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아카대공 84
* * *
저녁 식사는 백은궁(白??)에서 이루어졌다.
커다란 테이블을 가득 수놓은 음식들과 그것들을 먹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는 사용인들.
사실상 이곳이 적지임을 알기에 우리는 최대한 평범해 보이는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식사를.
“마있어여! 넘므 마있어여! 잉에 아오 웅훙웅힉! 헤오에호!”
허겁지겁 양 볼이 빵빵하게 차오를 정도로 욱여넣고 있는 로제.
그럼에도 웃긴 것은 볼이 잔뜩 부풀어 발음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주제에 손만큼은 우아한 동작으로 계속 음식을 찾고 있다는 점이었다.
“로제……. 그러다 체할지도 몰라요. 천천히 먹어요.”
프리실라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손을 멈추고 우물우물 음식을 다 씹어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로제.
“헤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프리실라. 하지만…… 프리실라네 집밥이 너무 맛있는걸요?”
“지, 집밥이요?”
“네! 프리실라의 집이니까 집밥이죠!”
아니, 황실의 음식을 집밥이라 하는 건 너밖에 없는 것 같은데.
어찌 되었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식사는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모두 프리실라의 방에 모이게 되었다.
“장담하지, 오늘 밤 안으로 암살자가 올 거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나였다.
“네? 오늘 당장이요? 아무리 그래도 저희는 오늘 도착했는데 오늘 바로 습격이 올까요?”
프리실라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황제는 오랜만에 황실에 돌아온 프리실라를 위해 경비와 보안을 평소보다도 강력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오늘인 것이지.”
이유는 단순했다.
오늘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한 날이야말로 암살자에게 있어선 절호의 타이밍.
“우리의 적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임을 명심해라. 보안이 아무리 철저하다 해도 내부의 적에게는 쉽게 무너질 테니까.”
“……그렇군요. 그렇다면 암살자를 생포해서 정보를 캐내면 될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의 실수를 알고 더욱 독한 놈들을 데려올 거다. 아마 정보를 발설할 걱정이 없는 소환수들을 위주로 보내겠지. 로제, 그것을.”
“넷!”
나의 손짓에 로제가 주머니에서 커다란 종이뭉치를 꺼내 펼쳤다.
“……이건, 백은궁의 지도 아닌가요? 어떻게 이걸?”
“내 스킬을 사용해서 만들었지. 워낙 사역마가 많다 보니 구조를 아는 데 얼마 걸리지 않더군.”
그것과 더불어 과거 게임 속에서 황실의 길을 전부 외워버린 게 컸지만, 굳이 이것까지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어디에나 있듯 백은궁 내부에도 비밀통로가 존재한다. 이곳과 이곳. 그리고 이곳이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총동원하여 만들어낸 지도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가리킨 장소들은 황실의 일원이거나 백은궁을 관리하는 자라면 모두 알고 있는 정보였다.
이곳들은 말이다.
“하지만, 이곳과 이곳을 아는 자는 거의 없지.”
내가 그렇게 말하며 가리킨 곳은 부엌과 2층에서 가장 큰 방. 즉, 우리가 현재 머물러 있는 방을 가리켰다.
“네? 이 두 군데에도 비밀통로가 있다고요?”
프리실라 역시 모르던 정보였는지 놀란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그래, 정확히는 먼 옛날 황실이 지어질 때 같이 만든 장소이지.”
“……그런 걸 대체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저도 처음 듣는 정보에요.”
이 장소들은 [소환사 아카데미]의 황실 파트에서 개발자들이 지름길로 만들어 놓은 통로들이었다.
유저들이 열심히 걷지 않아도 되도록 설계한 장소였지만…… 그렇기에 이 통로를 아는 자들은 많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게임에서 봤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
이럴 때는 뻔뻔하게 나서는 게 최고다.
“그레고리님은 그레고리시니까요!”
“좋은 대답이군. 로제. 칭찬해주마.”
“헤헤…….”
그리고 이런 태도의 나를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로제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황.
프리실라와 아멜, 교관도 여기서 굳이 따질 필요를 느끼진 못했는지 묵묵히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통로들로 내 사역마들을 보내본 결과, 건너편의 문이 최근에 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잠깐, 그레고리. 네가 말한 통로들을 아는 자는 거의 없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라파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래, ‘거의’ 없지.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알고 있는 소수가 존재한다는 거다.”
내 말에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멜.
“즉, 우리를 제외한 인원 중, 그 통로를 알고 있는 자들이 용의자라는 거겠군.”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리에겐 아직 통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녀석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그게 뭐지?”
내 말에 교관이 묻는다.
“경고.”
“경고?”
“그래, 경고를 하면 녀석들도 긴장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긴장을 하게 되면 녀석은……반드시 실수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현대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배운 것이었다.
“경고라면 어떤 방식으로 경고할 셈이야? 네가 방금 암살자 녀석들에게선 정보를 얻기 힘들 거라고 했잖아?”
이번에 질문을 한 것은 휴고였다.
아무 생각 없는 멍청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할 머리는 있던 모양이었다.
“그거야 간단하지.”
싱긋 웃으며, 나는 계획의 설명을 시작했다.
* * *
달빛마저도 모습을 숨긴 야심한 밤. 프리실라가 잠들어 있는 방에 위치한 석상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한치의 소리도 용납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옆으로 밀려나는 석상.
표적인 프리실라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암살자들은 프리실라의 바로 옆에 누워있는 라파엘을 발견하고는 움찔했지만 이내 천천히 그녀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은 기척 자체를 숨겨주는 아이템들.
그들이 따로 충격을 주지 않는 이상 프리실라와 라파엘이 그들을 눈치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 라파엘과 프리실라라면 말이다.
“──꽤 늦었군.”
바퀴폼으로 변신한 채 칠흑 같은 어둠에 숨어 몸을 납작 수그리고 있던 나는 그대로 두 녀석의 발을 팔의 가시로 그어버렸다.
“──!!!”
자신들이 발각된 것을 알고 재빨리 후퇴하려 하는 두 녀석이었지만 이미 한쪽 발목씩 내게 뜯겨진 상태.
“어딜 도망가려고.”
[(스킬 : 검은 늪)을 발동합니다.]
그대로 검은 늪을 사용하여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탈출구를 봉쇄했다.
방에 들어오는 입구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입구를 열고 나타나는 다른 일행들.
“……몇 번을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군.”
“그러게 말이야.”
“그레고리님! 저희 왔어요!”
“……저 녀석들인가?”
아멜과 휴고, 로제와 교관이 동시에 들어오며 마지막 탈출구까지 막힌 녀석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작.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두 명이 동시에 풀썩 쓰러진다.
만약을 대비하여 이빨에 숨겨놓은 독약을 씹은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모두 예상한 시나리오 대로지만.
“로제. 그것을.”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로제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본인이 항상 비닐 팩에 넣고 다니는 담뱃잎들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들고 녀석들에게로 다가가 입을 벌려 한 움큼씩 쑤셔 넣어 주었다.
“라파엘. 부탁하지.”
“얼마든지.”
그리고 쓰러진 녀석들에게로 다가와 머리 위에 손을 얹는 라파엘. 그녀의 손에 새하얀 빛이 은은히 피어오르며 녀석들의 머리를 감쌌다.
“아멜, 휴고, 교관. 녀석들의 힘줄을 모두 끊어라.”
다른 일행들이 녀석들의 힘줄을 끊으면 라파엘은 그것을 치유한다.
독? 세계수의 잎과 라파엘이 여기에 있는데 독 따위가 대수겠는가.
만약을 대비한 세계수의 열매까지 있는 상황에서, 암살자들이 스스로 자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눈을 뜨는 암살자들.
두 눈이 커진 것을 보아 본인들이 역소환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선 꽤 놀란 모양이었다.
“잠은 잘 잤나? 그럼, 이제 우리와 놀아줄 차례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두 녀석에게 다가갔다.
순간적으로 내게 저항을 하려고 한 모양이었지만 몸에 이상을 느꼈는지 표정이 꿈틀거리는 녀석.
양팔과 다리의 힘줄을 끊어 놓았는데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입 안에 있는 암기도 모두 제거한 상태이니 포기하도록. 네 녀석들은 내일부터 수고를 해줘야 하니 말이다.”
“……?”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어떠한 반응도 없는 녀석들을 뒤로하고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두 녀석을 백은궁의 꼭대기에 묶어놔라. 지나가는 이들이 모두 볼 수 있게. 그리고 돌아가면서 녀석들을 감시하는 거로 하지.”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경고.
우리는 프리실라를 암살하려는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황실 전체에 퍼뜨릴 속셈이었다.
어차피 내일 말만 하면 모두에게 알려질 상황이 아니냐 물을 수 있다.
실제로 교관은 내게 그런 질문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허나, 암살자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말로만 듣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또한, 말로만 전하는 것으로는 녀석들에게 확실한 경고를 할 수 없을 터.
우리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녀석들에게 경고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녀석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로써 우리는 그것으로 황실의 적들에게 메시지를 남길 셈이었다.
사냥꾼은 너희가 아닌 우리임을.
너희야말로 사냥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 사냥의 시즌이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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