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아카대공 74
* * *
다른 녀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오렌지 머리의 소년과 교관이 눈빛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곧 시작할 모양이었다.
“로제, 몸을 풀어라.”
“넷!”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로제가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미 저쪽도 몸을 풀기 시작한 모양. 그렇게 로제가 몸을 푸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흉터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슬 대련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지?”
힐끔 로제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다.”
“그럼 바로 진행하도록 하지. 대련은 1 B 대련장에서 진행되며 프리즘 스톤 없이 상대의 항복을 받으면 끝나는 거로. 어떤가?”
프리즘 스톤을 사용하지 않고 대련을 하자는 것은 즉, 대련 도중 받는 데미지가 모두 몸에 축적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일까. 로제의 표정을 보아하니 로제 역시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좋군! 자, 두 사람은 대련장 위로!”
준비된 훈련용 목검을 들고 대련장 위로 올라가는 두 사람.
역시 상대방은 갈리어가 말했던 그 양아치 녀석으로 오렌지색 머리가 거슬리는 녀석이었다.
좋아, 저 녀석은 앞으로 오렌지다.
“상호 간에 경례.”
흉터남의 구령에 맞춰 각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인사를 끝내고 고개를 든 두 사람의 모습을 본 흉터남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을 휘둘렀다.
“개전!”
아직까지는 서로의 모습을 관찰하며 크게 움직이지 않는 모습.
멍하니 서 있는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오렌지였다.
“소환사 아카데미 출신이라고?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어때? 아름다운 네 얼굴을 망가뜨리긴 싫은데 말이지.”
전형적인 쓰레기 양아치의 발언.
로제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웃고 있는 로제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분노가 느껴졌다.
“상관없어요~ 제게 중요한 건 당신이 갈리어와 헤라클레스님을 괴롭혔다는 것뿐이니까요.”
“뭐야, 정말로 저 평민이랑 친구 사이였어? 진짜로? 그 복수를 하겠다고 나한테 덤빈 거고? 하하하하! 진짜 웃기네.”
이마를 부여잡고 큰 소리로 웃은 녀석이 이내 날카로운 눈빛으로 로제를 바라본다.
“엘프를 때리는 건 처음인데, 어떠려나.”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패는 데 익숙한데. 그거참 안됐네요?”
“그래? 그럼, 어디 말하는 것처럼 검술 실력도 좋나 볼까?”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로제를 향해 내달리는 녀석.
녀석은 거합의 자세로 로제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받아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파공음.
오렌지의 검은 로제의 검에 막혀있었다.
“그 정도 속도라면 질리도록 봐서요.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요?”
그대로 앞다리에 체중을 실어 오렌지의 몸을 밀어내는 로제.
그와 동시에 오렌지의 배를 향해 있는 힘껏 발을 내지른다.
“그레고리류. 로제 킥!”
“커헉!”
몸의 중심이 휘청임과 동시에 연이어 날아온 발차기에 그대로 뒤로 구름과 동시에 일어서며 중단세를 취하는 오렌지.
그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검술 훈련에서 발차기라니, 무슨 짓이야!”
그의 다그침에 로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내게 배운 가르침을 그대로 읊는다.
“그레고리류는 자신의 신체를 검으로 여기는 검술. 즉, 신검합일(???一)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 아무 문제 없어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교관님!”
로제의 검술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곧바로 교관을 찾는 녀석.
여기서 내가 가만히 있으면 교관은 오렌지의 편을 들어주겠지.
여기서는 내가 나서기로 했다.
“검성 마르바스마저도 인정한 것이 바로 이 그레고리류이다. 그대는 자신의 검술이 검성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레고리식 협상법의 오의.
친구 팔기.
역시 친구는 훌륭한 친구를 둬야 하는 법. 이럴 때가 아니고서야 언제 마르바스의 이름을 팔겠는가.
내가 마르바스의 이름을 꺼낸 이상 이 검술을 무시한다면 마르바스마저도 모욕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같은 검의 길을 걷는 교관이라면 반박조차 할 수 없겠지.
뭐, 꼬우면 자기가 검성을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 생각이 옳다는 듯, 교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문제없다.”
“교관님!”
“……미안하다.”
이걸로 한 건 해결. 이것으로 로제는 아무 걱정 없이 그레고리류를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잡담은 다 끝나셨나요?”
싱긋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 로제.
교관에게 따지는 동안 오렌지 녀석도 복부의 데미지를 조금이나마 회복했는지 안정적인 자세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닥쳐!”
“넹.”
이번에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로제였다. 강한 힘으로 바닥을 박차며 기습적인 찌르기를 선보이는 로제.
오렌지는 그대로 몸을 왼쪽으로 꺾어 찌르기를 회피한 후 로제의 머리를 향해 수평으로 목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그대로 몸을 완전히 숙인 로제가 검을 놓고는 그대로 녀석의 허리를 감싸고는 자신의 오른발을 오렌지의 발 뒤에 놓는다.
그대로 돌진.
로제의 발에 걸린 오렌지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로제는 재빨리 그런 녀석의 몸 위에 올라타고는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이, 이건 더이상 검술이 아니잖아!”
자신의 위에 올라탄 로제를 떨어뜨리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오렌지.
그러나 로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옆에 떨어뜨렸던 목검을 들고는 왼손으로 헝클어진 앞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그 정도 힘으로는 절대 안 풀려요~”
로제와 오렌지의 가장 큰 차이점.
그것은 바로 로제가 3서클에 도달한 소환사라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어릴 때부터 영약을 물먹듯이 먹어왔는데 심지어 2서클.
평균 1학년의 상위권이 2 서클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로제는 최상위권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육체적 능력도 우위, 마력의 컨트롤도 우위, 마나의 총량마저 우위인 로제에게 있어서 이번 대련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대련인 것이다.
“그럼 어떻게 요리해 드릴까요? 음…… 그렇지!”
그대로 목검을 거꾸로 들고는 손잡이 부분을 두 손으로 붙잡는 로제.
“자, 왼쪽일까요. 오른쪽일까요?”
“……뭐?”
“왼쪽!”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향해 목검을 내려찍자 녀석이 재빨리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이런 미친……!”
“좋네요. 참참참 하는 기분이에요. 그렇지, 이번엔 참참참으로 해볼까요? 참참……참!”
이번에도 왼쪽, 오렌지는 이번에도 역시 가까스로 로제의 검을 피했다.
“오, 반사신경이 좋으시네요. 확실히, 검술 수업에서 상위권을 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죠. 자, 계속해볼까요? 음…… 참참 참!”
카각─!
소리를 내며 녀석의 뺨을 스치고 땅에 박히는 목검.
오렌지 녀석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보였다.
“아, 이번에는 제가 실수한 거네요. 자, 계속 가볼게요?”
“좀……꺼져!”
오렌지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 몸 전체를 강화 시키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오른팔에만 마력을 집중시켜 땅을 폭발시킨 오렌지였다.
“윽!”
갑작스러운 모래 먼지에 눈을 가리며 그대로 옆으로 피하는 로제.
모래 먼지가 걷히자 눈이 새빨갛게 물든 오렌지가 로제를 노려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교관. 검술 수업 중에 마력을 일으켜서 땅을 폭발시키는데, 제재하지 않는 건가?”
내 물음에 싱긋 웃는 흉터남.
“체술 역시 검술에 포함된다면 마력을 운용해 상대를 밀쳐내는 기술 역시 검술이 아니겠나.”
“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쪽도 치사하게 나올 작정인 모양이었다.
그럼 내게도 방법이 있지.
“로제! 교관의 말을 들어보니 마력을 운용하는 것도 검술의 일종이라는군. 우리 그레고리류와 같이 말이야!”
내 목소리를 확실하게 들은 것일까. 오렌지를 응시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알아서 할 수 있겠지.
“…엘프 계집. 절대 용서 못 한다.”
오렌지 녀석의 뿌득.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방금 전 로제의 참참참에 당한 게 그리도 분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나라도 대련 중에 로제에게 참참참을 당하면 쪽팔릴 것 같았다.
“본인은 갈리어를 항상 허수아비처럼 상대했으면서, 정작 자신이 당하니까 화나는 거예요? 재미있는 분이네요?”
“그딴 평민과 나를 비교하지 마라!”
“아카데미에서만큼은 계급이 모두 공평하지 않나요? 그런데도 계속 평민, 평민 하는 모습을 보니까…… 좀 추하네요.”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알아요.”
“뭐?”
“갈리어가 항상 어떤 기분일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용서할 수 없는 거고요.”
그렇게 말한 로제가 오렌지를 향해 검을 겨눈다.
방금까지만 해도 헤실헤실 웃고 있는 듯한 로제의 표정이 ‘무표정 사탕’이라도 먹은 것 마냥 하얗게 얼어붙어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그 기분을 느끼게 해줄게요.”
“……뭐?”
로제가 검을 쥐는 방법이 바뀌었다.
방금까지의 파지법이 임기응변에 유리한 파지였다면, 지금 로제의 파지법은 검을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르바스에게 배운 거군.”
마르바스가 로제를 훈련 시키는 모습은 몇 번 보기야 했지만, 아카데미에서 악마를 찾고 다니는 동안에는 따로 보지 못했었다.
아마 그동안 로제를 훈련시킨 거겠지.
내 옆에서 둘의 대련을 보고 있던 흉터남 역시 로제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오레진! 조심해라!”
오렌지 녀석의 이름이 오레진이었나. 뭐, 그래 봐야 오렌지라 부르겠지만.
양손으로 쥔 검을 서서히 머리 위로 올리는 로제.
목검을 쥔 로제의 양손에 마력이 맺히는 광경은 마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저 모습을 어디서 봤었지?
분명 최근의 일이었다. 분명 저 자세를 분명 어디선가…….
……떠올랐다.
하늘을 가르려고 하는 듯한 저 자세.
그 모습은 마치 마르바스의 재앙살(災??)을 닮아있었다.
──────.
마치 나비가 꽃 위에 내려앉듯.
허공에 살랑이는 꽃잎을 베어내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팔을 아래로 휘두른 로제는 그대로 목검을 접어 허리춤에 붙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
터벅터벅.하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로제. 그렇게 세 발자국을 내디뎠을 때.
털썩, 하는 소리가 로제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 아아……!”
내려치기를 막기 위해 위로 올렸던 목검이 반으로 갈라진 체, 오렌지가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있었다.
툭. 투 툭. 하고 녀석의 코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
“하, 항복. 항복!”
마치 울먹임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오렌지가 항복을 외쳤다.
오렌지의 항복 선언에 방금까지의 차가웠던 표정이 거짓말이라는 듯 방긋 웃으며 내게 졸졸 달려오는 로제.
“와! 그레고리님! 이겼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헤실헤실 웃고 있는 그녀였지만 내 눈에만큼은 새빨갛게 부어있는 로제의 양손이 보였다.
“……무리했구나.”
“아, 그, 그게…….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요……. 죄송해요오.”
내 말을 듣고는 금세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처럼 시무룩해진 로제.
이 정도 상처라면 몇 시간 뒷면 알아서 회복될 터, 뭣하면 라파엘에게 치유를 부탁해도 되는 정도였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이기고 왔는데, 그래도 칭찬은 해줘야겠지.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술이었다.”
“그런가요?”
힐끔, 고개를 들어, 내 눈치를 살피는 로제.
“그래, 마르바스가 알려준 기술인가? 아무래도 재앙살을 네게 맞춰서 만든 기술 같다만.”
“맞아요! 역시 그레고리님…… 보는 것만으로도 그걸 알아차리시다니……!”
그만큼 네가 마르바스의 가르침을 잘 따른 거겠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로제가 우쭐해 할 것 같아 이 말은 아끼기로 했다.
“그래서, 그 기술의 이름 뭐지?”
마르바스의 성격이라면 ‘기술의 이름은 그대가 알아서 붙이게.’라고 말했을 터.
녀석의 입장에서 방금 로제가 펼친 기술은 재롱에 불과하니 너무나도 뻔했다.
“……어요.”
“뭐?”
“그……아직 못 정했어요. 그레고리님이 지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자기도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던 건가.
뭐. 평소에도 이름을 짓는 센스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설마 자신의 기술 이름마저 지어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네가 생각한 후보는 없나?”
“네? 음……로제참이라던가……. 참참참이라던가……. 로제 슬레쉬? 로제살?”
……글렀군.
“하아, 우선 나도 고민해보도록 하마.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로제의 뒤에서 ‘이 녀석은 대체 뭐지?’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흉터남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는 어떻게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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