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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64화 (64/169)

〈 64화 〉 아카대공 ­ 64

* * *

“응? 좆? 하하하하하!!! 맞아! 너 좆됐어! 하하하! 하하하!!!”

라파엘의 말을 들은 바알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배까지 부여잡으며 웃기 시작했다.

‘바, 바알님이다!’

‘도망쳐!’

‘자, 잠깐만. 내 배팅은?’

‘배팅이 문제야? 여기에 더 있으면 뒈진다고!’

그런 바알의 모습을 본 악마와 마족둘이 하나둘 자리를 피하며 이내 방금까지 투기장이었던 곳에는 라파엘과 바알만이 남았다.

“……어떻게 안 거야? 이 망토를 쓰면 다른 대천사들도 간파하지 못했는데.”

무려 천계의 보물고에 잠들어 있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다른 대천사들마저 간파하지 못하는 이 망토를 뚫고 본인을 알아보았다는 것에 라파엘은 큰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뭐? 어떻게 알아봤냐고오? 꺄하하하하하! 진짜 웃긴다아! 너희 천계 녀석들은 원래 보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써놓진 않나 보지이이?”

뚝. 하고 웃음을 그친 바알이 성큼성큼 다가와 라파엘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었다.

“이거어. 원래 바알꺼였거드은.”

“하.”

설마 이 물건이 바알의 물건이었을 줄이야.

지지리도 운이 없다고 생각한 라파엘이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뭐 어쩔건데.”

“으으응? 천사와 악마가 만났는데, 싸움 말고 할 게 더 있었나아?”

고개를 갸우뚱해 하며 라파엘의 망토를 쥐는 바알.

“이건…… 다시 돌려주자아?”

“좆까, 미친년아.”

─파앙!

라파엘의 몸에 둘러진 망토가 벗겨짐과 동시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라파엘의 주먹이 바알의 얼굴을 향한다.

“뭐야아? 주먹 쥐고 있었네에? 히히!”

예상했다는 듯 그래도 몸을 왼편으로 기울여 라파엘의 주먹을 피해내는 바알.

라파엘이 팔을 회수하기 전, 그대로 몸을 띄워 그대로 팔을 감싸 안은 바알이 싱긋 웃는다.

“시작 전에, 오른팔은 가져갈게에?”

우득.

하고, 섬뜩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라파엘의 팔이 반대로 꺾인다.

“크윽!”

너덜너덜해진 팔에 아직도 매달린 바알을 향해 왼팔을 휘두르는 라파엘.

라파엘의 왼 주먹에 직격당한 바알의 몸이 그대로 허공을 날아 바닥에 쳐박혔다.

“아아! 아파아! 아파아아아아!!!!! 너무…… 너무 좋아아아……. 키히힛!”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음에도 얼굴에 새빨간 홍조를 띄우고는 라파엘에게 맞은 복부를 쓰다듬는 바알.

“있잖아, 라파에엘~ 라파에엘~ 바알의 도시에는 왜 온 거야아? 바알이 보고 싶었어? 응? 보고 싶었던 거야?”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뱉으며 라파엘을 향해 야릇한 목소리로 바알이 속삭인다.

“흐응…. 역시 바알이 보고 싶었던 거구나아? 맞아아, 너는 싸움을 좋아했어어……. 그러니까 미친개라고 불리지이. 맞지이? 맞지이?”

읏차. 하고 바알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작고, 연약한 몸으로 라파엘의 주먹에 맞았음에도, 그녀의 몸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다.

“…진짜, 존나 귀찮은 새끼한테 걸렸네.”

“으응? 바알이? 왜 바알을 싫어해에? 바알은 싸움도 잘하고오… 나쁜 짓도 안 하는데….”

양손의 검지를 콩콩 맞대며 앙탈 부리는 바알.

“그냐앙…. 바알이 꼴리는 대로 하는 건데에……. 바알이 귀찮아아?”

마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녀의 순진한 표정에 라파엘이 고개를 젓는다.

“지랄하지 말고 올 거면 오고 안 올 거면 꺼져.”

“응! 갈게!”

──콰앙!

엄청난 굉음과 동시에 라파엘의 몸이 그대로 뒤에 있던 건물에 처박힌다.

“뭐야아? 왜 네가 피해에?”

“……진짜 미친년.”

“응? 미친개는 너잖아아? 키히힛!”

뿌득. 하고 건물에서 몸을 꺼낸 라파엘이 몸을 둘러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너덜거리던 오른팔은 이미 완벽히 치료된 상태였고 몸에 있던 잔상처들은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그래, 나도 마침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 오랜만에 악마 새끼 피 맛좀 볼까?”

라파엘의 양손에 끼워져 있던 건틀릿의 끝부분. 타격 부위에 달려있던 십자가가 교차한다.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을 흩뿌리는 십자가.

“그건 맞으면 진짜아 아플 거 같은 데에……. 너어, 치유의 천사 아니었어어?”

“옛날부터 정신병에는 매가 약이었거든. 자, 치료받자?”

동시에 천사와 악마가 움직인다.

짧은 잔상을 남긴 두 존재는 가운데에서 만나 서로의 주먹을 맞부딪힌다.

엄청난 굉음과 동시에 발생하는 충격파.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주먹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1위의 악마라고 해서 쫄았는데, 생각보다 주먹이 말랑하네?”

“뭐래에. 너, 존나 아파 보이는 데에?”

키득키득 웃으며 바알이 가리킨 라파엘의 오른팔은 가죽이 터져나가 근육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래?”

잠깐의 반짝임.

새하얀 빛에 휩싸였던 라파엘의 오른손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아닌데?”

“……그거, 귀찮네에. 어디까지 회복할 수 있나 볼까아?”

마치 사냥을 시작하는 암사자처럼, 몸을 숙인 바알이 라파엘을 향해 달려나간다.

그대로 공중으로 점프함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켜 회축을 날리는 바알.

재빨리 왼 주먹으로 바알의 발차기를 튕겨낸 라파엘이 오른손을 쳐올려 콤비네이션을 넣는다.

허나 턱을 위로 치켜올려 라파엘의 주먹을 피해내는 바알. 하지만 라파엘은 이미 회수한 왼팔로 바알의 얼굴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그대로 데굴데굴 구르며 뒤로 날아가는 바알. 그러나 이내 잠깐 땅에 넘어졌던 어린아이마냥 벌떡 일어선 바알이 싱긋 웃었다.

“인정! 이대로는 못 이기겠어어.”

“…항복이야?”

방금의 공격을 막아낸 후유증으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묻는 라파엘. 이에 바알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이? 이제 제대로 할 건데에?”

그렇게 말한 바알이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변신.”

새까만 고체 덩어리가 그녀를 뒤덮는다. 마치 기름을 정유하는 과정에서 나온 찌꺼기들이 달라붙는 것과 같은 모습.

그 과정에 표정을 찡그린 라파엘이 상황을 주시한다.

꾸득.

뿌드드드드드득.

검은 덩어리들이 점점 인간의 형체를 닮은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세 쌍의 다리와 등에 돋아난 날개.

그리고 머리에 솟은 두 개의 더듬이까지.

마치 인간과 파리가 뒤섞인 듯한 모습.

그럼에도 여전히 소녀의 풋풋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 모습은 왠지 모를 괴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제대로 놀아보자아?”

그리고 라파엘의 시선에서 바알이 사라졌다.

“여긴 데에?”

어느 새엔가 라파엘의 뒤로 이동한 바알이 양손을 깍지끼고는 라파엘의 머리를 있는 힘껏 찍어버린다.

콰앙! 하고 땅에 처박히는 라파엘.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라파엘은 그대로 몸을 굴려 옆으로 빠져나간 뒤 날개를 펴고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뭐야아? 공중전? 바알은 공중전도 좋아해!”

그리고 이를 따라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바알을 향해 라파엘이 오른 주먹의 손목을 왼손으로 쥐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그래도 바알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펀칭머신을 치듯 있는 힘껏 주먹을 날리는 라파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오며 새하얀 빛무리가 바알의 몸을 삼킨다.

“뭐야아! 뭐야아아아아아!”

그대로 땅으로 떨어져 구르기 시작하는 바알.

“아파아아! 아파아아아아아!”

절규하듯 흐느끼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한 바알. 그런 그녀의 앞에 내려선 라파엘이 어깨까지만 남은 오른팔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천사의 육신을 매개로 한 공격인데 안 아플 리가 없지.”

라파엘의 치유능력으로도 오른팔은 금방 회복할 수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왼팔뿐. 하지만 방금의 공격으로 바알의 왼쪽 날개를 가져갔기에 나쁜 교환은 아니었다.

“안봐줄거야아…….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진짜로──”

뚝. 하고 그치는 목소리.

이내, 고양된 숨을 내뱉으며 동공이 풀린 바알이 말한다.

“하아……. 죽일 거야아…….”

“할 수 있다면 해보던가.”

제자리에서 진각을 밟는 바알. 그와 동시에 라파엘이 서 있던 지면의 양옆에서 새까만 파리 때가 솟구쳐 올랐다.

“얘들아아. 묶어놓고 있으려엄?”

“이건 또 뭐야!”

갑자기 시야를 가린 파리들을 향해 팔을 허우적거리던 라파엘이 신성력을 내뿜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맑아지는 시야.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앞에 닥쳐온 새까만 주먹을 보았다.

“아, 씹──”

으직! 하고 오른뺨에 꽂히는 주먹. 다시 한번 라파엘의 몸이 땅에 박힌다.

그와 동시에 라파엘은 신성력을 두른 날개로 몸을 덮으며 바알의 공격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 애들을 죽인 거야아?!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아!”

쾅쾅쾅! 하고 바알이 거칠게 라파엘의 날개를 짓밟기 시작한다.

그리고 날개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라파엘의 목소리.

“자기도 벌레형 악마인 주제에, 다른 벌레형 악마들은 노예 취급을 하면서 그 파리 새끼들은 소중한가 봐?”

짓밟아도 계속해서 회복되는 날개는 그야말로 최강의 방패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날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바알.

“같은 벌레형 악마아아? 그 새끼들이랑 바알이랑 같다고오? 키핫하하하하하!”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바알의 주먹질에 라파엘의 날개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 새끼들은 겁쟁이야아……! 힘으로 증명하면 되는 것을 참고만 있던 겁쟁이들……. 지상의 벌레들과 다름없는 녀석들이니까 그런 취급을 받아도 싸──?”

“──잡았다.”

“응?”

어느샌가 날개를 편 라파엘이 날개 안에서 회복시킨 오른팔로 바알의 왼 주먹을 붙잡았다.

“한 방 더 간다?”

다시 한번 새하얀 섬광이 두 사람 사이에 발생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사라진 자신의 왼팔을 부여잡고는 뒤로 물러서는 바알.

아직도 땅에 쓰러져 있던 라파엘은 사실상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히 짓밟힌 상태였다.

부러지기 직전의 날개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오른팔.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고 있는 가슴과 넝마가 되어버린 옷까지.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주었다고 생각한 라파엘이 싱긋 웃었다.

“이게 바로 네가 바라던 천계의 미친개가 싸우는 방식이야.”

“하하하하! 재미있어어어! 라파엘! 재미있어어어!”

바닥에 흩뿌려졌던 바알의 검은 피가 한 곳에 뭉치기 시작한다.

꾸물꾸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뭉친 바알의 피는 그대로 바알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녀의 왼팔에 자리 잡는다.

서서히, 본래 있었던 팔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는 검은 덩어리.

완벽히 팔의 모습을 하지 못했지만 팔의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오랫동안 치료해야 하는 상처는 오랜만이네에~ 바알한테 이런 선물을 줘서 고마워어.”

왼팔의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라파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알.

“그럼, 보상으로 편하게 해줄게에?”

저벅.저벅.

마치 꽃이 만개한 것만 같은, 환한 미소를 지은 바알이 라파엘을 향해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거기까지 하지, 바알.”

바알의 이름을 마치 동네 강아지 무르는 것처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으응? 대체 누가아── 너는?”

바알을 부른 것은 정장 차림의 미청년이었다. 양옆으로 넘긴 깔끔한 머리와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차가운 외모까지.

그의 외견을 본 라파엘은 그가 자신이 찾던 ‘카프카’임을 단박에 깨달았다.

“내 낭독회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비극이로군.”

고개를 저으며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는 바알을 지나쳐 라파엘을 향해 걸어간 남성은 라파엘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천사가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내 낭독회를 보러 온 거겠지?”

“……당신이 카프카?”

남성이 건넨 팔을 잡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라파엘.

그 광경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바알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뭐야? 뭔데 바알의 행복을 방해해?”

지금까지의 말투와는 달리 정색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바알.

그녀의 분위기는 방금까지 전투를 벌였던 라파엘마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도 ‘카프카’라 불린 남성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바알을 바라보았다.

“음? 아, 이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겠군. 변신.”

밝은 빛무리에 몸이 뒤덮인 남성. 이내 그 빛무리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새까만 형체에 심연에서 기어 나온 듯한 끔찍한 괴물이었다.

“이 모습이면 알아보겠지? 오랜만이군. 바알.”

“……그레고리 존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왜, 왜 왜 왜왜왜왜왜왜! 내 싸움에는 왜 끼어드는 거야! 그레고리 존스!”

바알의 외침에 바퀴폼의 그레고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땅에 떨어져 있던 책을 꺼내 바알을 향해 들어 보였다.

“내 낭독회 일정이 있어서 말이지. 그런데, 네가 망쳤다.”

“……낭독회?”

“그래, 너 같은 멍청한 놈들은 즐길 수 없는 지식인들의 자리였지. 하여튼. 이래서 멍청한 녀석들이 마왕을 자처하면 안 되는 건데.”

빠득.

멀리 떨어져 있던 라파엘에게도 들릴 정도의 소리가 바알의 입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레고리 존스가 말했다.

“네놈 덕분에 낭독회가 망했으니 책임져라.”

저 멀리 서 있던 바알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겨우…… 겨우 그깟 이유 때문에 내 싸움을 방해한다고? 좆까는 소리 하지 마. 그레고리 존스. 나는 알아. 너는 그딴 이유 때문에 내 싸움을 방해하는 게 아니잖아?”

이에, 이죽거리는 목소리의 그레고리가 대답했다.

“맞다. 난 그냥 널 좆 같게 만드는 거로도 만족한다. 바알.”

“그레고리 존스으으으으으으으!!!!!!!!!!!!!!!!!!!!!!!!!!!!!!!!!!!!!!!”

그녀의 외침에 땅이 갈라지고 지반이 흔들리며, 공기가 크게 떨리기 시작한다.

“죽여버리겠어어어어!!!!”

“……지금 상태의 네가 날 죽인다고? 어이가 없군.”

고개를 저은 그레고리는 그런 바알을 무시하고는 몸을 돌렸다.

“끝가지이이이이이──!!!!!!!!!”

오른팔을 내뻗으며 그레고리를 향해 달려들려는 바알. 그와 동시에 맑고도 청량한 목소리가 폐허가 된 시장에 울려 퍼졌다.

“헤라클레스.”

“우오오!”

하늘에서 거대한 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며 바알의 주먹을 막아 세웠다.

“이건 또 뭐야아아아아아아!!!!”

바알의 분노가 담긴 주먹을 받아내고도 전혀 밀리지 않는 덩어리.

두 쌍의 팔을 교차시켜 바알을 막아낸 덩어리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날카롭고도 웅장한, 거대한 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몸의 이름은 헤라클레스. 고통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최강의 마계 최강의 악마.”

그렇게 중얼거리는 헤라클레스의 등 위, 그곳에 있던 새하얀 물체 하나가 사뿐한 움직임으로 땅에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일찍 왔구나. 실비.”

“그렇게 반대를 했는데…… 결국 이 난리를 치셨군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는 실비. 이에 그레고리는 억울하다는 듯 실비에게 말했다.

“나는 방금 왔다만…….”

“애초에 그레고리님께서 계획하신 낭독회 때문입니다.”

“엘리고스…… 너까지…… 나는 파티를 연 기억이 없는 데에?”

찌릿. 하고 실비를 노려본 바알이 한숨을 내쉬고는 헤라클레스를 향해 내지른 주먹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선다.

“엘리고스. 전쟁을 하러 온 거야아?”

동그랗게 치켜뜬 눈으로 고개를 옆으로 꺾은 바알이 묻는다. 그러자 고개를 젓는 실비.

“저희를 곱게 보내준다면 전쟁까지 할 생각까지는 없습니다만…… 원하신다면 할 생각은 있습니다.”

사무적인 어조로 그렇게 대답하는 실비에게서 시선을 뗀 바알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땅에 쓰러진 체 상반신만 일으키고 있는 대천사와 멀쩡한 상태의 그레고리 존스, 그의 부하인 대악마 실비 엘리고스와 순수한 힘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벌레형 악마까지.

도리도리.

바알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이~ 아무리 바알이 최강이라도 이건 힘들지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진짜로 위험해에.”

“현명한 판단입니다. 바알.”

그대로 땅에 털썩 주저앉은 바알이 손을 휘적휘적 젓는다.

“그냥 다 꺼져버려어…. 바알은 쉴래에…….”

그렇게 말하고는 땅에 대짜로 뻗은 바알은 눈을 감고 축 늘어졌다.

드러렁──피휴우──드러렁── 피휴우──

순식간에 수면 상태에 빠져든 바알. 이에 그녀의 앞을 막고 있던 헤라클레스가 뒤로 물러서며 놀란 듯 중얼거렸다.

“나의 기세에 기절한 것인가……! 얼마나 강해진 것인가! 헤라클레스여!”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의 헛소리가 익숙하다는 듯, 무시해버린 실비는 고개를 돌려 그레고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레고리님.”

본래 낭독회를 열기로 했던 시장은 이미 난장판이 된 상황.

주변을 둘러보던 그레고리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낭독회는 포기하지. 나 원 참, 다음에는 평야에서 열던가 해야겠군.”

“좋은 생각이십니다.”

“아, 잊을 뻔했군.”

실비와 대화하던 그레고리가 그대로 몸을 돌려 아직까지 누워있던 라파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어설 수 있겠나? 천사.”

“……아. 응.”

아직 남아있는 왼팔을 뻗어 그레고리의 손을 붙잡는 라파엘. 그레고리의 손에 몸을 맡겨 서서히 일어선 라파엘은 홀린 듯 그레고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머리카락 색보다 조금 더 흑색에 가까운 색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과 끔찍함을 느껴지는 외견.

그런 모습에도 라파엘은 방금까지 분위기만으로도 바알을 압도하던 그레고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뭘 그렇게 보는 거지?”

자신에게 시선을 오래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그레고리가 라파엘에게 물었다.

자신의 본신은 가신들마저도 오래 보기 힘들어하는 것.

하지만 어째서인지 눈앞에 있는 이 천사는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천사가 입을 열었다.

“너.”

“뭐?”

“너 본다고. 너, 나랑 사귀자.”

“……미친 건가?”

그렇게 천사는 악마에게 차이고 말았다.

[소환사 아카데미아 – 외전(그레고리 존스) 챕터 3 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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