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아카대공 62
* * *
비적단의 출현 이후 항해는 순조로웠다. 유람선 여행을 하는 느낌이랄까.
프리실라도 파이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듯했고 파이 역시 로제를 보러 우리 방에 자주 오곤 했다.
물론, 나는 중간중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심상공간에서 외전을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냈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제국의 비행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 여기가 제국! 제국의 향기! 습! 하! 습! 하!”
비행선에서 내림과 동시에 가장 먼저 뛰쳐나가 과장된 몸짓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는 로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프리실라와 라파엘, 파이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로제는 역시 귀엽네요.”
“…창피한데, 그레고리. 어떻게 좀 해봐.”
“저게 진짜 우리 조카? 어릴 때랑 달라진 게 없네요…….”
나 역시 주변에서 몰리는 시선을 무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체 로제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짚었다.
“……로제. 그래 봐야 똑같다.”
“네? 아니에요! 뭔가 미묘한…… 미묘하게 달라요! 그레고리님도 해보실래요?”
“……사양하지. 가자.”
“네? 엇, 어어!”
강제로 로제의 배낭을 잡고 끌고 간다.
“제 발로 갈게요! 갈게요!”
그렇게, 한 자리에 모든 멤버가 모였다.
“파이, 너는 곧바로 황궁으로 가나?”
“예? 어……네. 황녀와 이야기하다 보니 준비할 게 꽤 될 것 같거든요. 바로 돌아가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지.”
“……네. 그, 그럼 먼저 가볼게요! 로제, 나중에 보자!”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휙 돌려 도망가듯 공항을 뛰쳐나가는 파이.
그런 파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로제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네~ 고모~ 나중에 봐요오~”
이제 남은 것은 아카데미의 멤버들.
교관은 우리는 곧바로 마차를 타고 제국 아카데미로 향할 것이라 말했다.
“여기서 제국 아카데미까지의 거리는 마차로 4시간 정도가 걸릴 거다. 그쪽에서는 분명 우리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우선은 최대한 조용히 활동하도록 하지.”
그 말을 들은 로제가 번쩍 손을 들었다.
“로제? 뭐지?”
“네! 우리 아카데미가 모욕받아도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그런 로제의 질문에 코웃음을 치는 교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네?”
“그럴 땐 당연히 다시는 얕보지 못하도록 완벽히 짓밟아줘라.”
“네!”
“그럼, 모두 나를 따라오도록.”
교관의 안내를 따라 우리는 미리 수배해놓은 마차를 타러 발걸음을 옮겼다.
비행공항을 나와, 처음으로 보게 된 제국의 풍경.
“……그레고리님! 엄청나요!”
그곳은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확실히.”
게임에서 움직이는 주 무대이자 현재 대륙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
신성 하인베른 제국.
직접 내 눈으로 보게 된 제국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오랜만에 맡는 고향의 공기는 새롭네요.”
“그러게~ 역시 집이 최고야.”
프리실라와 라파엘 역시 오랜만에 본 제국이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 문뜩 외국에 가서 주위만 둘러보면 사람들이 촌놈이라 생각한다는 친구의 말을 떠올린 나는 헛기침을 하곤 정면을 응시했다.
“로제, 뒤처지고 있다.”
“네? 어, 엇! 같이가요오!”
마차는 총 2대로 3명과 4명으로 나뉘어 따로 가는 모양이었다.
“프리실라와 라파엘님은 앞의 마차, 나머지는 뒤쪽 마차에 타면 된다. 전부 탑승.”
그리고 우리는 선도부장인 아멜, 그녀의 소환수인 휴고와 함께 마차를 타게 되었다.
“아멜양! 드디어 같이 대화할 수 있겠어요.”
“그, 그래.”
그리고 이 녀석은 과거 우리에게 제대로 밟힌 후 아직까지도 날 무서워하고 있었다.
“미안해 그레고리, 그날 이후로 나는 트라우마를 금방 극복했는데…… 아멜은 그러지 못해서 말이야.”
“이해한다.”
바퀴는 그만큼 공포스러운 존재이니까. 나 역시 과거 바퀴를 발견하면 그 바퀴를 잡을 때까지 잠에 들지 못하곤 했었다.
우리가 타고 갈 마차의 내부는 꽤나 널찍하고 쾌적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 측에서 따로 좋은 마차를 수배해준 모양이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나서, 앞에 선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직후 우리의 마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 안을 감싸는 침묵.
괜히 여기에 있어봤자 창밖에 보이는 풍경만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것 같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로제, 나는 심상공간에 들어가 있을 테니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도록.”
“아, 확실히 그레고리님은 그쪽이 편하시겠네요.”
“아, 그렇네. 아멜. 나도 들어가서 쉬고 있어도 될까?”
“……의리 없긴.”
“하하! 미안. 그래도 마차는 너무 속이 울렁거려.”
그 말을 남기고는 먼저 사라져버리는 휴고.
나 역시 뒤이어 곧바로 심상공간으로 이동해 침대에 드러누웠다.
“끄으……! 역시 집이 최고지.”
언제 보아도 익숙한 심상공간의 천장.
그리고 거기에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오랜 기간동안 나와 함께했던 144Hz의 모니터가 나를 반기고 있다.
“돌겠네. 진짜.”
[소환사 아카데미아 – 외전(그레고리 존스)]
이틀 전부터 진행을 시작했는데 플레이가 너무 빡샜다.
기껏해야 과거를 보여주는 게임이면서 다른 챕터와는 다르게 난이도는 더럽게 높았고, 원래 게임에서는 보지 못했던 아이템과 몬스터까지 대거 등장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빡치는 상황이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깨지 못하고 있다는 거겠지.”
나는 지금까지 게임의 정보와 이곳에서 얻은 정보를 종합하여 최대한의 이득을 끌어오며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신성교단은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변모했고 이 세상에 내가 알고 있는 캐릭터는 대부분 죽거나 은둔했으며 나는 난생처음 보는 캐릭터의 몸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근래 새로 배운 「탐욕」 같은 것이.
“……그래도, 우선은 쉬자.”
요즘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챕터를 클리어 하기 위해 너무 힘을 썼었다.
마차로 아카데미까지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나.
음, 그 정도면 충분히 잠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충분히………
* * *
“…녀석은 갔나.”
“네? 그레고리님이요?”
아멜의 물음에 눈을 끔벅이며 되묻는 로제.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던 아멜은 마차 안에 본인들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아직까지도 녀석을 보면 긴장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군.”
말 그대로, 아멜 발멩가는 그레고리에게 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정신적 공격. 그로 인한 실금, 수많은 벌레들에게 뒤덮여 일으킨 정신적인 붕괴까지.
이 모든 것은 기사 가문의 영애로서 자란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사건들이었다.
그리고 문뜩, 그녀는 또랑또랑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하프엘프, 로제 폰 유글리아를 바라보았다.
이렇게만 보면 약간 모자라 보이는 엘프. 허나 그녀는 마계의 대공이라는 그레고리 존스와 대악마 마르바스를 소환수로 둔 소환사였다.
공작급의 악마가 두 명. 사실상 학생들은 뒤에서 마왕의 재림이 아니냐며 속삭일 정도의 멤버들이다.
그럼에도 아멜은 로제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로제의 과거를 누구보다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소환수와 계약을 하지 못하는 소환사.
열등생이라 불리는 학생.
하프엘프이기에 같은 엘프들에게서도 따돌림을 받는 존재.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멜은 선도부장으로써 그녀를 돕지 못했다.
로제를 도와야 할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환수도 소환하지 못하는 소환사? 얼마 있으면 자퇴하지 않겠나.’
‘아직도 자퇴를 하지 않은 건가? 뭐, 내버려 두면 언젠간 나가겠지.’
심지어 눈앞에서 그녀가 따돌림받는 풍경을 보고서도 그녀는 로제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
‘복도에서 떠들지 말도록.’
그런 경고를 주고는 가던 길을 갔을 뿐.
로제를 그렇게 대했던 아멜이었기에, 그녀는 로제에게 악감정을 품을 수 없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새하얗고 순수한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녀의 소환수만 보면 그녀는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의 얼굴을 스쳤던 얇은 더듬이.
과거 로제와의 대련 중 자신을 뒤덮었던 새까만 벌레들은 절대 잊기 쉬운 게 아니었다.
‘로제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과거에 모른 척했던 것을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없던 일인 것처럼 뻔뻔하게 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런 고뇌를 계속해서 하고 있을 때, 로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멜양은 그레고리님을 보면 많이 힘드시죠?”
“그래. ……응?”
여러 생각을 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자 로제가 아멜의 손을 붙잡았다.
“이해해요. 저도 그레고리님을 처음 봤을 땐…… 기절했거든요.”
“로제, 그대가 말인가?”
“네.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니까 아멜양의 반응은 당연한 거예요. 그런 자신을 너무 속이려고 하지 말아요.”
싱긋 웃으며 아멜의 손등을 쓰다듬어 주는 로제.
그제야 아멜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로제는 자신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행선 안에서 로제와 그레고리 존스를 자주 마주치지 않은 것이 모두 로제의 호의였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여기서 울며 사과를 해봐야 로제를 곤란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걱정해줘서 고맙군. 요즘 아카데미 생활은 어떻지?”
“요즘에요? 너무 즐겁죠! 헤헤, 항상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싶을 정도예요.”
“그래? 다행이군. 최근에도 검술을 배우고 있나?”
“네! 마르바스님이 한 번씩 와서 자세를 봐주고 계세요. 격투는 그레고리님이 봐주고 계시고요.”
“그레고리가? 확실히, 그의 격투술은 대단했지. 휴고와 맞먹을 정도였으니 말이야.”
“그쵸? 헤헤.”
그녀는 로제와 계속해서 대화하며 과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레고리 존스 역시 이번엔 적이 아닌 아군으로서 함께 해야 했는데 이대로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레고리, 그는 평소에 어떻지?”
“그레고리님이요? 엄청 젠틀하시죠. 항상 절 생각해주시고, 절 도와주려고 안달이 나신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 귀여울 때도 있는 거 같고요.”
“……귀여워? 그가?”
“네! 아멜양도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귀여운 그레고리님을 보실 수도 있겠네요. 후후.”
그래,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극복해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 모습이 귀엽다니 엘프의 취향은 특이하군.”
“아니거든요! 그 모습 말고 평소의 모습이 말이에요!”
아주 천천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