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아카대공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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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래도 폐하라 부르는 게냐…… 이 아비의 마음이 정말이지 찢어지는 것 같───응?”
아, 눈이 마주쳤다.
“크흠! 밖에서 황녀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시험을 해보았다. 역시 그대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순식간에 헤벌쭉한 표정에서 엄근진 표정으로 바뀐 황제가 헛기침을 한다.
아니, 다 봤는데 말이지.
아까 로제에게 장난을 치려 한 모습을 보고도 생각했지만, 황제의 진짜 성격은 이쪽인 모양이었다.
“그레고리님. 폐하는 딸 바보셨나 봐요…….”
그리고 그것을 눈치 없게 내게 말하는 로제. 움찔. 하고 황제의 몸이 떨렸다.
“어? 그레고리님? 로제?”
뒤이어 로제의 목소리를 듣고는 뒤를 돌아봐 우리를 발견한 프리실라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 아니 이것은……!”
“이미 걸렸는데 뭐 어때? 그냥 편하게 말하지.”
그리고 그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 싱글싱글 웃으며 지켜보고 있는 라파엘.
우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던 황제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문 좀 닫아주겠나.”
“그러지.”
우선 문을 닫고 로제는 프리실라의 옆에, 나는 라파엘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설마 다른 누구도 아닌, 프리실라의 방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인물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짐의 예상이 어긋난 모양이구나.”
“네, 로제양과는 매우 친밀한 사이거든요. 그레고리님도요.”
프리실라의 의미심장한 말에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황제.
그때, 누군가 다급히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폐하! 안에 계신 거 다 알고 있습니다! 폐하아아!’
뭔가 익숙한 목소리.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로제였다.
“이거! 고모 목소리에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여는 로제.
로제의 말대로, 문 너머에는 작약공(?藥?) 파이 폰 유글리아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여, 열어주셨군요! 하아, 지금은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된다고……로제?”
“고모! 또 뵙네요!”
그런 그녀들의 뒤에서 짧은 비명이 들려온다.
“자, 작약공! 분명 따돌렸을 터인데……!”
“그럴 줄 알고 폐하에게 천리향을 묻혀놨거든요 하인베른 안에 있는 한 저를 피하실 수는 없어요.”
……제국의 황제에게 추적할 때나 사용하는 천리향을 사용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 미친 짓이라고 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작약공(?藥?).
제국에 아홉밖에 없는 공작이자 과거 재앙을 물리쳤던 용사파티의 일행.
그리고, 과거 황제가 어릴 때부터 곁에서 함께했던 엘프이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로제가 여기 있으니 이야기가 훨씬 쉬워지겠어요. 황녀.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파이의 말에 작금의 상황을 유추했는지, 프리실라는 황제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가 말도 없이 사라지셨던 거겠죠? 들어오세요.”
작약공의 등장에 프리실라의 앞이라고 미소를 짓고 있던 황제의 표정이 굳었다.
묵묵히 황제의 건너편에 자연스레 앉는 파이.
“폐하. 제가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황녀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이 올 때, 치료를 시작한다고요.”
처음 우리와 마주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목소리. 이에 당황한 황제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변명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딸의 모습이기에 참을 수 없었네. 작약공이 항상 날 걱정한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바, 진심으로 사과하네.”
“……정말이지, 그래도 이 자리에 로제와 라파엘님이 있는 게 다행이네요. 이 자리에서 바로 치료할 수 있겠어요.”
“여기서 말인가? 그러고 보니 로제 폰 유글리아. 그대가 바로 작약공의 조카로군! 그대에 대한 이야기는 옛날부터 들었지. 그대가 내 병을 치료해 줄 약을 가지고 있다고?”
“예? 아, 예! 그렇습니다!”
인자한 웃음을 지은 황제가 로제에게 다가와 양손으로 로제의 손을 붙잡았다.
“정말 고맙네. 이 은혜는 잊지 않지.”
“아……. 아닙니다! 프리실라의 아버지이자 저희 고모의 지인이시잖아요? 당연히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제의 말을 들은 황제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제국의 황제라서가 아니라?”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것보단 제 소중한 사람들의 지인이니 말입니다! 분명 프리실라와 고모가 폐하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서서히 로제의 손을 놓는 황제.
“프리실라,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감사합니다.”
“작약공. 그대도 훌륭한 조카를 두었군.”
“…제 조카니까요.”
“네?”
아무래도 로제는 자신이 황제의 마음에 들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황제이기에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좋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지금 당장 황제에게 가장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었을까.
정말 로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로제여. 음, 유글리아는 저기 작약공도 있으니 이름을 불러도 되겠는가?”
“예! 얼마든지 불러주시옵소서!”
“하하하! 그리 예의 차리지 않아도 좋네. 지금의 나는 황제로서가 아닌 프리실라의 아버지로서 이곳에 온 것이니 말이네. 여기에서만큼은 편하게 말하도록 하게.”
“진짜요? 후, 살겠다……. 감사해요! 프리실라의 아버님!”
그런다고 정말 저질러 버리는 로제. 하지만 다들 로제답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리 놀란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심지어 저 황제마저도.
“하하하하! 그래! 프리실라의 아버님이라! 듣기 좋구나 그래! 하하하!”
“그래요? 프리실라 아버님! 프리실라 아버님! 프리실라 아버님! 프리실라 아버님!”
……아니, 말려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파이가 다가와 로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로제, 저번에 말했던 세계수의 열매는 어떻게 됐니?”
“프리실라 아── 그거요? 다행히 충분히 익은 상태에요! 그런데 프리실라 아버님은 정말 아프신 게 맞아요? 이렇게 정정해 보이시는데요?”
로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지금만 해도 너무나도 건강한 모습의 황제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아몬의 저주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신관들을 불러 아침마다 폐하의 몸에 신성력을 주입했거든. 병이 완전히 낫진 않으셔도 겉모습만큼은 감출 수 있으시게 되었어.”
“그녀의 말대로네. 눈에 보이는 부분은 어떻게든 바꿀 수 있었지만…… 내 몸은 아직 여위어있지.”
그렇게 말한 황제가 천천히 본인의 옷 앞섬을 풀어헤쳤다.
그와 동시에 바싹 마른 황제의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갈비뼈가 선명히 보일 정도로 말라있는 황제.
“솔직히 지금도 무척이나 갈증이 나고 허기가 지고 있지. 허나, 딸이 왔는데 어찌 밥을 먹으며 기다리겠나?”
“……아빠.”
멍하니 황제의 몸을 바라보던 프리실라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말로만 들어서는 다가오지 않았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자 감정이 터진 것 같았다.
“울지 말거라. 그래도 너와 네 친구가 치료약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정말로 고맙구나.”
손을 가리고 있던 장갑을 벗자 앙상한 황제의 손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손으로 프리실라의 눈을 닦아주는 황제.
옆에서 훌쩍이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로제는 허겁지겁 허리춤에서 ‘세계수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프리실라! 걱정하지 마세요! 고모가 이것만 있으면 바로 낫는다고 하셨으니까요!”
지팡이 끝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작은 열매들.
그 위태로운 모습들은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지만 역시 세계수의 나무라 그럴까. 사용자가 떼어내지 않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었다.
“……이게, 세계수의 열매.”
“네! 맞아요. 어서 먹고 나으셔야죠……!”
매달려 있는 열매 중 하나를 떼어 파이에게 건네는 로제.
조심스럽게 열매를 받아 든 황제는 멍하니 열매를 바라보다 이내 로제와 파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말로 고맙네, 그대의 일족에게 큰 빚을 지는군.”
그리고 이내 황제가 알약을 먹듯 입에 열매를 털어 넣었다.
“……어떠십니까? 폐하.”
조심스럽게 황제를 바라보며 상태를 묻는 파이.
아무 말없이 멍하니 앉아있던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맛있군.”
“예? 그게 끝입니까?”
“그래, 그것 말고도 확실히 허기와 갈증이 줄어들고 있군. 하, 정말이지…….”
그야말로 허무한 결말.
작디작은 나무 열매 하나가 황제의 몸을 병들게 했던 저주를 해주한 것이었다.
“잠깐 몸 상태를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대가 아니면 누가 내 몸 상태를 봐주겠나.”
천천히 황제에게로 다가간 파이가 황제의 진맥을 살핀다.
“확실히, 맥도 정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라파엘님? 폐하의 몸 상태를 훑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렵지 않지.”
뒤에서 신기하다는 듯 상황을 지켜보던 라파엘도 다가와 황제의 등에 손을 얹는다.
“음, 마기가 계속해서 옅어지고 있네, 오늘 안에 저주는 완전히 풀릴 거야.”
“……다행이군.”
라파엘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황제.
“폐하, 앞으로는 절대적인 회복이 필요하실 겁니다. 오랫동안 쇠약해지셨던 만큼 쉬는 게 우선이에요.”
“하지만 아직 내게 저주를 건 작자를 찾지 못하지 않았나.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황제가 앙상한 손을 꽉 쥐며 중얼거린다. 그러자 옆에서 자연스레 그의 팔을 덮는 프리실라.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저희가 해결할 테니까요.”
“……프리실라, 네가 말이냐?”
황제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프리실라.
“아니요, 저희가요.”
“네! 저희가 함께 범인을 찾을게요! 그러니까 푹 쉬고 계세요!”
강한 열의를 불태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 황제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느냐?”
“대천사와 대악마, 그리고 소환사 아카데미에서 믿을 만한 아이들로만 모인 파티야. 위험할 리가. 안 그래? 그레고리.”
갑자기 내게로 휘는 화살.
그래도, 눈앞에 병든 저 남성이 프리실라의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자 위로 정도는 해줘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말도록. 황제, 그대는 그저 우리를 뒤에서 지원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라파엘과 그대까지 그렇게 말한다면야, 믿겠네.”
“좋은 생각이다. 황제.”
“자, 그럼 폐하. 치료도 끝났으니 침소로 모시겠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러지. 갑자기 너무 졸리군. 어서 가서 쉬어야겠어.”
수마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인지 황제가 긴 하품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고프지 않은 상태로 잠을 잘 수 있다니,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군. 다시 한번, 정말로 고맙네.”
“아빠 조심히 돌아가세요.”
“프리실라 아버님! 저희에게 맡기고 편히 쉬세요!”
두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방 밖으로 나서는 황제. 뒤이어 파이가 방 밖으로 나서기 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상대는 아무도 모르게 폐하를 노린 자에요. 평범한 상대는 아닐 터,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절 찾아와 주세요.”
“참고하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완전히 방을 나서고, 우리 넷만이 방에 남게 되었다.
“프리실라의 아버님, 정말 좋으신 분이네요.”
“그렇죠? 헤헤……. 아,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건데 로제, 공적인 자리에선 폐하를 그렇게 부르면 안 돼요?”
“……그런 건 저도 알고 있다고요!”
알고 있었다고?
……성장했구나.
“우리도 이만 돌아가지 로제, 오늘 저녁부터 움직이려면 많이 바쁠 거다.”
“아, 네! 그럼 프리실라! 저희도 이만 방으로 돌아갈게요!”
“네, 편히 쉬어요. 로제. 그레고리님.”
그래, 푹 쉬어야 한다.
저녁 부터는 정말 바빠질 예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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