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아카대공 67
* * *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 된 후, 아직까지도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갈리어를 바라보며 프리실라가 이마를 짚었다.
“……여기는 아카데미이기도 하고, 당신은 황녀인 저를 보러온 것도 아니니 우선 일어서 주시면 안 될까요?”
“하, 하지만 어찌 제가 감히 황녀님을…….”
“그렇다면 그 황녀의 명령을 무시하겠다는 거겠죠?”
“이, 일어서겠습니다!”
협박을 조금 가미를 하고서야 마침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갈리어. 하지만 아직 고개는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 제국 아카데미에 오기가 싫었는데.”
여기서 분위기를 환기해야 할 것 같았다.
“갈리어. 헤라클레스를 소환해라.”
“그, 그렇죠. 알겠습니다.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부르자 그의 옆에 새까만 구멍이 생겨나며 무언가가 기어 나온다.
“도착했나. 음?”
아까까지의 숲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당황하는 헤라클레스.
“여기는…….”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는 투로 말했다.
“이쪽은 헤라클레스. 마계에서 나를 따르던 가신이다. 라파엘은 구면이겠지?”
힐끔 그녀의 표정을 보니 라파엘 역시 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쟤는…….”
“이거 참, 오늘따라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보는군!”
껄껄껄 웃을 때마다 헤라클레스의 상처에서 피가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어…… 저분, 많이 다친 거 아닌가요?”
“하하하하! 이 정도는 상처라고 부르지도 못하오! 만약 내 소환사를 지키지 못했다면 그것이 상처였겠지.”
“하하…… 멋진 분이시네요.”
“……아무튼, 이 멍청이가 좀 다쳐서 치료를 부탁하려고 한다.”
“네, 뭐 그 정도야 어렵지 않죠. 다행히 크게 다치신 것도 아닌 것 같고요. 프리실라, 아멜. 도와줄래요?”
뒤를 돌아보며 묻는 로제. 다른 아이들 역시 크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자 라파엘이 프리실라의 머리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싱긋 웃었다.
“프리실라는 힘들 거야. 항상 나랑 붙어 다니는 탓에 마나에 신성력이 깃들어 있거든.”
“네, 네엣?! 하, 하지만 치료해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어. 아쉬워도 참자?”
“……네.”
기껏해야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뿐인데, 어째서인지 프리실라는 크게 실망한 기색으로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아멜, 너는 괜찮겠나?”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 도와주지.”
“고맙군.”
그대로 로제와 아멜이 다가와 헤라클레스의 몸에 손을 댄다.
“치료 시작할게요.”
“크, 크흠! 부, 부탁하지!”
어째서인지 새까만 몸이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헤라클레스.
갈리어는 두 소녀가 자신의 소환수를 치료해주는 광경을 보며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갈리어라고 했나.”
“네!”
“아까 했던 이야기를 계속해줬으면 좋겠군.”
“아……. 헤라클레스와 처음 만난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인가요?”
“그래.”
“…알겠습니다. 헤라클레스와 함께 마을로 돌아갔다는 데까지 이야기했었죠?”
고개를 끄덕여주자 크흠큼! 하는 소리를 내며 목을 다듬은 갈리어가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숲을 벗어나 마을에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을 때, 마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마을이 말인가?”
“네, 그래서 헤라클레스와 함께 마을로 향했을 때…………”
* * *
그저 몇 시간을 잠깐 비웠을 뿐이었는데, 마을은 갈리어가 아는 것과는 달리 크게 달라져 있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멀쩡했던 밭은 불타고 있었고 마을의 외곽에선 불길이 치솟고 있던 것이다.
“이, 이게 대체…….”
“저 불타는 마을이 그대가 산다는 곳인가?”
“아, 아니요! 분명 숲에 오기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이게 대체…….”
그리고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갈리어를 향해 날아왔다.
“위험하군.”
그리고 재빨리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어 그것을 쳐내는 헤라클레스.
갈리어를 향해 날아온 것은 녹이 슨 화살이었다.
“…화, 화살?!”
“아무래도, 그대의 마을은 저 녀석들에게 습격을 받은 모양이군.”
헤라클레스의 말을 들은 갈리어는 천천히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키릭!
──켁켁!
어린아이만 한 체구와 앙증맞은 손에 들린 병장기들, 삐죽삐죽한 이빨과 흉측한 외견을 본 갈리어는 뿌득 이를 갈았다.
“고블린……!”
마침내 어째서 마을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게 된 갈리어는 헤라클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블린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중앙에 모여서 목책을 세우고 방어를 하게끔 되어있어요! 마을의 가운데로 가면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가? 그래서, 그대는 어찌할 생각이지?”
헤라클레스의 물음에, 갈리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당연히 구해야죠!”
“……저 고블린 들로부터 말인가?”
저 멀리서 활을 쏜 고블린 들은 헤라클레스를 경계하며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네! 아저씨도 많이 다쳤으니까 제 뒤에 붙어서 잘 따라와요. 다른 몬스터라면 몰라도, 고블린 정도는 저도 해치울 수 있어요.”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에 굴러다니던 막대기를 집어 든 갈리어를 보며, 헤라클레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따라와요! 마을의 중앙은 이쪽이에요!”
그렇게 말하고는 헤라클레스의 손을 붙잡은 체 고블린 무리의 반대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갈리어.
방금 산에서 내려와 숨이 찰 터인데도 그는 거구의 헤라클레스까지 이끌며 열심히 마을의 중앙을 향해 달려나갔다.
“…힘들지는 않나?”
“하악……. 하악……. 괜찮아요. 당신은요?”
“음, 멀쩡하다.”
“다행이네요. 아! 저기 마을 사람들이 보여요!”
갈리어가 가리킨 곳. 그곳에는 농기구를 들고 목책에 다가오는 고블린 들을 향해 휘두르는 마을 사람들과 그 주위를 둘러싼 고블린의 무리가 보였다.
지금은 목책에 의지해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었지만, 점점 마을 사람들이 지치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엄마! 아빠! 아저씨!”
“가, 갈리어!”
그 무리에서 갈리어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이 놀라며 갈리어를 향해 외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갈리어가 미처 보지 못한 건물의 측면에서 고블린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키야아악!”
“으아아아악!”
놀란 나머지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마는 갈리어. 운 좋게 고블린의 공격을 피한 갈리어는 재빨리 고블린을 향해 손에 든 나무막대기를 휘둘렀다.
“키에엑!”
단말마를 남기고는 풀썩 쓰러지는 고블린. 초록색 피가 묻은 막대기를 든 갈리어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소년…….”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빨리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그렇게 말하고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달려나가려던 갈리어의 손을 헤라클레스가 붙잡았다.
“으악! 놔요! 가족들을 구하러 가야 한단 말이에요!”
그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얼굴 앞까지 갈리어를 끌고 와 말했다.
“소년, 정신 차려라. 저곳에 네가 간다고 바뀌는 건 없다.”
“하, 하지만! 가족들을 지켜야 한단 말이에요!”
헤라클레스에 의해 공중에 매달려 발버둥을 치는 갈리어. 헤라클레스는 그런 갈리어를 설득하려는 듯 차분히 말했다.
“그래 봐야 너는 평범한 소년에 불과하다. 그런 네가 저곳에 달려가는 것만으로 전황이 변하리라 생각하나.”
“하지만──”
“힘없는 네가 하려는 것을 우리는 객기라 부른다. 부질없는 발버둥이라고도 하지. 그런데도 가겠다고?”
“──갈 거예요!”
“…….”
“갈 거라고요! 그러니까 당장 이거 놔요!”
“…왜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는 거지?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 않았───”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잘못됐어요! 그냥 이렇게 여기서 구경만 하고 있다가 가족이 다 죽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게 될 거라고요!”
“……계속해봐라.”
“그럴 바엔 발버둥 칠 거에요. 아주 작은 희망이 있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할 거라고요!”
“…그런가.”
그렇게, 헤라클레스가 허공으로부터 갈리어를 내려놓는다.
“정 그렇다면 말리지 않으마.”
“네, 고마워요.”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멈칫.
목책을 향해 뛰어가려는 갈리어를 헤라클레스가 말로 붙잡는다.
“그대는 어째서 내게 도움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지?”
아무리 헤라클레스가 상처를 많이 입었다 하더라도 그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상처 입은 몸으로도 고블린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헤라클레스 자신이었다.
그래도 어째서인지, 소년은 끝까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저, 부탁 한 마디면 되었을 터인데도.
“그야, 제 위험에 곤충 아저씨를 말려들게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대답한 갈리어는 망설임 없이 목책을 향해 달려나간다.
“으아아아아아!!!!!”
그리고는 목책을 망가뜨리기 위해 창을 휘두르는 고블린의 머리를 향해 막대기를 휘두르고, 그 옆에 있는 고블린은 발로 걷어차 버린다.
“갈리어! 지금이라도 도망가라!”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달려와 갈리어를 향해 외친다. 하지만 갈리어는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싫어요! 내가, 내가 모두를 지킬 거야!”
목책 밖에 있는 인간이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것을 깨달은 고블린들의 시선이 갈리어에게로 몰린다.
“키릭! 캬아아악!”
“캬아아아아!”
그리고 동시에 갈리어를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의 무리.
그럼에도 갈리어는 자신의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 막대기를 더욱 강하게 잡으며 외쳤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좋은 각오다. 소년.”
────────!!!!!!!!!!!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갈리어를 향해 달려들던 고블린들이 곤죽이 되며 공중에 흩날린다.
압도적인 무게와 크기로, 무언가가 들이받은 결과였다.
“고, 곤충 아저씨?”
“비로소 사내란 그 정도의 각오는 당연히 품고 있어야 하는 법. 내가 그걸 잊다니…… 그대에게 큰 은혜를 입었군.”
그렇게 말한 헤라클레스는 이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고블린들을 노려보았다.
“……대장이 온 건가.”
“네? 대장이요?”
“───구르롸롸아!!!!”
갈리어의 물음.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마치 거대한 나팔을 부는 것 같은 소리였다.
“오우거. 아무래도 저 녀석이 이 무리의 대장이었던 모양이군.”
“오, 오우거라니……!”
오우거. 단 한 마리로도 작은 마을을 평지로 만들어 버린다는 몬스터.
오우거를 잡으려면 기사들을 동원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 중 하나였다.
“오우거……!”
“포기할 텐가?”
고개를 돌려 갈리어의 표정을 바라보며 묻는 헤라클레스.
그의 질문에 표정이 굳어있던 갈리어는 이내 싱긋 웃더니 저 앞의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요!”
“좋군.”
“아저씨가 말했죠? 힘없는 제가 하려는 것은 객기라고.”
“음, 그렇게 말했지.”
“……그런 제가,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겠지.”
“……그런가요.”
“혼자라면 말이네.”
“네?”
다시 한번. 갈리어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른다.
“어어?”
다만, 방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헤라클레스가 갈리어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었다.
“힘없는 소년인 자네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 텐가.”
“당연히 해야죠.”
“……그것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게 될지도 몰라도 말인가?”
헤라클레스의 말을 들은 갈리어가 하! 하고 웃는다.
“오히려 그 정도라면 싸게 먹히는데요? 좋아요! 그 방법이란 게 뭐에요?”
갈리어의 물음에 헤라클레스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계약.”
“…계약이요?”
“아무리 나라도 이 몸으로 오우거는 조금 힘들어서 말이네, 자네와 계약을 하면 전체적인 힘은 약해져도 부상을 입은 지금보단 나아지겠지. 계약이 성사되면 새로운 몸으로 이 세계에 머무는 것이니 말이네.”
“……옛날에 모험가 아저씨께 들었어요. 이 세상에는 소환수라 불리는 파트너와 함께 싸우는 사람들. 소환사라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오, 알고 있나? 그렇다면 이야기가 쉬워지겠군. 그럼 어서…….”
“하지만.”
갈리어가 이어 말하며 헤라클레스의 말을 끊는다.
“아저씨는 괜찮아요? 그 모험가 아저씨가 말했어요. 소환사는 소환수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요. 소환사가 대단할 사람일수록 소환수도 대단한 소환수가 된다고도 했고요. 저는 평범한 농가의 꼬맹이일 뿐이에요. 그래도 아저씨는 괜찮아요?”
“영광이지.”
“……네?”
어째서인지, 갈리어에게는 곤충의 얼굴일 뿐인 헤라클레스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 같은 소환사와 함께 싸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영광일세.”
“……아저씨.”
“그대 같은 마음과 각오를 가진 자가 대단하지 않을 리가 없지. 마계 최강의 힘을 가진 악마. 나 헤라클레스가 확언하마.”
“크롸아아아아아───!!!”
더 이상은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걸까. 유심히 지켜보기만 하던 오우거가 두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그런 와중에도,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침착했다.
“나의 이름은 헤라클레스. 마계의 악마이자 그레고리 존스를 모시는 최강의 악마. 그대는 나와 계약을 받아들이겠는가?”
꿀꺽. 하고 침을 삼킨 갈리어가 대답한다.
“제 이름은 갈리어. 신성 하인베른 제국에 소속된 라만차 마을 농가의 아들이자 누구보다도 마음만 앞서는 멍청이예요. 그럼에도…… 저는 당신과 계약하고 싶어요.”
그의 대답과 동시에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있는 힘껏 허공을 향해 외쳤다.
“계약은 성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헤라클레스의 몸을 감싸는 검은색 연기, 순식간에 검은 연기에 휩싸인 헤라클레스는 어느새 인간 남성의 크기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나 헤라클레스는 그대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지, 내게 할 명령은 뭐지? 나의 소환사. 갈리어여.”
그의 질문에 갈리어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괜찮겠어요? 많이 작아졌는데.”
이에 헤라클레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우거를 노려본다.
“아무리 작아졌다 하더라도 이 몸은 마계 최강의 힘이라 불린 악마. 오우거 정도야 어려울 건 없다.”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을 들은 갈리어가 싱긋 웃는다.
“그렇다면 헤라클레스! 제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는 저 녀석을 무찔러 주세요!”
“명령을 받들지.”
부르르르르르르───
헤라클레스의 날개가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그대로 앞으로 누이고, 마치 투우사를 향해 달려들려는 성난 황소처럼, 헤라클레스는 눈앞의 오우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진무의탁(??無??)”
“크롸───아?”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던 오우거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림과 동시에, 그 거대한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부르르르르릇───
끊임없이 진동하던 날개를 수납하고는 서서히 자세를 푸는 벌레형 악마.
그의 이름은 헤라클레스.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극복하는 자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