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아카대공 86
* * *
‘매료의 장미’를 얻은 우리는 그대로 미로를 나와 본래 있었던 화단으로 돌아갔다.
“으으, 뭔가 귀에 장미꽃을 꽂고 다니기에는 창피한데 말이죠.”
로제의 오른쪽 귀에 꽂혀있는 ‘매료의 장미꽃’.
로제가 ‘주머니에 넣으면 꽃이 상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기에 ‘그렇다면 귀에 꽂지 그러냐.’라고 말해주었더니 진짜로 그걸 해버린 로제였다.
“충분히 어울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 진짜요?”
발그레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어루만지는 로제.
실제로, 다른 누구도 아닌 신비스러운 엘프가 귀에 장미를 꽂고 다니는 모습은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 이게 ‘매료의 장미’가 가진 매력 보정의 효과인 걸까?
내게도 영향을 끼칠 정도라면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 그레고리님. 저거 고모가 아닐까요?”
그렇게 화단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로제가 화단에 웅크리고 앉아 호미질하는 여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확실히, 머리색이 무척 익숙하군.”
로제의 말이 맞는 것 같았기에 천천히 그 여성의 뒤로 다가가 보았다.
“음흠~ 음흠흠~ 음흠음흠흠~”
화단에 심어져 있는 풀들을 호미로 캐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성.
“파이 폰 유글리아?”
“아앗! 죄송해요! 화단에 심겨진 약초가 너무 탐나서─── 그레고리님? 로제?”
역시, 그녀가 맞았다.
“고모, 여기서 대체 뭘 하고 계신 거예요?”
“……보아하니 황실 화단에 심겨진 약초나 연금술 재료들을 몰래 캐고 있던 것 같군.”
“……들켜버리고. 말았네요.”
하하하, 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는 파이. 지금까지 캐던 꽃과 약초들을 모두 주머니에 담은 파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폐하의 기력이 조금 쇠하신 것 같아서 자양강장제를 만들려고 했거든요……. 근데 화단의 식물을 함부로 채집하면 화단관리자가 화를 내서…… 몰래 캐고 있었어요.”
“……화단관리자? 본래 황실의 화단은 황비가 관리하는 내명부(???)에서 관리하지 않나?”
본래 황실의 조경이나 인테리어, 청소와 같은 일은 내명부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과거 커뮤니티에 [소환사 아카데미아] 황실 조직도를 올린 녀석에게 감사해지는 순간.
설마 황실 덕후라고 놀렸던 녀석이 올렸던 정보 글이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네? 어…… 옛날엔 그렇게 했었죠?”
“지금은 다르다는 건가?”
“네, 과거 1 황비께서 돌아가신 후 새롭게 들어오신 3 황비께서 내명부의 총책임자가 되셨거든요. 그때 황실의 정원은 ‘정원관리자’라는 직책을 가진 정원사에게 일임하기로 했어요.”
“……3 황비?”
새로운 키워드를 얻었다.
내명부를 관리하고 있는 게 3 황비라니.
나중에 프리실라에게 따로 물어봐야겠군.
“파이. 기왕 만난 김에 몇 가지를 더 물어봐도 괜찮겠나?”
“네? 뭐…… 저야 상관은 없지만요…….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하면 안 될까요? 진짜로 정원관리자에게 걸렸다간 정말 곤란해지거든요.”
제국의 공작마저도 벌벌 떨게 만드는 정원관리자라니. 대체 어떤 인물인 걸까.
“근처에 갈 곳이 있나? 우리 방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꽤 될 텐데.”
“아, 걱정 마세요. 제가 묵고 있는 곳이 여기 근처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와! 고모의 집!”
그렇게 외치는 로제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는 파이.
“그럼, 우선 자리를 벗어날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우리의 앞에 서서는 뚜벅뚜벅 처음 보는 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약초 주머니는 두고 가는 건가?”
“아 맞다!”
……역시 로제의 친족인가.
* * *
“짠! 여기가 바로 제가 살고 있는 저택이에요!”
양팔을 벌리며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파이.
그런 그녀의 뒤에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이 떡하니 서 있었다.
“……여기가 말이냐?”
“네! 사랑스러운 제 집이에요!”
벽을 완전히 감싼 넝쿨 식물과 마당에 있는 작은 텃밭, 그리고 미국 영화에서나 흔히 보던 지하실의 문까지.
확실히, 좋은 집이라면 좋은 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집이었지만…… 공작의 집이냐고 묻는다면 장난하냐 묻고 싶은 집이었다.
“공작이 이런 집에 살다니, 대체 누가 이런 집을──
“오! 델리니아식으로 지으셨네요?”
“맞아, 비록 고향을 떠났지만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지었는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집이라 칭찬해주고 싶군.”
……위험했다.
델리니아식 집을 구리다고 할 뻔했어.
“그렇죠? 자, 안으로 모실게요.”
평소에 문을 따로 잠그고 다니지 않는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들어서서는 집 한구석에 주머니를 집어 던지는 파이.
“평소에는 문을 잠그고 다니지 않는 건가?”
“네, 평소에는 마법을 걸어놓고 외출하거든요. 제 반경 2미터 안에 붙어서 들어오지 않고는 외부인이 들어오면 굉음을 내도록 설계해놨어요.”
……나름대로 방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차는 뭘로 드실래요? 커피? 홍자?”
“난 홍차로 부탁하지.”
“아! 저두요! 설탕 2개 넣어서!”
우리의 주문을 받고 순식간에 홍차를 가지고 오는 파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앞에 앉은 파이가 커피로 입을 축이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떤 게 궁금하셨던 거예요?”
“별 것 아니다. 현재 황실에 거주하고 있는 황족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서 말이다.”
“네? 황족들의 정보요?”
내 말에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 파이.
“아무리 저라도 황족들에 대한 정보를 함부로 이야기하고 다니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요…….”
“네……. 뭐……. 다른 누구도 아닌 그레고리님과 로제니까요. 현재 황실에 거주하고 있는 황족은 황녀와 폐하를 제외하고 총 5명이에요.
프리실라보다 동생이지만 남자 형제 중에서는 장남인 차헬리 앤 하인베른. 그런 그의 동생인 첼 앤 하인베른. 사교계의 보석이라 불리는 로제트 앤 하인베른과 세이린 앤 하인베른. 마지막으로는 3 황비인 샬렛 폰 하인베른이 있죠.”
즉 지금 황실에 있는 같은 항렬의 경쟁자는 총 4명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그중에 프리실라에게 암살자를 보낸 녀석이 있다는 거겠군.”
“네? 황녀에게 암살자가요? 황실에 오자마자 암살자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암살’이란 단어에 화들짝 놀란 파이가 묻는다. 이에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로제.
“아아~ 프리실라의 적이 암살자를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랑 다른 사람들이 와장창 혼내줬었죠. 아하하!”
“그래? 아무래도 비행정에서 들었던 것보다 황녀의 상황이 심각한가 보네.”
“맞다. 듣기로는 자신의 사람들로부터 연락도 끊겼다 하더군.”
“그래요? 신기하네요. 아직 황권에 욕심을 낸 황가의 아이들은 따로 보지 못했는데 말이죠.”
“그것을 숨길 수 있으니 황족이라 불리는 거겠지.”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나서야 할 때가 온 걸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우리의 패 중에서 가장 강력한 패나 다름없다. 지금은 숨기고 있는 게 좋을 거다."
"……그런가요. 그럼 우선 가만히 평소처럼 지낼게요."
호록. 하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신 파이가 머리를 만지고 있는 로제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저기…… 그 꽃은……!"
"네? 아, 이 꽃이요? 이쁘죠?"
"……‘매료의 장미’. 그걸 로제 네가 어떻게?"
그녀 역시 매료의 장미를 알고 있는 건가.
"내가 위치를 알고 있어서 말이다. 겸사겸사 산책도 할 겸 얻어왔지."
"……전설 속에나 나오는 식물을 산책할 겸 가져왔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레고리님밖에 없으실 거예요."
아니, 이 정도면 진짜 귀한 아이템도 아닌데…….
"어쨌든, 우선 지금 당장 로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네요."
"네? 저한테요?"
파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해하는 로제. 이에 파이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지하실로 보이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 장미, 그렇게 하고 다니는 것도 이쁘긴 하지만 조금 신경 쓰이지 않니?"
"네! 맞아요!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는 것 같아서 창피했어요."
로제의 대답을 들은 파이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바라본다.
"아마 저대로 들고 다니면 엄청난 이목이 쏠릴 것 같은데, 제가 조금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네가?"
"네, 장비는 다 안에 있거든요. 아, 안에 한 번 들어와 보실래요?"
파이의 말을 듣고는 로제와 함께 파이가 내려간 지하실로 함께 내려간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지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파이 집의 지하실.
"윽, 풀냄새!"
"확실히…… 지독한 냄새군."
문을 열자마자 퍼져나오는 냄새.
그 안에는 마치 실험실을 방불케 하는 온갖 도구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풀들, 몬스터의 부산물들이 널려있었다.
그런 충격적인 광경에 모두가 코를 막았지만, 파이는 익숙하다는 듯 방 한쪽에 놓여진 테이블에 앉으며 로제를 앞에 앉혔다.
"우선 이 장미의 효과를 그대로 살려서 보석을 만들 생각이에요. 보석이라면 어떤 장신구든 간에 잘 어울리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로제가 따로 원하는 물건이 있니?"
"네? 제가요?"
파이의 말을 들은 로제가 표정을 찡그린다.
"피어싱? 아니, 피어싱은 아무 장식도 없는 게 이뻤어요. 지팡이? 아니, 지팡이도 훼손시키기에는 너무 좋은 차였죠. 그렇다면…… 음……."
문뜩, 무엇인가가 생각났는지 로제가 허벅지에 걸려있던 파우치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도 가능할까요?"
"……담배?"
"네!"
”뭐, 가능은 하겠지만……. 들고 다니거나 입에 물고 있지 않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가 힘틀 텐데?“
”괜찮아요! 담배를 물고 있으면 더 이뻐 보인다니! 아마 모든 흡연자들의 로망일 거예요!“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자신 있게 외치는 로제.
"그, 그래? 그러면 알겠어. 우선 파이프를 주지 않으련?"
"네! 여기요!"
로제가 싱긋 웃으며 손을 뻗은 파이의 손에 장미와 파이프 담배를 올려준다.
그리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파이.
아니,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매력적인 하프 엘프라니.
잠깐.
……뭔가. 의외로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