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아카대공 80
* * *
이동하며 심문을 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잠시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슬레이프니르가 전력으로 달리면 제국의 황성까지는 금방이었기에 오늘 하루를 넘기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심문을 시작하려고 할 때, 얼굴 잔뜩 빡침이 묻어있는 라파엘이 싱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내가 할게. 해도 되지?”
“……그래라.”
라파엘은 암살자 녀석들이 프리실라를 노렸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차에서 10분 정도 시간을 보냈을까? 처음보다는 표정이 많이 상쾌해진 라파엘이 나를 불렀다.
“쫄다구들은 입을 열긴 여는데 건질 정보가 없더라고. 그래서 대장을 계속 조지는데…… 이 새끼가 절대 입을 안 여네?”
암살자들의 대장인 녀석의 머리채를 들어 올려 내게 보이는 라파엘.
이에 암살자 녀석이 싱긋 웃는다.
“말은 하지 않았나. 멍청한 천사 새끼가…….”
아무래도 정말 입만 열고 정보는 하나도 발설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꼴에 대장이라고 끝까지 불지 않겠다는 걸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따라오도록, 내가 한번 해보지.”
“하! 그렇게 말해봤자 네 녀석에게 말할 정보는 없다!”
“그래, 그 결심이 제발 오래가길 바라마.”
우선 마차에서 쉬고 있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나는 라파엘에게 녀석을 놓아도 된다고 말했다.
“정말? 바로 도망갈 텐데?”
“좋군. 한 번 도망갈 때마다 관절을 하나씩 반대로 꺾으면 본인도 알아서 포기하지 않겠나.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도해보도록.”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바퀴폼으로 변신한다.
“놓아줘도 된다.”
내 말에 천천히 암살자의 머리를 놓아주는 라파엘.
“이이익!”
그리고 녀석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재빨리 숲속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멍청한 새끼들! 너희가 정말로 날───”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스킬 : 날개 펼치기)를 발동합니다.]
“──그레고리 카프킥.”
시작부터 녀석의 오른쪽 다리가 반대로 꺾이고 시작한다.
“끄아아아아악───!!!”
아무리 녀석이 빠르더라도, 순간적인 속도만큼은 녀석은 날 절대 이길 수 없다.
“자, 남은 한 다리로도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시도해보도록.”
“안 가! 안 간다고!!”
“……아쉽군. 자, 그럼 우선 가볍게 시작해볼까.”
결국, 도주를 포기하고는 몸을 돌려 내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암살자 녀석.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에서 공포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따로 훈련 같은 거라도 받은 모양이군. 어떠한 공포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야.”
“…….”
내 물음에 녀석이 침묵을 유지한다. 그래, 암살단의 대장이나 된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스킬 : 검은 늪)을 발동합니다.]
곧바로 검은 늪을 발동해 녀석의 얼굴을 제외한 모든 몸을 감아버린다.
바퀴들에게 녀석의 몸을 조금씩 갉아 먹으라 명령했을 뿐인데도 녀석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비명만 지를 뿐. 아직까지 정보는 꺼내지 않고 있었다.
“고통에 대비한 훈련도 받은 건가.”
“끄으으윽……! 그래! 거기가 간지러우니까 더 깨물라고! 끄으으으윽!”
아무래도 고통으로도 녀석의 입을 여는 건 불가능한 모양.
라파엘의 심문을 이겨낸 것으로 대충 예상은 했지만 여기까지 버틸 줄 몰랐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신적인 함락뿐.
벌써 여기서 이걸 쓰긴 싫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연기를 뭉친 듯한 비주얼의 검은 구슬을 꺼냈다.
“그레고리, 그건?”
자신도 처음 보는 물건의 등장에 라파엘이 흥미를 보였다.
이것 역시 ‘가울의 만물상점’에서 따로 구입 한 물건으로, 게임에서는 [공포의 구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물건이었다.
“공포를 증가시키는 물건이다.”
역시 조교하면 최강의 조교는 약물 조교 아니겠는가.
나는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가 입에 구슬을 넣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입을 꽉 다물고는 치악력으로 버티는 녀석.
본인도 이 물건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이미 너무 늦었지만.
“라파엘? 녀석이 입을 안 벌리는데, 조금 도와줬으면 하는군.”
“그래?”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달려와 녀석의 인중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내려찍는 라파엘. 그와 동시에 녀석의 이빨이 흩날리며 공간이 생겨났다.
“고맙다.”
그리고 재빨리 녀석의 입에 구슬을 넣고는 바퀴들을 이용해 입안에서 구슬을 씹고 뱉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까지 걸린 시간은 총 2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녀석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약효가 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크윽! 크으으아아아아악!!!”
그리고,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마아아안!!! 그만해 이 미친 새끼들아!!!”
아까와는 달리 검은 늪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녀석을 향해 나는 천천히 다가가 얼굴을 들이민다.
“그만하길 바란다면 이야기해보도록. 네 녀석들에게 프리실라를 노리도록 명령한 게 누구지?”
“몰라! 모른다고!!! 그러니까 제바아알…… 이것 좀 치워줘!!!”
아직까지 거짓말을 할 힘이 남아있나.
나는 대답 대신 녀석의 얼굴을 검은 늪으로 덮어주었다.
녀석의 몸에 있는 온갖 구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바퀴들.
암살자 녀석은 비명을 지르면 목 안으로도 바퀴가 들어올까 입을 다물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와, 이건 진짜……. 그레고리, 너한테 심문을 당할 바에는 그냥 혀 깨물고 죽을래.”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럴 줄 알고 이미 입안에 내 사역마들을 가득 채워놓았지. 혀를 깨물고 자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마.”
“잊었는가? 나는 원래 악마다.”
그리고 이 몸의 특성 때문인지 크게 후회되거나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내 일행을 노렸다는 사실이 조금 화가 날 뿐.
그렇게 3분간의 검은 늪 투어를 끝내고 다시 녀석의 몸에서 바퀴들을 떼어낸다.
“자, 힐링 스파를 했으니 뭐라도 생각났겠지? 다시 한번 기회를 주마. 네 녀석들에게 의뢰한 게 누구냐.”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검은색 덩어리를 내뱉는 암살자.
이내 입에 있는 대부분을 뱉어내는 데 성공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사자…… 사자회라고 했어! 사자회라는 이름으로 의뢰금을 주고 갔다고! 그러니까 제발…… 제발 죽여줘!”
완전히 공포에 질린 표정.
라파엘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로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네 조직의 본부는 어떻게 찾아갈 수 있나.”
“제국 3구역에 붉은 달 주점이라는 곳이 있어! 거기 지하가 우리 본부야. 그러니까 제발…… 제바아알………!!!”
어느새 눈에 피가 고여 새빨개진 암살자 녀석.
아마 여기까지가 한계인 모양이었다.
“소원대로 해주지. 라파엘, 부탁해도 되겠나?”
“안 그래도 내가 부탁하려고 했는데. 들어가서 쉬고 있으면 금방 정리할게.”
“부탁하지.”
나는 그 말을 남기고는 변신을 한 뒤 먼저 마차 안으로 들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비록 좁은 공간 내에서 발동한 [스킬 : 검은 늪]이었지만, 꽤나 긴 시간 동안 컨트롤을 하는 바람에 마나 대부분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레고리님, 고생하셨어요. 이거, 아멜양이 준 건데 마력 회복에 효능이 있다는 모양이에요.”
싱긋 웃으며 내게 차를 권하는 로제. 어디서 차를 가져왔나 했더니 아멜이 따로 챙겨온 모양이었다.
힐끔 바라봐주니 고개를 홱 돌리는 아멜.
“귀, 귀족에게 있어서 여행에 차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잘 마시지.”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입안에서 귤의 향과 비슷한 것이 순식간에 퍼진다.
따듯하고도 달콤하고, 적당히 씁쓸한 차가 위장까지 닿는 기분이 꽤 좋았다.
“맛있죠?”
자기 몫의 차를 마시며 싱긋 웃는 로제, 프리실라 역시 마나를 많이 쓴 탓에 같은 차를 마시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나쁘지 않군.”
그렇게, 두 번째 모금을 마시자 마차의 문이 열렸다.
“전부 끝. 슬슬 출발하자.”
“네.”
라파엘의 말에 대답하고는 마부석을 툭툭 치는 프리실라.
밖에서 히잉! 하고 우는 슬레이프니르의 울음소리와 함께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자회라는 녀석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손에 쥔 차로 목을 축이며 라파엘에게 물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라파엘.
“아니, 나도 처음 듣는 조직의 이름이야. 아무래도 사자와 연관된 가문일 가능성이 큰 것 같은데…… 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아.”
“그런가.”
“사자회? 암살자들이 그러던가요?”
사자회라는 말을 듣고 내게 묻는 프리실라.
“그래, 알고 있는 거라도 있나?”
“……아니요. 저도 처음 들어요. 녀석들의 본부는요?”
프리실라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라파엘이었다.
“3구역의 주점. 황실에 도착하면 짐을 정리하고 한 번 조사해봐야 할 것 같네.”
그 말을 듣고는 탄성을 지르는 아멜.
“그 짧은 시간에 그 정도의 암살자들을 상대로 정보를 캐냈다고? 대단하군.”
같이 검을 섞어본 입장에서 녀석들이 입을 연다는 걸 상상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인간은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법이다. 예전의 누구처럼 말이다.”
“……마지막 말만 안 했으면 정말 멋진 말이었을 텐데 말이지.”
“그런가? 실례했군.”
내가 살짝 놀리자 토라진 표정을 짓고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멜.
녀석에겐 아직 그때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황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나갈 수는 없을 거다. 황실의 용무를 따로 끝내야 할 테니 말이야.”
여러 가지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우리에게 조언을 해주는 교관.
이에 프리실라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싱긋 웃는다.
“황실의 호출 정도야 제가 어떻게든 미룰 수 있어요. 오히려 이 사건의 배후를 파악하면 좋은 패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우선 도착하면 여독이 쌓였으니 휴식을 해야 하겠다고 말하는 거로 하죠.”
프리실라의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 그레고리님! 저기 엄청나게 큰 도시가 보여요!”
갑자기 로제가 창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장벽과 성문. 제국의 수도, 하인베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 저기가 바로 황실이 있는 제국의 수도. 하인베른이다.”
게임에서도 몇 번 들린 적이 있었던, 제국의 중심.
그 압도적인 풍경에 나는 침을 삼키며 큰 이벤트가 시작됐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마침내 시작되는 정치 혈투.
어째서일까?
왠지 꿀을 잔뜩 빨 수 있는 이벤트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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