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아카대공 65
* * *
──띵동
──띵동
익숙한 벨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TV를 확인하자 마차에서 내린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도착했나.”
아주 잠깐 동안의 낮잠이었지만 머리가 눌려있는 상황. 가볍게 변신을 2번 해서 원상복구 시킨 뒤 현관을 나서 로제의 곁으로 이동했다.
“아! 그레고리님!”
아주 잠깐동안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마냥 반기는 로제.
“도착한 건가?”
“네! 저기가 제국 아카데미래요!”
로제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돌리자 웅장한 크기의 정문이 나를 반겼다.
“……이곳이, 제국 아카데미.”
게임에서도 언급만 몇 번 되었을 뿐, 직접적으로는 나오지 않은 미지의 영역.
우리가 나란히 서서 그 자태를 감상하고 있을 때, 일행들이 우리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선다.
“우리도 갈까요?”
“그래.”
우리가 정문에 다가서자 서서히 문이 열리며 경비로 보이는 남성이 나왔다.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체격과 눈빛.
이곳의 경비 역시 평범한 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소환사 아카데미에서 오신 분들이겠군.”
경비의 물음에 우리의 인솔자인 셀루아 네갈이 앞으로 나섰다.
“소환사 아카데미의 교관이자 대표 인솔자인 셀루아 네갈입니다.”
“음. 서머니아의 푸른 늑대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 나는 제국 아카데미에서 경비를 맡고 있는 짐부르 겔라라요.”
“제국기사 짐부르경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아마 드물 것입니다.”
교관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꽤나 이름을 날린 기사인 모양이었다.
“하하! 듣기 좋은 말을 해주시는군. 그리고…… 황녀님도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네, 짐부르 경도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이네요.”
“모두 황제 폐하의 은덕이지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답하는 짐부르.
“여러분의 신원에 대한 것은 도착 전에 모두 받았으니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정문을 지나자 마치 대학교 캠퍼스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부지가 우리를 반겼다.
어림잡아 아카데미의 면적의 배는 되는 크기였다.
“……제국은 뭐든지 다 크다고 하던데, 사실이었던 모양이에요.”
입을 벌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로제.
소환사들의 양성뿐만이 아닌 기사와 문인 역시 육성하는 아카데미답게 그 크기만큼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주목.”
교관이 우리의 시선을 모은다.
“우리는 지금부터 제국 아카데미의 소환사 구역에 있는 별관에 짐을 풀고 하루 간의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공식적인 임무는 내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니 오늘은 푹 쉬도록.”
그렇게 말하곤 선두에서 움직이는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복장을 본 제국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호기심을 가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거나 했지만 말을 걸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프리실라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뭔데요?”
“프리실라는 제국의 황녀님인데 어째서 소환사 아카데미로 온 거예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묻는 로제, 그 질문에 프리실라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가 없잖아요.”
“재미요?”
“제국 아카데미에 들어오면 제국의 황녀라고 사람들이 떠받들어주고 특별취급을 할 텐데, 저는 그런 걸 원치 않았거든요.”
제국 아카데미에 제국의 황녀가 입학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아무리 공평하게 보려고 해도 그럴 수 없을 터였다.
황녀의 신분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는 것은 결국 아카데미였을 테니까.
“그리고…… 여기에는 제 적들이 많아서요.”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프리실라.
로제는 뭔지는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이해하기를 포기했는지 방긋 웃었다.
“그러면 소환사 아카데미는 즐거운 거죠?”
“네, 너무나요.”
“다행이에요~ 헤헤.”
그런 둘의 대화를 들으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작스레 누군가가 뒤에서 목에 팔을 둘렀다.
“그레고리! 왜 그렇게 죽상이야?”
라파엘이었다.
“…내 표정은 원래 이렇다만.”
“아, 그랬지? 내가 그 표정에 반했던 걸 깜빡했네.”
까먹어도 그런 걸 까먹나. 라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 역시 라파엘이 바라는 바 같아서 그냥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말았다.
문뜩, [소환사 아카데미아 – 외전(그레고리 존스) 챕터 3]에서 보았던 라파엘의 모습이 떠올랐다.
“라파엘, 질문이 있다.”
“응? 질문? 난 아직 솔로고 처녀에 널 좋아하고 있어.”
……훅 들어오시네.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네가 가지고 온 망토 있지 않나.”
“망토? 아, 모습을 숨긴다고 두르고 간 망토가 있었지. 근데 그게 왜?”
꿈뻑꿈뻑 내 눈을 지긋이 응시하며 묻는 라파엘.
뭔가 부담스러워서 어깨를 털어 그녀를 떼어냈다.
“아, 좋았는데.”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라파엘.
개인적으로는 오른쪽 팔에 그녀의 가슴이 계속해서 닿아서 곤란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날 때 그 망토는 어떻게 했지?”
“음? 그거? 분명히…… 그 자리에서 잃어버렸던 거로 기억하는데? 덕분에 천계에서도 다른 대천사들한테 엄청나게 깨졌고 말이야. 아마 시장 바닥에 굴러다니지 않았을까?”
신성력과 마기를 완벽히 감추는 보물이라 해서 흥미가 생겼는데 아무래도 라파엘은 정말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럼 되었다.”
“그래? 싱겁기는……. 그나저나 도착한 거 같은데?”
라파엘의 말대로, 어느새 우리는 화려한 외관의 3층 저택 앞에 도착해 있었다.
교관을 따라 1층 안으로 들어서니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나와 우리에게 별관의 규칙을 설명해주고 키를 배부해주었다.
나와 로제는 203호였다.
“프리실라는 몇 호예요?”
“저는 301호에요. 심심할 때 놀러 와줘요?”
싱긋 웃으며 라파엘과 함께 3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프리실라.
대충 보아하니 3층은 주요계층을 위한 공간으로 3층 전체를 사용한다는 모양이었다.
역시 황녀는 황녀님인가.
“로제, 우리도 방으로 돌아가서 짐부터 놓고 오지.”
“네, 좋아요!”
우리의 방으로 배정된 203호 역시 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못해도 원래 있던 기숙사의 2배는 되는 크기. 그 압도적인 평수에 로제가 덜덜 떨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제국은 진짜 뭐든지 크네요…….”
또 그 타령인가.
“저는 아멜양과 함께 프리실라양의 방에 놀러 갈 예정인데, 그레고리님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에요?”
기껏 온 제국 아카데미였는데 방 안에만 있는 것은 좀 그럴 것 같았기에 제국의 시설들을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라파엘과 몸이나 풀어야겠군. 같이 올라가지.”
짐 정리를 끝내고 복도로 나오자 옆 방에서 아멜과 휴고가 같이 나오고 있었다.
“아! 아멜양! 지금 올라가려는 거죠?”
“그래, 그리고…… 그레고리도 함께 군.”
“네, 그레고리님은 라파엘님께 용무가 있으시다는 모양이에요. 휴고씨는요?”
갑작스레 본인을 향한 질문에 머리를 긁적이는 휴고.
“응? 나는 딱히 별생각 없었는데…….”
마침 좋았다.
“휴고. 너도 대련이나 하지 않겠나.”
“대련?”
휴고는 웨어울프답게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는 소환수였다. 전투 방식이 무투인 나와도 호흡을 맞추기 좋은 상대. 그 역시 라파엘과의 대련에 참여하면 좋은 성과가 나올 것 같았다.
“좋은데? 제국 아카데미 측의 훈련장을 빌릴 생각이야?”
“그래, 아래에서 들은 규칙대로라면 우리가 훈련장을 빌려도 된다는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그러지 뭐.”
그렇게 우리는 우르르 3층으로 몰려갔다. 계단을 오르자 보이는 거대한 문.
“와…… 3층은 복도가 없네요?”
그 광경에 다시 벌벌 떨며 ‘크다…….’라고 연신 중얼거리는 로제.
아멜이 대표로 나서서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라파엘이 문을 열어주었다.
“금방 왔네? 음? 그레고리랑 거기 늑대는 무슨 일이야?”
“제국 아카데미의 훈련장에서 몸 좀 풀어볼까 해서 말이다. 같이 가지 않겠나.”
“훈련장?”
내 제안을 듣고는 미간을 찡그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는 라파엘.
“미안,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내가 프리실라를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래도 제국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정적들을 의식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어쩔 수 없지. 휴고, 우리 둘만 가지.”
“그래? 그러지.”
그리고 이내 활짝 웃은 라파엘이 문을 완전히 열며 싱긋 웃었다.
“다른 애들은 프리실라랑 놀아주러 온 거지?”
“네! 들어가도 될까요?”
“물론이지. 자, 들어와.”
그렇게 여성 멤버들은 우르르 3층으로 들어가고 나와 휴고만 남게 되었다.
“우선 1층으로 가서 훈련장에 관해 물어보도록 하지.”
그대로 1층에 있는 직원에게 훈련장에 관해 묻자 그녀는 우리에게 훈련장의 위치와 사용하기 전 해야 할 것들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훈련장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15분 정도. 물론 나와 휴고가 적당히 뛴다면 3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그렇게 별관을 나와 훈련소를 향해 설렁설렁 가고 있던 도중, 뒤에서 휴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레고리. 말할 게 있는데.”
“뭐지?”
“우리가 가는 방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이상한 냄새?”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스킬 : 후각 상승]을 발동했다.
그러자 코끝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피?”
“맞아. 이렇게 뚜렷하게 나는 거로 봐선 훈련장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나는 냄새 같은데?”
훈련장의 외부에서 피가 날 일이 있을까?
그렇게 묻는 휴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속도를 높여보지.”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어어? 자, 잠깐만!”
그대로 나무들을 타며 그대로 훈련장으로 직행하자 모습을 드러내는 제국 아카데미의 훈련장.
거대한 돔 형태의 훈련장은 소환사 아카데미와는 달리 내부에 대련장이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내부에서 나는 건 아니군.”
코에 감각을 집중해 천천히 냄새가 나는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방향은 훈련장의 뒤에 있는 숲.
천천히 그곳을 향해 다가가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소환사는 건들지 말아라! 고통을 느끼지 않는 이 몸이 상대해주마!”
“느려터져서 공격도 못 하는 게 무슨! 야. 네 소환수가 대신 맞아주고 있는데, 소환사라는 녀석이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만 있냐?”
“헤, 헤라클레스! 심상공간에 들어가 있어도 되니까……! 피해!”
……헤라클레스?
“내 소환사는 너희 같은 녀석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강한 신념을 가진 남자다! 내 소환사를 모욕하지 마라!”
“1성밖에 안 되는 새끼가 말은……. 한조, 적당히 혼내줘.”
“……알겠소.”
우리의 눈앞에 들어온 풍경은 흔하디흔한 괴롭힘의 현장이었다.
자신의 소환사를 끌어안고 있는, 인간 크기의 장수풍뎅이와 그런 풍뎅이를 공격하고 있는 새까만 닌자.
평소라면 내 일이 아니니 무시했겠지만, 어째서인지, 아주 오랜만에 분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하하! 느려터져가지고는! 그러니까! 알아서 상납을 잘하면 이런 일이 없잖아!”
“그마아안! 내일까지 가져올 테니까! 그만해줘어어어!”
“안된다 소환사여! 또 저 녀석의 제안을 수긍했다가는 벗어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하지만……!”
“우오오!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정말로 못 참겠다.
사고를 쳐도 프리실라가 알아서 해결해주리라 생각한 나는 그대로 뒤에서 멍하니 학교폭력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휴고.”
“어?”
“아쉽지만 대련은 나중에 하는 거로 하지. 변신.”
나는 그대로 변신을 한 뒤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부르르르 하는 날갯짓 소리를 들은 가해자 녀석이 내 쪽을 바라본다.
“응? 뭐야 저건……흐, 흐이익?!”
하필, 내가 챕터 3를 클리어한 뒤에 저 녀석을 만나게 될 줄이야.
“하, 한조! 피해에!”
소환사의 외침에 헤라클레스를 향한 공격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닌자 녀석.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그대로 몸을 뒤로 빼려고 하는 것이 보였지만 이미 나를 저지하기엔 많이 늦었다.
“바퀴벌레 킥.”
정의를 실천하는 집행자의 발차기가 그대로 녀석의 배때지에 꽂힌다.
“한조오오오오오!!!!!!!!!!!!!!”
순식간에 복부가 관통되어 역소환 된 소환수를 바라보며 절규를 내뱉는 가해자 소환사.
자신의 등 뒤에서 이변이 생긴 것을 깨달았는지 소환사를 안고 있던 풍뎅이가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도와주어서 고맙군…! 정의를 실행하는 그대야말로 진정한 남자일 터………어?”
그리고 몸을 완전히 돌린 풍뎅이가 돌연 털썩 주저앉았다.
“헤, 헤라클레스? 왜그…… 뭐, 뭐야 저 괴물은!!!”
아무래도 공포에 대한 내성이 없었는지 그대로 뒤로 쓰러져서는 벌벌 떨기 시작하는 피해자 소환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시선이 꽂힌 풍뎅이는 그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뿐이었다.
“……주, 주군?”
천천히 입을 연 풍뎅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설마 챕터 3가 끝나자마자 만날 줄이야.
나는 과거, 바알을 함께 저지했던 나의 부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군. 헤라클레스.”
내 가신이자 바알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냈던 악마.
헤라클레스.
설마 그가 아카데미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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