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아카대공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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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가 건넨 파이프 담배를 손에 들고는 이리저리 둘러본 파이가 중얼거린다.
“흠……. 확실히 소재도 괜찮고, 범용성도 있고, 괜찮을 것 같은데…….”
로제의 설명에 의하면 로제가 가지고 있는 파이프는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깎아 만들어 낸 것으로 평범한 파이프 담배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라 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소재라 할 수 있는 물건.
[소환사 아카데미아]에도 아이템을 제조하고 조합하는 기능이 있는 만큼 여기에도 분명 무언가가 있으리란 본능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거, 못해도 국보급 물건이 나오겠는데요?”
“그 정도라고?”
“네, 사실상 현존하는 최고의 연금술사를 손꼽아 보라 하면 항상 거론되는 게 저니까요. 이 물건들의 수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자신 있다는 듯 가슴을 치는 파이의 모습에 로제가 흥분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 강화……! 꼭 부탁드릴게요!”
“그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한…… 2시간 정도?”
“빠르군.”
“다른 누구도 아닌 저니까요. 로제와 그레고리님은 음…… 위에서 편히 쉬고 계실래요? 완성되는 대로 가지고 올라갈게요.”
“그래 준다면 고맙지.”
“뭘요, 다 조카 돕자고 하는 일인데요.”
“아, 고모! 그러면 저는 그동안 사용할 파이프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참으렴.”
“엣?!”
“그래, 몇 시간이면 된다니 참아라.”
“……히잉.”
결국, 시무룩해진 로제와 함께 거실로 올라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로제, 정말 네가 피는 세계수의 잎에 중독성이 없는 게 확실한 거겠지?”
요즘 들어 금단증상마냥 벌벌 떠는 로제를 보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본인의 말로는 피지 않으면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하지만…… 의존하는 경향이 많이 보이기는 했다.
“네, 확실히 없어요. 요즘 빈도가 많이 늘어난 이유는 음…… 그냥 입이 심심해서 그런 것 같고요.”
“……그런 거라면 차라리 사탕을 사 먹어라.”
“네? 하지만 사탕은 비싼걸요! 담배는 고향에서 계속 들어오고요!”
……결국, 공짜 간식 느낌으로 피우고 있던 건가.
“요즘 들어 이곳저곳에서 후원금도 들어오지 않나.”
나의 등장과 동시에 성적이 급격하게 향상되기 시작한 로제에게서 가능성을 본 것일까.
요즘 들어 로제에게 들어오는 후원금도 많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심지어 요즘엔 장학 재단에서까지 후원금이 들어오기도 했고 말이다.
“헤헤, 사실 고향에도 보내드리고 빌린 돈을 갚다 보니 얼마 남지 않더라고요…….”
“……빚도 있나?”
“그……. 초창기에 용돈도 부족한데 이곳저곳에 쓸 일이 많아서……. 어쩌다 보니……. 네…….”
……산 넘어 산이로군.
“아카데미에 돌아가면 빚부터 청산하도록 하지.”
“……넵.”
그것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2시간 정도 태웠을까.
마침내 지하에서 들리던 요란한 소리가 잦아들더니 파이가 지하실에서 올라왔다.
“……후후. 엄청난 작품을 완성하고야 말았어요. 짜잔!”
그렇게 외치며 우리를 향해 새롭게 변형시킨 파이프 담배를 내보이는 파이.
우리는 유심히 그녀의 손에 올려진 파이프 담배를 바라보았다.
“……달라진 거 같나?”
“……똑같은데요?”
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
그런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
“두 사람 모두 잘 보세요! 파이프 담배의 끝부분을!”
파이의 말을 듣고 유심히 바라보니 붉은색의 필터가 끼워져 있는 게 보였다.
“필터인가?”
“정답이에요! 연기에 무언가를 묻히려면 필터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바로 필터에 적용해보았죠.”
파이는 내게 그렇게 말하며 필터를 건네주었다.
“그럼 어떤 효과가 생긴 거지?”
“우선 기존에 알려진 ‘매료의 장미’처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좀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입에 물고 있으면 그 능력이 배로 상승해요.”
“와! 담배 강화!”
얘는 왜 아까부터 담배 강화 거리는 거야.
“그뿐만이 아니에요! 저의 손을 거친 이 담배의 연기를 맡게 되면…… 매혹 효과에 걸려요……!”
“뭐? 매혹?”
지금, 내 앞에 있는 엘프가 담배 연기에 상태 이상을 추가시켰다고 말하는 건가?
“네! 매혹이요! 담배 연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본인도 모르게 매혹에 걸린다니. 엄청나지 않아요?!”
“……그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해봐야 둘의 성능을 합친 것에서 조금 더 나아지는 수준을 예상했건만, 예상을 뛰어넘는 수작이 탄생해버렸다.
매혹 상태 이상을 유발시키는 능력?
매혹은 게임에서도 무척 유용한 상태 이상 중 하나였다.
“아니, 잠깐만.”
그렇다면…….
“로제가 평상시에 뻑뻑 피워대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매혹에 걸리는 거 아닌가?”
피아식별을 가리지 않는 상태 이상이라니, 그건 좀 위험한데.
“뭐, 어쩔 수 없죠? 로제가 알아서 참아야지.”
“네?! 담배를 참으라고욧?!”
그리고 쟤는 왜 저 포인트에서 화를 내는 걸까.
“후후, 농담이야. 그레고리님. 필터 부분을 살짝 눌러 보실래요?”
파이의 말대로 손가락으로 필터 부분을 살짝 눌러보았다.
이건…… 캡슐?
“뭔가 만져지시죠?”
“그렇군. 이건, 캡슐인가?”
“오……. 설마 요즘 연초의 유행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맞아요. 요즘 유행하는 연초 필터에 들어있는 캡슐이죠. 그걸 깨물면 그때부터 필터를 거친 연기가 매혹을 유발하는 방식이구요.”
“캡슐은 일회성이 아니었나?”
“에이~ 제가 누군데요. 캡슐은 한 번 깨뜨리면 8시간에 하나씩 재생돼요. 이 모든 게 재료인 세계수로 만든 파이프 담배와 매료의 장미가 모두 식물이라 가능했죠. 어때요. 대단하지 않나요?”
“……확실히 대단하군. 큰 빚을 졌다. 파이.”
내가 그렇게 말하며 짧게 고개를 숙이자 파이가 능청스럽게 손을 펄럭펄럭 흔든다.
“에이, 뭘요~. 폐하를 치료해 주신 게 제게는 훨씬 큰 빚인걸요. 너무 마음에 두진 마세요. 저도 오랜만에 이런 고급 재료들을 만지게 되어 재미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럼…….”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서 귀신에 홀린 듯 팔을 허우적거리는 로제를 바라보았다.
“아우……. 강화 담배……. 새로운 기능……! 저도 만져 볼래요……!”
“……여기 있다.”
“이것이 강화 담배……!”
마치 라이언 킹에서 아기 사자를 받는 원숭이 마냥 양손으로 무척이나 공손하게 담배를 건네받는 로제.
“오오……. 뭔가 손에 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것 같은 느낌……!”
“아니, 그런 효과는 따로 안 넣었는데?”
그리고 그런 로제를 바라보며 금시초문이라는 듯 말하는 파이를 무시하고선 로제가 천천히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아……. 이 서늘하고도 익숙한 감각……. 이제는 다시, 흡연자 로제로 돌아갈 때에요! 고모! 여기서 한 번 효과를 확인해 보아도 될까요?”
“얼마든지? 아, 혹시 모르니 매혹 상태를 풀 수 있는 포션을 가지고 올게?”
그렇게, 파이가 상태 이상을 풀어주는 해독제를 준비하는 것으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 로제의 ‘New 파이프 담배’ 시음식을 관람하게 되었다.
아, 참고로 ‘New 파이프 담배’라는 이름은 로제가 붙인 거였다.
“뉴 파이프 담배……! 잘 먹겠습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듯 약초를 눌러 담은 뒤 자연스레 불을 붙이는 로제.
“그, 그럼…… 터뜨릴게요?”
탁. 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로제가 담배 연기를 내뿜어냈다.
“음……. 딸기맛? 아니, 장미향인가? 향이 더 좋아진 느낌이에요.”
입과 코로 연기를 천천히 뿜어내며 중얼거리는 로제.
확실히 로제의 말대로 평소 세계수의 잎에서 느껴지지 않던 달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향이 코끝에 느껴지고 있었다.
“그레고리님과 고모는 어때요? 뭔가 달라진 것 같아요?”
고개를 돌리며 자연스레 묻는 로제의 목덜미가 눈에 띈다.
새하얗고도 가느다란, 솜털이 엿보이는 목선. 그리고 그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인간에게서는 볼 수 없는 기다란 귀가 보인다.
그 귀를 아주 자세히 바라보면 한 번씩 움찔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진다.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내게로 시선을 향하는 로제.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와 내 시선이 마주치자 뇌에서 마치 폭죽이 터지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로제의 눈이 저렇게 아름다운 색이었나?
마치 태양빛을 응축시킨 듯한 호박빛의 눈동자. 그녀가 깜빡일 때마다 보이는 가느다란 속눈썹과 매끄러운 코. 그리고 저 아래 탐스럽고도 아름다운────
재빨리 준비된 해독제를 마셨다.
………와, 위험했다 진짜.
“그레고리님?”
해독제를 한 방에 때려 넣고 입가를 닦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로제.
“효과는 확실한 것 같군.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그런가요? 제가 봤을 땐 그레고리님이 변하거나 한 것 같진 않았는데요…….”
“그레고리는 유혹에 빠져들지 않는다.”
“칫.”
그건 그렇고, 정신력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나도 이 정도인데 파이 쪽은 어떻게 된 걸까.
고개를 돌리니 눈에 촉촉하게 젖어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파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 로제에……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자랐을까? 마치 언니를 보는 것 같아아……. 하아…… 하아…….”
어, 음.
“파이는 언제부터이랬지?”
“그레고리님이 저한테 눈싸움을 거셨을 때부터요?”
그 와중에 로제는 내 시선을 눈싸움으로 본 건가.
너무나도 로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하아……. 로제에…… 고모랑 비밀 친구───”
파이도 위험해 보이기에 재빨리 그녀의 입에 해독제를 꽂아주었다.
“푸하! 이게 대체……! 제가 만들었지만 엄청난 효력이네요……!”
제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의 뺨을 두들기는 파이.
그녀가 두렵다는 듯 자신이 만든 파이프를 바라보았다.
“로제, 캡슐은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겠어요. 너무 위험해요!”
“네? 그, 그 정도예요?”
파이의 말에 공감하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함부로 남용했다간 네가 위험해질 거다.”
“네, 뭐. 저도 캡슐 향이 취향은 아니여서요. 그레고리님이 깨라고 말씀하시기 전까진 사용하지 않을게요!”
“그래. 그게 좋겠군.”
매혹…….
정말로 위험한 CC기다.
그리고, 정말로 유용한 CC기 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 파이. 정말로 신세를 많이 졌다. 덕분에 유용한 물건과 큰 도움을 얻었다.”
로제의 파이프 담배를 강화시키겠다고 있었던 시간도 있었기에 우리는 백은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말도 없이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네? 벌써요? 아쉽네요……. 로제, 그레고리님. 다음에도 또 들러주세요. 두 사람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니까요.”
“그러도록 하지.”
“네! 고모! 또 올게요!”
그렇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백은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역시 고모……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번에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 담배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는지 꿀이 떨어질 듯한 눈으로 자신의 담배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로제.
“그래, 저래 보여도 용사 파티의 멤버였으니 말이다.”
“헤헤, 맞아요. 그런데…… 그레고리님. 저거, 아멜양 아니에요?”
백은궁으로 돌아가는 길, 이상한 남성에게 붙잡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멜의 모습이 보였다.
아, 느껴진다.
새로운 이벤트의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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