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아카대공 72
* * *
”벌레라니! 또 그러시기입니까?“
”그대는 못 봤나 보군. 정말 아쉬워.“
내가 이렇게까지 녹음을 피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괜히 말을 하다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녹음된 정보는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나의 녹음기 파괴에 베르가 미간을 꾸욱꾸욱 누르며 나를 노려본다.
“자꾸 그런 식으로 조사를 방해하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하, 조사 방해라.”
녀석의 어이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젓고는 로제를 바라보았다.
“로제, 저 녀석에게 조사 중에 녹음기가 왜 필요하느냐 물어주겠나.”
“네? 네. 그러죠. 그레고리님께서 말씀하시길. 조사 중에 왜 녹음기가 필요하냐고 하시는데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묵묵히 말하는 로제. 그 광경에 베르가 기가 찬다는 듯 대답했다.
“그야 조사에 관한 내용을 기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는데요. 그레고리님.”
그래, 이유라면 충분히 그럴 듯하겠지.
하지만.
“로제, 잘못한 건 그쪽 아카데미의 학생인데 왜 우리가 취조나 다름없는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 물어보거라.”
슬슬 내 의도를 깨달은 것일까. 로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베르를 바라보았다.
“그레고리님께서 왜 우리 잘못도 아닌데 범죄자 취급을 하냐며 분노하고 계십니다.”
제대로 의도를 파악했구나. 마음만 같아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참았다.
“……아무리 그러더라도 조사과정의 내용을 기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금보다 기세가 죽은 녀석이 중얼거린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내가 알 바는 아니군. 아무튼, 녹음기는 내가 불쾌하니 수기로 작성하든지 해라. 라고 전하도록.”
“라고 하시는군요. 저 역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조사 방식을 제가 기록하여 소환사 아카데미 측과 유글리아 가문에 전달해도 되겠습니까?”
무표정한 로제는 더 똑똑해지는 건가?
이제는 스스로도 상대방을 압박하는 법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강력한 수. 이에 베르는 양손을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볼 수 없는 분들이군요. 알겠습니다. 기록은 수기로 작성하도록 하고 태도도 바꾸겠습니다. 부디 도움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도권이 완전히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대개 이러한 경우에서는 기세에서 밀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는 것이 보통.
하지만 죄 지은 것이 없는 우리는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도, 상황도 아니었다.
아니, 물론 깊게 파고들면 내가 조금 엮여있기야 하지만…….
그거야 안 걸리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좋은 태도다. 조사관. 앞으로는 그 태도를 유지하도록. 자, 그럼 시작해보도록 하지 궁금한 게 무엇이지?”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질문을 받는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녀석이 내게 질문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럼, 그레고리 존스님과 라파엘님이 악마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 유글리아양은 뭘 하고 계셨죠.”
내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인지한 녀석이 대상을 로제로 바꾸었다.
로제가 나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나는 그럴 줄 알고 로제에게 미리 수를 써두었다.
“잤습니다.”
너무나도 차가운 목소리에 베른이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그, 그렇군요. 자신의 소환수가 밤에 활동하는데 소환사가 몰랐다라…….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상대방에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질문하는 방법. 그야말로 구닥다리 조사방법이었다.
“안 이상합니다.”
그리고 나는 로제에게 이 방에 들어오기 전 또 다른 지시를 내렸었다.
무조건 단답으로 대답하라고.
그런 로제가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베르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식으로 대답을 간결하게 하시면 조사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
그렇지!
이게 바로 청출어람을 지켜보는 스승의 마음일까?
지금만큼은 저 차가운 로제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하아……. 자신의 소환수가 몰래 방 밖에 나간다는데 소환사가 제어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그게 왜 말이 되는 것이죠?”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대답하기로 했다.
“소환사 아카데미에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소환사와 소환수는 주종관계가 아닌 파트너 관계라고 말이지. 아니면 혹시…… 그대는 소환사 아카데미의 교육철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건가?”
“그, 그것은 아닙니다……. 하,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 아무리 네 녀석이 로제를 공격하려 해도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런 의도로 대답한 것이었다.
“즉, 유글리아양은 그 시간에 수면을 취하고 있었고 어떠한 연관도 없다는 것이군요.”
“그렇다. 그러니 내게 물어보도록.”
헛소리하면서 로제를 건들지 말고 나한테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레고리님께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제국 아카데미의 학생 중 악마와 계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호오, 제대로 된 공격이 들어왔다.
내가 이 정보를 듣게 된 경위는 파이몬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파이몬의 이름을 파는 것은 최악의 수.
이럴 때, 나는 그 방법을 쓴다.
“나는 그레고리다.”
「그레고리 협상법」
오랜만에 등장이다.
“예? 그, 그레고리님이시지요.”
“잘 알고 있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해하는 녀석을 향해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모르는 건 모르는 것밖에 없다.”
“예? 그 말은 즉…….”
“그 정보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
“그러니 그 정보를 누가 알려주었는지 묻는 것 아닙니까.”
“나는 그레고리다.”
“아니……!”
“즉, 내가 알고 있었으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파이몬마저도 좆 같다고 표현한 최고의 협상법이다.
이런 녀석이 나의 「그레고리 협상법」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즉, 누군가에게서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닌 원래부터 알고 계셨던 정보라는 거군요.”
“정확하군.”
“원래부터 알고 있던 이유는 그냥 알고 있었던 것이고요.”
“정확하다.”
“그게 말이 됩니까?!”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베르.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는 말이 된다.”
내가 곧 그레고리이거늘.
그래도……. 계속 이렇게 말하면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정보를 줄까.
“내 작위에 대한 정보를 듣지는 못한 건가?”
“예? 조사서에는 분명 대공이라고…….”
“그래, 대공인 내가 나만의 세력도 없으리라 생각하는가. 나는 그저 내게 들어온 정보를 확인했을 뿐이다.”
“하아…….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다음 답변부터는 참고하도록 하지.”
“……그렇다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악마가 아카데미 안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그 악마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 시기와 타 아카데미의 교환학생들이 온 시기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아니, 방금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 계속하시죠.”
“그래, 그래서 악마의 기척을 누구보다 잘 느끼는 라파엘과 함께 조사를 나섰고 그 과정에서 제국 아카데미 학생 중 한 명에게 악마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파악. 녀석 역시 우리가 온 것을 깨닫고는 선공을 하더군.”
그리고 여기부터는, 조금씩 진실 속에 거짓말을 숨겨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녀석을 막기 위해 가지고 있는 힘을 총동원했다. 대천사인 라파엘과 대공인 내가 힘을 총동원했음에도 녀석을 막는 것은 힘들었지, 내가 사용한 스킬마저도 폭주시킬 정도였으니 말이야.”
“그, 그 정도의 악마였던 겁니까?”
조금씩 도움이 되는 정보가 나온다고 판단한 것일까. 수첩과 펜을 든 녀석의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그래, 녀석은 자신을 할파스라고 소개했다.”
“하, 할파스!!!”
당연히 들어본 적이 있겠지.
그는 38위의 악마이자 대악마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리고 중요한 정보는 바로 이것이다. 똑똑히 듣도록.”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베르. 나는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정보를 주입했다.
“녀석은 다른 악마의 명령을 받아 인간계에 왔다고 했다.”
“다, 다른 악마 말입니까?”
“그래, 그 악마의 이름은…… 아몬. 7위의 대악마이자 재앙과의 전쟁에서 재앙의 편을 들었던 녀석이다.”
“아몬……! 대체, 아몬은 할파스에게 무슨 명령을 내린 겁니까.”
“교두보.”
“예?”
“인간계를 침공하기 전, 교두보를 만들어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더군.”
“……신이시여.”
그래, 그 반응이 맞지.
베르가 조사한 정보는 라파엘과 교차 검증되어 제국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국 측은 아몬이 인간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 그의 군대를 상대할 준비를 하겠지.
적의 적은 아군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던 말이지만 정말이지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제국을 우리의 든든한 우군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으니까.
어느새 이 자리는 아카데미 내부에 관한 조사가 아닌, 아몬의 침략에 대해 대비하는 조사가 되고 만다.
즉, 우리는 그런 아몬을 막아낸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며 우리는 그만큼의 공훈을 세운 것이 됨으로써 더욱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나는 멍하니 서서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베르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부디, 이 정보를 제국 측에 알려주게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하여 최고의 이득을 뽑아낸다.
이게 바로 고인물이자 그레고리 존스라는 악마의 방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