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78화 (78/169)

〈 78화 〉 아카대공 ­ 78

* * *

울창한 수림과 맑은 공기,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자연의 땅. 델리니아.

나무의 바다라 불리는 델리니아에는 그 지역명과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 델리니아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델리니아에서도 유난히 특별한 가문이 있었으니…….

“언니이! 같이 가요!”

“엘라가 느린 거거든!”

바로 용사의 피를 이은 가문.

유글리아였다.

델리니아는 6개의 가문이 함께 다스리는 도시로, 각 가문들은 도시에 대한 이권을 한 가지씩 쥐고 있었다.

군사의 유켈라이 가문

상업의 아멜루 가문

행정의 야킬레 가문

사법의 시드레아 가문

수렵의 엘레나 가문

마지막으로,

농업의 유글리아 가문.

이들은 겉보기에 서로가 모두 공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다른 가문들보다도 더욱더 강한 발언력과 입지, 그리고 힘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 바로 농업을 관장하는 유글리아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엘프란 자고로 자연과 함께하는 종족. 영지의 대부분이 수림인 만큼 그들의 삶에 있어 농사와 수렵은 빠질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그 무엇보다도 신성하게 여기며 아끼는 엘프들의 ‘신’ 세계수를 관리하는 가문인 만큼 유글리아는 그 6개의 가문 중에서도 독특한 가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문의 대를 잇는 두 명의 하프엘프가 있었다.

언니인 로제 폰 유글리아와 동생, 엘라 폰 유글리아였다.

“언니이! 그렇게 연기를 내뿜으면서 달리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니까요!”

“나는 기차야! 엘라는 기차를 본 적 있어? 모험가들이 말해줬는데, 기차는 이렇게 연기를 뿜으면서 달린대! 추우~ 추추!!”

“언니이이이!!!!!!”

입에 파이프를 물고 밭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는 흑발의 엘프와 그런 그녀의 뒤를 열심히 뒤쫓는 금발의 엘프.

주변에서 허리를 숙이며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로제 아가씨! 저번보다 더 빨라졌는데?!”

“엘라 아가씨 힘내라!”

유글리아 가문의 유일한 두 아가씨의 등장에 다른 농부들이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본다.

“하아……하아…… 언니이! 항상 자기 멋대로 세계수까지 달리기 경주라니, 자꾸 그러면 저도 가만히 안 있어요!”

“으으응? 뭐라고오? 달리기 못 하는 엘라의 말은 안 들리는데에?”

“진짜로!”

열심히 로제의 뒤를 쫓던 엘라의 양발에 녹색의 마법진이 새겨진다.

유글리아 가문에서도 세계수와 계약한 이들만이 발현할 수 있는 고유 마법.

「위그드라실」

그 작은 마법의 편린이 엘라의 발에 추진력을 달아주었다.

“거의 다 따라잡았어요……!”

“마법은 반칙이잖아! 그러면 나도……! 헤이스트!”

로제는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연습했던 보조 마법 「헤이스트」를 사용해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세계수와 계약한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 마법 「위그드라실」에 비하면 그 수준은 떨어지지만, 세계수의 잎을 피우며 달리는 로제는 여전히 팔팔한 상태였다.

“내가 먼저야……!”

“제가 먼저예요……!”

전속력으로 밭을 가로지른 두 사람의 손이 거의 동시에 세계수에 닿는다.

그와 동시에 풀썩하고 쓰러지는 두 사람. 엉겨 붙듯 서로 포갠 채로 누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제가 이겼네요!”

“무슨 소리야? 내가 이겼지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로 붙잡고 있는 얇고 새하얀 두 사람의 손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 위그드라실한테 물어보죠.”

“좋아!”

이내 나란히 세계수의 아래 누운 두 사람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뒤덮듯 거대하고도 울창한 가지들로 엄청난 크기의 그늘을 만들고 있는 세계수.

엘라는 그런 세계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위그드라실! 언니랑 저랑, 누가 더 빨랐어요?”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짓는 두 사람. 잠시 후, 로제의 얼굴 위로 세계수의 이파리가 떨어졌다.

“봤지? 위그드라실도 내가 빨랐다고 하잖아!”

“우으으으……! 다음에는 절대 안 질 거예요!”

정말로 분하다는 듯 입술을 앙 물고는 로제를 노려보는 엘라. 그 모습에 로제가 재미있다는 듯 싱긋 웃었다.

“봐봐, 항상 곤란하다면서 누구보다 진지하잖아?”

“그, 그건!”

“됐어~ 됐어~ 우리 엘라가 재미있었으면 언니도 만족이야!”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벌린 로제가 그대로 엘라의 몸을 꽉 끌어안아 주었다.

“우으으! 저는 어린애가 아니라니까요.”

“언니 눈에는 항상 어린애랍니다~”

두 사람의 나이는 한 살 차이. 장수종인 엘프이기도 했기에 겉모습으로만 보아서는 누가 언니인지, 누가 동생인지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머리가 까만 쪽이 언니, 노란 쪽이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결국, 아둥바둥 로제의 품에서 벗어난 엘라는 ‘관리자’ 복장의 매무새를 정리하였다.

“역시 엘라는 그 옷이 잘 어울려.”

“원래는 언니가 입을 옷이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아카데미에 입학이라니, 너무해요.”

본래 유글리아 가문을 대표하는 세계수의 관리자는 로제가 될 예정이었다.

나이도 그녀가 많았고 마력을 다루는 재능이나 소환수와의 교감 능력 역시 매우 뛰어난 인재였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녀는 세계수의 관리자가 아닌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을 선택했다.

“저는 정말로 이해가 안 가요. 원래 언니가 워낙 중구난방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소환사 아카데미’는 다른 대륙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거지! 나는 릴리님처럼 훌륭한 소환사가 될 거니까.”

릴리 폰 유글리아.

유글리아 가문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천재이자 재앙을 봉인한 영웅.

의외로, 이 델리니아에서는 그런 릴리를 동경하고 아카데미로 떠나는 엘프들도 상당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그래도……. 언니가 없으면 많이 심심할 것 같아요.”

“히히……. 나두 그래. 그래도…… 재앙은 다시 나타났고 우리는 대비해야 하니까 말이야.”

몇 년 전. 제국의 성녀는 전 세계가 공포에 떨 만한 신탁을 받고야 말았다.

[재앙이 돌아왔다.]

짧지만, 그만큼 강력한 신탁.

이에 재앙에 대비하기 위한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카데미들은 더욱 많은 신입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이는 로제에게 기회가 되었다.

“나는, 릴리님 같은 영웅이 될 거야. 그러니까, 우리 엘라도 이 언니를 많이 도와줘야 해?”

“……봐서요.”

고개를 푹 숙인 엘라의 머리를 쓰윽쓰윽 쓰다듬어주는 로제.

엘라는 말없이 자신의 머리를 로제의 어깨에 맡겼다.

그렇게 말없이 가만히 있는 두 사람. 그 두 사람의 침묵을 깬 것은 우렁찬 꼬르륵 소리를 내뱉는 로제의 뱃소리였다.

“앗……. 배고프당. 히히.”

“하아……. 오랜만에 무게 좀 잡으시나 했더니 역시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네요.”

“그게 내 매력이랄까? 데헷.”

“……그렇겠죠. 그럼 밥 먹으러 가요. 여기까지 뛰어오느라 배고파 죽을 것 같으니까요.”

“역시 내 동생 엘라! 너는 언니의 생명의 은인이야!”

“……어차피 밥 먹으러 가자고 말 안해도 달려갔을 거면서. 이번엔 또 파이프 물고 달리면 안 돼요? 인간분들이 보고 비웃는다고요.”

엘라는 그렇게 말하며 저 멀리, 반장 엘프들의 관리에 따라 열심히 잡초를 걸러내는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엘프를 잡기 위해 델리니아에 찾아왔지만, 오히려 엘프에게 잡혀 노예의 삶을 살게 된 이들.

이들은 제국과의 조약에서도 인정한 노예이기에 유글리아 가문에서 풀어주지 않는 이상 종신 노예로 살아갈 운명을 가진 이들이었다.

“응! 아까 많이 피웠으니까 참을게.”

“역시 우리 언니. 착하다 착해~”

방금과는 정반대로 엘라가 로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번엔 경주가 아닌 나란히 손을 붙잡고 유글리아 가문의 저택을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

“거기 인간! 그건 잡초가 아니라 새순이라고 몇 번을 말해! 아예 구충 작업에 투입해줄까?!”

“히에에엑! 거기만큼은 제발! 살려주십쇼! 살려주십쇼!”

“살고 싶으면 일을 하란 말이야!”

무릎을 꿇으며 싹싹 비는 인간과 그런 인간을 호통치는 노예를 바라보며 엘라가 혀를 찼다.

“엘프들을 노예로 잡으러 왔으면서 본인들이 노예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하니 저렇게 되는 거예요. 언니는 절대 모르는 사람이 과자 사준다고 하면 따라가면 안 돼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투로 말하는 엘라의 모습에 로제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나라도 과자를 준다고 하면 안 따라가거든?”

“그쵸?”

“케이크 정도는 줘야 따라가지!”

“……그래야. 언니죠.”

“응? 뭐가?”

“아니에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영약을 영단으로 만드는 건물과 가루로 만드는 건물, 포장을하는 건물과 아멜루 가문으로 보낼 상품을 준비하는 건물까지.

그리고 그런 건물들의 맨 안쪽에 바로 유글리아 가문의 저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인가요? 언니가 아카데미로 가기 전까지 남은 날이 말이에요.”

“음……. 그럴걸?”

아니, 이 주 뒤였나? 라고 중얼거리는 로제를 바라보며 엘라가 한숨을 내뱉는다.

저런 언니가 과연 아카데미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각 대륙의 인종과 지성체들이 모이는 용광로 같은 곳.

그런 곳에 자신의 언니가 갈 생각을 하니 한숨이 앞서는 동생, 엘라였다.

“……안 되겠어요. 역시 어머님께 언니를 위해 따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뭐? 왜에에에!! 공부는 싫은데!”

“다 언니를 위해서에요! 언니는 예법 시간에 맨날 졸아서 대륙의 예법도 제대로 모르잖아요?”

“그, 그거야 그렇지만……!”

“그러니까에요! 자! 그럼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해보죠!”

그렇게 말한 엘라가 로제의 왼팔을 붙잡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오싹함을 느낀 로제가 팔을 빼내려 했지만, 엘라의 양손에는 마법 「위그드라실」이 새겨진 상황.

로제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 잠깐 엘라! 나 배 안 고파! 배 안 고파!”

“핫!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그 볼록한 배는 배고프다고 꼬르륵거리는걸요!”

“아니야아! 그러니까아! 공부는 제바아아알!”

“다 언니를 위해서에요!”

“엘라! 엘라아아아아아!!!”

이것이 바로 델리니아에 위치한 유글리아 가문의 이야기.

두 자매의 이야기였다.

* * *

“──까지가 제가 아카데미에 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인데요…….”

꼴깍. 침을 삼키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로제.

로제의 이야기를 듣던 다른 이들은 웃다가 지쳤거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요? 결국, 로제는 공부를 하게 됐나요?”

로제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것인지 프리실라가 몸을 앞으로 들이밀며 로제에게 물었다.

“네? 그쵸? 한 5일 정도는 저택에 갇혀서 강제로 예의범절에 관한 내용과 대륙의 예법에 대해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땐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귀까지 아래로 축 처지며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듯한 로제였지만 로제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깨달은 모양이었다.

로제의 동생인 엘라가 아니었다면 로제의 생활은 더욱 힘들었으리라고.

“로제의 동생이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뵙고 싶네요.”

“그래요? 프리실라도 엄청나게 좋아할 거예요! 완전 귀엽고 이쁜 동생이거든요!”

“그래요? 후후, 더 기대되는걸요.”

……로제의 동생이라.

확실히 궁금해지긴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로제보다도 더 똑바른 아이인 것 같은데,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덜컹하고 마차가 멈춰섰다.

그리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

“키헬헬! 우리는 이곳을 관리하는 산적이다! 마차의 짐과 여자들을 모조리 넘기면 살려는 주지!!!”

……어떻게 우리는 어디를 편하게 가는 법이 없는 걸까.

자연스럽게 각자의 무기를 챙기는 일행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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