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아카대공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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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이라니, 저 녀석들은 제정신인 건가?”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에는 저런 식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네요.”
한숨을 내쉬며 손을 젓는 프리실라. 산적들이라는 말에 마차에서 내리려던 이들이 우뚝 멈춰섰다.
“네? 자살이라니요?”
이미 파이프를 입에 물고 주먹을 꽉 쥐고 있던 로제가 고개를 갸웃해하며 프리실라에게 물었다.
그러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뒤에 있는 마부석을 가리키는 프리실라.
“마차를 끌고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
“슬레이프니르?”
“정답이에요. 로제. 상으로는 사탕을 줄까요?”
“와! 사탕!”
마치 마술처럼 프리실라의 손에 올려진 사탕을 재빨리 집어 드는 로제.
하지만 로제와 아멜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거까지 설명해 줘야 하는 건가.
“슬레이프니르의 기본적인 능력은 전사 계열의 2성 소환수와 같다.”
“……네? 저 다리 여덟 개 달린 말들이요?”
“그래, 그러니 산적들은 뭐……. 슬레이프니르의 선에서 정리되겠지.”
그리고 마치 내 말을 증명하겠다는 듯 마부석에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레이! 프니르! 물어!”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말발굽 소리가 주변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히이이이잉───!!!
“히익! 이건 뭐야!”
“이런 게 있다는 말은 안 했잖아!”
“도, 도망쳐!”
“말이 사람을 씹는다!!!!!”
슬레이프니르의 울음소리와 동시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약 2분 정도가 지났을까. 주변이 조용해지고 마부석과 연결되어 있는 구멍이 열렸다.
“황녀님. 상황 정리 후 이동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아니, 아무래도 모두 나가야 할 것 같군.”
“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목을 푸는 나를 프리실라가 나를 바라본다.
아직 이건 느끼지 못하는 건가.
“독 냄새랑 쇠 냄새가 진득하다. 방금 녀석들은 우리의 발을 묶기 위한 것에 불과한 모양이군.”
“……암살자들인가요?”
“그럴 확률이 높지.”
대놓고 등장하자마자 산적이라고 외치며 이렇게 비싸 보이는 마차를 습격하는 녀석들이라니.
너무 비현실적이라 판단되어 혹시 몰라 [스킬 : 후각 상승]을 발동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냄새로 판단하자면 암살자들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30초. 우리는 차례대로 마차에서 내렸다.
“그레고리. 위치는?”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고 내게 묻는 교관, 셀루아 네갈. 나는 자연스럽게 나를 기준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 속도라면 15초 후 도착할 것 같군. 모두 준비하도록.”
“라파엘!”
“휴고!”
로제와 교관을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 역시 자신의 소환수를 소환하고, 마부 역시 슬레이프니르를 몰고 우리에게 합류했다.
아무래도 우리와 함께 싸울 예정인 모양이었다.
……뭐, 슬레이프니르 2마리라면 밥값은 하겠지.
“프리실라를 노린 암살이라니, 아카데미에 오고 난 이후로는 처음이네?”
심상공간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싱긋 웃으며 정면을 노려보는 라파엘과 이미 입맛을 다지고 있는 휴고.
아무래도 제국 아카데미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던 만큼 꽤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온다.”
내 입이 열림과 동시에 정면에서 새까만 단도들이 날아왔다.
재빨리 우리의 앞으로 튀어나와 날갯짓으로 일으킨 바람으로 대부분의 단도를 무력화시키는 라파엘.
휴고는 나머지 단도들을 주먹으로 쳐내거나 발로 차내며 소환사들을 보호했다.
우리의 앞에 나타난 것은 검은 옷으로 체형과 얼굴을 가린 12명의 암살자였다.
“……진부한 클리셰군.”
황녀를 노리는 암살 계획이라니, 어째서 다들 암살을 이렇게 대놓고 하는 것일까.
내가 어이없어하며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녀석들의 틈에서 일그러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표는 황녀다. 나머지는 모두 사살하도록.”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3명씩 쪼개져 사방으로 우리를 향해 닥쳐오는 암살자들.
우리 역시 서로를 등지고 각자 한 방향씩을 맡기로 했다.
마부는 프리실라를 지키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이가 없군. 황녀를 노린 암살자들이라니. 네 녀석들은 누구지?”
무척이나 가벼운 움직임으로 어렵지 않게 암살자들의 검을 쳐낸 교관이 한 녀석을 제압한 후 녀석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물었다.
허나 대답 없는 암살자.
주변에 아직 암살자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일까, 교관은 망설임 없이 암살자의 목을 긋고는 다른 암살자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휴고와 아멜은 평소에 합을 자주 맞추어 본 것인지 두 명이서도 세 명의 암살자들과 어렵지 않게 대치를 하고 있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아멜이 방어, 휴고가 공격을 담당하는 모양이었다.
저 정도면 따로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군.
프리실라 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프리실라와 두 마리의 슬레이프니르 그리고 마부가 프리실라를 지키고, 프리실라는 그들에게 보조 마법을 걸어준다.
확실히 프리실라가 주목표인 만큼 실력자들은 저쪽으로 몰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상황.
“우아아앗!”
가만히 서서 상황을 살피던 나를 대신해 로제가 세 명의 암살자들과 대치를 하고있는 상황이었다.
“그, 그레고리님! 저, 저, 위험한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몸에는 아직 상처하나 생기지 않은 로제.
그래도 로제 역시 유효타를 날리지 못한 것으로 보니 암살자들 역시 실력자들로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합류하지.”
나는 그대로 로제의 왼편을 향해 도는 녀석에게 달려든다.
나의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목표를 바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암살자.
녀석의 지근거리에 접근함과 동시에 외친다.
“변신.”
반짝임과 동시에 바퀴폼으로 변하자 암살자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그래, 너희들도 역시 바퀴에 내성은 없구나.
아무리 상대가 훈련을 받은 암살자라 하더라도 처음 보는 괴생명체의 모습은 감당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가울의 만물상에서 산 아이템들이 그만큼 효과를 발휘하기에 가능한 현상이었지만 말이다.
“우선, 네 녀석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검을 팔로 쳐내고는 나머지 팔로 녀석의 팔을 톱으로 썰듯 휘둘렀다.
다리의 가시에 걸려 찢어지고 마는 녀석들의 흑의.
그 너머로,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징그러운 피부가 모습을 보였다.
“……소환수가 섞여 있군.”
“네? 소환수요?!”
“그래, 모습을 보아하니 암살에 특화되어 있는 소환수. 아사신들이 섞여 있는 모양이다. 각자 조심하도록.”
아사신은 게임에서 노말 등급의 암살특화형 소환수로 최고 등급이 [★★★★]에 불과한 N등급의 녀석들이었다.
다만, 녀석들에게도 장점이 있다면 암살에 한해서 가성비가 지나치게 좋다는 것이었다.
녀석들의 움직임을 본다면 최소 2성. 저기 라파엘이 상대하고 있는 녀석은 3성으로 보였다.
“그레고리님! 이 녀석은 사람이에요!”
로제가 휘두른 「불굴」에 의해 찢어진 복면의 사이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역시 중간중간에는 암살을 생업으로 삼는 진짜 암살자들도 섞여 있던 모양.
이 녀석들이 소환수들을 관리하는 녀석들로 보였다.
“그럼, 슬슬 제대로 몸을 한 번 움직여──”
“그레고리! 최대한 생포하는 쪽으로 부탁할게!”
“……그러지.”
전력으로 상대하는 건 미루기로 했다.
“로제, 네가 저 두 녀석을 맡도록.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네! 충분해요!”
표정을 보아하니 강적은 아닌 모양,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맡게 된 나머지 인간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사신……. 다른 세계에서 암살을 생업으로 삼던 조직의 소환수들을 이용할 정도의 조직이라……. 꽤 이름 좀 있는 녀석인 모양이군?”
“…….”
내 물음에도 묵묵히 나를 노려보기만 하는 녀석.
“뭐, 그렇게 노려보면 죽기라도 하나?”
내 물음에 녀석은 단도 던지기로 응수했다.
난 이미 공기의 흐름을 읽고 가볍게 피해냈지만 말이다.
“기습 후에 공격이라, 뻔하군. 따분할 정도야.”
그 뒤로 들어오는 녀석의 공격을 피해낸다. 몇 번의 공격은 가슴의 갑판에 닿았지만 3성으로 진화하며 강화된 내 몸을 뚫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라파엘은 생포를 부탁했으니……. 최대한 노력해볼까.”
[(스킬 : 검은 늪)을 발동합니다.]
순식간의 녀석의 발밑에 생겨나는 검은 구멍. 그곳으로부터 솟아오른 수많은 바퀴가 녀석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흐억! 흐야아아아악!!!!!!!!”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녀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흠, 역시 벙어리는 아니었군. 그렇게 말을 잘할 수 있으면서 왜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거지?”
“떼줘! 이것 좀 떼줘!!! 제바아아알!!!”
녀석의 흑의 안으로 파고드는 수많은 바퀴.
옷 안쪽에서 갉아 먹히는 고통이 강했던 것일까. 녀석의 턱이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이 역시 너무나도 클리셰적이었다.
“어림도 없지. 막아라.”
내 명령을 들은 바퀴들이 그대로 녀석의 입으로 들어가 독약으로 보이는 것을 입으로 물고는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캬아아아악!!! 제발……! 제발 죽여줘……!!!”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러대는 녀석.
이내 녀석의 의식이 끊긴 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검은 늪을 해제한 후 기절한 녀석에게 다가갔다.
“……당분간 일어나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대로 녀석의 몸 위에 걸터앉아 다른 녀석들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헤이스트! 스트렝스!”
입에는 포션이나 다름없는 파이프를 물고 자신의 몸에 보조 마법을 걸며 「불굴」의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이용해 과감한 공격을 펼치는 로제.
땅을 파헤쳐 녀석들을 향해 흙을 뿌리거나 녀석들의 방어를 있는 힘껏 후려쳐 몸의 균형을 일그러뜨리는 등 열심히 두 녀석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두 녀석이 진짜……! 짜증 나게 하지 말아요!”
계속되는 공방에서 유효타를 날리지 못하고 있던 로제가 소리를 치며 뒤로 물러서 거리를 벌린다.
그리고 허리에서 꺼내 드는 「세계수의 지팡이」
아, 잠시 잊고 있었다.
……로제는 검사가 아닌 마법사였지.
“으아아아아! 로제 파이어!”
얼마나 화가 난 것인지 기존의 영창마저 무시하고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녀석들을 향해 불을 내뿜는 로제.
녀석들 역시 검을 사용하던 로제가 마법을 사용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로제 파이어의 희생양이 되어 불꽃 속에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아……! 라파엘님이 되도록 생포를 부탁한다고 하셨는데……! 어, 어떡하죠?”
두 녀석을 역소환 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머리를 부여잡는 로제.
“걱정하지 마라. 아사신들은 본래 성대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네?”
분명, 설정이 그러했다.
“고위급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아사신들은 성대를 제거한 상태라 말을 하지 못한다. 또한, 다른 고문에도 자결하도록 훈련을 받은 녀석들. 차라리 역소환이라도 시켜 소환사에게 타격을 입히는 쪽이 옳지.”
“그,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나의 말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로제.
다른 녀석들 역시 아사신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인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아사신들을 우선적으로 제거하고 있었다.
“……뭐, 금방 정리되겠군.”
어느새 라파엘에게 멱살을 잡힌 상태로 강제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녀석과 휴고와 아멜에게 하나씩 제거당하고 있는 아사신들.
사실상 라파엘에게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잡힌 지금, 녀석들에게 희망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라파엘, 녀석이 대장인 건가?”
“응? 그런 거 같던데? 야,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
그렇게 말하고는 녀석의 입에 있는 힘껏 주먹을 갈겨버리는 라파엘.
그녀의 주먹에서 빛이 남과 동시에 다시 녀석의 치아가 자라나며 상처가 회복된다.
“자결용 독약은?”
“강냉이 몇 번 날리니까 저기 땅바닥에 떨어지던데?”
“그, 그마아안…….”
“야, 입 꽉 다물어. 그러나 목구멍에 주먹 들어간다?”
“바, 방금은 입을 열라고……!”
“치료에 방해되니까 입 닫으라고!”
그리고 다시 꽂히는 라파엘의 주먹.
오, 지금까지 튀어나온 강냉이 중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치료라니! 네 녀석은 고문을 하고 있을 뿐이지 않나!”
다시 강냉이가 생기자 있는 힘껏 라파엘을 향해 외치는 암살자 녀석.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는지 그녀가 싱긋 웃는다.
“원래 악한 마음은 신성한 주먹으로 치료하는 거야. 자, 다시 치료 시작한다?”
“캬학!”
“한 방 더!”
“캬악!”
“자아~ 어때, 마음이 조금 착해진 것 같아?”
“닥쳐!”
“음……. 치료 강도를 올려야겠네? 자, 이번에는 두 대씩 때릴게?”
계속. 계속. 계속.
계속해서 펼쳐지는 물리치료를 보다 보니 문뜩 주변의 상황이 모두 정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인간이었던 놈들은 총 3명이었던 모양.
라파엘이 패고 있는 녀석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정신을 잃은 채 마법으로 강화된 밧줄에 몸이 묶여 있었으니 사실상 정리가 끝났다고 보는 게 맞는 듯싶었다.
“들어가죠. 그레고리님. 라파엘이 저러면 저도 못 말려요.”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프리실라.
아무래도 프리실라에겐 꽤 익숙한 광경인 모양이었다.
“자, 어때? 좀 착해졌니?”
“말하겠다! 모두 말하겠다!”
“아직도 반말을 하네? 자, 환자분~ 아프면 말하세요~”
“끄아아아아아악───!!!”
아무래도 라파엘의 치료는 꽤 길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