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아카대공 71
* * *
“대단했죠? 두 사람.”
막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서 나온 로제가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오며 말했다.
새하얀 그녀의 피부는 샤워할 때의 온기로 인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 아마 제대로 된 환경에서 방해 없이 성장했다면 훨씬 더 강해져 있었겠지.”
애초에 헤라클레스가 전에 강력한 악마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헤라클레스 정도라면 태생부터가…….
잠깐, 어디서 많이 본 경우인데?
“로제.”
“네?”
열심히 마법을 사용하며 머리를 말리던 로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혹시 갈리어가 헤라클레스의 최고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줬었나.”
“네? 최대로 올릴 수 있는 등급이요? 아니요……. 그런 걸 함부로 물으면 실례일 수도 있으니까요. 따로 묻진 않았어요.”
머리가 미친 듯이 돌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흘러가듯 넘겼던 대화, 상황, 과거의 일.
아직은, 아직까지는 가설이지만,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모든 것이 이어진다.
헤라클레스.
그는 나와 같은 이벤트성 캐릭터일 확률이 높았다.
“…그레고리님?”
“아, 미안하군. 잠시 생각할 게 있었다.”
“흠~ 가끔 그레고리님은 뭔가 깊게 생각하시면 미간에 주름이 생기시니까요.”
“……내가 말인가?”
“네!”
그렇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양 미간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 미간 주름을 만드는 로제.
“이렇게요!”
[(특성 : 귀족)이 발동합니다.]
[표정 관리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아, 웃을뻔했다.
“으으……. 웃으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에잇! 에잇!”
계속 손가락에 힘을 주며 미간을 꾸깃꾸깃하게 만드는 로제였지만 (특성 : 귀족)이 발동한 이상 내가 웃을 일은 없었다.
“히잉…….”
……한 번 정도는 웃어줘도 됐으려나.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시무룩한 로제를 보는 맛도 있었기에 웃어주려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어라?”
“내일은 바쁠 거다. 푹 쉬도록.”
“네!”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방으로 통통 튀어 들어가는 로제.
로제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나 역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섰다.
“……이거 참. 목욕하면서 담배를 핀 건가.”
욕실에서는 수증기와 로제의 담배 연기가 섞여 은은한 향이 나고 있었다.
“……심상 공간에서 씻자.”
* * *
“…다들 모였나?”
프론트가 위치한 별관의 1층. 우리는 한 자리에 몰려 제국 아카데미를 향해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 모두 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중에서도 제일 선배로서 조장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아멜이 모든 인원의 숫자를 체크하고는 교관에게 보고. 이에 교관은 고개를 끄덕인다.
“좋군,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그대로 우리는 제국 아카데미의 메인 시설이 모여있는 행정관으로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도착 전에 미리 알려주자면, 우리는 적진에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다. 녀석들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덜 뜯기려고 온갖 질문을 해오겠지. 절대 흥분하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한 체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행정관을 향해 걷던 도중 교관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의 의견에 동감했다. 그리고 멤버가 멤버인 만큼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됐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행정관에 도착했다.
“……들어가지.”
교관, 셀루아 네갈을 필두로 우리는 우르르 행정관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시선들. 우리를 발견한 제국 아카데미의 직원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레고리님. 뭔가 부담이 엄청 되는데요……!”
“무시해라. 결국 승자는 우리가 될 거다.”
“……네!”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우리, 밖에서 보았을 때 높다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30층이나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교관이 누른 것은 21층.
잠깐의 덜컹거림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로제, 입안에 이걸 넣고 있어라.”
“……이건?”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탕이다.”
[가울의 만물상]에서 구매한 아이템 중 하나인 ‘무표정 사탕’
게임에서는 그냥 캐릭터의 무표정이나 보라고 만든 아이템이었지만 이 표정이 은근히 매도적인 느낌이기에 매니아층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이었다.
“사탕이 회색이라니…… 뭔가 맛 없어 보이는데요.”
“그럴 줄 알고 바나나 맛으로 샀으니 걱정 말도록.”
“와! 바나나!”
그대로 입 안에 쏙 하고 집어넣고는 혀로 사탕을 이리저리 굴리는 로제.
달콤함을 느끼며 행복한 표정을 짓던 로제의 표정이 점점 굳기 시작했다.
“…뭔가, 웃고 싶은데 웃어지질 않아요.”
“효과는 확실하군.”
“설마 이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죠?”
목소리는 벌벌 떨리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묻는 로제. 나는 걱정 말라는 표시에서 대답해주었다.
“길어야 한 알당 한 시간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그건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런 우리를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프리실라가 신기하다는 듯 로제를 빤히 바라보았다.
“와……. 로제양의 무표정이라니, 항상 웃고 있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뭔가 색다르네요.”
“그런가요?”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무표정한 로제라니, 무표정한 로제도 뭔가 차가운 엘프의 느낌이 있어 이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느껴졌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21층에 멈췄다.
서서히 열리는 문 뒤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사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드시길.”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직원들의 안내를 따라 향한 사무실, 그 안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다크엘프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먼 길 오느라 다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다크엘프.
“저는 이번 사건에 대한 권한을 일임받은 조사관, 블리 베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다크엘프, 블리 베르를 향해 교관이 다가가 손을 건넨다.
“인솔자, 셀루아 네갈입니다.”
“아, 소환사 아카데미의 푸른 짐승이라 불리시는 분이셨군요. 영광입니다.”
“…과분한 이명일 뿐입니다. 그래서, 조사는 언제 시작되는지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아, 그렇지요. 분명 그 사건에 연루된 인물은 총 4명이지요? 어디 보자 이름이…… 이것 참. 예사롭지 않은 분들뿐이군요.”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철을 바라보며 안경을 한 번 들썩이는 베르.
“용사의 가문인 유글리아의 영애와 황녀님이라니, 대단한 분들이신 만큼 이런 일에도 쉽게 휘말리시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훑는 베르.
프리실라와 라파엘은 당연하게도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평소라면 불안하다며 벌벌 떨고 있을 로제 역시 ‘무표정 사탕’ 덕분에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웃고 있는 것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어디 성함이…… 그레고리 존스. 이번 사태를 라파엘님과 함께 제압한 소환수로군요.”
“그래, 네가 말한 대로 악마를 붙잡은 또 다른 악마이지. 내게 기분 좋은 일이 있느냐 물었는가? 물론이지, 있고말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재미있는 일이 있었지.”
“재미있는 일이라 하시면…….”
“이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신경을 끄는 게 좋을 것 같군.”
시작은 기선제압.
우리가 갑이라는 사실을 녀석에게 알려야만 했다.
황녀인 프리실라라면 모를까, 제국인이 아닌 우리는 녀석들에게 얕보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확실히 그렇군요. 제가 호기심이 많은 편이기에,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해하고 말고. 그래서, 그 조사라는 것은 언제 시작할 셈인가?”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황녀님과 라파엘님은 하얀 문으로, 유글리아양과 그레고리 존스님은 저와 함께 검은 문으로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나와 라파엘의 컬러에 따라 방이 갈리게 되었다. 따로따로 조사를 한 뒤 교차검증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먼저 들어갈게?”
“로제양, 그레고리님. 조금 있다 뵈어요.”
먼저 하얀 방의 문고리를 잡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뒤이어 우리 역시 검은 방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구조는 단순했다.
방의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과 의자 3개. 그리고 뒤쪽에 있는 정체불명의 거울까지.
……저건 매직미러잖아.
아무래도 하얀 방과 검은 방의 사이에 또 다른 공간이 있는 모양이었다.
“자, 우선 편하게 앉으시죠.”
“네.”
“그러지.”
자신이 앉기 전 우리에게 먼저 앉기를 권하는 베르.
그의 권유에 우리는 곧바로 자리에 앉아 뒤이어 앉은 베르를 바라보았다.
“그럼, 조사 전 녹취를 시작하겠습니다.”
베르는 자신의 가슴 주머니에서 녹음기로 보이는 막대기를 꺼내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소환사 아카데미 악마 관련 사건 조사과정을 녹화하겠습니다.”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듯 녹음기에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 둘을 바라보는 베르.
“그럼 우선, 유글리아양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유글리아양. 당신은 당신의 소환수 그레고리 존스가───”
“벌레가 있군.”
──쾅!
베르가 로제를 향해 질문하려던 찰나,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녹음기를 주먹으로 부숴버렸다.
“……뭐하시는 겁니까.”
미간을 찌그러뜨리며 나를 노려보는 베르. 그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솟아올라 있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벌레가 있었다고.”
“……그렇다 쳐도. 굳이 녹음기를 부숴야 했습니까. 벌레 정도야 손을 저어서 쫓아내면 됐을 텐데요.”
“아! 그렇군. 내가 미처 생각 못 했네. 자, 그럼 마저 질문하게.”
나는 과장스러운 몸짓을 하며 일부러 녀석을 도발했다.
그런 내 모습이 거슬리는지 처음보다도 사나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 이내 한숨을 내쉰 베르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른 녹음기를 가져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베르는 그 말을 남기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레고리님? 그건 왜 부순 거예요?”
베르가 나가자 나를 바라보며 묻는 로제.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매직미러가 보이지 않는 각도로 고개를 돌리며 입술에 검지를 올렸다.
“말하지 않았나. 벌레가 있었다고.”
“…벌레인가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내 행동에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로제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녹음기를 들고 와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는 베르.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유심히 바라보다 자리에 앉아 녹음기를 켜는 베르.
“소환사 아카데미 악마 관련 사건 조사과정을 녹화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베르가 테이블에 녹음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쾅!
나는 또 녹음기를 부숴버렸다.
"아니, 이번엔 왜 또──"
"벌레가 있었다."
내 대답을 듣고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베르.
그래, 더 화내라.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