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88화 (88/169)

〈 88화 〉 아카대공 ­ 88

* * *

“아카데미에 있어야 할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아카데미의 일로 오게 된 것이라고.”

“황녀와 함께 황실까지 찾아온 주제에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 하는 거냐?”

“오히려 황녀와 함께 왔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오라버니!”

“함부로 오라버니라 부르지 말아라! 이곳은 황궁. 지금 나는 황실 기사단 3대대의 중대장, 카릴 발멩가다.”

점점 격양되며 높아지는 두 사람의 대화.

나와 로제는 멀찍이 떨어져 인기척을 줄이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레고리님! 그레고리님! 저 남자가 아멜양의 오빠인가 봐요!”

“그래, 그런 것 같군. 자신의 오라비가 황실 기사단의 중대장이라……. 그런데 왜 저렇게 아멜을 싫어하는 거지?”

“제가 봤던 로맨스 소설에서는 보통 가주의 자리를 두고 싸우거나 한쪽이 사생아일 때 저렇게 싸웠었어요……!”

“확실히 일리 있군.”

그리고 이를 방증하듯 저 멀리서 아멜의 오빠라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더러운 핏줄이라 날 무시하는 거냐!”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말하지 않습니까!”

“네 말대로 한 명이 사생아였군.”

“헤엑……! 사생아 오빠라니! 분명 소설대로라면 그다음은 금단의 사랑── 읍읍!”

아무리 나여도 근친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기에 로제의 입을 틀어막아 주었다.

그리고, 대체 저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겠냐.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인데.

“안 되겠군. 우리가 나서자.”

“네! 평화를 사랑하는 엘프로서 가만히 볼 수는 없어요!”

그렇게 외치고는 나보다도 먼저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로제.

“거기 두 사람!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로제?”

“델리니아의 유글리아 영애?”

두 사람은 로제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거기 당신! 아무리 아멜의 오빠여도 동생한테 그렇게 나쁘게 말 하시면 안 되죠!”

“……가족사일 뿐입니다. 유글리아 영애가 상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요! 상관있어요! 아멜은 제 선배이자 친구니까요!”

눈까지 부릅뜨며 다가오는 로제의 모습에 아멜의 오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멜 발멩가. 나중에 보도록 하지.”

“아멜양은 저랑 꼭 붙어 있을 거거든요?! 흥!”

그런 로제를 바라보며 아멜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로제, 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지?”

“네? 어……그, 그게 말이죠!”

갑자기 구해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제, 아멜은 그 시선의 끝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표정을 구겼다.

“그레고리 존스, 네가 시킨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로제와 함께 담배를 피울 장소를 찾다 발견했을 뿐이다. 그렇지, 로제?”

“마, 맞아요! 외진 곳을 찾다 보니 우연히 아멜양을 발견한 거라고요!”

“……그래?”

“그래, 네가 무슨 남성에게 붙잡혀 있기에 추행이라도 당하는 줄 알고 왔더니…… 오빠였나?”

“추, 추행이라니 무슨! 이 내가 추행을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추행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아멜이 발끈하며 소리친다.

“그, 그저 오라버니는 옛날부터 어려웠을 뿐이다…….”

“그럴 수 있죠. 저도 가끔 제 동생이 어려울 때가 있거든요.”

“동생도 있었나?”

“네! 한 살 터울인데 엄~ 청 귀여워요!”

로제의 밝은 미소의 덕일까. 방금까지만 해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멜의 표정에 미소가 서린다.

“그렇군. 확실히 너를 닮았다면 귀엽겠어.”

“그쵸? 그쵸?”

이러다간 여기에 더 묶여 있을 거 같은데.

나는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백은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만, 같이 갈 텐가?”

“백은궁? 뭐, 처음엔 산책하러 나온 거기도 하고……. 볼일도 없으니 상관없겠지. 그래, 같이 가지.”

그렇게 아멜과 합류하여 백은궁으로 돌아온 우리, 나는 방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운 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로제, 아까 전 아멜과 그의 오빠에 대한 대화를 들으며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나?”

“네? 두 사람의 대화요? 어디가요?”

나는 로제가 누워있는 침대에 앉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오빠라는 녀석 말이다. 분명 이름이 카릴이 카릴이라고 했나? 그 녀석이 한 말 중 이런 말이 있었다.”

‘황녀와 함께 황실까지 찾아온 주제에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 하는 거냐?’라고.

“거기가요?”

“그래, 황녀와 함께 있다면 황실에 오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터, 허나 녀석은 황녀가 황실에 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듯이 말하더군.”

“……확실히, 그러네요? 프리실라는 그저 집에 돌아온 건데 말이죠.”

“뭔가 냄새가 나는군.”

“……맞아요. 아주 맛있는 냄새에요. 응?”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로제가 현관을 바라보았다.

“맛있는 냄새……!”

그와 동시에 누군가 현관을 두드린다.

‘간식을 준비했습니다. 드시겠습니까?’

“네!”

……정말로 맛있는 냄새였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좀 더 생각을 정리하려고 할 때, 로제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레고리님! 그레고리님!”

거친 숨까지 내뱉으며 달려온 로제. 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던 찰나, 로제가 잔뜩 흥분해서는 먼저 입을 열었다.

“와, 왔어요! 프리실라양의 동생이 찾아왔어요!”

“……뭐?”

그리고 그와 동시에 로제의 뒤에서 작디작은 소녀가 걸어 나와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뵈게 된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에자젤 앤 하인베른. 제1 황녀이신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의 여동생입니다.”

마치 프리실라를 작게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이 눈에 띄는 소녀였다.

백금발의 머리와 푸른 청안. 그리고 첫눈처럼 새하얀 피부까지, 그녀와 프리실라의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카락의 곱슬기 정도일까?

자신을 에자젤이라 소개하는 소녀의 머리가 좀 더 곱슬기가 있는 모습이었다.

“황녀님이라니, 그렇게 귀한 분이 여기는 어쩐 일이지? 프리실라의 방은 여기가 아닐 텐데.”

외견은 8살 정도로 보이지 않는데 무척이나 차분하고 지적인 눈을 가진 소녀였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별것 아니라는 듯 싱긋 웃는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마계의 대공이신 그레고리 존스님. 맞으시죠?”

“그래, 그리고 나는 왜 네가 여길 찾아왔는지 묻고 있지.”

“……직설적이시네요. 그렇다면 저도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전에……. 유글리아양? 앉아 계셔도 되는데요…….”

“유글리아양이라니요~ 언~니. 라고 해봐요.”

“……죄송합니다만, 저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러 온 겁니다.”

“꺄아~ 귀여워! 그레고리님! 진짜 작은 프리실라를 보는 것 같지 않아요? 어쩜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거죠?! 흐야아…. 볼 한 번만 만져봐도 돼요?”

“로제, 우선 이야기 먼저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여기서 더 하면 쟤 진짜 빡칠 것 같거든.

“…아쉬워라.”

결국, 내 옆에 나란히 앉는 로제. 그제야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맞은편에 에자젤이 앉았다.

“여러분을 찾아뵌 것은 여러분이 지금 황실에 있는 ‘소환사 아카데미아’의 학생 중 리더격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유로 그렇게 생각한 거지? 우리는 그저 평범한 1학년 학생과 소환수일 뿐인데.”

“제 친구가 알려줬거든요. 그레고리 존스님. 당신이 평범한 소환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네 친구?”

“……산달폰.”

그녀의 짧은 읊조림과 동시에 돌풍이 몰아치며 인간의 형상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내는 금발의 여성.

“안녕. 그레고리 존스? 오랜만이지?”

마치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손을 흔들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녀석.

천사 산달폰.

“……산달폰. 너와 내가 웃으며 인사할 사이였나?”

“에이~ 웃으면서 인사하지 못할 건 뭐야? 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가워서 그러지.”

나를 보며 킥킥 웃던 녀석의 시선이 이내 내 옆에 있는 로제에게로 옮겨진다.

“아름다운 엘프 아가씨도 함께네? 네 소환사? 반가워, 나는 산달폰이야.”

“아, 넷. 로제 폰 유글리아입니다.”

산달폰이 건넨 손을 자연스럽게 잡으려던 로제의 손을 막는다.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다. 조심해라.”

“아, 넷.”

그리고 그런 내 반응에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산달폰.

“오랜만에 만나도 변함없네?”

“네 녀석도 마찬가지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아쉽게도 내겐 녀석과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레고리 존스의 몸에 빙의했을 뿐인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 하나만큼은 알고 있다.

과거, 게임 속에서 산달폰이 행했던 짓들을 말이다.

‘재앙을 도왔던 마을이라면 쓸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보다도 천사다운 얼굴로 악마다운 짓을 행한 천사.

단 한 번의 발길질로 죄 없는 마족과 악마들을 학살하던 녀석.

게임에서라면 모를까. 실제로 존재하는 이곳에서 녀석은 위험한 녀석이었다.

“……용건이나 말해라. 산달폰, 에자젤.”

황녀와 천사.

그 둘은 서로 시선을 맞추더니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언니를.”

“라파엘님을”

“구해주세요.”

“구해줘.”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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