난 모양이고. 아무래도, 황궁 내에서 네게 정보를 은폐한 모양이다.”

“……그럴 리가. 황궁에도 분명 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다른 정보들은 잘 도착했는걸요!”

“네 사람들이 변심했거나, 이미 정리되었거나. 둘 중 하나겠군.”

“……말도 안 돼.”

게임이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제국의 암투는 거의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보를 먼저 차단하고, 거짓 정보를 섞어 올가미를 씌운 후 숨통을 끊는 방법.

너무나도 뻔하지만, 너무나도 알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여기부터 본론이다만.”

“…방금 그게 본론이 아니었다고요?”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짓는 프리실라.

이 정도로 놀라면 각오 단단히 해야 할 텐데.

“황궁 내에 악마 숭배자가 있는 거 같다.”

“……황궁에 악마 숭배자가 있다고?”

이번에 입을 연 것은 라파엘이었다. 프리실라와 함께 몇 년을 살았던 황궁이니 쉽게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작약공에게 황제의 증상을 들어보니 과거 아몬이 용사에게 걸었던 저주와 흡사하더군. 나는 황제가 병에 걸린 것이 아닌 아몬의 저주에 걸린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아몬.”

그녀 역시 재앙과의 전쟁을 함께했던 소환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다른 누구보다도 아몬이 어떤 악마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레고리. 저번에 들었던 그거와 연관 있다고 생각해?”

“무조건.”

그게 아니고선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그렇단 말이지.”

“라, 라파엘? 그레고리님? 그, 그래서요? 아바마마는 어떻게 되시는 건데요?”

자신의 아버지가 아몬에게 저주를 받았다는 소리를 들어서일까.

눈가가 촉촉해진 프리실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 아몬이란 악마의 저주라면 라파엘이 치료할 수 있는 거 맞죠? 라파엘은 치유의 천사니까 가능한 거죠?”

“……프리실라. 내가 직접 아몬을 보지 못해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아마 아몬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강할 거야. 그러니 아무리 나라도…… 현상을 유지하는 게 전부겠지.”

“그, 그렇다면──”

“프리실라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제가 해결하기로 했으니까요.”

내가 해결법을 알려주려고 하자 내 옆에 있던 로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슬퍼하는 프리실라의 표정을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네? 로, 로제가요?”

“엣헴! 제가 이래 봬도 유글리아 가문의 장녀잖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 릴리의 여동생이 작약공이었나?”

문뜩 생각난 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라파엘. 그녀의 대답을 로제가 채가며 외쳤다.

“앗, 작약공이 저희 고모인 것도 맞지만 다른 거예요. 마침 치료약이 제게 있거든요.”

로제는 그렇게 말하며 주섬주섬 세계수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그건…… 확실히, 세계수의 열매라면 아몬의 저주는 충분히 해주할 수 있겠네. 제법인데?”

“헤헤…….”

세계수의 열매를 멀뚱히 바라보던 프리실라가 말했다.

“그러면, 아바마마는 괜찮으신 건가요?”

“그래, 한 알만 먹여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거다. 세계수의 열매는 영약 중에서도 해주나 정화 능력이 뛰어난 거로 유명하니까.”

“다, 다행이에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는 프리실라.

“그래서, 진짜 본론이다.”

“또 본론이 있어? 그레고리,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제는 은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라파엘.

나는 예전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괴롭히거나, 곤란하게 만들면 같이 복수해주거나 도움을 주는 그런 사람.

그리고 프리실라는 이미 내 사람이란 범주 안에 들어와 있는 아이였다.

“세계수의 열매를 황제에게 사용해주는 것에 대한 대가로, 작약공이 너를 도울 거다. 프리실라.”

“……네? 작약공이요?”

“작약공, 그 아이는 정계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거로 기억하는데?”

의문이 담긴 라파엘의 말에 나는 내 옆, 멀뚱히 서 있는 로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조카의 친구니 잘 부탁한다고 말해줬지. 그렇지 않나. 로제?”

“네, 맞아요! 프리실라는 아카데미에서 처음 사귄 제 친구니까요!”

“……로제.”

눈물을 글썽이며 로제를 바라보는 프리실라에게 나는 이어서 말해주었다.

“작약공 역시 황제가 아몬의 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 할 거다. 신의라 불리는 작약공의 진단인 만큼 파장이 크겠지. 그때, 네가 세계수의 열매를 황제에게 진상하고 그 공을 독차지하게 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작약공이 함께할 거다.”

“네? 네?”

갑자기 전개되는 정치적인 이야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프리실라.

“네 사람이 변했거나 없어 졌을 거라 말했지? 이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해라. 악마 숭배자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작약공과 함께 권력을 휘둘러라.”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적들을 처리하면 된다.

“황제는 목숨을 구해준 네게 큰 고마움을 느낄 거다. 황제가 보상을 내린다는 말을 한다면 네가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선물을 받아라.”

그것은 프리실라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자, 잠깐만요. 그러면 로제와 그레고리님에게는 어떤 보상이 따르는데요?”

그게 걱정이었던 걸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구 사이에 무슨. 네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다.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기면 조금씩 도와주는 거로 만족한다.”

네가 황제가 되면 재앙과의 싸움에서 큰 힘이 될 텐데.

친구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친구끼리 말이야.

그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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